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서의동의 사람·사이-김제동][전문]민주주의는 목적이 아니라 우릴 웃게, 행복하게 해줄 수단이죠

서의동 2017. 3. 27. 16:20

@경향신문 이석우 기자

방송인 김제동(43)을 만난 건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한 지 열흘 뒤인 지난 20일이다. 김제동은 탄핵현장에서 만민공동회를 열어 쉽고 분명한 언어로 국민이 권력자임을 일깨웠고, 자존감을 불어넣었다. 그에게 지난 겨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서울 서초동 사무실을 찾았다. 3시간 반에 걸친 인터뷰에서 김제동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행해야 할 정책목록을 시민들이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인들이 ‘국민과의 연정’에 나서야 한다고도 했다. 세월호가 1074일만에 맹골수도를 떠나기 시작한 24일, 다시 15분간 통화해서 세월호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지난 25일자 경향신문 인터뷰 기사에 지면 제약으로 담지 못한 내용을 보충해 싣는다. 


■3주기 추도식 제대로 해야 

- 세월호가 1074일만에 팽목항을 떠난다. 

“지금이라도 애들 데리고 집에 가야죠. 거기 선생님들도 두분이나 계시고, 부자지간도 있고, 누군가의 엄마인 분도 계시고 아이들도 있고 그렇잖아. 데리고 가서 밥 한끼 먹이고 엄마 손잡고 집에 가자. 우리도 용서해주면 허락해주면 앞에 서고 뒤에 서고, 옆에 서서 (아이들이) 엄마 손 놓지 않게 하겠다. (세월호를 생각하면) 잘 있다가도 막 북받쳐서 터져 나온다. 여행도 다니고 밥도 먹고 하다가 문득 이래도 되나. 울 자격이 있나. (그런 생각이) 가끔씩 들었다. 근데 부모님들은 항상 그러실 것 아닌가. 근데 뭐 이제 끝까지 밝혀야지. 밝히는 게 치유의 시작이다. 우리 모두 그런 마음이다. 마음을 좀 모아드려야 될 때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 세월호 이후에도 안전사고는 여전히 발생하고, 바뀌지 않는 것 같다. 다음 정권에서는 달라질 수 있을까.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가 달라져야 한다’ 이런 문제가 아니라 자식을 잃은 부모, 부모를 잃은 자식, 지금도 돌아오지 못한 9명을 대해온 (일부 세력들의) 태도가 문제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적어도 이래선 안되잖아. 우리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4월에 있을 3주기 때는 국가가 예를 갖춘 추도식을 거행했으면 좋겠다. 광화문 광장에서 사람들 이름도 불러주고 의장대가 예도 갖춰주고 하면서 우리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3주기가 됐으면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던 정부가, 우리가 사과하고 기억하면서 우리 마음속의 상처들, 무의식에 배어있는 수많은 감정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그런 과정 자체가 안전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 보면 ‘잘됐으면 좋겠다’ 싶다 

김제동이 지난해 10월 출간한 <그럴 때 있으시죠>는 20만부 가까이 팔렸다. 출판 불황시대에 드문 일이다. 읽어보니 “재미있어 웃게 되지만, 웃으면서도 가슴 한편이 아리고 찡해온다”는 추천사(이해인 수녀)가 과히 틀리지 않는다.   

 

- <그럴 때 있으시죠>를 보면 평소 책을 많이 읽는 것 같다. 

“그냥 책읽는 걸 좋아한다. 집에서 책을 잡으면 오래 읽는다. ‘따로 약속을 안 잡아도 좋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독서다. ‘휴(休)’ 한자는 사람이 나무에 기대 쉬는 형상인데 책에 기대는 것도 좋은 휴식이다. 시에 관심이 많아 시집도 많이 본다. 시는 들을 때와 읽을 때와 함께 읽을 때 느낌이 각각 다르다. 신문도 독서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데 (인터넷 포털에서) 편집돼 있는 거 말고, 종이신문을 본다. 요즘엔 신간 <내 마음이 지옥일 때>를 읽고 있다. 내 마음이 이럴 때 이런 시가 좋다고 안내한다.”  

 

- 발언에 디테일이 느껴진다. 최저임금위원회 운영구조도 잘 알고 있더라.  

“청년들에게 관심이 많아 (자연히) 최저임금도 살펴보게 됐다. 삶의 많은 걸 좌우하는 중요한 결정인데도 위원회 구조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최저임금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헌법 32조에 규정돼 있다. 각 정당이 시기 차이는 있지만 최저시급 1만원에 동의했다. 하지만 결정은 위원회에 맡겨 놓고 책임지지 않는다. 최저임금을 국회에서 결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최저시급 1만원과 현재 최저시급(6470원)의 차액을 정부가 보전해 주자고 제안했다. 

“중소기업 취업청년에게 정부가 임금을 일부 보전해 주고 있는 걸 확대하자는 거다. 시급 6470원을 받은 노동자들이 임금명세서를 제출하고 정부가 시간당 3000원가량을 보전해주면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부담은 늘지 않으면서 청년들 주머니 사정은 조금 나아질 거다. 어른들이 매달 20대 청년에게 50만원가량 준다는 통계가 있는데 청년소득이 높아지면 노인세대에게도 도움이 된다. 토크콘서트나 만민공동회에서 나오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결국‘열심히 일하는데 우린 점점 더 왜 가난해질까’다. 위로만 하고 끝내서는 안되지 않나. 치유와 함께 제도개선을 위한 행복한 투쟁을 해야 한다.” 

 

-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아르바이트 두개 하는 동네 청년과 함께 담배를 피우다 ‘최저시급이 1만원이면 어떨 거 같냐’고 물어보니 ‘그러면 행복하죠!’라더라. 그 말이 가슴에 박혔다. ‘그렇게 되면 좋긴 한데 자영업자는 더 나빠지지 않을까. 한쪽만 좋으면 안되고 서로 좋아야 행복이지 않나’ 고민하다 그런 정부정책이 있는 걸 알게 됐다.”

 

- 재정이 안받쳐 주지 않을까. 

“정부 예산편성권이 행정부에 과다하게 가있다. 부처별 칸막이를 헐고 예산을 위에서 결정하면 된다. 도로예산은 도로에만 써야 하는 식으로 운용에 탄력성이 없다. 재정의 우선순위는 국민합의로 결정돼야 한다. 청년·노인복지에 투입해야 한다고 판단하면 손댈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아는 ‘예산주권’이 필요하다. 우리 주머니에서 나간 돈의 생로병사를 우리가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김제동은 일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대우’에도 주목한다. “정주영 회장 어록 옆에 ‘나는 넥타이 정장보다 아빠 작업복이 좋아’ 같은 어록을 걸어두면 노동자들이 일하러 가면서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판사의 망치와 목수의 망치가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어떤 직업도 인정과 지지를 받으면 공무원이나 판검사 되려고 경쟁하는 시스템도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 아이들이 돈 걱정 안하고 예술분야에 진출했으면 좋겠다. 

“시인이나 예술인들에 대한 대우도 개선돼야 한다. 시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다. 그런 이들이 있어야 세상이 좀 사는 것 같지 않을까. 시인이나 철학자의 이야기가 정치적 화두가 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판화가 이철수 선생이 농민을 ‘하늘과 동업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던데 그런 분들에 대한 대우가 잘 이뤄졌으면 좋겠다. ”잉여’ 취급당해온 이들이 잘 먹고 살고, 심리적 대우를 받아야 한다.” 

 

- 방송녹화나 강연과정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을 거 같다. 

“유투브 동영상을 보면 주로 내가 이야기하는 거 위주로 편집돼 있는데 실제론 ‘톡투유’ 녹화 4시간 중 3시간20분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끊거나 하지 않고 쭉 듣는다. 만민공동회도 대부분 모인 분들이 자기 이야기를 한다. 세상에 ‘충고’라는 건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자기일에 대해 자기만큼 잘 아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함께 대화를 나누고 듣는게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그게 다라고 새각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합의가 공동체를 튼튼하게 한다. 사람은 자기 마음을 말할 수 있어야 억울함이 덜어진다. 그래서 교회나 절에 가는 거 아니냐. 하나님, 부처님은 내말을 끊지 않으니.(웃음)”

 

- 만민공동회나 톡투유가 다 비슷한 컨셉인 것 같다. 

“토크콘서트를 할 때 (JTBC) 제작진들이 와서 보고 이런 거 하면 좋겠다고 해서 만들어졌다. 손석희 사장도 원래 자기가 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이라더라. 토크콘서트는 모든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말하는, 일종의 마당극 같은 거다.”

 

- 청년정당 ‘우리미래’의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던데, 활동의 무게중심이 청년에 가 있는 듯 하다. 

“토론회 나오라면서 출연료도 안준다. 회사가 기아상태에 허덕이고 있다.(웃음)”

 

- 왜 청년이 중요한가. 

“그렇게 물으니…. 그러면 아이는 왜 중요할까?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쓸모의 가치’로 보자면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기 웃음소리가 끊긴 동네를 생각해봐라. 삭막하다. 아이가 주는 ‘말할 수 없는 게 있지 않나?’ 우리 모두 한때 아이였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드는거다. 아이가 자라서 우리처럼 돼 한 세상 사는 거잖아. 분리해서 생각하면 안될 거 같다. 우리도 청년이었고 그때 느낀 좌절과 공포가 있잖아. (청년들이 힘든 지금의) 구조는 우리가 만들었잖아. 구조를 만든 사람들이 또 다른 우리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조카, 아들·딸 잘 됐으면 좋겠잖아. 딱 그런 마음이다. 내가 청년 때도 이런 마음으로 도와준 수많은 분들이 있었을 거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게 아니다.그저 내 옆집 아이가 무사히 군대 제대하고 와야 그 집 가서‘아들 제대했다며’ 하고 막걸리도 한잔 먹고 그럴 수 있지 않나. 딱 그런거다. 우리집 애가 잘되면 옆집 사람도 행복하고, 그게 공동체가 나아갸야 할 방향이다. 너도 나도, 지금도, 나중에도 좋자는 것다. 모두 하향평준화하자는 게 아니다. 헌법전문에 있듯 ‘기회는 균등하게 하되 능력을 최대한도로 발휘’하도록 하는 거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달리기 1등 해서 공책 세 권 받는 걸 샘낼 수는 없다. 대신 참가상으로 공책 한 권씩 받지 않나. 그게 기본소득이다. 그런 방향으로 공동체의 재설계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정규직은 직업적 안정감이 있으니 비정규직 노동자가 (시간당) 임금이 더 높아야 하는 거 아닌가. 복지 이야기 하면 자꾸 재정 운운하는데 비용으로 보지 말고, 이런 용어 좋아하진 않지만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 아니냐. IMF(국제통화기금)도 한국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복지 통해 내수진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나. ‘1% 기업’에만 쓰지 말고 국민 호주머니에 돈 돌아가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데 지금 보면 우리 정당중에서도 노조도 없는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정당은 없는 것 같다. 정당구조가 어느 계층을 대변하느냐에 따라 이뤄져야 할 거 같다.”

- 정당들이 두루뭉술하게 국민정당을 표방하느니 계급정당으로 가는게 맞을 수도 있다. 

“계급장을 붙이고 가야 한다. 그게 계급철폐의 지름길이다. 싸우거나 어떤 계급을 낮추자는 게 아니라 각자의 지위를 올리기 위해 서로 노력하자는 거다. 그런 방향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0.1%의 탐욕만 규제한다면.” 

 

김제동은 아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길에서 아이들 보면 ‘잘됐으면 좋겠다’ 싶다. 초등학생이 무거운 가방 멘 거 보면 가방 안에서 책 좀 덜어내 주고 싶다. 어떤 아이를 만났더니 ‘학교에서 춤수업 평가를 한다’더라. 평가 없이 그냥 춤추면 안되나. 이런 게 교육개혁 아닐까.”



■우리 국민, 역사상 가장 통합돼 있다

김제동은 권력구조를 ‘권한구조’로 바꿔 말한다. 우리 헌법상 ‘권력’은 국민에게만 부여돼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붙인다. ‘연필심 다듬듯’ 생각들을 벼려온 흔적이 엿보인다.    

- 지난겨울이 굉장히 길었다. 

“개인적으로는 토크콘서트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도 고민스러웠다. 8년간 계속해온 가장 아끼는 행사다. 근데 나중에 보니 어차피 탄핵국면에서는 힘들었을 것 같다. 광화문 광장에 마이크 들고 나간 건 딱 한번이다. 낮에 만민공동회 한번 하고, 저녁에 시간때워달라고 하길래 하고. 그리곤 그냥 집회에 참여한 게 두번쯤 되고 나머지는 다 지역을 돌았다. 제주도를 포함해 전국 열몇개 도시를 갔다. 가면서 되게 행복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서로를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됐잖아. 사람들의 모습이 장엄했다. 엄청 추웠잖아. 차라리 마이크 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덜 추울 수 있다. 그냥 바닥에 있으면 한기가 올라오는데 앉아 견디는 건 ‘옆집 애들 잘됐으면 좋겠다’‘애들 세상이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였을 거다. 우리가 나라의 주인이라는 걸 선포하는 자리였던 거다. 노벨평화상은 이 사람들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치권이 통합을 말하는데 우리는 통합당하려고 이 땅에 온 게 아니다. 저마다 의견을 말하고, 주체로 서있는 거다. 나중에 가면 사람들이 통합이 아니라 의견을 조율해내기 시작한다. 헌법전문에 있듯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한다’가 헌법정신이다.”  

- 시민들이 스스로 통합을 이뤄낸다는 뜻인가. 

“정치권이 연정을 한다고 하는데 그거는 자기들끼리의 통합이다. 연정을 한다고 국민이 통합되는 건 아니다. ‘국민대통합’을 이뤄내겠다고? 그거 몇십년동안 들어온 언사다. 이번 촛불혁명은 국민이 정치권을 통합시켜낸 거다. 그것에 대한 인정이 없으면 지금의 통합 논의는 다 헛거다. 정치권이 탄핵 여부를 놓고 갈팡질팡할 때 통합시켜낸 게 국민들이다. 태블릿 PC보도’가 촉발제는 됐을지 모르지만 ‘이대론 안되겠다’는게 사람들 가슴속에 꽉 담겨져 있었던 거다. 언론보도로 집회 참가자가 늘어난 게 아니고, 사람들이 점차 나오면서 자율을 바탕으로 의견을 조율한 거다. 대구 동성로에 만민공동회 하러 갔더니 비가 와서 사람이 100명쯤 모여 있더라. 주최측이 미안해 하더라. 춥기도 했고 바닥이 젖어 앉을 수도 없었다. 집회 나오려면 주말 약속 취소해야지, 신발신고 우산털고, 또 비올 때 버스타면 얼마나 꿉꿉하냐. 또 와서 기다려야지. 그거 생각하면 한사람 한사람이 얼마나 귀한 거냐. 근데 막상 시작하니 어디선지 모르게 사람들이 확 몰려나오더라. 3.1운동 때 아우내장터에 사람들 몰려나오듯 했다. 참 감동적이었다. 찻집, 술집에 있다가 사람이 적으면 안될 것 같으니 나왔을 거다. 근데 다른 집회 때도 보면 추울 때 오히려 더 나오더라. 혹시 사람 적을까봐. 우리뜻이 오해받고‘촛불동력 끊어졌다’고 언론에서 뭐라고 할까봐. 언론을 이끈 것도 다 국민들 힘이다. 종편이 돌아선 것도 못살아남을 것 같으니까 돌아선 거다. 그렇게 국민들이 동력을 유지해줘 성공한 거다. 지금의 공은 철저히 (광장을 지킨) 사람들에게 있다. 지금처럼 국민이 통합된 때는 역사상 찾기 힘들다.”

-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충분히 그러실 수 있다. ‘이렇게 사는 게 누구 덕인데’ 하고 야속해하는 어르신들의 마음은 끌어안아야 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거나 명예를 훼손하고 허위사실 유포해온 일부 주도세력들은 처벌받아야 한다. 협박이나 폭력행사는 체제전복 세력이자 반헌법 세력이다. 어르신 세대를 대변한다면서 사실은 모욕한 세력이 있는 거다. 태극기가 아니라 자기 아버지 깃발을 세우려고 했던, 우리나라를 북한처럼 세습국가로 생각해온 세력이 있다. 그런 이들을 끝까지 추적해서 처벌받도록 하는 것 자체가 치유와 통합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이 나치 전범을 지금까지도 추적하는 것은 국민통합의 과정인거다.” 

-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어떻게 봤나. 

“결정문에서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이고, 국민은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이다. 재판부는 이 점을 깊이 인식하면서’라는 대목이 가장 와 닿더라. 이 점을 명심하면서 결정문을 작성한 거고, 그게 이 결정문의 요체였다는 걸 보여준 거다.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대목도 가슴에 와 닿았다 국민에게 이득이 되느냐 안되느냐로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을 파면할 거냐 말거냐를 결정했다는 뜻이다. 헌재가 (권력의) 주체가 국민임을 명확히 한 거다. 헌법은 정부입장에서 보자면 굉장한 불공정계약서다. 국민이 ‘슈퍼갑’인 거다. ” 

- 정치인들은 ‘국회와 정부를 믿고 광장의 정치를 끝내자’고 한다.  

“그건 헌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자는 건 아니지만 소셜미디어를 비롯해 참여의 언로가 개방돼 있다. 거기에 발맞춰 나가면 된다. 국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건 이상론적이고 체제에 위협이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세력들이 있지만 오히려 현 체제를 지킬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최순실은 믿으면서 왜 국민은 믿지 못할까. 최순실과 상의하는 정도로 국민과 상의해야 하고 그게 정책결정의 투명성이다. 지금은 정치인들이 국민과 연정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야당은 (박근혜 정권에서) 할 만큼 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왜 나라가 이 지경이 됐을까. 앞으로 어떤 정치활동을 하든지 권한을 가진 사람들은 주권자인 국민과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연정하겠다는 생각이 명확해야 한다.”

- ‘국민과의 연정’론은 추상적으로 비칠 수 있다.   

“맞다. 추상적일 수 있다. 우리 헌법도 아름답고 명료하지만 어찌보면 추상적이다. 그러나 추상에서 실상을 가져와야 한다. 집회·시위의 자유 같은 헌법상 권리들을 행정부가 법과 시행령으로 뒤집어 왔다. 그래선 안된다는 게 헌재 결정문의 요체다. 국민도 100만명 이상 서명하면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하고, 50만명이 발안하면 국회의장이 법안을 직권상정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국회의원도 당선 1년 뒤에 지역구민 3분의 1발의, 과반수 투표및 찬성으로 파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서명 받기 쉽지 않겠지만 이런 걸 만들어놔야 정치인들이 국민을 겁낸다. 입법·사법·행정 전 분야에 국민이 상시 참여하는 체계가 ‘국민과의 연정’이다. 개헌 논의에 이런 게 다뤄져야 한다.”

- 현재 개헌 논의의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권한구조만 논의할 뿐 국민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국민이 광범위한 의견을 내놓으면 이를 반영해 법조문을 만든 뒤 국민에게 다시 검사받고 그래야 한다. 나중에 국민투표를 거치니 결국 국민이 결정권 가진 거라고 하지만, 그 말은 예산심의확정권을 국회가 갖고 있으니 국회가 예산권을 가졌단 말과 똑같다. (예산은) 사실 행정부가 다 짜지 않나.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골치 아프다고 하는데 오래 걸리더라도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내는 것 자체가 헌법정신이다.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도록 비례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거법을 바꿔야 한다. 또 헌법개정 과정에 국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

- 요즘 대선주자들의 언행이나 캠프 참여 인사들을 보면 시민의 열망과 에너지를 제대로 담아낼지 의문이다.  

“이번 혁명의 결과물은 뭘까. 내가 사는 게 나아지기는 할까, 그냥 분풀이 아니었을까라는 허탈감도, 잠깐 주인이 됐다가 떠밀려난 느낌도 들 수 있다. 끝까지 우리가 주도권을 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각 정당이나 캠프에 있는 분중 일부는 개혁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과거 정치권에서 잘못을 저질렀던 사람들로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시민들이 마이크를 빼앗긴 느낌 같은 건가.

“그런 느낌이다. 후보들이 미덥지 못하면 어떤 사람이 되더라도 요거 요거는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는 ‘우리들의 공약’이 발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책이나 공약을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제시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정책을 제시하는 거다. 최저시급 1만원은 반드시 시행하도록 약속을 받아내자. 남북 문제도 제재할지, 대화할지의 주도권이 최소한 우리 정부와 국민에게 있어야 한다. 사드는 미국이 하라고 해도 국익에 맞지 않으면 배치하지 말아야 하고, 국익에 맞다면 중국이 반대해도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사드가 정말로 이익이 되는지 정확히 따져보는 과정이 없으니 이런 혼란이 있는 거 아니냐.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기 전에 우리 소상인을 요격하고 있잖아. 지금 한반도 상황은 대단히 위험하다. 제재 또는 평화정책을 추진할 때 반드시 국민의 동의를 얻겠다고 해야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다. 그런 큰 틀에서 사람들은 안심시키는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들을 계속 공론화하고 주장을 펼쳐가는 길밖에 없다. 뒤로 밀려났다는 생각이 들면 힘들더라도 다시 앞으로 나가야지.” 

 

하지만 ‘누가 목록을 만들 건가’라는 문제가 있다. 촛불집회 초기에 온라인 시민의회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대표성 논란으로 무산된 바 있다. 그럼에도 1987년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광장의 뜻을 모아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유효하다. “(공약목록은) 참여연대나 경실련, 혹은 다른 단체가 만들 수도 있다. 뒷방으로 밀려나 가만히 있으면 안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내가 ‘우리미래’를 지원하는 것은 청년들이 쥔 마이크의 볼륨을 높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이석우 기자


■웃는 게 목적이고 민주주의는 그 수단

김제동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노제 사회를 계기로 ‘미운털’이 박혔다. 2012년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사찰 대상자 리스트에 오른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낮고 약한 곳을 찾아 다녔다. “어머니가 ‘너는 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옆집 누구 엄마 젖 먹고 자랐으니 은혜 갚아야 한다’고 늘 말하곤 했다. ‘사람들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많았다.” 

- 김제동씨에 대한 수식어는 개그맨과 방송인으로 갈린다. 개그맨으로 부르는 이들은 ‘정치말고 본업이나 하라’는 생각을 깔고 있는 것 같다. 

“부르는 사람들 마음이다. 예전에 나는 개그맨이 아니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개그맨은 나보다 훨씬 재주가 많아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공채가 아니어서 개그맨 호칭을 쓸 자격도 없다. 그리 호칭해주는 건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나는 ‘사회자’로 불리는 게 좋다. 사회자는 마이크를 여기저기 배달하는 게 일이다. 대통령도 국무회의 사회자 아니냐. 나더러 ‘본업에 충실하라’고 하는데 국민이라는 본업에 충실한 거다. 사람을 한 가지 직업으로 규정지을 필요가 있을까. 대통령도 국민에게 유머를 하면 그땐 개그맨인 거다. 정치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유머라고 생각한다. 유머는 전체 상황이 파악돼야만 나오는 거고 그 자체가 공감을 얻는 과정이다. 대통령이 개그맨도, 성직자도 될 수 있는 거 아니냐. 돌도 대신 맞아주고, 머리카락도 좀 뜯기고. 택시운전 하시는 분들도 때로 성직자가 되잖아. 사람들 하소연도 들어주고. 그런 규정에 휘둘릴 생각은 없다. 어떻게 부르건 그들의 자유고 내가 어떤 일을 하든 내 자유다.”

- ‘내 역할은 사람들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앰프’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던데 그거야말로 정치의 본령 아닌가. 계기가 궁금하다. 

“‘자의반 타의반’이었다. 노 전 대통령 노제 사회가 결정적 계기였던 거 같다. 아직도 왜 장의위원회와 유족이 나에게 요청했는지 듣지 못했다. 그냥 ‘가장 무난한 사람을 골랐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연락이 왔을 때 ‘유족 의사인가’ 물으니 그렇다길래 ‘그럼 간다’고 한거다. 사람이 돌아가시면 대곡(代哭)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후) 힘들었지만, 결정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

- 팽목항에도 가고, 쌍용차 노동자들도 만났다. 그걸 정치로 보는 이들이 있다.  

“정치라고 보는 거에 일부 동의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자꾸 나쁜 짓하니 정치가 나쁜 이미지를 갖게 됐는데 원래는 바르게 되도록 뭔가 하는 거잖아. 어머니가 과부였고, 첫째 매형이 조선소에서 일하다 돌아가셨고 집이 철거되기도 하고, 그렇게 자랐다. 27~28살까지는 박정희 대통령 굉장히 좋아했던 영남 청년이었다. 야구장·놀이공원에서 사회 보다 서울에 올라와 운 좋게 혜택을 받았다. 나만 운 좋게 사는 것 같은 미안함이 컸다. 정의롭고 싶었고, 마음이 분노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싶었다. 그게 좀 더 편했다.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가려고 한다. 농촌에서 자라나 보수적이다. 지금도 나라에 충성하고 어른 공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그 나라란게 사람들인 거잖아. ‘손으로 만져질 수 있는 국가’가 사람인 거다. 국가에 충성하는게 사람들 편을 드는거다. 근데 조금 더 억울한 사람들을 편들어야 균형이 맞잖아. 그런게 ‘마이크’의 역할이기도 하고. 사람들은 목소리를 낼래야 낼 수가 없거든. (바라는 게) 이뤄질지를 떠나서‘나도 말좀 하자’는 거잖아. 그게 정치적으로 보면 참정권이고 경제적으로 보면 경제민주화다. 나도 이 나라를 세우는 데 공이 있다는 걸 인정해주는 것, 이게 (마이크를 쥔)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가 훨씬 편하다. 심리적으로.”

- 웃음에 대한 철학이 있나. 

“토크콘서트나 만민공동회를 하다보면‘이런 게 천국 아닐까’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누가 어떤 말을 해도 비난도, 말을 끊지도 않고, 별거 아닌데 웃는다. 웃음은 한 사람의 존재에 오롯이 집중해야 나온다. 민주주의는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웃도록 하는 수단이다. 너도 나도 함께 행복한 거, 그게 웃음이다.” 

- 수난 당하던 시절에 동료 연예인 중에 누가 위로가 됐나. 

 “내가 수난을 당했다고 하면 진짜 수난당한 사람들에게 염치없다. 그냥 국진이형이 늘 이야기 잘 들어주줬다. 재석이 형도. 인간관계가 그리 넓지 않다. 효리는 가끔 1년에 한두번 정도, 제주도 가서 가끔씩 본다. (누가 주로 말렸나) 전부다다. 가장 열심히 말린 사람은 우리 가족이다. 지금도.”

- 대중연예인들의 사회적 발언에 대한 장벽이 아직도 높지 않나.

“그쪽으로 경력이 이제 10년쯤 됐다. 첨엔 거의 혼자였는데 지금은 많아져서 좋다. 본업에 충실하라고 하는데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게 만든 사람들이 누군지 봐야 한다. 우리 국민 취미가 국난극복 아닌가.(웃음) 정치인이 제 역할을 한다해도, 국민의 본업은 공동체에서 목소리를 내는 거다. 그게 얼마나 재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