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남북협력이 한국경제의 돌파구다

서의동 2016. 6. 6. 13:04

박근혜 대통령은 제재와 압박을 가하면 북한이 핵개발을 취소하고, 경제가 붕괴할 것으로 정말로 믿고 있는걸까. 정부의 대북전략은 북한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하에 수립된 걸까. 이를 의심할만한 관측 두가지를 소개한다. 우선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2014년 탈북한 146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다. ‘하루에 세끼를 먹었다’는 응답률이 86.9%, 그것도 쌀로만 세끼를 먹었다는 응답자가 61.4%였다. 육류도 ‘일주일에 한두번 먹었다’는 응답이 30.8%, ‘거의 매일’ 먹었다는 응답이 22.6%였다. 북한을 등진 탈북자들의 절반이 일주일에 한두번 이상 고기를 먹었다는 증언은 북한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통념을 깬다. 연구원이 매년 실시해온 탈북자 조사를 보면 북한의 식량난은 해소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김정은 제1비서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평가다. 탈북자 출신으로 북한 사정에 정통한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가 지난해 12월17일자 동아일보에 쓴 칼럼의 한 대목이다. ‘진짜 문제는 김정은에게 A학점을 주는 북한 주민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중략) 바로 엊그제 통화한 북한 주민도 “과거라면 10년이 걸릴 변화가 요즘은 1년 만에 이뤄지고 있다”며 좋아했다.’ 정부가 그려온 김정은 정권의 이미지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북한 전문가들은 농민과 생산자들에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도록 경제시스템이 개편된 것이 변화를 이끈 것으로 분석한다. 2012년 협동농장 단위 인원을 1~2가구로 나누고 수확량의 30%를 자유처분하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한 것이 생산력 증대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 정권이 대형 유통센터를 속속 조성하며 시장을 양성화하면서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물가는 현재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이런 분석들은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지난 8년간이 북한경제에서 중대한 국면전환의 시기였음을 시사한다. 북한은 인도지원이 필요한 단계를 벗어나 상호호혜적인 협력대상 수준으로 경제가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에는 이런 변화상이 좀처럼 부각되지 않았다. 북한의 핵·미사일 뉴스와 천안함 침몰사고, 연평도 포격이 우리 시야를 좁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관계단절로 정보원이 감소한데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이 취사선택돼 유통됐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8년에 걸친 변화와 함의를 숙고하지 못한 한국 정부는 대북강경 정책으로 일관했고 급기야 ‘공단자금이 핵개발에 쓰인다’는 근거없는 논리로 개성공단 전면중단이라는 대실책을 저질렀다. 남북관계는 남북기본합의서가 작성되던 1990년대 초반은커녕, 7.4공동성명 이전으로 후퇴했다. 

 

남북관계 단절은 한반도 평화에만 마이너스가 아니다. 벼랑에 몰린 한국경제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 더 안타깝다. 계획대로라면 800만평의 공단에 2000여개의 기업이 매년 500억 달러 이상을 생산하는 대규모 산업단지가 됐을 개성공단은 이명박 정부이후 개발이 중단됐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월 15만원의 급여로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만한 양질의 노동력을 구할 수 없다”고 증언한다. 동남아에 비해 물류와 마케팅 비용도 거의 공짜다. 공단개발이 순조로웠다면 봉제, 전기전자, 기계금속은 물론 첨단기업도 진출했을 것이고, 남북은 경제공동체에 한발 더 다가갔을 것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합의대로 북한지역인 강원도 안변에 조선(造船)단지가 조성됐다면 조선업이 지금처럼 위기를 겪지 않았을지 모른다. 

 

남북긴장은 민생에도 마이너스다. 매년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쏟아붓고 있지만 ‘안보장사꾼’들이 끊임없이 내놓는 출처불명의 정보에 국민은 공포에 시달린다. 그 결과 복지에 쓰여야 할 재원이 군비로 들어가는 악순환은 계속된다. 한편으론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의 방산비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런 현실이 과연 바람직하다고 박 대통령은 생각하는가.  

 

민심은 총선을 통해 남북관계를 대결 일변도로 몰아간 박근혜 정부에 레드카드를 줬다. 개성공단 중단으로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기업인과 노동자, 그 가족이 등을 돌린 것도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빈사상태에 빠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대북태도를 바꿔야 한다. 남한의 기술·자본, 북한의 노동력과 자원이 결합한다면 경제 재도약까지는 아니더라도 연착륙의 기회는 확보할 수 있다. 그 첫걸음은 개성공단의 재가동이다. 오늘은 공단이 중단된지 2개월16일째 되는 날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4월25일자 경향신문 칼럼 '아침을 열며'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