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47

[경향의 눈]결국 대북전단이 문제였다(경향신문 2020.7.2)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북한의 불만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 폭파로 이어진 6월의 격동은 남북관계의 ‘흑역사’로 남게 됐다. 그 바람에 ‘한국전쟁 70년’의 현재적 의미를 차분히 성찰할 기회도 사라졌다. 그렇다 해도 지난 한 달간 북한이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를 짚어보는 일마저 생략해선 안 된다. 4·27 판문점선언은 2조 1항에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지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한다’고 규정했다. 그런데 이는 애초부터 지켜질 가능성이 낮은 ‘거품’ 조항이었다. 반북주의가 뿌리 깊은 한국 사회에서 대북전단 규제는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 이상으로 풀기 힘든 난제이기 때문이다.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가 안 되는 것은 미국 탓이라도 할 수 있지만, 전단 규제는 한국 정부..

칼럼 2020.09.15

[경향의 눈]남북 ‘갈라서기’로 70년 전쟁 마침표 찍자(경향신문 2020.5.28)

미국이 코로나19 이후의 국제 질서를 미·중 신냉전 구도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원맨쇼’가 아니다. 미국 백악관과 국방부가 지난 21일 의회에 제출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 보고서는 미·중 갈등이 미·소 냉전기 이상으로 장기화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1979년 미·중관계 정상화 이후 40년간 중국의 발전이 미국에 대한 도전으로 나타났다”는 대목에서 미·중관계를 송두리째 부정하고픈 미국 집권세력의 인식이 드러난다. 굴기하는 중국을 냉전시대 ‘죽(竹)의 장막’ 안으로 되몰아 봉인하겠다는 기세다. 미국의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중국봉쇄 기조는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 미국은 반중(反中) 대열에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인도 등을 세우겠다고..

칼럼 2020.09.15

[경향의 눈]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녹여 낫을(경향신문 2020.4.23)

지난주 벌어진 일 중에서 총선 결과보다도 더 눈길을 끈 것은 국회에 제출된 2차 추가경정예산 내역이다.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국방비에서 9000억원을 삭감하기로 한 것이다. F-35A 스텔스 전투기, 해상작전헬기 같은 미국산 첨단무기 구매 예산을 깎겠다는 발표에 구약성서의 한 구절을 떠올린 이도 있었을 것 같다. “칼을 쳐서 보습(쟁기의 날)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미가서 4장 3절) 부활절인 지난 12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코로나19로 텅 빈 바티칸 광장에서 강론했다. “전쟁은 더 이상 안됩니다. 무기 생산과 거래를 중단해야 합니다. 지금은 총이 아니라 빵이 필요한 시기..

칼럼 2020.09.15

[경향의 눈]‘개방형 통상국가’ 한국을 덮친 팬데믹(경향신문 2020.3.19)

한국은 개방형 통상국가다. 남북 분단과 전쟁이 없었다면 다른 형태의 발전 전략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1960년대 수출입국(立國)으로 방향을 정한 이후 수십년의 세월을 거치며 좋건 싫건 틀이 굳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주요국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과격한 형태의 경제협정을 체결하면서 시스템을 한껏 열어젖혔다.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된 세계화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올라탄 것이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보호무역주의가 대두하면서 이 전략에 물음표가 붙고 있다. 이런 한국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몇 겹의 충격을 받아야 하는 것은 개방형 통상국가로서 갖는 숙명이다. 통상국가는 물자와 사람이 자유롭게 오가야 기회가 생기지만, 접촉에 의해 확산되..

칼럼 2020.09.15

[경향의 눈]일본의 ‘국민 버리기’ 작전(경향신문 2020. 2.20)

일본인들은 ‘미즈기와(水際·물가) 대책’으로 불리는 일본 정부의 대응방침에 안심했을 것이다. 해안을 경계로 방어선을 쳐 코로나19의 상륙을 막겠다는 ‘쇄국(鎖國)작전’은 섬나라에 익숙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예전부터 이런 식으로 나라의 안전을 지키고 평화를 누려왔다. 그러나 이런 대처법은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예측불허의 리스크가 커지는 글로벌 시대엔 잘 먹히지 않는다. 더구나 경직된 거버넌스(통치구조)와 결합할 경우 ‘기능부전’에 빠지기 십상이다.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대한 미즈기와 작전은 일본형 시스템의 난맥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프린세스호에 대해 2주간 봉쇄조치를 내렸을 때 아베 신조 정부는 이 배가 거대한 ‘바이러스 배양접시’가 될 가능성에 주목하지 않..

칼럼 2020.09.15

[경향의 눈] 도로시의 북한 여행(2020.1.23)

패러글라이딩 도중 토네이도에 휩쓸려 북한 땅에 불시착한 여성 기업인 윤세리와 북한군 장교 리정혁이 사랑에 빠지는 드라마 은 한국 드라마의 ‘운동장’을 넓혀 놨다. “일단 못 보던 광경이 풍물지적 흥미를 유발”한다는 평(대중문화평론가 황진미)대로 북한이라는 금단의 공간을 무대에 편입시킨 것이 우선 득점 포인트다. 북한군 장교, 그것도 군부서열 1위인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아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설정도 전무후무하다. 상대는 재벌 2세인 여성 CEO. 남녀 주인공이 남북 체제의 파워집단 출신이라는 배역설정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트집을 잡자면 주인공인 북한군 장교가 지나치게 멋진 것부터 용납 못하겠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불온’해 보이는 드라마가 불시착은커녕 시청률 1위의 고공비행을 하는 ..

칼럼 2020.01.31

[경향의 눈]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길'(2019.12.26)

북한이 준비한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예고만으로도 북한은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북한과 미국 간에 2년간 조성됐던 협상 국면이 종언을 고했음을 이보다 더 극적으로 알리기도 쉽지 않다. 이제 북·미관계는 수십년간 되풀이해온 경로를 다시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협상 시작→갈등 재연→협상 중단을 무한 반복하는 폐곡선 경로다. 생각만 해도 폐소공포증이 느껴진다. 한반도의 운명이 바위 굴리기 천형(天刑)을 반복하는 시시포스와 다를 게 뭔가. 북한이 내년 초 신년사에서 밝힐 ‘새로운 길’이 뭔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폐곡선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에 나서리라는 점은 확실하다. 북한은 미국의 ‘절대반지’인 대북 제재를 무력화하는 쪽으로 국제질서 재편을 꾀할 가능성이 있다..

칼럼 2020.01.31

[경향의 눈] 한·미 동맹의 거품을 걷어내자(2019.11.28)

방위비 분담금 공방으로 한·미동맹에 치장된 ‘신성(神聖)의 허울’이 벗겨진 것은 한국에 보약 같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아서 왕의 엑스칼리버 같은, ‘한국 수호’의 성검(聖劍)이었던 한·미동맹은 ‘사람들을 겁박해 돈을 뜯는 폭력배 식’(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 발언) 계약관계로 전락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사태는 미국의 동맹서열에서 한국이 일본에 멀찌감치 뒤처져 있는 현실을 체감케 했다. 그뿐인가. 기인(奇人)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됐을 때 사람들은 미국의 한반도 현상유지 정책이 바뀔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북한과의 2차례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뿐이다. 트럼프는 ‘나서지 말라’며 한국 정부의 손발을 묶어두고 1년 넘도록 ‘희망고문’만 가하고 있다. 실제로 일..

칼럼 2020.01.31

[경향의 눈] F35와 금강산 사이, 문재인 정부가 할 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6월30일 판문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한 50분 중 절반가량을 한·미 연합훈련 중단 요구에 할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의 집을 나서던 김 위원장의 표정이 밝아 보인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긍정적인 언질을 받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두 달이 못돼 한·미 연합훈련이 실시됐다. 북한은 미국은 물론 한국에도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지난해 북·미 비핵화 협상은 ‘쌍중단’(북한의 핵·장거리미사일 실험과 한·미의 군사훈련 중단) 원칙에 양측이 동의함으로써 출범했다. 봄철 한·미 연합훈련이 연기됐고, 김 위원장도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중단 방침으로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5개월 뒤 한·미 ..

칼럼 2019.11.03

[경향의 눈]북한이 남북관계에 기대를 접은 이유

2019.10.2 지난해 4월27일 판문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수행한 리명수 인민군 총참모장 등 북한군 수뇌부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로 인사했다. 9월 평양정상회담 때도 인민군 위병대장이 “대통령 각하”를 외치며 문 대통령을 맞았다. 이젠 ‘이런 일도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아득한 과거처럼 느껴진다. 1년이 지난 지금 남북관계는 전면 중단상태다. 지난해 12월14일 체육회담 이후 당국 간 회담의 문은 닫혀 있고, 민간교류도 전무하다. 북·미 협상이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7개월 만에 재개된다. 하지만 협상이 성공하더라도 남북관계가 가슴 뛰던 지난해로 돌아갈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북한 조평통은 광복절 다음날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했..

칼럼 2019.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