칼럼

반일무죄는 이제 그만

서의동 2013. 8. 1. 09:37

해마다 여름이면 한국과 일본엔 심상치 않은 열기에 휩싸이고, 이 현상은 올해도 예외가 아닌 듯 하다. 지난 주말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일전에서 일본 응원단은 한국에서 군국주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욱일승천기를 흔들었고, 한국 응원단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일본의 한 각료는 한국의 민도(民度)가 의심스럽다고 발언했고, 한국 외교부는 “무례하다”고 되받으며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일본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한국에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지난해 고조됐던 한·일 갈등이 잦아드는가 했으나 최근 상황은 지난해 못지 않은 느낌이다. 강경보수 월간지는 최근호에 ‘자멸하는 한국’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고, 일본 최대 시사주간지인 ‘슈칸분슌(週刊文春)’은 미국에 위안부 소녀상이 건립되는 것을 두고 ‘한국, 적당히 해라’라는 제목의 비판기사를 커버스토리로 담았다. 휴가철을 맞았지만 신문에 한국 광고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달 초 도쿄에서 열린 ‘한일 프렌드십 페스티벌’에서 만난 일본 여행업계 관계자는 “개인관광은 그다지 줄지 않았는데 단체관광객이 격감했다”고 말했다. 사회의 공기를 읽는 데 민감한 회사나 학교들이 한국 단체관광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올봄에 만난 일본인 사업가는 “한국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이 주변에 적지 않지만 한·일관계가 나빠 눈치만 본다”고 말했다. 

 

도쿄 코리안타운인 신오쿠보의 음식점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매상이 회복되지 않자 울상을 짓고 있다. 7월초 이후 잠정중단 상태이긴 하지만 주말마다 혐한시위가 되풀이되는 영향이 적지 않다. 스포츠신문에서는 한류기사를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K팝 스타들도 TV에서 자취를 감췄다. 

 

일본의 반한 분위기에 분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시점에서 일본을 대하는 한국의 태도를 한번쯤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한·일전에 등장한 대형 현수막을 가리켜 한 일본 기자는 “한국은 반일이라면 뭘 해도 괜찮다는 식이냐”고 내게 따져 물었다. 한국에 비판적인 일본인들은 ‘반일무죄’라는 표현을 쓴다. 반일을 위해서라면 법이건 질서건 마음대로 어겨도 된다는 부정적 뉘앙스를 담고 있다. 이런 말이 통용되는 데는 한국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쓰시마(對馬)섬에서 도난당해 한국에 밀반입된 금동관음보살좌상. 충남 서산의 부석사가 이 불상을 두고 14세기에 한국에서 제작돼 부석사에 봉인돼 있던 것을 왜구가 약탈했던 것이라며 이전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자 법원이 이를 수용했다. 불상이 도난품인지 여부는 일단 제쳐두고 도굴꾼이 한국으로 훔쳐온 것인 만큼 일단 돌려준 뒤 역사적 사실을 따지는 것이 상식에 맞다.

 

지난해 런던올림픽 한·일전에서도 한 선수가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쓴 카드를 들고 운동장을 돌아 국제축구연맹(FIFA)의 제재를 받았다. 하지만 한국 내에선 그 선수가 뭘 잘못했느냐며 감싸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이런 한국의 태도에 보통 일본인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에 등장한 현수막도 엄격히 따지면 룰 위반 가능성이 크다. 한국측은 일본이 먼저 욱일승천기를 휘둘렀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국제사회에 통용될지 의문이다.

 

과거 역사에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화가 나고 답답하겠지만, 한국의 대응도 조금 더 업그레이드될 필요가 있다. 비유하자면 과거 시위진압 경찰이 쓰던 ‘다연발최루탄’식의 공격을 퍼부을 게 아니라 ‘핀포인트’ 정밀공격을 하자는 것이다. ‘반일무죄’식 태도는 한국에 호의를 가진 일본인들조차 적으로 만들 뿐이다. 다연발최루탄은 맞아봐야 기분만 나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