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거 본거

[해외 책]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

서의동 2012. 12. 8. 18:36

지난해 3·11 동일본대지진과 함께 발생한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사고가 일본 사회에 가한 충격은 1년9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그에 미치지는 않지만 올들어 오키나와(沖繩)에서 발생한 여러가지 일들도 일본 사회에 문제를 던졌다. 일명 ‘과부제조기’라 불리는 주일미군의 신형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리의 배치와 미군에 의한 오키나와 여성 성폭행 사건 등이다.



각각 ‘에너지’와 ‘안보’를 상징하는 지역, 후쿠시마와 오키나와는 이런 이유로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각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 도쿄대 교수가 출간한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오키나와(犧生のシステム 福島·沖繩)>(슈에이샤)는 이 두 지역을 ‘희생의 시스템’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한다. 

 

아직도 시간당 1000만㏃(베크렐)의 방사성물질이 방출되고 있고, 녹아내린 핵연료가 어떤 상태로 있는지 확인조차 안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1971년까지 미 군정하에 있다 일본 정부에 반환됐지만 주일미군 시설의 74%가 집중돼 있는 오키나와. 일본 사회가 누려온 전후(戰後)의 번영은 이 지역들의 희생을 토대로 했다.

 

저자는 “희생의 시스템에서는 어떤 이들의 이익이 다른 이들의 생활, 즉 생명·건강·일상·재산·존엄·희망 등을 희생시켜야만 성립되고 지속된다. 이 희생은 통상 은폐돼 있지만 공동체에 의해 ‘소중한 희생’으로 미화되고 정당화된다”고 지적한다. 이는 저자가 6년전에 출간한 <야스쿠니 문제>에서 제기된 문제의식과 동일하다. 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이 벌인 전쟁에 국민이 동원돼 전사했을 때 이를 국가를 위한 숭고한 죽음으로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야스쿠니(靖國) 신사도 결국은 ‘희생의 시스템’과 동일한 작동원리를 지닌 것이다. 

 

일본의 전후체제에서 ‘희생의 시스템’은 다수결 민주주의라는 편리한 의사결정 시스템에 의해 더 공고해졌다.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의 일본인들, 오키나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일본인들은 별 가책없이 ‘희생의 시스템’을 지지하며 그로부터의 이익을 향유한다. 물론 오키나와에는 일본 정부가 막대한 지방교부금을 부여하고, 전력회사들은 막대한 보조금을 원전 주변지역에 쏟아붓는다. 하지만 원전사고 이후 후쿠시마 주민들은 외면됐다. 후쿠시마 지역은 방사능 오염제거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곳이 태반이지만 일본 정부는 ‘부흥예산’으로 수송기를 사고, 정부 청사를 개축하거나 도로를 짓는 예산으로 전용한다. 오키나와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 속에도 오스프리는 결국 후텐마(普天間)기지에 배치됐고, 귀청이 멍해질 만큼의 소음을 내며 주택가를 유유히 비행하고 있다.  

 

저자는 이 희생의 시스템이 불러 일으킨 사고에 대한 반성은커녕 사고를 계기로 일고 있는 국가주의의 발흥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일부 논객들은 비상사태를 맞아 “정부와 국민이 일체화돼야 한다”거나 매스컴에 정부 비판에 대한 자제를 요구하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파시즘’ 혹은 ‘익찬(翼贊)체제’를 부르짖는 이들의 논리에 따르다 보면 더 큰 잘못을 범할 수 있는 것이 불가피한 데도. 일본 군국주의가 언론이나 야당의 비판을 봉쇄하면서 결국 잘못된 전쟁과 패망으로 치달았던 과거에 대한 반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탓이다.  

 

저자가 던진 ‘시스템으로서의 희생’, 혹은 희생의 제도화는 국가를 운영하는 데 있어 불가피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사고원전에서 가까운 도미오카(富岡)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자가 일본 사회에 묻고자 하는 것은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하는 시스템이 언제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이다. 이 물음은 일본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고리원전 사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문제를 겪고 있는 한국과 한국인들도 답해야 할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