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오늘

[어제의 오늘] 제네바 협정

서의동 2009. 7. 23. 09:43
ㆍ베트남 전쟁 씨앗 된 ‘남북 분단’

 디엔비엔푸는 하노이시로부터 300㎞가량 서쪽에 있는 험준한 산악도시로 라오스와 베트남 북부를 잇는 교통요충지다. 프랑스와 베트남독립동맹(베트민) 간에 벌어진 1차 인도차이나 전쟁(1946~1954년) 막바지 프랑스군이 베트민의 보급로 차단을 위해 이 도시를 점령하면서 세계 전쟁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디엔비엔푸 전투’가 시작됐다. 
 
 도로를 장악한 프랑스군에 맞서 베트민 군대는 결코 지나다닐 수 없는’ 빛조차 통과하기 힘든 정글을 통해 중포 200문과 다연발 로켓포를 인력과 조랑말의 힘으로 운반하는 대역사를 감행했다. 또 밤마다 민간인 보급부대들이 희미한 기름등잔 불빛만으로 끝없는 대열을 이루며 정글을 통해 베트민에게 식량을 날랐다. 한사람이 짊어진 식량 중 대부분이 행군도중 소비됐고, 10분의 1만이 전달될 정도로 악전고투였지만 보급로를 차단당한 베트민에겐 결정적인 힘이 됐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전선이 뚫리자 프랑스군은 전의를 상실했고 1954년 5월7일까지 5000명이 전사, 1만명이 항복하는 대패를 당했다. 이 전투로 8년에 걸친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막을 내렸고, 1954년 7월21일 제네바 협정이 조인됐다. 영국과 소련, 중국 등이 승인한 이 협정의 핵심은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베트남을 남북으로 일시 분단시키는 것이었다. 영토의 절반을 남쪽 정부에 넘기도록 한 데다 북베트남을 비합법 정부로 격하시킨 이 협정은 베트남의 5분의 4를 장악한 베트민으로서는 대단히 불공평한 것이었다. 그나마 2년 뒤 재통일을 위해 남베트남에서 실시키로 한 국민투표마저 끝내 무산됐다. 

 미국은 남베트남에 고딘디엠을 수반으로 하는 친미정권을 세웠지만, 그가 1963년 정적에게 살해된 이후 18개월 동안 8개의 정권이 명멸하는 정정불안이 지속됐다. 미국은 마침내 인도차이나 반도의 공산화를 막겠다며 직접 전쟁에 개입,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1965~1975년)의 막을 열었다. 이 전쟁은 엄청난 파괴와 인명손실을 가져왔고, 국제적으로 반전운동 확산의 계기가 됐다. 베트남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지도자 호찌민은 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9월 7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전쟁의 수렁’에 빠진 미국은 1973년 1월27일 휴전협정을 체결하고 치욕 속에 미군을 철수시켰다. 2년 뒤인 1975년 4월30일 남베트남 정부가 무너졌고, 1976년 7월2일 베트남사회주의 공화국이 성립됐다.  2009-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