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한일비교](5)죽음에 대한 태도

서의동 2012. 9. 14. 12:32

마에하라 세이지 민주당 정조회장이 은사의 묘지를 참배하는 모습 출처=마에하라 세이지 홈페이지



내가 단골로 다니는 동네 야키도리(닭꼬치)집의 60대 주인(여기선 마스터라고 부름)은 10여년전에 부인을 잃었다. 그는 아침마다 불단에 뜨거운 차를 올려놓고, 망자에 대한 예를 올린다. 

"새벽같이 골프를 치러가는 날 외엔 거의 매일 오차를 올려놓고 기도한다. 기도내용은 별거 없다. 그냥 일 잘되게 해달라는 정도지." 불단에 오차를 올려놓은 뒤 권투시합때 울리는 '공'같은 걸 친 다음에 합장하는 게 일상의 습관이다.  


일본은 사람이 죽으면 대개 화장을 하는 데 우리처럼 가루로 만들지 않고, 뼈가 그대로 남도록 해 유골함에 넣는다고 한다. 뼈를 차곡차곡 쌓아 복숭아씨처럼 생긴 목뼈를 맨 위에 올려놓고 유골함을 봉해 묘지에 안장한다. 부모 묘지는 장남이 관리하긴 하지만, 가끔 차남이나, 다른 형제에게 뼈를 나눠주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이를 분골(分骨)이라고 한다.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드라마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보면 주인공 남성이 죽은 여자친구의 뼈 하나를 몰래 훔쳐 조그만 유리병에 담아 10년이상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 한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일본사람들에 물어보면 "아주 드문 일이긴 한데, 있을 수도 있다"는 반응을 보인다. 


일본에선 공포물도 아닌데 망자들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심심치 않게 있다. 재일코리안 이상일 감독이 연출한 영화 <악인>에서도 딸이 살해된 현장을 찾은 아버지 앞에 숨진 딸이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진다. 사실인지 환영인지 분간하기 어렵지만, 이런 장면을 그냥 소품처럼 끼워넣는 걸 보면 일본인들의 의식속에서는 산자와 죽은자간의 거리감이 우리보다는 가까운 듯 하다. (가족의 유골로 팬던트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닌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국은 대개 묘지가 산중에 있는데 일본은 동네에 있기 때문에 거리감이 가까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는 연간 두세번, 오봉(お盆)때와 히간(彼岸) 때 참배한다. 야키도리집 주인 아저씨의 경우 부인의 묘지는 집에서 대략 3~4km 떨어진 마고메라는 곳(역시 도쿄시내)에 있다. 참배하러 가면 헌화를 하거나, 가끔 캔맥주 같은 걸 묘지에 올려두고 오는 이들도 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해외에서 310만명이 죽었다. 특히 미군과의 격전지였던 이오지마(硫黃島)에선 약 2만2000명 가량이 숨졌고, 이중 1만3000명의 유골은 발굴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미군이 종전직후 그 곳에서 비행장을 건설하면서 활주로 밑에 숱한 유골이 발굴되지 못한 채 깔려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자 일본 정부가 최근 활주로 밑을 탐색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패전처리에 관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해 주권회복을 한 1952년부터 해외 유골수습 작업에 나섰다. 지금까지 126만개의 유골이 수습됐다. 가족의 유골을 찾으려는 일본인들의 바램이 북일간 대화의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북한은 평양재개발 공사현장에서 수천구의 일본인 유골을 발굴했다며 찾아가라는 제의를 했고, 이이 제안을 일본이 수용해 10년만에 적십자회담이 열렸고, 지난달엔 북일 정부간 회담으로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