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경제의 밑동을 좀먹는 임대료 착취

서의동 2015. 10. 21. 19:56

한국 경제는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중국은 이미 한국을 기술력에서 앞서기 시작했고, 일본은 수십년의 격차를 유지하며 앞서 나가고 있다. 중국이 가공무역 구조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중간재 품목이 대다수인 한국 기업들의 대중국 수출은 격감하고 있다.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제살 깎아먹기’식 수주경쟁을 벌이다 부실화된 조선산업에서 보듯 한국 기업들의 실적은 악화일로다. 삼성이 3분기에 깜짝 실적을 거뒀지만 환율 효과 덕이 컸고, 주력상품인 스마트폰의 실적은 미미하다. 


출처 = 장하나티스토리


산업 전반을 둘러보면 한국이 자체적으로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지경이 됐다. 극히 일부 품목을 제외하곤 미래형 산업에서 한국이 선점한 분야는 찾기 힘들다. 세계 교역이 줄어들고 있는 지금 한국 기업들이 어떤 기술을 무기로 돌파구를 열어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1990년대 이후 연구·개발에 막대한 돈을 투자했지만,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불임(不姙)단계’를 벗어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안으로 눈을 돌리면 저금리하에서 대량으로 풀린 돈이 비생산적인 분야로 몰리면서 경제의 밑동을 좀먹고 있다. ‘지대(地代·rent) 착취’다. 땅을 빌려주고 받는 사용료에서 유래한 지대는 ‘공급이 제한됨으로써 발생하는 독과점적 이익’으로 의미가 넓어진다. 한정돼 있는 토지가 그렇고, 정부의 인허가가 필요한 사업이 그렇다.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손에 넣을 경우, 노동이나 자본을 투입해서 얻는 것보다 훨씬 큰 이익을 손쉽게 챙길 수 있다. ‘미쳤다’는 수식어 외에 달리 표현할 길 없는 전·월셋값과 상가 임대료가 지대 착취의 대표 사례다.

 

최근 시장에선 수억원대의 집을 10%도 안되는 돈으로 사서 임대료를 챙기는 ‘무피 투자’가 유행하고 있다. ‘피같은 내 돈을 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무피 투자는 전세가율이 집값의 80~90%대로 폭등하고 있는 현실을 이용한 신종 투기다. 가령 매매가가 2억원인 아파트의 전세시세가 1억5000만원이었다면 이를 1억9000만원으로 끌어올린 뒤 자기 돈 1000만원만 투자해 사들이는 식이다. 투자자들은 전셋값과 매매가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아파트를 선별해 푼돈으로 아파트를 사들인다. 집을 매입한 뒤에는 전세보증금을 대폭 올려 시장에 내놓는다. 이런 투기가 가뜩이나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전세 가격을 치솟게 만든다. ‘헬전세(전세지옥)’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상가 임대료도 마찬가지다. ‘조물주보다 높다는 건물주’들의 횡포는 한계를 넘어섰다. 상권이 뜨자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400만원인 편의점을 건물주가 보증금 3억원에 월세 900만원으로 재계약하자고 요구한 사례가 있을 정도다.

 

국회가 지난 5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긴 했지만 법망은 지나치게 헐겁다. 5년의 영업기간을 임차인에게 보장하고, 계약기간에 일정 기준(서울의 경우 4억원)의 환산보증금을 밑도는 점포는 임대료 인상률을 9%로 제한했다. 하지만 상가 임대기간이 보통 1~2년에 그치는 데다, 재계약 때는 임대료 인상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환산보증금도 너무 낮아 웬만한 가게는 보호받기 어렵다.

 

창업에 뛰어든 수많은 자영업자들은 살인적인 임대료에 스러져간다. 서울의 경우 한 번 세를 얻은 자리에서 가게 영업을 유지하는 기간이 1.7년이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가게를 빌려 돈을 벌기는커녕 수천만원에 달하는 인테리어 투자비를 회수할 시간 여유조차 없는 것이다. 국세청 조사 결과를 보면 2004년부터 10년간 자영업자의 생존율은 16.4%이고, 음식점 업종은 6.8%에 그쳤다. 장사가 잘되면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리며 나가라고 해서 망하고, 장사가 안되면 안되는 대로 망해서 나간다.

 

고삐 풀린 전·월세 가격과 임대료의 부담은 고스란히 서민층이 지게 된다. 임대료 대느라 허리가 휘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종업원에게 임금을 넉넉히 주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임대료 착취가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정부는 이런 사정을 개선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임대료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어려운 사정을 최저임금 인상률을 낮게 묶는 데 활용했을 뿐이다. 

 

정말로 궁금하다.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본받자면서 노동개혁에 나선 정부가 독일의 임대료 가격통제는 왜 따라할 생각을 하지 않는가. 임대료 상한제나 세입자의 계약갱신 청구권에 대한 논의가 몇 년째 제자리걸음인 이유는 뭔가. 허울뿐인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할 생각은 없는가. 최경환 부총리는 이런 상황을 방치하고 정치권 복귀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