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카불과 강대국

서의동 2018. 2. 27. 23:20

유라시아 대륙의 정중앙에 자리 잡은 아프가니스탄은 19세기 이후 ‘제국의 무덤’으로 불려왔다. 영국과 소련이 아프간을 섣불리 침공했다가 실패하면서 몰락했고, 미국도 그 전철을 밟고 있다. 영국은 1839년부터 1919년까지 3차례 전쟁을 치렀지만 1차 전쟁(1839~1842)에서 영국군 4500명과 지원인력 1만2000명이 궤멸되는 등 번번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영국은 결국 1919년 아프간을 중립국으로 인정하는 조약을 맺은 뒤 철수했다. 1979년에는 소련이 한 해 전 쿠데타로 성립한 아프간 사회주의 정권을 지원하기 위해 10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했다. 소련군은 주요 도시를 빠르게 장악한 뒤 승리를 선언했지만, 저항군인 ‘무자헤딘’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병력 5만명을 잃은 채 1989년 철군했다. 아프간 전쟁은 두 강대국의 몰락을 재촉했다. 


당대의 초강대국들이 아프간과의 전쟁에서 고전한 이유는 한반도 3배 크기(65만㎢)에 달하는 국토의 대부분이 거친 사막이나 험준한 산악지대인 데다 이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아프간인들의 저항이 상상 이상으로 집요하기 때문이다. AK-47 소총과 바주카포를 들쳐 메고 산악지대를 평지처럼 뛰어다니는 게릴라들에게는 세계 최강인 미군도 속수무책이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알카에다가 은거해 있는 아프간을 침공해 한 달 만에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켰지만 탈레반 세력들은 산악전과 게릴라전으로 전환했다. 이 와중에 미국의 2003년 이라크 침공으로 이라크가 내란에 휩싸이자 오히려 이슬람 무장세력들이 세력을 회복했다. 미군이 아프간과 전쟁을 벌인 지 18년째로 접어들지만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있다. 베트남전처럼 ‘수렁에 빠진 전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시민들이 폭탄테러로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치우는 모습


지난 27일 아프간 수도 카불 시내 병원 부근 검문소에서 발생한 구급차 자폭테러로 최소 95명이 숨지고 158명 이상이 다쳤다. 카불 시내 호텔에서 지난 20일 탈레반 무장세력이 총격테러를 벌여 22명이 숨진 지 1주일 만에 벌어진 참사다. 카불 도심의 국방부 청사, 국회의사당, 외국대사관, 고급호텔, 대학 및 병원 등이 속속 테러의 표적이 되고 있다. 동서양을 잇는 ‘문명의 교차로’이던 카불은 이렇게 ‘테러의 중심지’가 됐다.

(2018.1.29) 

'여적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핵태세 검토 보고서  (0) 2018.02.27
독일차의 인체실험  (0) 2018.02.27
마케도니아 이름 소유권  (0) 2018.02.27
아키히토의 퇴위  (0) 2018.02.27
하산의 경우  (0) 2018.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