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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김기남 기자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의 출발은 매끈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계승하겠다는 취지를 천명했고, 신베를린선언을 통해 남북대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 6·15, 10·4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른 것도 보수정부와 달랐다. 


그런데도 한반도의 긴장수위는 오히려 치솟고, 남북대화의 문도 굳게 닫혀 있다. 북한이 핵실험에 미사일을 쏘아대고,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말폭탄과 군사적 압박을 번갈아가며 불안감을 키우고 있지만 한국 정부의 ‘존재감’은 제로에 가깝다.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한국의 능동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미국 주도의 ‘최대의 압박’에 올라탄 채 손을 놓고 있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가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다”고까지 했다. 이대로 가다간 박근혜 정부 때 시작된 ‘코리아 패싱’이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달랐다. 북·미 대화 성사를 위해 당국자들이 백방으로 뛰었고, 부시 행정부의 호전적인 태도에 마찰을 불사하고 제동을 걸었다. 이런 노력들이 북·미의 태도를 조금씩 바꿨고,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에 걸맞은 독자적 공간을 키웠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고 하겠지만 북핵구도의 본질이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다.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종석(59)은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포비아(공포증)’에 걸려 있다”고 본다. 한반도 정책을 실질적으로 총괄했던 그가 보기에 현 정부 외교안보팀은 험난한 정세를 돌파하기엔 치열함이 부족하고 ‘얌전’하다. 지난 9일 경기 성남시 세종연구소 연구실에서 만난 이종석은 “트럼프가 무슨 행동을 해도 정부가 ‘이해한다’는 식으로 입을 다물고 있는 게 가장 위험한 상황”이라며 “미국 하자는 대로 그저 따라가다간 결정적 시기에 미국이 한국을 ‘패스’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폭풍우가 몰아쳐도 꿋꿋하게 버티며 할 말을 해야 우리 공간이 생긴다”면서 “대통령과 외교안보라인이 의지를 갖고 우선 미국의 위험한 행동에 적극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 대북정책 시스템 부재, 무책임”


- 추석 연휴 기간에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폭탄이 쏟아졌다. 북한보다 오히려 미국의 태도가 종잡을 수 없다. 


“북핵이 심각하다면서도 트럼프 행정부 출범 9개월이 넘도록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동아·태차관보가 아직 지명조차 안되는 무책임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미 국무부가 요즘 보면 북핵이나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의미 있는 이니셔티브를 취한 적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건지 여러 논의구조를 거쳐 만든 전략이 없는 것 같다. 일부는 정보에 기반한 것도 있겠지만 트럼프가 자기 기분이나 선입견에 의해 정제되지 않은 언어들을 쏟아내는 식으로 가장 중요한 몇달이 흘러가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 트럼프가 ‘군사옵션’ 가능성도 계속 흘리고 있다. 


“미국 사회가 한반도 문제에 대해 갖고 있는 최소한의 컨센서스는 한국정부의 동의 없는 군사행동과 주한미군 철수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정부가 분명하게 입장을 피력해야 지켜진다. 김영삼 대통령이 ‘반북’으로 일관하다가도 1994년 영변 핵시설 폭격이 거론되자 미국에 단호하게 ‘그건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가 무슨 말을 해도 ‘이해한다’는 식인데 한국정부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트럼프가 그 성격에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른다. 그런 점이 걱정이다. 한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반발하면 물론 트럼프와 삐그덕거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트럼프에게는 중요한 제어요인이 되는 거다.”


@김기남 기자

- 소설가 한강이 뉴욕타임스에 ‘미국이 전쟁을 언급할 때 한국은 몸서리를 친다’는 내용의 기고를 했다.


“그런 이야기는 당국자들이 해야 할 역할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한테 ‘디스맨’이라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설득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조지 부시 행정부의 강경정책에 맞섰다.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자 노 대통령이 2004년 11월 정상회담에서 ‘그런 말은 협상에 도움이 안된다’고 충고했다. 부시는 그 지적을 수용했지만 그러고 나서도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이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하자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이 기자회견(2005년 6월21일)을 열어 유감표명까지 했다. 불편해도 자꾸 이야기하면 미국도 듣게 된다.”


- 트럼프가 트위터에서 ‘25년간 잘해줬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했지만 팩트체크를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미국이 결정적인 국면에서 신뢰를 깬 적도 있지 않나.


“클린턴 행정부 마지막 해인 2000년부터 조지 부시 대통령 취임 이듬해인 2002년 초까지 북한의 도발이 한건도 없었다. 그런데도 부시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전임 정부의 북·미 합의를 뒤집었고, 2002년 1월에는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몰아붙였다. 2005년에도 9·19합의(북한 핵포기 및 북·미 관계정상화) 직후 미 재무부가 달러위조 증거를 찾는다며 마카오에 있는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했으나 결국 증거는 나오지 않았고 동결한 자금을 돌려줬다. 이 파장으로 9·19합의가 좌초하면서 북한이 1차 핵실험에 나선다. 이 두가지만 봐도 트럼프의 이야기가 일방적인 주장임을 알 수 있다.”


■“한국 정부, 목소리 안 내면 나중에 미국에게도 ‘패스’당할 수도”  


- 문재인 정부의 전략에서 창의적이거나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안 보인다. 


“바깥에서 보기엔 전략적 큰 그림이 과연 있는지 의문스럽다. 전략적인 방향, 그에 기초한 정책,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시스템, 운용하는 인력 등 4가지 층위에 골고루 문제가 있다고들 한다. 나는 전략적 방향부터 눈에 띄게 이상하게 가니까 그 이야기만 주로 하지만, 그 아래의 이야기를 하면 끝이 없다.”


- 문 대통령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대북 원유공급 중단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일은 사실상 ‘외교참사’ 아닌가. 


“그래서 시스템, 사람의 문제까지 거론되는 거다. 푸틴이 불과 며칠 전 ‘북한은 풀을 뜯어 먹더라도 핵개발을 포기 안할 거다’라면서 원유공급 중단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벌어지니 시스템이 뭔가 제대로 안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푸틴이 거부했다는 사실을 왜 공개했는지도 의문이다. (미국에 보여주려던 거였을까) 그런 건 비공개로 전해도 된다.”


- 북한이 문재인 정부 초기에 대북특사 파견을 기대했는데 보내지 않아 실망했다는 말들이 있다.


“북한으로서는 기대하지 않았을까. 선거기간은 남북관계 개선이나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수평적 한·미관계를 지향하는 후보에게 불리한 시기다. 사실 한·미관계는 무조건 잘 가자고 하는 게 호소력이 있고, 남북관계도 3단논법으로 유권자들을 설득해야 하는 포용정책이 ‘때려잡자 공산당’식의 강경정책에 비해 선거에선 불리하다. 그 시기에도 남북대화 의지를 보였을 뿐 아니라,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주도하고 사드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겠다고 했잖아. 예민한 시기는 잘 버텨내더니 가장 파워가 있는 집권 초반에 입장이 너무 쉽게 변하고 미국에 끌려가는 듯하는 게 놀랍고 미스터리한 거다. 북한도 중국도, 심지어 미국과 일본의 전문가들도 모두 ‘왜 이러나’ 했을 거다. 의지는 변치 않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평화는 의지가 아니라 실천으로 이뤄진다.”


- 한국 정부가 할 말을 하지 않으면 ‘코리아 패싱’이 실제 상황이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지금은) 북한이 문재인 정부를 쳐다볼 이유가 없다. (트럼프의) ‘최대의 압박’에 동참하고 있으니 한국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어진 거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남북대화에 조건을 안 걸었는데 문재인 정부는 ‘올바른 여건 조성’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고 하지만 조건을 거는 것은 상황과 무관한 우려스러운 변화다. 북으로서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제안을 하고 있는 거다. 김정은이 문 대통령을 쳐다보도록 하려면 우리 독자적 공간을 가져야 한다. 대북제재에 대해서도 ‘실패하지 않았느냐’고 말할 용기가 있어야 김정은이나 중국이 귀를 기울이게 된다. 말이 ‘한·미공조’지만 우리 판단을 주장하지 못하면 결국 ‘대미추종’이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미국도 한국을 ‘패스’할 거다. 폭풍우가 아무리 몰아쳐도 입장을 견지하며 꿋꿋하게 서서 견뎌야 입지가 생긴다.”


■“북한, 제재 없다면 15% 성장도 가능”


- 보수정부 9년간 북한은 체제 내구성이 강화됐고, 경제발전이 중국의 90년대 상황을 방불케 한다는 증언들도 나온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북한의 미래를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잡았다. 그해에 중국을 두차례 방문해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를 만났고 나선(나진·선봉)과 신의주 부근 황금평을 양국이 공동개발·공동관리하는 데 합의한다. 김정일의 뒤를 이은 김정은이 2013년 전국 도처에 경제개발구를 조성하는 내용의 경제개방을 공식화했고, 농업에서 포전담당제 도입 등 개혁을 추진한다.”


- 2013년이 굉장히 중요한 해였네?


“그해 말에 장성택 처형이 있었는데 북·중 공동관리 프로젝트의 북한 책임자가 장성택이었다. 북한 역사를 보면 사람을 숙청하면 그 정책까지 날아가는데 이번엔 달랐다. 북한 개혁개방 책임자였던 장성택만 대열에서 핀셋으로 뽑아낸 거다. 제재가 없었다면 박정희 개발독재 시기처럼 15% 안팎의 성장도 가능할 거다. 김정은은 현장점검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김정일과 달리 경제를 열심히 챙기고, 손이 달리면 박봉주 총리에게 대신 챙기게 한다. 그런데 우리는 당시 선언한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핵에만 주목하느라 경제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지금 와서야 ‘이렇게 제재로 찍어누르는데 북한이 왜 플러스 성장을 하느냐’며 미스터리하게 보고 있는 거다.”


@김기남 기자

- 제재무용론이 나오지만, 유엔 안보리 9월 제재의 섬유수출 금지나 노동허가 금지 같은 것들은 효과가 있지 않을까. 


“북이 이번 제재로 경제타격을 받긴 하겠지만 핵정책을 변화시킬 가능성은 매우 낮다. 사상 최강의 제재로 북한을 굴복시키겠다고 했으면 좀 지켜봐야 하는데 말폭탄에 군사옵션 카드를 꺼내고 있는 건 트럼프조차 제재 성공에 확신이 없단 얘기다. 안타까운 건 최근 제재에 맞서 ‘자립적 민족경제’를 강조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북한경제가 세계 경제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정상국가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매우 부정적인 거다. 제재가 북한경제의 시장화나 개혁을 막고 우리가 동북아 북방경제에서 얻을 거대한 이익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북한의 개혁·개방’을 거론할 때마다 북한이 반발하곤 했는데, 돌이켜보면 북한이 실제로 그 길을 걸어온 셈이네?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야기하고 설득하면 그 순간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나중엔 따라왔던 셈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정부 대북정책(평화번영정책) 이름을 그대로 따온 ‘한반도평화번영선언’이 채택됐다. 그런 정도로 따라온 거다. 대북정책에서는 한번에 승부를 보는게 아니라 끊임없이 끌고 오는게 중요하다. 남북협력이 재개된다면 난관에 빠진 한국경제에 또다른 도약의 기회가 열릴 수 있다. 대륙으로 뻗는 길이 다 트이면 우리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 건가에 대한 청사진과 안목을 가져야 한다. 김정은은 핵과 실용주의라는 두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김정일 시대가 허장성세였다면 김정은은 계획을 점검하는 스타일이다. 북한이 우리가 생각하는것보다 훨씬 더 정상국가로 이행되고 있다.”


- 북한의 최종 목표가 평화협정인가.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북한의 최종 목표는 미국의 군사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하는 것이다. 2011년 리비아의 카다피가 미국과의 핵협상에서 핵을 포기하고 수교했지만, 나중에 나토의 공격을 받아 몰락했다. 우크라이나도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겼지만 러시아 침공을 받았다. 북한이 이를 지켜보면서 핵무기가 체제안전에 결정적 무기라고 생각하게 됐고, 핵 보유 자체가 목표가 됐다. 그런데 핵개발로 치러야 할 대가가 크기 때문에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고 체제안전을 보장해주면 입장을 바꿀 여지를 두고 있는 거다. 미국의 북·미수교와 불가침을 담은 평화협정을 수용한다면 핵과 ICBM을 포기할 수 있다는 의사로 보는 게 타당하다.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북한의 목표가 평화협정이라고 전제하면 ‘북한이 핵을 만든 뒤 평화협정 협상에 나설 거다. 그때까지 기다리자’는 묘한 논리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 가장 좋은 협상환경을 만들어주는 무책임한 논리다. 지금 협상하는 게 낫지, 그때 가면 더 비싸게 먹힌다.”


■“대통령이 정책전환 의지 보여야”


-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운전석을 양보받았다고 하지만 운전을 하지 않고 있는 느낌이다.


“운전석에 앉으라고 명확히 말한 적이 있었나.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보면 ‘한국정부가 한반도의 평화통일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 주도적 역할을 지지했다’고 돼 있다. ‘한반도 문제’가 아니라 ‘평화통일 환경조성’이다. 남북대화도 ‘인도주의적 사안을 포함한 남북간 대화를 재개하려는 문 대통령의 열망(aspiration)을 지지했다’고 돼 있다. 남북대화를 지지해야지, 열망을 지지하는 건 이상하잖아. 문안 작성과정에서 미국이 물타기한 것 같다. 노무현 정부 때 정상회담 문안작성 과정에서 미국이 ‘모든 옵션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다’는 표현을 넣자길래 안된다고 버텼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후라는 민감한 시기여서 시소게임 끝에 ‘추가적 조치’로 절충했다. 이번 회담에선 그런 물밑 노력의 흔적이 안 보인다.”


- 문재인 정부도 ‘전쟁반대’를 강조했지만 미국은 아랑곳없는 듯하다.   


“이야기를 했다고 하지만 상대방이 분명히 알아듣도록 하지 않고 그냥 혼잣말 하는 수준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은 안된다’고 했는데도 트럼프가 어깃장 놓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누군가 지적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안하고 있다. ‘트럼프포비아’에 걸린 것 같다. 미국에서 (부적절한 발언이) 나올 때마다 참모들이 촌철살인의 논평을 내놔야 한다. 한반도의 운명을 ‘도마 위 생선’ 다루듯 하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라는 거다. 미국의 합리성은 동맹국인 한국이 당사자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내놓으면 그것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돌출발언이 나올 때마다 외교안보 라인이 ‘무슨 소리 하느냐’고 쳐줘야 한다. 트럼프가 기분 나쁘다는 트위트를 날릴지 모르지만 그래도 굴하지 않아야 우리 공간이 확보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2~3년차를 지나면서 보수강경 부시정부가 우리 의견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9·19 합의까지 간 것 아니냐. 독자적 공간을 갖는게 한·미 공조를 깨는 건 아니다.”


- 지금이라도 대북 특사를 보내야 할까. 


“북한은 외국 지도자와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외정책에서 획기적 전환을 해왔다. 김정은이 2011년 말 지도자가 된 뒤 6년이 다 돼도록 외부 지도자와의 정상회담이 없었다. 김정은에 대해 우리가 아는게 거의 없는 거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북한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외정책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했다. 김정은을 만나면 굉장히 중요한 전기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눈치보지 말고 성과가 없다는 비판에 직면하더라도 만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이 ‘조건 없는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특사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이 미국의 최대 압박정책의 선두에 서서 동참하는 지금 상황에서 특사를 보내봐야 북에 가서 할 말이 있을까.”


- 보수정권을 거치면서 반북여론이 강해지기도 했고, 상황이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지만 정부가 너무 여론에 신경을 쓴다는 느낌도 든다.


“상황이 굉장히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기본적인 사물의 이치와 원리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자적 공간을 갖고 움직여야 하고 전쟁 위험에 대해서는 정부가 앞장서 반대하고 막아내야 하는 건 기본적으로 같다. 동북아의 세력균형이 무너지는 일은 막고, 동북아 다자안보로 가야 한다. 그러나 사드가 세력균형에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정부 측 인사들은 상황이 어렵다고 항변하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기본은 있어야 한다. 미국과 같이 가야 한다는게 미국을 추종하라는 뜻은 아니다. 정부측 인사들이 노무현 정부 때는 북핵해결을 위해 이라크 파병을 양보해다고 하지만 당초 미국이 전투병 보내달라는 걸 조율해서 비전투병으로 바꿨다. 미국을 일방적으로 따라가면 안되고 조율해야 한다는 거다.” 


- 외국에선 한반도 상황을 매우 위험하게 보지만 국내에선 ‘전쟁반대’ 목소리도 안 들린다. 


“문재인 정부가 정책을 전환할 계기가 뭘까 생각해 봤는데, 지지층이 문제시한다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 평화운동 진영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할 말을 해야 한다고 본다.”


- 일반인들이 남북관계나 북핵문제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점이라면 뭘까. 


“오해보다도 불신이 너무 깊어졌다는 게 문제다. 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가 진행됐고, 촛불혁명까지 있었다. 민주주의라면 이념적인 다원성과 관용성이 커지는 것인데 북한에 대한 관용도는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예전엔 웬만하면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김정일’이라고는 했는데 요즘 댓글을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정은’이라고들 한다. 민주주의는 발전하지만 북한에 대한 관용성의 폭은 더 좁아드는 이 역설이 가장 안타깝다.”


- 북핵문제는 결국 북·미 협상을 통해 풀어야 할 텐데 트럼프의 태도를 보면 그렇게 안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미국 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불신이 굉장이 깊은 만큼 북한문제를 긍정적으로 푸는 것이 지지에 도움이 되기 힘들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전격 합의했다고 해도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겠냐는 의구심들이 당장 나올거다. 북한에 강경하게 대응하는게 오히려 인기에 도움이 되는 구조다. 사업가인 트럼프가 긍정적 시나리오를 택하기 쉽지 않고, 미국내에서 북핵문제를 풀 긍정적인 동력이 나오기가 쉽지 않은 거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불쏘시개를 제공해 미국 내에서 협상파가 움직일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트럼프가 성질내더라도 버텨줘야 한다.”



@김기남 기자

-대통령이 정책전환에 대한 의지를 보여야 할 것 같다.  


“대통령이 (할 말을 해야 한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흔들자는 게 아니라 우리가 위험해질 수 있는 일들을 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문제제기하라는 거다. 나중을 기약하기 위해 ‘미국의 가랑이 밑을 기고 있다’는 옹호론도 있지만, 나중에 ‘제재해도 소용없으니 우리말 들으라’고 해도 미국이 들을 거 같나. 오히려 뒤통수 친다고 생각할 거다. 그게 강대국의 속성이다. (지난 6월)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특보의 발언이 논란을 빚었을 때 청와대가 부정했지만, 대통령이 회의석상에서 ‘그런 정도도 이야기하면 안되는 건가요’라고 슬쩍 짚고 넘어가면 될 일이었다. 그런 게 외교고 지혜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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