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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김미화 @강윤중 기자

김미화(53)의 직함을 쓰려다 기사 첫줄부터 잠시 멈칫했다. 방송인, 코미디언 어느 쪽일까? 어릴적 마을공터에서 이미자 흉내를 내며 어른들 배꼽을 잡게했고 코미디를 평생의 업으로 삼아왔지만, 지금은 ‘코미디언’으로 부르기 어색해진 것도 사실이다. 코미디 프로 축소라는 방송환경 변화에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이력 때문이겠지만, 권력이 벌인 ‘난장’에 휩쓸리다 보니 그 스스로 이야기하듯 ‘분위기가 딱딱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김미화는 지난 보수 정권의 집중타깃이 됐다. 라디오 생방송 도중 갑자기 정보기관원이 스튜디오에 난입하는 봉변을 겪는가 하면, 보수인터넷 신문으로부터 황당무계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방송에서 정책 비판을 3분 내보낸 며칠 뒤 장관의 해명에 30분을 할애했는데도 편파적이라는 지적을 받은 적도 있다. 이 ‘블랙 코미디’의 총연출을 국가정보원이 해온 사실이 최근 국정원 적폐청산 태크스포스(TF)의 조사로 밝혀지면서 김미화는 뉴스의 중심에 섰다.


“내가 다시 코미디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사회뉴스에 나와 인상쓰고 있으니 내 자리에서 더 멀어지는 것 같아 슬프고 암담하다.” 지난 16일 서울 상암동 TBS 스튜디오에서 만난 김미화는 이런 ‘사회성 인터뷰’를 그리 내켜하지 않는 듯 했다. 


김미화는 “코미디언을 하면서 어려운 이들을 돕는게 내가 원하던 삶이었고,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데 나를 정치적이라고 보는 시선은 30년이 지나도록 여전하다”며 “소셜테이너라는 말로 연예인들을 편협하게 규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하루에 80%를 코미디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직도 코미디에 대한 열정은 엄청나다”고 했다. 정치가 코미디를 하는 시대가 지나가고, 김미화가 다시 코미디 무대에 설 날이 오게 될까.


■“국정원에 ‘김미화 파일’만 20건”


- 국정원이 이명박 정부 시기 82명의 문화예술인과 연예인을 ‘좌파’로 분류해 활동을 압박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달 검찰에 참고인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국정원이 작성한 파일을 보니 다른 이들은 파일은 1~2건이던데 내 건 20건 가까이 되더라. 건건이 다 내가 (마음 먹는다면) 법의 심판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내용들이다. 방송단체 뿐 아니라 재계에도 내가 진행하는 프로에 광고를 붙이지 말라는 식으로 내 활동을 전방위로 막는 지침들을 보냈다. 어떤 파일엔 ‘김미화 수용불가’란 말도 있더라.”


- ‘수용불가’는 무슨 뜻인가.


“사회에서 수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뜻 같았다. ‘좀비화’를 시킨다는 등 별별 표현을 끌어다 썼더라.”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들이 있었는지 묻자 김미화는 노트를 꺼내 메모한 내용을 읽었다. ‘각 방송사 경영진에게 퇴출되도록 주의를 환기시켜라’ ‘연예인 건전화사업 TF팀을 꾸려 좌파 문화예술인 척결활동을 하라’ ‘방송활동 차단 강화’ ‘비리를 적출하라’ ‘사회공분을 유도하라’…. “한번은 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여성부가 공익광고를 붙였는데 ‘앞으로 못 붙이도록 강력 시정권고를 했다’는 내용도 있다. 국정원이 방송협회, 경제단체, 각 대기업에 문서로 협조요청을 한 거다.”


방송인 김미화 @강윤중 기자

- 국정원이 이런 작업을 하는 기간 동안 행사 출연요청 같은게 슬슬 끊긴다는 느낌을 받았나. 


“‘KBS 블랙리스트’ 사건(2010년 7월)이후 방송 퇴출압력이 커졌지만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추진되는 줄은 몰랐다. KBS 블랙리스트는 막연히 방송사의 ‘갑질’ 정도로 생각했었다. 당시 KBS 내부에 출연금지 문건이 존재하고, 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블랙리스트가 실제로 있는지 밝혀달라고 했을 뿐인데 KBS가 곧바로 고소했고, ‘무조건 사과하라’는 식으로 나왔다.” 


- 경찰조사는 어땠나.  


“4~5차례 출석해 경찰조사를 받았는데 그때마다 7~8시간씩 조사를 받았다. 블랙리스트의 유무가 아니라 ‘누구한테 들었냐’만 집중적으로 캐더니 통화기록까지 다 뒤져 끝내 찾아내더라. 조사받던 도중에 경찰서 창문이 열려 있는 걸 보고 ‘저기서 딱 뛰어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더라. 반년 가량 힘들었고, 똑같은 악몽을 계속 꾸기도 했다.”


- 라디오를 진행하는데 괴한이 스튜디오에 난입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 


“MBC라디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생방송 도중 스튜디오 부스에 외부인이 갑자기 들어와 PD에게 대본을 보자고 요구하더라. PD가 ‘당신 뭐야’하고 소리지르고 난리가 났다. 정보기관 쪽 사람이었다고 들었다. 최근에 뉴스를 보니 MBC에 상주하는 국정원 직원이 연예인 퇴출계획 등을 작성해서 MBC간부에게 전달했다고 하니 그 직원이었을 수도 있겠다.”


- 당시 특별관리대상이었으니 점검차 왔던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웃음) 그만두기 전까지 압력이 많았다. 2009년에는 PD들이 피켓시위해서 퇴출은 피했는데 2011년에 김재철 사장이 ‘다른 좋은 프로그램 많다’며 그만두라고 했다. 사장이 그러는데 견딜 수 있겠나. 자존심이라도 지키려고 자진해 그만둔 거다.”


- 이후 CBS 라디오 프로를 진행할 때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던데. 


 “꼭 찝어서 내 프로만 문제 삼더라. 경제학자들이 나와 3분 가량 정부 농업정책을 비판한 적이 있고, 그 며칠 뒤 부처 장관이 나와 30분간 정부정책을 설명했다. 그런데도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벌점을 매겼다. 장관이 출연한 건 카운팅 안하고 3분 비판한 것만 문제삼은 거다.”


■“코미디언이 고개 빳빳이 들고 대드니 더 찍힌 듯”


- ‘친노’라는 딱지를 붙인 인터넷 언론과 소송도 했었는데. 


“한 보수인터넷 신문이 나를 친노·종북·좌파라고 비판한 기사를 실었다. SBS에서 청소부 역할로 화장실에서 게스트를 모셔 진행하는 ‘삼순이 부르스’를 할 때 의원시절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출연한 적이 있다. 이후 대통령 선거 때 SBS 차량을 타고 각 당사를 돌며 후보들과 만나는 방송을 했는데 노 당선자에게 하회탈을 선물했다. 그걸 갖고 ‘친노’로 엮은 거다.”


- 이후에 어떻게 됐나. 


“SBS가 사장명의로 사실확인서를 써줬다. 노 의원 섭외나 노 당선자 하회탈 선물은 SBS의 기획이었다고. 그런데 그 기자가 사실확인서가 가짜라며 나를 사문서 위조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검찰에서 무혐의 처리가 됐는데 얼마뒤 똑같은 건으로 다른 경찰서에 고소를 했고 그게 다시 무혐의 처리가 됐다. 이번에 검찰 조사 때 국정원 파일을 보니 ‘김미화는 사문서위조 혐의가 있는 범법자이니 퇴출시켜야 한다’며 그 기사를 붙여놨더라.” 


- ‘퇴출명분’ 쌓으려고 고소한 것 아닌가. 


“그래서 두번씩이나 고소를 한 거 같다. 당시엔 대체 왜 저러나 했는데. (국정원의) 행동대원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다. 정말 코미디다. 진짜.” 


- 왜 그토록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코미디언이 시사 프로그램을, 그것도 MBC에서 진행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정권이 MBC노조를 ‘빨갱이’로 여기면서도 당시까지는 구성원들을 함부로 못했으니 우선 만만한 연예인들을 건드린 것 아닐까. 시사프로 진행 초기에 ‘코미디언이 뭘 안다고’라며 비웃는 이들이 꽤 있었다. 예전부터 코미디언은 비하의 대상이었으니. 게다가 ‘KBS 블랙리스트’로 내가 정권에 ‘엉깐(덤빈)’ 셈이 된거다. 아마 깜짝 놀랐을 거 같다. 웬만하면 수그러들 법도 한 코미디언이 끝까지 고개 빳빳이 들고 대드니 그래서 더 찍힌 것 같다.”


-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은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서 시사문제를 다뤄 호평을 받았는데. 


“당시 청취율도 좋았고 광고도 120% 팔았다. 근데 식자층, 칼럼을 쓰는 위치에 있는 분들에게 김미화라는 코미디언의 존재가 너무나 가볍게 보였던 거 아닐까. 게다가 방송하면서 궁금한 건 즉석에서 물어보고 하니 기분 나쁘게 생각한 정치인들이 꽤 있었다. ‘의원님 이건 이해가 안된다’ ‘반대편에선 다른 이야기를 한다’며 대본에 없는 질문을 해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거지. 실제로 통화 끝나고 제작진에 항의한 정치인들도 꽤 있었다.”


■“소셜테이너란 말 안 썼으면 좋겠다”


- 한창 인기있던 80~90년대부터 사회활동을 꾸준히 해온 것인데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소셜테이너’로 규정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섞인 느낌도 든다.


“일단 영어를 섞어 쓰는 것 자체가 혼란을 주잖아. 소셜테이너와 폴리테이너를 뒤섞어 쓰기도 하고. 왜 이런 단어를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사회복지 공부도 했고, 사회와 어려운 이들에 관심도 많았다. 코미디언으로 성공해 인기를 얻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게 내가 예전부터 원하던 삶이었다.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도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온 궤적을 보면 알 수 있는데 ‘김미화가 코미디언으로 성공하고, 불우이웃 돕기로 인지도를 쌓은 뒤 정치를 할 거’란 말이 나오더라. 벌써 30년이 넘었는데도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정치적이라는데, 뭐가 정치적이라는 거야? 시사프로에서 정치를 다뤘을 뿐인데도 사람들은 희한하게도 그런 시선으로 본다.”


- 정치권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영입제의를 했지만 응하지 않았던 거 아닌가. 그런데도 이런 인식이 한번 박히면 잘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30년간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건데. ‘쟤는 되게 만만하네. 건드려도 되네’ 했던 거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내가 견뎌온 세월이 너무 억울하다. 세상이 이제 조금 바뀌고 있다지만 다시 코미디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뉴스에 나와 ‘이명박 고소하겠다’고 인상쓰고 그러니 내 자리에서 더 멀어지는 것 같아 암담하다. 이제는 그냥 담담하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자고 마음 굳게 먹고 있다.”


@강윤중 기자

- 한 주요 일간지가 ‘폴리테이너’라고 쓴 것도 영향이 있는 것 같다. 


“반페이지나 되는 지면에 내가 ‘노사모’인 양 노란옷을 입은 사진을 커다랗게 실어서 기사를 썼다.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정정보도 결정이 내려졌지만 이제는 보수인터넷 언론들이 비슷한 취지로 기사를 쓰더라. 인용하기 시작했다. 주요 신문의 책임이 크다. 이름있는 신문이 가진 위력을 기자들이 생각하고 기사를 써야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으니.”

 

- 6살 때부터 코미디언이 꿈이었다고 했다.


“내겐 코미디가 전부였고, 하루에 80%를 코미디만 생각했던 시절도 있다. 지금도 정말 재밌게 코미디를 만들 자신이 있는데, 내 스스로 딱딱해질 일들이 너무 많았다.”


- 예전 프로를 보면 달동네 셋방살이 새댁이나 화장실 청소부 아주머니, 소녀가장 같은 서민역할이 많았다. 


“‘쓰리랑 부부’, ‘삼순이 블루스’, ‘누나야’ 같은 코너가 그랬다. 한국 코미디언은 직접 아이디어를 내는데 그러다 보니 자기에 맞는 소재들을 하게 된다. 내가 잘한 거는 내가 경험했던 것들이기도 하다. ‘삼순이 부르스’는 친정엄마가 중소기업의 화장실 청소부를 하던 걸 지켜보면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내가 학생 때였는데 엄마가 내게 ‘너는 인사를 잘하고 다녀라. 매일 화장실에서 얼굴 마주치는 직원이 엄마를 투명인간 취급한다’고 하더라. 코미디언이 되고 나서 청소부 아주머니나 세트 만드는 분들에게 꼬박꼬박 인사를 했더니 ‘방송국에서 가장 인사를 잘하는 코미디언’ 소리를 들었다. 그 분들 볼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났던 거지. 쓰리랑 부부는 달동네 살 때 공부 팽개치고 만화방에서 보던 길창덕 선생님의 <순악질 여사>가 너무 재밌어서 나중에 꼭 하겠다고 맘먹었던 거다.” 


- 코미디언 초년 시절부터 비디오를 하루에 한 편씩 보고, 책도 많이 읽었다고 들었다. 

“TV를 보다 코미디 소재로 쓸 만한 게 나오면 즉시 눌러 비디오테이프에 녹화를 해놓곤 했다. ‘오데로 갔나’라는 노래를 개그비전송 페스티벌에 이봉원씨와 함께 나가 불러 상을 받았는데 이건 ‘남북의 창’이라는 프로에서 ‘벌목꾼의 노래’라는 북한 노래를 보다가 저무 재밌어서 녹화해 뒀다가 패러디한 거다. TV프로를 녹화한 비디오를 보면서 공부를 해온 거다. 이런 식의 보는 작업이 상당히 도움이 된다. 책도 읽으면서 코미디의 모티브를 찾곤 했다.”


- ‘서민형 코미디’를 해왔고 인기를 얻었고, 그 뒤 꾸준히 사회활동을 하면서 서민들을 도와왔던 거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 그런데 SNS가 발달하면서 ‘어느 연예인이 무슨 행동을 했더라’하는 게 도드라져 보이게 된 거지. 그걸 반대편에선 입맛대로 이용한 거고, 그래서 평가가 달라지고. 나는 지금도 누군가가 도와달라고 하면 고맙다. 아직은 유명해서 내 힘을 필요로 하는 거잖아. 얼마 전에도 동물권 홍보하는데 도와달라고 하더라. 내가 가서 손잡고 안아드리는 걸로 힘이 된다면 참 소중한 일이다. 내가 한때 80곳이 넘는 단체의 홍보대사를 했었다. 내가 높은 자리보다는 현장에서 일하는 걸 좋아해서 그렇게 된 건데 이 단체들이 정권에 따라 좌파가 되기도 우파가 되기도 한다. 자연보호 단체가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면 좌파가 돼버린다. 그러다 보니 이 때는 좌파, 저 때는 우파에서 활동하는 것처럼 비쳤던 거다.”


■“이명박 덕에 새 인생 시작한 셈”


김미화는 고향인 경기도 용인에 거주하면서 4년 전 카페 ‘호미’를 열었다. 남편(윤승호)과 자신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서 지었다. 


- 요즘 일과는 어떤가.   


“아침에 카페에 나가 꽃들을 손보거나, 물건들을 사놓고 12시쯤 이곳 방송국에 온다. 오후 생방송이 끝나면 다시 내려가 남편과 저녁을 먹거나 동네사람들과 어울리거나 한다. 주말에는 카페에서 보낸다. 동네에 친환경 작목하는 분들이 농산물을 갖다 놓으면 대신 판매하기도 하고, 그림전, 인형전도 하고 음악공연도 한다. 봉사활동 다니는 색소폰 동아리나 플룻 동아리들이 들러 ‘공연 좀 하고 갑니다’라며 마이크 켜고 30분쯤 하다 가곤 한다. 그러면 내가 사회도 봐주고. 재밌는 공간이다.”


@강윤중 기자

- 권력의 탄압이 인생의 전기가 된 셈인가. 


“갑자기 일이 끊긴 뒤 ‘아 뭐하지’ 생각하다 꼭 화려한 데가 아닌 곳에서라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이명박 덕분이다. 카페 손님이 한달에 6000명 쯤 된다. 직원들 월급 주고 손해는 안나니 괜찮다. (돌아보면) 괴로운 나날도 있었지만 즐겁게 인생을 꾸려온 것 같다.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 있으면 ‘열심히 해봤으니 됐어’하는 쪽이었다.”


- 동네 공터에서 어른들 앞에서 공연하던 어린 시절과 비슷한 느낌이다. 


“사실 그 때부터 프로였다.(웃음) 어릴 적 동네에 넓은 공터가 있었다. 공장과 주택이 섞여 있는 동네였는데 비닐장판이 깔린 큰 평상에서 공연을 했다. 어른들이 주신 5원짜리 동전이나 자두, 사과를 손에 쥔 채 전파상 아저씨가 만들어준 마이크를 잡고 가수 이미자 흉내를 내면 어른들이 무척 좋아했다. 종일 광주리이고 생선, 과일 팔고 돌아오던 어른들께 즐거움을 드린 거지.”


- 다시 코미디에 복귀해야 하지 않나.


“열정은 아직도 엄청난 데 안 써준다.(웃음) 젊은 PD가 ‘선배님’하며 말을 걸지 혹시 모르지만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러다 일이 생기면 더 기쁘잖아.”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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