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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 감독 <너의 이름은>-"첫사랑처럼 아련한 석양의 빛"

서의동 2017. 1. 15. 18:06



휴가 마지막날 일본 신카이 마코토(新海誠) 감독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을 보고 왔다. 마지막에 살짝 눈시울이....(주책이다)
작품의 배경은 도쿄와 기후현 히다(飛騨)지역의 이토모리(糸守町)라는 시골마을(히다와 나가노 스와호수를 섞은 가공의 마을인 듯)이다. 히다는 3년전인 2014년 겨울 친구,후배와 셋이서 여행을 다녀왔는데 3000미터가 넘는 봉우리들이 줄지어 있는 고산지대에 온천으로도 유명한,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이다.

히다다카야마의 온천가 @서의동

신카이 감독은 "고교시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본 석양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만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 아름다운 석양에 대한 기억이 영화의 모티브가 됐다"고 한 일본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감독의 말처럼 작품에서 벌겋게 하늘을 물들이는 석양의 황홀한 광경이 자주 등장한다. 


빛에 대한 묘사도 치밀하다. 작품에서 남자주인공인 타키가 아르바이트 선배인 오쿠데라 미키와 첫 데이트를 하다 육교에서 헤어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태양이 두곳에서 비치듯 광선처리를 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물론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설정이지만 왜 있지 않은가? 첫사랑의 추억 같은 조금은 빛바래면서도 아련한 장면이 머리 속에 하나쯤. 이 장면에서 그런 따스함과 약간은 서글픔이 뒤섞인 느낌이 몸에 충만해진다. 


하늘과 햇살, 석양에 대한 묘사를 보면 일본에 있던 시절이 떠오른다. 휴일에 가끔 집에서 짙은 코발트색 하늘에 여러가지 형상의 구름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한동안 넋을 잃고 보던 기억이 난다. 당시 살던 곳은 전형적인 주택가로 주변 반경 1km 이내에 7층 이상 건물이 없었다. 놀러갔다가 도쿄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넓게 펼쳐진 하늘이 아련한 붉은 색으로 물들어가는 장관을 황홀하게 바라보던 일도 있었다.(구름과 석양이 대기의 질과 관계가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서울에서는 이런 걸 보기가 쉽지 않다) 



신카이 감독이 작품의 모티브로 든 것은 일본의 고대 시가인 와카(和歌) 모음집인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의 한 시구다. '꿈인줄 알았더라면 깨어나지 않았을 것을'이라는 내용인데 고킨와카슈는 서기 905년의 작품이다. 신카이 감독은 "집에 고킨와카슈가 있어서 가끔씩 들춰보곤 한다"고 했다. 무려 1000년전의 고전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해낸 점도 흥미롭다. 고대 시가와 신사(神社)의 제례의식, 전통 실공예 같은 일본 토속적 요소들이 작품의 재미를 더해준다.  


<너의 이름은>을 보며 동일본대지진의 기억도 떠오른다. 재해로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 일이 빈번한 일본이지만 동일본대지진은 워낙 큰 충격을 안겼다. 당시의 재해도 작품의 모티브중 하나일 것 같다. 여기서 무스비(結び)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맺음이라는 뜻이다. 사람과 사람을 잇고, 신과 인간을 잇는 경우에도 무스비라는 단어가 쓰인다. 인연이란 결코 쉽사리 맺어지는 것이 아닌 만큼 소중히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감독은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다. 주인공인 타키(瀧)와 미쓰하(三葉)가 갖은 우여곡절을 거쳐 비로소 대면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만남이란 그 자체가 소중하다는 메시지도 들어있는 듯 하다.  


영화가 일본에서 대히트를 하면서 이 지역들이 '성지'가 되고 있다는 글들도 올라온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 중 하나가 리얼한 배경묘사인데, 로케를 하듯 적절한 장소를 찾아낸 뒤 그 곳을 작품에서 정밀하게 구현하는 전통이 있는 것 같다. 신카이 감독의 경우 초사실적 작화로 명성이 높기도 하다.어쨌건 극중 배경이 관광 성지로 뜨고 있는 현상은 흥미롭다. 애니메이션이 마을관광의 촉매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