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강상중 교수 인터뷰] “북한문제가 동북아 협력의 아젠다 될 수도… 한국이 먼저 나서야”

서의동 2014. 1. 24. 21:14

ㆍ한·일관계 돌파구를 찾는다 - 강상중 교수 인터뷰


지난해 동북아시아 정세는 한·일, 중·일 관계가 악화되며 최악의 긴장상태를 보였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연말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가 동북아 역사전쟁에 기름을 부으며 연초부터 대립이 다시 격화되고 있다. 

장성택 처형을 계기로 김정은 체제의 북한도 불안요인으로 급부상했다. 거의 동시에 출범한 한국의 박근혜 정부와 일본의 아베 정권은 대외긴장을 심화시키는 한편, 내정에서도 국가주의적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정치학자인 강상중(姜尙中·64) 일본 세이가쿠인(聖學院)대학 교수를 만나 아베·박근혜 정권의 지난 1년을 돌이켜보고 동북아시아 정세 진단과 전망을 들었다. 강 교수는 한국 국적자 최초로 도쿄대 정교수가 됐으며, 오는 4월 세이가쿠인대학 학장(한국의 총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다. 인터뷰는 지난 20일 사이타마(埼玉)현 아게오(上尾)시에 있는 대학 연구실에서 1시간20분간 진행됐다.

강상중 일본 세이가쿠인대학 교수가 지난 20일 사이타마현 아게오시에 있는 대학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며 동북아 정세를 진단하고 있다.


■ 동북아 협력의 주도권 잡아야

강 교수는 한·일 양국 사회가 동시에 퇴행하고 있는 것에 주목했다. 일본에서는 간토(關東)대지진 90주년을 맞은 지난해 우익들의 혐한시위가 전개되고, 특정비밀보호법이 통과됐다. 태평양전쟁 자살특공대를 그린 영화가 대히트를 하는 데서 보듯 일본은 확실히 크게 바뀌려 하고 있다고 강 교수는 지적했다. 한국도 정치·사회제도와 경제력 간의 불일치로 한계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대통령과 서울에 권력이 집중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면서, ‘1987년 체제’ 탈피를 비롯한 정치제도 개혁을 한국이 풀어야 할 화두로 제시했다. 장성택 처형 뒤 북·중 간의 균열이 뚜렷해진 상황을 감안하면 박근혜 정권이 북한 문제를 둘러싼 동북아 협력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다.

-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지난 1년은 아베 정권의 본질이 드러난 시기다. 야스쿠니 참배, 역사인식 문제, 중국 견제와 미·일동맹의 심화에 외교노력이 집중됐다. 한·일관계는 이명박 정권 때보다도 더 나빠졌다. 일본은 겉으로는 경제정책이 성공했고 도쿄올림픽도 유치해 내정이 견고한 모습을 보였지만 최근 흐름이 바뀌고 있다. 올해는 아베 정권에 순풍이 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집권 2년째를 맞으면서 문제가 쌓여가고 있다.”

- 재일한국인으로서 아베 정권 1년이 가져온 변화를 어떻게 감지하는가. 

“간토대지진은 선대 동포 수천명이 살해당했던 비극이고 재일동포로서는 늘 뇌리 한구석에 남아 있는 사건이다. 그 90주년이던 지난해, 재일동포 거주지역에 우익들이 떼지어 다니면서 ‘조센진 죽어라’라고 외쳤다. 재일 3, 4세 어린아이들이 이런 광경을 접한다. 증오 발언은 세계인권선언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 아동폭력이기도 하다. 인권과 민주를 중시하는 사회라면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지만 일본 정치권은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글프다. 전체적으로 일본이 크게 바뀌려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 최근 태평양전쟁 당시 자살특공대를 다룬 영화 <영원의 제로>가 대히트했다. 일본 사회에서 ‘전쟁 노스탤지어(향수)’가 생겨나고, 전쟁을 긍정하는 흐름으로 가는 것 아닌가라는 걱정도 든다.

“몇 년 전에도 (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주인공으로 한 <프라이드>란 영화가 개봉된 적 있다. 도쿄재판을 긍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인식의 흐름이 있고, 과거사를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겐 일종의 무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한국에서는 역사교과서 문제가 등장하면서 시민들의 비판을 받은 반면 일본 사회는 (이런 흐름에 대해) 한국만큼의 반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확실히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아베가 지난해 말 특정비밀보호법을 강행 통과시킨 것을 보면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나는 일본이 (군사독재정권이 지배하던) 한국의 1987년 이전 상태에 근접해질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특정비밀보호법 제정으로 일본 사회가 크게 위축될 우려가 있다. 대외관계, 안보 문제, 원전 문제 등을 포함해 미디어가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다. 반면 한국은 거꾸로 돌아갈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 한국과 일본이 어떤 점에서 다르다고 보는가. 

“대학 시절 한국의 4·19 정신을 접한 바 있다. 4·19부터 1987년 6월 민주화운동까지 27년이 걸렸다. 어려운 시대였다. 반면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이식된 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가 과제였다. 민주화를 싸워서 쟁취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약하다. 탈원전 운동이나 비밀보호법 반대운동도 상당히 전개됐지만 국정을 움직이는 힘은 되지 못했다. 한국처럼 다음 세대에게 계승될 끈질긴 민주화 투쟁의 역사가 없었다는 점이 크다.”

강 교수는 ‘전후 민주주의 체제’가 종말을 고하는 듯 보이는 중앙정치와 달리 지방정치와 시민사회가 건재한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지난 19일 오키나와(沖繩)현 나고(名護)시장 선거를 비롯해 최근 지방선거에서 자민당은 잇따라 패배했다. 중의원 과반을 확보한 여당이 참의원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는 ‘네지레(뒤틀림)’가 지금 국정과 지방정치 간에 발생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강 교수는 다음달 9일 열리는 도쿄도지사 선거에 주목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아베 정권의 구심력이 크게 저하될 수 있다.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는 ‘탈원전’을 내걸고 출마했지만 이면에는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 한국·중국과의 대립에 대한 강한 위기의식이 있는 것 같다. 당선될 경우 (일본 정국에) 강한 임팩트가 될 것이다.” 

호소카와가 만약 당선된다면 ‘서울시장-도쿄도지사 회담’ 등으로 꽉 막힌 한·일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될 수도 있다고 강 교수는 봤다. 그는 “국가 정상 간 만남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수도의 수장끼리 얼굴을 맞대면 양국 관계의 흐름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 국가주도 발전주의 벗어나야

- 아베 정권의 아베노믹스는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던 MB노믹스와 닮은꼴로 보인다.

“한국의 노무현 정권은 사회격차를 줄이고 중간층을 위한 정책을 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행정수도 이전도 실패했다. 게다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패러독스까지 생겨났다. 이후 이명박 정권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경제성장은 했을지 몰라도 소득재분배가 안되고 중간층은 더 줄었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권은 사회복지를 확충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어떤 점에서는 한국이 앞서가고, 일본이 시차를 두고 뒤따라가는 형국이다. 국가 간에는 전면대결 체제인 반면, 사회문제를 보면 닮은꼴이 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국가 주도의 발전주의 방식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 한국의 현 체제에 한계가 있다고 보는가.

“산업국가로서는 대국이다. 하지만 정치·사회 제도와 경제력 간의 미스매치(불일치)가 일어나고 있다. 경제력에 어울리는 사회·정치 제도를 갖추고 두꺼운 중간층을 갖는 구조가 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는 사회다. 어떤 면에선 백낙청 선생이 언급한 대로 ‘1987년 체제’가 한계에 온 듯하다. 대통령과 서울만이 권한을 갖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일본도 도쿄올림픽 유치 결정 뒤 분권화가 후퇴하려 한다. 도쿄만 잘되면 된다는 식의 발상이 생겨나고 있다.” 

- 1987년 체제를 어떻게 바꾸자는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정권더러 (역사인식에서) 독일을 닮으라고 하지만, 한국 정치도 독일로부터 배울 게 있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정권은 사회민주당(SPD)과 대연정을 구성했다. 1950년대부터 이어온 연정의 전통이 있다. 한국 정치도 연정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둘러싸여 있고, 남북이 갈라져 있다. 지역대립도 심하고 정당도 색깔이 뚜렷하다. 청년들의 정치적 무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독일이나 프랑스식의 보·혁연합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최대 과제는 정치제도 개혁이 아닐까 생각된다.”

올해 한·일관계 전망에 대해서는 역시 비관적이었다. 

“한·일 정상회담은 어렵다고 본다.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이 아마도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올해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미국이 강하게 움직일 것이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근간이 무너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도쿄와 서울 간의 수장 회담이 열리면 한국 내 대일 강경 여론이 완화될 수도 있다.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앞둔 올해 8·15에 일본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인지도 중요하다. 양국이 역사인식과 영토 문제로 갈등하더라도 양국 관계에 대한 원칙을 한국이 정리해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 미국이 일본의 군비증강을 희망하기 때문에 우경화 흐름을 용인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지난해 10월 2+2(외무·국방장관) 회담 때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자 한국에서는 ‘제2의 가쓰라-태프트 회담’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가 찬물을 끼얹었다. 미국은 일본에 (안보의) 역할분담을 원하면서도 일본이 중국과 무력분쟁으로 치닫거나 한·일관계가 붕괴되는 것을 우려한다. 일본이 ‘보통국가’가 되는 데는 환영하지만, 지나쳐서 동아시아가 불안정해지는 것은 우려하는 것이다.” 

■ 북한은 점진적 개혁으로 유도

강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준수 촉구법안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점을 주목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입장을 완화하기 위해 아베 정권은 오키나와 기지 이전을 진척시키려 하지만 현지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중요한 포인트다.”

- 동아시아의 갈등으로 강 교수와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가 10여년 전에 제기한 ‘동북아 공동의 집’ 구상의 실현 전망은 한층 어려워졌다.

“전망이 불투명하지만 그쪽으로 향하지 않으면 중국에도 한국에도 마이너스다. 지금 동북아의 최대 과제는 북한을 어떻게 연착륙시킬 것인가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몇 차례 이야기했지만,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북한의 점진적인 개혁을 유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전략적 인내가 필요하다고 본다.”

-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틀로 6자회담은 여전히 유효한가.

“6자회담을 재개하는 것이 기본이다. 다만 그 전에 북한을 제외한 5개국(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간에 컨센서스를 만드는 준비 단계가 있어야 할 것 같다. 한국 주도로 5개국이 협의할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한국은 중국과 관계가 좋기 때문에 (장성택 숙청으로 북한과의 균열이 생긴 중국을 대신해) 이 문제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 6자회담은 북한에 (핵·미사일 포기라는) 전제조건을 붙이지 않고 우선 열어야 한다.”

“중국은 이번에 장성택 숙청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고 본다. 김정은 체제는 안정되지 않았으며 북·중관계도 그리 확고하지 않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떨어질까 걱정하고 있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직접 나서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강 교수는 “역설적이지만 북한 문제가 한·일, 중·일이 갈등을 넘어 협력해야 하는 공통의 아젠다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6자회담이 조속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북·중 간 균열을 아베 정권이 활용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북한과 중국 간의 틈을 이용해 아베 정권이 북한에 접근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을 해 일본인 납치문제를 논의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6자회담 체제는 붕괴된다. 아베 정권을 6자회담 틀에 끌어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