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오늘

[어제의 오늘]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서의동 2009. 7. 27. 18:43
ㆍ인류사 참극 부른 사라예보의 총성


발칸반도에 위치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는 ‘유럽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다민족·다종교 도시다. 반경 1㎞ 이내에 회교사원과 기독교 교회, 유대교 사원 등이 공존하고 있는 사라예보는 코소보 내전이 막을 내린 이후 유럽의 신흥 관광지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의 사라예보는 범 슬라브주의와 범 게르만주의가 일촉즉발의 긴장 속에 대치하던 ‘유럽의 화약고’였다.

오스트리아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황태자비 소피아가 이곳을 방문하던 1914년 6월28일은 공교롭게도 보스니아인들에게는 국치일이었다. 1389년 오스만투르크가 세르비아 왕국을 정복하던 날이었기 때문에 얼마전 보스니아를 무력병합한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하필 이날을 택해 방문한다는 소식에 현지인들은 격분했다.

가브리엘로 프린치프를 비롯한 22명의 테러조직은 사라예보역부터 시청에 이르는 거리 곳곳에 잠복하며 황태자의 목숨을 노렸다. 황태자를 태운 차는 수류탄 공격을 모면한 뒤 속력을 내면서 사정권에서 벗어나는 듯했다. 하지만 밀랴츠카강 다리를 건너기 위해 차가 속도를 늦추자 프린치프가 뛰쳐나와 권총을 발사했다. 첫발은 황태자비의 복부에, 두번째 총탄은 황태자의 심장에 명중했다. 사라예보에 울린 두발의 총성은 1000만명의 사망자를 낸 현대 인류사의 참극, 제1차 세계대전의 신호탄이 됐다.

세르비아와 보스니아는 남 슬라브 민족이 주류를 이루던 형제국가였다. 15세기 이후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아온 두 나라는 1878년 오스만투르크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이후 운명이 갈렸다. 독일과 영국 등은 발칸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 증대를 견제했고, 그 결과 세르비아는 독립했지만 보스니아는 1908년 독일을 등에 업은 오스트리아에 병합됐다. 이후 발칸반도는 러시아의 범 슬라브주의, 독일이 주도하는 범 게르만주의가 으르렁거리는 각축장이 되면서 언제 터질 지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 무렵은 발칸반도 외에도 영국이 주도하던 세계질서에 독일 등 후발국가들이 도전장을 내면서 유럽 전역에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던 때이기도 했다.

황태자 부부 피살사건 한달 뒤인 1914년 7월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했고, 다음날 베오그라드를 폭격했다.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돕기 위해 참전하자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했고,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이 차례차례 전쟁에 뛰어들었다. 중립을 지키던 미국이 1917년 연합국(러시아·프랑스·영국) 측에 참전하면서 전세가 기울었고, 마침내 1918년 11월11일 독일의 항복으로 4년여에 걸친 전쟁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