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경향의 눈] 탈북인들의 귀향

서의동 2018. 5. 11. 09:52

영화 <국경의 남쪽>의 한 장면

영화 <국경의 남쪽>에서 북한 교향악단의 호른 연주자인 선호는 결혼을 약속한 연화를 두고 가족과 함께 탈북한다. 서울에 내려온 뒤 각고 끝에 연화의 탈북자금을 마련하지만 브로커에게 돈을 몽땅 빼앗겨 버린다. 어려울 때 곁을 지켜준 남쪽 여성 경주와 가정을 꾸리며 생활에 적응할 무렵 연화가 내려오며 비극은 정점으로 치닫는다. 2006년 개봉된 영화지만 선호와 연화가 어쩔 수 없이 이별하는 막바지 장면에선 여전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어느덧 3만명에 이르는 탈북인들 중에는 이보다 몇 배나 큰 설움을 안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대량 탈북 사태는 최악의 식량난이 북한을 덮친 1990년대 중후반 본격화됐다. 처음엔 식량을 구해올 요량으로 강을 건너던 것이 북·중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목숨을 건 탈출이 돼버렸고, 종착지도 점차 한국으로 고정됐다. 중국 장기 체류자까지 합하면 북한을 이탈한 주민들은 수십만명으로 추산된다. 국경지방에는 ‘한 집 건너 한 명씩’은 있을 정도로 탈북이 일상화되다 보니 북한 당국도 큰 문제가 없는 한 묵인한다. 최근엔 자발적으로 재입북하는 탈북자들에 대해서도 처벌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 중 절반 이상은 돈을 벌어 북의 가족, 친지에게 보낸다. NK지식인연대가 2016년 12월 발표한 탈북인 400명 설문조사를 보면 대상자의 52%가 북의 가족에게 송금한 경험이 있다. 연간 송금액은 1000~4000달러로, 매년 100억~120억원 남짓한 자금이 송금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브로커들이 챙기는 고율의 수수료를 제외해도 상당한 지금이 북에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전례가 있다. 카스트로 혁명 이후 쿠바를 떠나 미국에 정착한 쿠바인들은 초기엔 반카스트로 운동의 선봉에 섰지만 지금은 쿠바경제를 떠받치는 버팀목이 됐다. 200만명가량의 재미 쿠바인들이 매년 30억달러 안팎을 가족·친지에 송금하면서 이렇다 할 산업이 없는 쿠바를 먹여 살리고 있다. 저항세력의 변신은 베트남에서도 볼 수 있다. 1975년 공산화 이후 배를 타고 탈출해 해외에 정착한 ‘보트피플’ 중에는 베트남의 개혁·개방 정책 ‘도이머이’가 본격화하면서 본국 산업에 투자하는 이들도 등장했다.

 

탈북인들은 돈을 보낸 뒤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북의 가족들과 통화한다. 돈이 제대로 갔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바깥소식도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간다. 그 덕에 북한 주민들은 개방에 대한 내성이 커졌다. 중국 전문가들은 탈북인들을 통한 돈과 정보의 유입이 북한 사회에 영향을 미쳤고, 이 때문에 북한은 중국 덩샤오핑(鄧小平) 시대보다 더 빠른 개혁·개방을 감당할 수 있다고 본다.

 

지난달 27일 판문점에 내려온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환담에서 “실향민과 탈북자, 연평도 주민들이 오늘 우리 만남에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봤다”고 했다. 많은 탈북인들이 이 장면에서 눈물을 쏟았다. 보위부 직파간첩으로 몰렸다가 누명을 벗은 홍강철씨는 “남북관계가 풀리면 이산가족 상봉하듯 우리도 가족들과 만나고, 고향에 갈 날이 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났다”고 했다. 2000년 정상회담 때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TV에서) 실향민이라든가 탈북자들을 소개해서 잘 봤다”고 했다. 하지만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말이고 보면 탈북인들이 ‘복권’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렇게 되면 탈북인들에 대한 시선도, 호칭도 달라질 것이다. 북에서는 ‘조국을 등진 배신자’에서 ‘재남(在南)거류민’이 될 수도 있다.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으로 이주한 이들을 초기 재일동포와 구별해 부르는 ‘뉴커머(newcomer)’ 같은 호칭이 어울릴지 모른다.

 

대량탈북이 본격화된 지 20년이 넘었다. 한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들도 있지만, ‘헬조선’에 적응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미국·유럽으로 떠나거나, 아예 되돌아간 탈북인들도 있다. 신념 혹은 생계를 위해 냉전세력의 반북 캠페인에 참여하거나, 더러는 ‘가짜뉴스’ 생산에 동원되기도 했다.

 

남북대결 시기에 탈북인들의 설 자리는 좁았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고 남북협력이 본격화되면 이들의 활동공간은 넓어질 것이다. 남과 북의 장단점을 두루 알고, 중국, 동남아에도 체류해본 탈북인들의 폭넓은 시야와 경험이 요긴하게 쓰일 기회가 오게 된다. 북한이 덜 착취적인 시장경제를 일구는 데 탈북인들이 기여할 수도 있다.

 

봄볕 좋은 날 탈북인들이 부푼 꿈을 안고 귀향길에 오르는 근(近)미래를 상상해본다. 그때쯤이면 <국경의 남쪽> 연인들 같은 한맺힌 이별곡도, 100년 넘게 지속된 한민족의 ‘디아스포라’도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다. (2018년 5월10일자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