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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박점규의 <노동여지도>-'노동르포르타주'의 가능성을 보여준 책

서의동 2017. 3. 17. 14:25



 

한국에는 ‘르포르타주’가 빈약하다는 생각을 평소 해왔다. 2월에 소설가 장강명을 인터뷰하면서 그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는데 그 역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어서 반가웠다. 


장강명은 르포문학이 빈약한 이유로 현장취재가 쉽지 않다는 점과 현장에서 채집해서 스스로 텍스트를 만드는 훈련이 없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을 꼽았다. 현장취재가 쉽지 않은 이유로는 타인에게 질문하거나 소통하기 어려운 어려운 언어체계와 권위주의 문화를 들었다. 그는 그래서 "그나마 현장을 접하기 쉬운 기자들이 책을 많이 쓸 필요가 있다"면서 "신문사에 있는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책을 쓰라'고 권한다"고 한다.   


장강명 = “취재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나 보죠. 교육도 우리는 정전을 보고 빨리 소화해서 텍스트를 보고 답하는 식이지 않나. 미국학생들은 다음주에 발표를 위한 리서치를 해오라고 하면 우리 보기엔 생뚱맞은 발표를 한다. 하지만 직접 가서 보고 자기 손발과 눈을 이용해 텍스트가 아닌걸 텍스트로 만드는 훈련이 있다. 두번째로는 젊은이가 명함없이 뭘가서 질문하고 하는게 쉽지 않다. 상당히 고리타분한 사회니까.”


-취재원들도 사실은 기자가 아니면 잘 안만나주기도 하지 않나. 

“굉장히 권위주의적인 사회여서 '어린애가 나한테 뭘 물어봐?' 이렇게 질문 자체를 비판이나 공격으로 간주한다. 별로 질문하지 않는 사회이니 두세번 같은거 물어보면 화내고. 질문하는 프로토콜도 상당히 복잡해서 조금 삐끗하면 건방진 놈 소리를 듣게 된다.”


-한국어의 호칭도 존대도 그렇고 소통하기 어려운 구조이지 않냐.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굉장히 안되는 나라인데 그게 이런 취재를 막는 한 원인. 대한민국의 여러가지 나쁜 것의 밑바닥에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안되는 문제도 있는 거 같다.” (2월6일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인터뷰중 나눈 대화)




나온지 2년쯤 된 책이긴 하지만 박점규의 <노동여지도>는 ‘노동르포’의 가능성을 보여준 책이다. 2014년 3월 ‘삼성의 도시’ 수원에서 시작해 2015년 4월 ‘책의 도시’ 파주까지 1년2개월 간 전국 28개 지역을 발로 뛰면서 쓴 책이다. 자동차 부품사, 조선소, 병원, 증권사, 출판사, 공항, 호텔, 패스트푸드점 등 다종다양한 일터에서 땀을 흘리는 이들을 기록했다. 


책에는 아픈 노동현실과 악덕 사업주만 그려져 있는게 아니다. 부도난 회사를 인수해 노동자 자주관리회사로 운영한지 10년만에 회사를 흑자로 돌린 청주의 버스회사 우진교통, 자신을 낮추고 노동조합을 인정하는 병원장을 만나 새롭게 태어난 파주의 공공병원도 등장한다. 노동을 존중하고 협력파트너로 여긴다면 경영상의 어려움 쯤은 능히 극복할 수 있음을 증언한다.  


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을 정도로 출판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리 많이 팔리지는 못했다. 인터뷰 때 물어보니 “<직업여지도>라고 이름을 붙였다면 더 팔렸을지 모르겠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이란 단어가 갖는 장벽을 실감했다”고 했다. 르포가 빈약해 거대담론만 넘쳐나는 한국사회에서 이런 류의 르포들이 활발하게 나올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