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맛

도시재생의 본보기 타이베이

서의동 2018. 1. 27. 22:35

지난해 겨울 휴가에 이어 올해에도 대만에서 5일간의 휴가를 보냈다. 지우펀에 당일치기로 다녀온 것외엔 주로 타이베이 시내를 어슬렁 대며 배고프면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 '부라부라' 형 휴가였다.


타이베이는 볼수록 마음에 드는 구석이 많지만 특히 '도시재생'면에서 배울 점이 많아 보인다. 이번에 처음 가본 '화산1914창의문화원구'라는 곳은 일본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과일주 공장이 있던 곳인데 공장건물들을 철거하지 않고 고스란히 살려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들었다. 타이베이 도심에 있는 이 공장터를 지금까지 그대로 둔 것도 신기하다.(한국 같았으면 벌써 철거하고 아파트를 지었을지도...)

화산1914창의문화원구 입구 @서의동


창의문화원구라는 이름이 어울리게 통통튀는 창의력 만점의 물건들을 파는 공간, 오르골 전시장, 카페, 식당 등이 산재해 있다. 공장으로 사용될 당시에 지어진 굴뚝이 백년이 넘도록 도심 한가운데에서 우뚝 솟아있는 것도 우리 같으면 생각하기 어렵다. 

창의문화원구내 판매시설 입구의 엽기적인 부조


창의문화원구내 전시공간

창의문화원구에 솟아 있는 굴뚝

공장건물 외벽이 벗겨져 있지만 오히려 친근한 느낌을 준다.

이곳 말고도 도심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지어진지 50~60년은 족히 돼 보이는 건물들이 여전히 현역으로 쓰이고 있다. 을지로나 삼각지 주변에서 보일 법한 낡은 건물들이 시내 중심가에 우뚝 버티고 있고, 일제시대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들도 적지 않다. 우리의 청와대격인 '총통부'도 일제시대의 총독부 건물을 그대로 쓰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묵었던 호텔은 'HOTEL' 표지도 찾아볼 수 없어 호텔이라고 보기 힘든 낡은 건물이지만 실내는 꽤 깔끔한 시설이다.(엘리베이터는 물론 복도도 낡아빠졌다) 

우리가 묵은 호텔의 출입구. 외견상으론 이곳이 호텔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호텔주변 주택가.

화단들이 많다.

테라스에 화분들이 많다.


낡음의 미학을 보여주는 호텔옆 건물

호텔 주변의 주택가들은 5~7층 가량되는 연립주택들이 많은데 이 건물들도 무척 낡아 보인다. (오래된 것인지, 대만의 기후탓에 외벽이 일찌감치 바랜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테라스마다 화분을 놓고 꽃을 가꾼 집들이 많고, 집 주변 도로도 담배꽁초 하나 보기 힘들 정도로 청결하게 청소돼 있다. 

타이베이 역 부근에 있는 대형 건물. 외관이 족히 60년은 돼 보인다.

건물의 외양은 낡았어도 열심히 가꾸면 '올디스 구디스'한 느낌을 주게 마련인데 타이베이가 그 본보기인 것 같다. 한국의 거리에 외양이 새롭고 첨단건물은 확실히 더 많지만, 거리가 지저분한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대만의 거리에서는 어딘가 기품이 느껴지는 노인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오래된 건물들을 툭하면 헐어 버리고 새로 짓는 '신장개업 증후군'을 대만에서는 느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