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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의 사람·사이-최승호][전문]"공영방송이 바로 서야 새 시대가 제대로 출발”

서의동 2017. 5. 15. 15:33

최승호 뉴스타파PD 겸 앵커 @이준헌 기자



10년여 전 MBC·KBS는 당당하고 거침없었다. MBC <PD수첩>은 2005년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허위의혹을 광고 중단 사태까지 겪어가며 보도해 진실을 밝혀냈다. 2006년 정부가 갑작스럽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나서자 두 방송은 FTA의 문제점을 집중 보도했고, 결과적으로 정부의 협상력을 높이는 지렛대가 됐다. MBC의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보도연맹 사건, 제주 4·3, 북파공작원 등 봉인된 현대사를 ‘성역 없이’ 조명하면서 관심과 지지를 받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국민 신뢰를 쌓았던 공영방송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 ‘정권방송’으로 전락했다. 지난해 4·13 총선 당시 KBS의 ‘북풍몰이’ 보도는 도를 넘어섰다. MBC는 80%에 달하는 대통령 탄핵여론에도 아랑곳없이 탄핵반대 시위를 더 비중 있게 다뤘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시민들이 꼽은 ‘6대 적폐’에 포함될 정도로 불신이 깊어졌다.

 

@이준헌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선출된 지난 10일 전 MBC PD 최승호(56)를 만나 공영방송의 신뢰회복 방안을 물었다. <PD수첩> 담당 PD였던 최승호는 ‘황우석 논문 조작사건’,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 등 주목할 만한 보도로 ‘PD 저널리즘’의 상징이 됐다. 2012년 해직된 뒤 탐사저널리즘 매체 ‘뉴스타파’로 옮겨 PD 겸 앵커로 활약해왔고 지난해 국가정보원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으로 주목을 받았다. 최승호는 “국민들이 정부를 바라보는 창인 공영방송이 바르게 서야 새 시대가 제대로 출발할 수 있다”며 “국회에 제출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여야가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했다.


공영방송 개혁 다룬 다큐 6월 개봉 예정 


@이준헌 기자

- 다큐멘터리 <자백>은 누적 관객수가 14만명에 달했다. 국정원 반응은 있었나.

“제작비를 회수하고 남은 수익금은 국가폭력피해자 구제모임인 ‘민들레’에 지원할 생각이다. 변호사, 신부, 목사와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모임이다. 국정원은 입장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자기들이 앞으로 어떻게 고쳐나가겠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새 정부가 개혁 청사진을 갖고 주도적으로 개혁해야 할 문제다.”

 

-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당시 국정원장 남재준이 ‘유우성은 간첩이 맞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말이 안된다. 찾아가 따지려고 했지만 시간이 안 나서 가지 못했다. 유우성씨가 북한을 드나든 사실을 입증한다는 중국 정부의 출입경기록은 위조된 것인데 국정원 직원들은 처음에는 ‘위조가 아니라 중국당국이 비공식 채널로 발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다 검찰 조사 때는 ‘조선족 협력자가 위조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남재준씨는 국정원 직원들이 맨 처음에 한 거짓말을 그대로 페이스북에 올린 거다. 책임감 없는 수준 이하의 태도다.”

 

- <자백>과 관련해 유무형의 압력은 없었나. 

“없었다. 나개 만약 MBC에 소속돼 있었다면 어떤 형태로든 연락이 왔을 수도 있지만, ‘뉴스타파’에 있으니 그쪽에서 선을 댈래야 댈 수도 없다.”

최승호는 <자백>에 이어 공영방송 개혁과 관련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9년간 공영방송이 어떻게 ‘망가졌는지’에 대한 기록으로 6월 말 개봉을 목표로 작업 중이다. 

 

- 힘들 텐데 또 영화 만들 생각을 했나.

“<자백> 상영기간 전국을 다니며 140차례 걸쳐 ‘관객과의 대화’를 하느라 매우 힘들었다. 그런데 대통령 탄핵으로 공영방송 개혁 문제가 생각보다 빨리 이슈가 될 것 같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인터넷용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다 당시 영상을 발굴하고, 당사자들을 만나 보니 ‘영화적 재미’가 꽤 있어 영화제작을 결정했다. <자백>의 시나리오를 쓴 정재홍 작가가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만들어 보자’고 한 것도 있다. 공영방송 개혁의 의미를 여론에 제대로 환기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 같다.”

 

- 시민들이 많이 볼 수 있을까.

“<자백>은 150개 영화관에 걸렸다. ‘최순실 게이트’ 전이기도 했고, 멀티플렉스 입장에선 곤란한 영화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많이 배정된 편이지만 당시 예매율(3위)을 감안하면 아쉽다. 이번에도 그 정도일 것 같다. 아무튼 독립다큐가 비교적 많은 영화관에 걸리는 데 <자백>이 물꼬를 텄다는 평가는 있다.”


■ 공영방송 신뢰붕괴, 정권에 부메랑

@이준헌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언론개혁 과제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해직언론인 복직을 꼽았다. ‘언론장악방지법’으로 불리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방안은 방송개혁의 핵심이지만 지난 2월 국회에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반대로 입법화되지 못했다. 방송들이 정권 성향에 무관하게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법안이다.

 

-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방안은 좀 더 보완될 필요가 있나.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여든 야든 단독으로 방송사 사장을 결정하지 못하도록 특별다수제로 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면 ‘결국 정치권이 사장을 결정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반대의견도 있지만 근본 대안을 찾자면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갈 거고 그러는 동안 방송사들이 더 망가질 수 있다. 제출된 법안을 여야가 조속히 통과시키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이다. 법이 통과되면 3개월 뒤 새로 이사진을 구성해 사장을 선출하게 된다.” 

 

- 바른정당이 찬성하느냐가 관건이다.

“설득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 바른정당 선거 때 TV토론을 보면 유승민 후보는 진보쪽도 정권잡으면 방송이 편향을 보이지 않겠느냐는 양비론적인 입장을 보이곤 있지만 개혁의 대의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았다. 유승민 후보는 2012년 파업당시에도 'MBC상황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국회가 잘 협력하면 희망이 있다고 본다. 바른정당 의원들도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를 보면 좋겠다.”

 

-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공영방송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총평을 해달라.

“9년 전 국민들은 편했을 거다. KBS, MBC가 어떤 문제든 다루고, 문제가 있으면 ‘문제 있다’고 보도했으니 방송만 봐도 세상 돌아가는 걸 대략 알 수 있었다. 공영방송이 무너진 이후에는 국민들이 팟캐스트를 찾아 들으며 (정부가) 무슨 거짓말을 하는지 귀 기울여야 했다. 불신이 생기고 음모론이 자라났다. 2010년 천안함 침몰사고도 국민 상당수가 아직 의문을 갖고 있다. 2012년 대통령 선거도 국정원이 댓글로 여론을 조작했고, 개표까지 조작했다는 음모론이 돌았다. 이번 대선 개표 과정을 취재해 보니 많은 사람들이 노숙까지 하며 감시하더라. 얼마나 피곤한 일이냐.”


- 국민들이 믿지 못하면 정권에도 부담을 주게 되는 것 아닌가.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팩트를 ‘기저정보’라고 하는데 이걸 확정해 전달하는 일이 공영방송의 역할이다. 기저정보에 입각해 어떻게 대응할지 합의가 이뤄진다. 세월호 참사는 ‘왜 침몰했는가’를 놓고 의문이 여전한데 공영방송이 신뢰받았다면 의문들이 빠르게 해소됐을 거고 박근혜 정부에도 결과적으론 도움이 됐을 거다. 기본 사실관계조차 정리가 안되니 갈등만 증폭되고 서로 못 믿는 상황이 전개된 거다. 결국 정권에 치명타가 되지 않았나. 국미니 정부를 바라보는 창인 공영방송이 바르게 서야 새로운 시대가 제대로 출발할 수 있다.”

 

-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은 어땠나.

“김대중 정부 때는 방송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태도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당시 방송문화진흥회가 청와대가 낙점한 MBC 사장 후보를 거부하고, 김중배 사장을 영입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김중배 사장은 2년 재임기간 중 외압을 철저히 차단했다. <PD수첩>이 국정원 비판 프로그램을 방영해 국정원이 발칵 뒤집혔다. 국정원 직원이 담당 PD에게 주먹질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김 사장이 이후 국정원 직원의 출입을 금지시켰다. 국정원장이 여러 차례 전화했지만 김 사장은 끝까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처음부터 언론을 장악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철학을 가졌기 때문에 오히려 비판이 과도할 정도였다. <PD수첩>의 황우석, 한·미 FTA 보도는 정권이 상당히 괴로웠을 것 같다.”

 

- 보수우파들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좌편향된 방송을 바로잡은 거라고 한다.

“‘좌편향’이라는 건 기득권 세력, 즉 사학, 재벌, 대형교회 등을 많이 비판할 걸 염두에 둔 거다. 그 외에는 ‘광우병 보도’를 많이 거론하는 거 같은데 당시 <PD수첩> 보도를 계기로 정부가 미국과 재협상을 해 국민들이 30개월 이상 미국 쇠고기는 먹지 않게 된 거다. 그런 건 인정하지 않고 <PD수첩>이 엄청난 왜곡보도를 한 것처럼 몰아붙였다.”

 

- 보수우파들은 MBC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프로그램에도 반감이 많았던 것 같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등을 방송이 처음 정면으로 다루니 매우 아팠을 거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수준 높은 다큐물이었다. 미국의 내셔날 아카이브에서 공문서를 일일이 뒤져 근거를 찾아냈거든. 조금이라도 오류가 있었다면 (보수세력들이) 가만있지 않았을 테지만 100편가량 방송되는 동안 소송이 제기된 건 1~2건뿐이었고 그나마 다 MBC가 승소했다. 보수기득권층들에게는 아픈 내용인데 딱히 반론할 게 없으니 권력을 잡자 없애버린 거지.”

 

- 최 PD는 뭘 만들었나.

“1994년 미국의 영변 핵시설 공격위기와 2002년 미국이 북한 선박을 나포해 수색하던 상황을 다룬 ‘한반도 전쟁위기’를 2003년 방송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보고 사본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는데 청와대 비서진들이 공동 시청했다더라. 그 영향으로 전시작전권 환수방침에 드라이브가 걸렸다고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가 논문에 쓰기도 했다.”

 

- MBC는 워낙 많이 ‘망가졌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인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이 통과된다 해도 정상화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오래 쌓아온 노하우가 있고, 노하우를 가진 사람들이 복귀하게 되면 빠른 시일 내에 괜찮은 방송으로 변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물론 지금까지 망쳐온 이들이 방송을 계속 하게 놔둘 순 없겠지.”

 

- 2012년 MBC 파업과 관련한 재판에서 1, 2심 재판부가 ‘공정보도가 방송 종사자들의 근로조건’이라고 판결했다.

“굉장한 의미가 있다. 대법원에서도 이 내용이 유지된다면 공정방송을 추구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갖게 된다. 2012년 170일간 파업 이후 피눈물의 세월을 지내왔는데, 그래도 이거 하나 건진다면 의미가 있다고 할 정도로 가치 있는 판결이다. 고법 판결이 난 지 2년이 지났는데 대법원 판결이 늦어지고 있다.”


-MBC 해직기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MBC에서 함께 해직된 이용마 기자는 지방에서 요양중인데 두차례 보러 갔다 왔다. (여전히 좋지 않은가?) 항암치료는 하지 않고 자연치유 요법에 따라 요양중인데 지금까지는 괜찮은 거 같다. 가끔씩 서울에 올라와 병원에서 검사하는데 더 악화되는 조짐은 없다고 들었다.”

 

- 노조위원장을 지낸 박성제 기자 등이 가끔씩 SNS를 통해 발언하는 걸 보면 MBC에 대한 애정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기자로서 절정기였을 때 쫓겨났으니…. MBC로서도 손실이다. 이들이 돌아가게 되면 금방 방송을 살려낼 거다.”


- 대법원에 계류중인 해고무효소송의 판결이 나면 MBC로 복직할 생각인가. 

“판결나면 바로 돌아갈 거다.”

 

■잘 만든 방송, 사회를 바꾼다

 

@이준헌 기자

최승호가 앵커 겸 PD로 일하고 있는 ‘뉴스타파’에는 YTN, 국민일보 해직기자와 KBS에서 옮긴 기자 등 40여명이 근무 중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해 ‘국정원 추정 트위터 계정 보도’,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조해 보도한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설립한 한국인들’ 등으로 주목을 받았다. “후원 회원이 4만여명가량 된다. 급여는 적지만 예산이 부족해 제작을 못하는 일은 없다.” 뉴스타파는 ‘정권의 눈치를 보는 기존 언론의 뉴스를 타파한다’는 의미다. 

 

- 뉴스타파가 지향하는 지향점을 설명한다면?

“<자백>은 3년 동안 국정원 간첩조작을 취재해온 결과물인데 방송사 소속이었다면 만들 수 없었을 거다. 뉴스타파는 시민 후원으로 움직이니 그런 걸 취재하는 게 맞다. 다른 곳에서 제대로 다루기 힘든 걸 다룰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재벌기업에 대한 제보가 들어오면 우리는 반긴다. 정권교체로 세상이 좋아진다고 해도 뉴스타파는 권력·자본 눈치 안 보고 독립적으로 사회의 환부를 지적하고 비판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 사회의 건강성 유지에 도움이 된다.”

 

- 두려울 땐 없나. 

“자전거 타고 출퇴근한 적이 있는데 한강을 지나다 누군가 불쑥 나타나 날 강물에 밀어버리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근데 주로 그런 일들을 해왔기 때문인지 둔감한 편이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황우석 편’이었다. 국민 대부분이 진실을 밝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차라리 권력과 부딪히는 게 편하지 국민과 부딪치는 건 더 어렵더라.”

 

- PD라는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나.

“잘 만든 프로그램은 사회를 확실히 바꾸고, 그간의 어려움을 잊어버릴 정도로 보람이 느껴진다. 물론 기자가 만드는 탐사보도도 엇비슷하지만 PD들은 ‘스토리텔링’을 좀 더 가미해서 시청자의 감정에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 물론 이번 최순실 사태에서 기자들의 정통 저널리즘이 제대로 한 수를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