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17. 20:22

겨울 휴가로 1월9일부터 16일까지 일본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물론 휴식과 재충전을 위한 휴가지만 일본 물가를 살펴보려는 목적도 있었다. 7박8일 동안 구매한 상품이나 서비스의 영수증을 모아 액수를 기록했다. 한국에서 파는 물건들의 가격과 정밀하게 비교해보는 작업은 하지 못했지만 대략의 경험으로 비교해본다.   


1. 캔커피


대체로 한국에서 파는 렛쓰비와 비슷한 크기(용량 170g)로 편의점에서 구매할 경우 113엔이다. 자판기의 경우는 지역별, 메이커별로 가격이 100엔에서 120엔까지 차이가 난다. 사진은 아로맥스에서 나온 뚜껑달린 캔커피. 일본의 뚜껑달린 캔커피가 보통 한국에서 파는 것과 비슷한 대용량인데, 이 캔커피는 '렛스비형'과 마찬가지로 소용량이다. 가격은 130엔. 한국에서 뚜껑달린 캔커피는 2200원 안팎이다. 용량이 좀 더 많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일본쪽이 싼 느낌이다. 





2. 녹차와 코코아  


일본 녹차들도 용량에 따라 130~150엔의 가격이다. 편의점에서 구입한 이토엔의 오이오차는 140엔. 캔 코코아는 150엔.




3. 1만2000원대 햄버거 스테이크 


도쿄 남부의 후타코타마가와(双子玉川)에 있는 레스토랑 '쓰바메그릴(つばめグリル)'에서 햄버거스테이크를 먹었다. 가격은 1199엔(라이스 포함). 한화로 치면 1만2000원대. 세명이서 먹은 저녁만찬 가격은 3780엔. 이 레스토랑은 긴자에서 1930년에 창업한 가게의 분점으로, 꽤 유서깊어 보이는 곳이다. 맛도 훌륭했다. 한국의 레스토랑에서 햄버거 스테이크는 얼마나 하려나? 잘 안사먹어 봤지만 대략 이 정도 먹으려면 1인당 2만원은 잡아야 하지 않을까?     



4. 인도카레 전문점 


역시 후타코타마가와에 있는 인도카레점 모띠. 셋이서 런치세트와 라씨(음료), 탄두리 치킨을 점심으로 먹었는데, 가격은 4520엔. 탄두리치킨 세조각이 980엔, 런치카레세트는 1세트가 1080엔이다. 셋이서 꽤 배불리 먹었는데도 음식을 조금 남기고 말았다. 종로에 있는 인도카레집의 경우 둘이서 배불리 먹으려면 5만원 정도 한다. 


5. 만두와 라면 


한국에도 진출해 있는 ’교자노 오쇼'에서 교자(만두) 6개 한접시와 라면을 먹었다. 교자는 259엔, 라면은 518엔. 합계 777엔. 라면은 종류마다 식당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카마타의 한 라면집에서 먹은 라면은 파와 김, 계란을 잔뜩 넣은 특제미소라면으로 가격은 970엔. 예전에 살던 동네에 있는 기타카타라면집의 게키가라네기(激辛ネギ)면은 930엔. 



6. 아이스크림 


팜초코렛바 가격은 140엔. 슈퍼컵바닐라 200밀리 140엔(편의점 가격) 


7. 약품 


컨택트렌즈 트러블로 각막이 충혈돼 약국에서 안약을 샀다. 약사한테 눈동자를 보여주니 "결코 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약이 필요하다면..."이라며 권한 약은 노아르AZ로 700엔. 그밖에 아스피린(1125엔), 파스(540엔)을 주고 샀다. 파스는 60매짜리로 양이 많았다. 


8. 맥주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가족의 집에 갔다가 맥주가 떨어져 편의점에서 에비스 500ㅡml 6캔 한묶음을 샀다(2034엔). 한국 편의점에서 아사히맥주 355ml는 3000원쯤 한다. 


9. 회전초밥집 


카마타에 있는 '마와루 원조스시(廻る元祖寿司)'에서 3명이 4482엔어치를 먹었다. 100엔짜리 5접시, 130엔짜리 1접시, 160엔짜리 7접시, 200엔짜리 4접시, 250엔짜리 2접시, 380엔짜리 1접시. 그리고 차완무시 4그릇과 게가 들어 있는 미소시루 2개. 꽤나 배불리 먹었다.  


2편에는 교통요금과 숙박비 등에 대해 다룰 예정인데, 먼저 총론으로 말하면 교통비와 숙박비를 제외한 물가는 한국보다 더 싸거나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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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26. 22:53
일본과 한국의 편의점 알바 시급을 비교해봤다. 일본의 최저임금은 한국과 달리 47개 광역자치단체별로 정해진다. 도쿄의 경우 올해 888엔(한화 8380원)으로 이번에 논란끝에 정해진 한국의 최저임금(6030원)보다 39%가량 많다. 일본의 1인당 소득 등을 감안하면 우리보다 작다고 볼 수 있지만, 좀더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선 일본에서는 최저임금에 딱 맞춰 시급을 주기 보다는 최저임금보다 10~30%가량 많은 시급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아르바이트나 파견직이 그렇단 이야기다.  

일본의 '마이나비 사이트'를 찾아보면 편의점 알바 구인광고가 나온다. 도쿄 시부야구, 치요다구의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시급이 1100엔~1375엔으로 돼있다. 여기에 교통비도 별도로 지급된다. 밤시간대의 시급은 1250엔부터 시작한다. 

토요스에 있는 편의점 세븐일레븐의 경우 밤 10시~오전 7시의 밤샘근무자를 모집하는데 시급 1250엔에 교통비 별도지급이 근무조건이고 '주 1일 이상'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패밀리마트 하라주쿠점은 시급이 1050엔~1250엔으로, '주 1일 이상, 하루 5시간 이상 근무'로 돼 있다. 세군데의 시급 범위는 1050엔이 최저, 1375엔이 최고치다. 최저임금보다 18~54%가량 많이 준다. 게다가 교통비가 따로 지급되기 때문에 실제 받는 돈은 더 늘어난다. 
 
페친중에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이의 말에 따르면 교통비는 본인이 사는 집에서 근무처에서 가장 가까운 역까지의 왕복전철비를 조금 넘는 수준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본인이 정기권(집근처 역→회사 근처 역)을 직접 끊은 뒤 영수증을 제출하면 월급과 함께 입금하는 방식이다. 업무상 핸드폰을 써야 하는 곳에서는 정액으로 핸드폰 요금을 지급한다. 이 페친은 핸드폰 요금 보조비로 월 2000엔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일본에서 가장 열악한 아르바이트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일본의 반빈곤 운동가인 유아사 마코토에 따르면 오니기리(삼각김밥)이나 도시락을 만드는 공장의 경우 더 근로조건이 열악하다)

일본 세븐일레븐 직원 출처:http://chomatomesh.blomaga.jp/


 
1050~1375엔을 평균하면 1212엔. 이 조건으로 하루 8시간씩 주 5일로 4주를 근무하면 19만3920엔을 받을 수 있다. 한화로 계산하면 183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다. 부부가 함께 편의점 알바를 하면 38만7840엔, 우리돈으로 360만원 가량이 된다. 도쿄의 집값이 비싼 편이지만 월세 100만원짜리 집에서 머문다고 해도 260만원 정도가 남는다. 

한일의 물가를 일률적으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내 살던 경험에 비춰보면 생활물가는 일본이 한국보다 결코 비싸다고 보기 어렵다. 2리터짜리 생수는 슈퍼에서 사면 88엔(830엔), 캔커피 120엔(1130원), 고등어 반토막 100엔(943원), 쌀 5kg 2000엔 안팎(1만8880원)이다. 10가 넘으면 생선은 반값으로 할인된다. 선도 유지를 위해서다. 

한국의 편의점은 어떨까. 네이버 지식in에 올초에 올라온 질문을 인용해본다. 
 
"안녕하세요 편돌이를 하는 20대 입니다. 2015년 되면서 시급이 5580원으로 올랐자나요. 근데 편의점은 항상 최저 시급보다도 적게 받더라고요. 다른 알바에비해 편하기는 하지만 법으로 정한 ‘최저시급’ 이라는 말이 말그대로 최저라는 말이자나요 제일 최소한으로 주는 시급인데 그걸 지키지 않아도 편의점은 괜찮나요? 제가 일하는 편의점만 시급을 적게 준다면 당장이라도 신고하겠지만 대부분의 편의점이 다 최저시급을 안줘서 이렇게 질문을 올려봅니다. 신고를 해도 괜찮을까요?"
 
질문중에 "대부분의 편의점이 다 최저시급을 주지 않고 있다"는 대목이 눈에 띤다. 
 
7월20일에 올라온 내용은 질문자가 최저임금을 밑도는 시급 5000원 받고 있다고 한다. 
 
"제가 세븐 편의점 야간11~7시까지 하는데요. 시급은 5000원이구요. 여기가 점장님까지 합치면 7명인대 야간수당까지 받을 수 있나요. 지금 5일째입니다. 그리고 근로계약서 쓰지 않았습니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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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6. 22. 15:17

신경숙 표절사태를 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면 한국의 표절관행은 '일본 캐치업(catch-up)'을 목표로 뛰어온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와 무관하지 않은 듯 보인다. 이 과정에서 '일본 베끼기'는 각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국제통화이금(IMF) 사태 이전만해도 정부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면 우선 일본의 법령이나 제도를 베껴 시안으로 깔아놓는 것이 순서이다시피 했다. 

 

한국사회에서 일본 것을 베끼는 데는 별다른 죄책감이 없었던 것 같다. 식민지배 35년을 경과하면서 경제, 사회구조가 일본형으로 재편된 특수상황에다 "일본은 우리에게 죄를 지었으니 일본 거 좀 베껴도 돼"라는 심리도 깔려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가요계에서 일본 노래 표절시비는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의 2인조 여성그룹 핑크레이디의 <SOS>를 거의 베낀 <별 달 장미 백합>(김만수 노래)이다. 룰라의 <천상유애>가 닌자의 ‘오마츠리 닌자’를 표절했다는 의혹도 유명하다.(실제 들어보면 그렇게까지 표절인가 싶을 정도지만) 일본에 한류붐을 일으킨 <겨울연가>의 주제가도 일본 노래를 표절했다는 뒷말이 나왔다.  


출처 = thinkdifferent.tistory.com

 

제조업 분야에서도 표절시비가 많다. 새우깡, 빼빼로, 고래밥, 쵸코송이, 마이추, 음료의 17차(일본은 16차)가 일본 상품을 거의 그대로 모방했다. 일본 나고야에 있는 돈까스 전문점의 로고(돼지가 스모선수 복장을 한 로고)를 한국의 한 업체가 그대로 베껴 문제가 되기도 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기업간에 공식적인 기술협력 사례가 많았지만 이런 것과 별개로 차용과 모방, 카피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 것을 표절하는 경향은 독특한 한·일관계와 무관치 않다.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 뒤에도 양국간 문화교류는 크게 제한됐다. 일본 지상파TV에선 한국 드라마나 음악이 여과없이 소개되지만, 한국 지상파는 일본노래와 일본 드라마를 방영할 수 없다. 만약 한국인들이 일본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면 앞에서 예시한 말도 안되는 표절사례는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1980년대 후반까지는 한국인의 해외여행이 제한됐다. 

 

표절은 한마디로 수지맞는 장사였다. 일본문화의 '빗장'은 닫혀 있고, 거리는 가깝다 보니 일본에 가서 이거저거 쇼핑하거나 구경한 뒤에 모방품을 만들어 내면 바로 팔리는 구조였던 것이다. 이런 관행은 문화계에서 상당기간 죄의식 없이 남아 있었다.  


어렸을 적 즐겨보던 <마징가제트> <은하철도999> <마린보이> 등 일본 애니메이션의 사례도 재밌다. 공식적으로 일본 문화를 수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방송사들이 수입하도록 허가했고, 그 조건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을 시청자들이 알지 못하도록 했다. '눈가리고 아웅'식이다. 김국환이 부른 <은하철도999>의 주제가는 마상원 작곡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일본 버전의 주제가(사사키 이사오 노래)와 중반까지 거의 같은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서 표절을 조장하다 보니 일본의 문물은 마음대로 베껴도 죄의식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 수십년간 지속된 것이다.  


해방이후 ‘일본을 따라잡자’는 의식은 한국이 빠른 시일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동력이 됐다. 하지만 ‘빨리빨리’ 가져와 모방하는 성장과정은 수십년이 지난 현재 우리에게 장애물이 된 듯 하다. 독창성을 기를 ‘성장판’을 닫아버린 것이다. 

 

일본이라고 베끼기 관행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자업종 분야에서 소니같은 일본 기업들이 미국 제품을 들여와 뜯어보면서 모방품을 만들어낸 사례가 분명히 있다. 캐치업 단계에서는 세계 공통의 현상이기도 하거니와 '모방-혁신-창조'라는 흐름을 밟아가는 초입단계에서는 불가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의 문제는 벌써 졸업했어야 할 모방단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삼성이 아이폰을 베낀 갤럭시를 출시한 뒤 소송에 시달리며 '카피캣'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상황이 이를 대변한다. 일본 모노즈쿠리의 강력한 자장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돈과 시간을 들여 우리 고유의 것을 키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풍토였기 때문이다.  


일본을 관찰해보면 가업을 몇대째 계승하면서 한우물을 파다가 독창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사례가 많다. 성실하고 꾸준하게 궁리하면서 혁신적인 개량품이나 전혀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낸다. 일본은 1853년 미 페리제독에 의한 개항이전에 상당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정치사회구조가 상업과 기술을 존중하는 풍토였다. 이 때문에 모방단계를 빠르게 졸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반면 우리는 사정이 달랐다. 조선시대부터 기술과 상업을 천시하는 분위기에다 해방과 전쟁이후에는 빠른 복구를 위해 뭐든지 대강 그럴싸하게 만들어 빨리 파는 방식이 더 선호됐고 또 성공을 거뒀다. 그중 빠르고 손쉬운 길 중 하나가 베끼는 것이고 바로 옆나라에 우수한 물건들이 많으니 가져다 쓰면 됐던 것이다. 식민지시대에 형성된 인적 네트워크가 해방이후에도 상당기간 온전하게 기능해왔던 점도 있다. 요컨대 ‘노하우’ 대신 ‘노웨어(know-where)’가 한국에선 더 중요했다.

 

학계에서도 먼저 이런 풍토는 문화계 뿐 아니라 산업계, 학계 등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도 일본이 지리적으로 너무 가까웠고, 식민지배까지 받았던 것은 한국에 엄청난 마이너스였다. 



사과의 말씀


내용중의 일부 내용에 오류가 있었네요. 빼빼로데이는 한국이 먼저였고, 일본 애니메이션 배경음악의 경우 일본음원협회에 패키지로 저작권료를 지불한다는 독자들의 지적이 있었습니다. 확인해보니 빼빼로데이는 97년부터 롯데가 마케팅을 시작했고, 포키는 해당회사인 에자키그리코가 1999년 11월11일을 포키데이로 지정한다고 홈페이지에 공시했습니다. 애니메이션 배경음악의 저작권료 지불건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일단 지적이 있어서 해당부분을 삭제했습니다.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글을 올린 점을 사과드립니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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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sea 2015.07.05 16: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에~ 이거 제대로 조금이라도 알아보셨다면 포키데이가 우리나라 빼빼로 데이를 베낀것쯤은 금방 알수있습니다. 실제로 빼빼로데이보디 포키데이가 더 늦게 99년도에 실행되었어요 :/ 이런식으로 보이니 정말 기분나쁘지만 쓰실때 조금이라도 제대로 알아보고 쓰시는게 어때요? 여러부분 지적드리고싶은데 입만아프니까 대중들이 다 아는 포키데이에 관해서만 지적드립니다;; 정말 웃기네요 이런것돜ㅋㅋ;;

    • BlogIcon 난감 2015.07.06 1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포키 데이가 먼저든 빼빼로 데이가 먼저든 중요한건 빼빼로가 포키를 고스란히 배꼈다는 것이고 글의 본질적 내용과는 전혀 상관 없지 않나 싶네요

    • BlogIcon 난감 2015.07.06 1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포키 데이가 먼저든 빼빼로 데이가 먼저든 중요한건 빼빼로가 포키를 고스란히 배꼈다는 것이고 글의 본질적 내용과는 전혀 상관 없지 않나 싶네요

    • 20170527 2017.05.28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념일은 중요하지 않다.
      Glico의 상품을 LOTTE가 표절한 것이 문제다.

  2. BlogIcon -_- 2015.07.05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빼빼로 데이는 우리나라가 먼접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배경음악의 경우는 우리나라 음원의 경우와 유사하게 일본음원협회에 패키지로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방송국에 문의한번만 해보셔도 알 수 있는 사실일텐데요. 방송국에 전화 한 통 해보시는 게 그렇게 힘들었나요

  3. BlogIcon ㅎㅎ 2015.07.05 1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일본은 미국꺼 배낀거라는 듯

  4. BlogIcon ㅡㅡ;; 2015.07.05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리가일본을 배끼게된건 다 가까이 있는 일본탓이다라는 결론인가요? 글쓴이의 얄팍함에 피식 웃고갑니다.

  5. BlogIcon 2015.07.05 1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성이 아이폰을 베꼈다 라..
    삼성이 애플에게 베낀것은 디자인 이었고, 그 소송건은 삼성이 애플에게 배상금을 지불하는것으로 마무리. 또한 그 이후론 독자적인 디자인과 기술력으로 2015년 1분기의 1위 핸드폰업체로 선정되었습니다. 독자적인 기술에 "잠깐"의 실수였던거지, 지속적인 도용이 아니었으므로, 예시로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6. BlogIcon ㅇㅇ 2015.07.05 2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각종 분야에서 나타나는 일본 베끼기를 반성하자는 비판의식은 동의합니다. 근데 조선의 사농공상 분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우리 역사의 근본적 한계를 들먹이는 자기비하로 이어지는 글의 전개가 이상하네요.

    • BlogIcon 덩이 2016.02.13 2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널리스트치고는 논리가 좀 엉성한느낌 지울수 없다 하지만 서의동기자님은 인간적인 감성접근표현은 뛰어나신 분같다
      자기비하까지는 아닌거같고

  7. Favicon of http://blog.daum.net BlogIcon 음냐 2015.07.06 0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농공상은 공감합니다..실제 현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 조차도 마인드가 그렇거든요...

  8. BlogIcon 웃음 2015.07.13 1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키? 그거 초코프레첼 따라한겁니다 한국 편드는게아니고
    고래밥,새우깡 그거
    표절품을 표절했다고 방송까지해대는 방숭이들ㅉㅉ
    네이버에 일본 미국 표절 검색해보세요

    • BlogIcon 덩이 2016.02.13 2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써 있잖아.. 이 난독증양반아..일본도 다 베꼈는데 일정수준올라가면 독자적 자기만에 길을 가야되는데 우리나란 끝까지 베끼고 앉아있다고..방숭이? 내나라잘못가려주면 그게 애국같냐?

  9. BlogIcon 한국은 일본거좀 그만베껴 2016.01.09 2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일본이 우리나라 괴롭혔으니까 베껴도 된다는것도 이상함.포키만든 사람이 한국한테 잘못한거있음?

2014. 9. 17. 21:18

총련계 민족학교인 조선학교 학생들이 일본 고교 럭비대회에 출전해 분투하는 모습을 그린 <60만번의 트라이>가 국내에서 개봉됐다. 몇년전 홋카이도 민족학교 학생들의 생활상을 그린 다큐멘터리 <우리학교>가 크게 주목받은 적이 있지만, 두 영화 모두 '한국인'의 시선으로 본 재일동포들의 모습이다.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꽤나 이질적이면서도 신선한 감동으로 한국인들에게는 다가오는 것 같다. 


다큐멘터리 <우리학교> 포스터



일본 체류기간 중 취재차 총련계 사람들을 여러차례 만나 그들의 생리를 조금쯤은 알 기회를 얻었다. 총련계 동포들은 대체로 조선학교를 나온다. 총련 활동가들로 분류되는 이들은 도쿄 근교에 있는 조선대학교를 졸업한다. 조선학교를 다닌 이들이 모두 총련 활동가가 아니냐고 오해하기 쉽지만 실상은 보통의 기업으로도 진출할 뿐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조선대학교를 나온 이들중에서는 정식명칭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라는 조직에서 일을 하거나 조선학교 교사가 되거나 총련계 기관지인 <조선신보> 기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과 한국정부는 조선학교와 총련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재일동포들이 반드시 그런 이유로만 조선학교를 보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총련계 동포들에게 조선학교는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공동체'와 비슷한 존재로 보면 될 것 같다. 일본 각지에 조선학교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조선학교에 다니는 동기들은 대부분 초중고교를 함께 한다. 언니나 오빠, 동생들도 10년 이상씩 같은 학교에서 보게 되기 때문에 이들간의 우애는 형제애에 버금갈 정도다.


학부모들도 대개는 어릴 적에 조선학교를 다녔기에 학교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때가 되면 열리는 동포들간의 축제는 동네에 있는 조선학교에서 열리는 것이 보통이다. 학생들의 춤, 노래를 보며 학부모들은 함께 캔맥주를 마시며 흥에 젖는다. 물론 학부모들도 예전에 같이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이다. 이런 '공동체'적인 분위기 때문에 <우리학교> <60만번의 트라이>가 한국팬들의 심금을 울리는 측면도 있을 것 같다.  


일본에서는 총련계 학교를 둘러싼 신화가 있다. 그중 하나가 조선학교 학생들이 '주먹이 세다'는 것이다. 2011년 6월 도쿄 북쪽인 기타(北區)에 있는 도쿄조선고급학교(도쿄조고)의 축제를 취재한 적이 있다. 때마침 학교에서는 이웃 일본 데이쿄(帝京)고교와 공동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었다. 도쿄조고와 데이쿄고는 90년대까지만 해도 학생들간 집단 패싸움이 끊이지 않던 '견원지간'이었지만 2001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한·일 간 외교마찰이 빚어진 것을 계기로 ‘서로 만나 대화할 필요가 있다’며 교류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 학생들에 조선학교 학생들은 '호전적'으로 비쳤던 것 같다. 2편에서 소개했던 영화 <박치기>를 보면 교토에 수학여행을 왔다가 조선학교 여학생들 놀리던 일본 고교생들이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그야말로 '박살'이 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요즘도 "옛날에는 조선학교 학생들의 배지만 보면 일본애들이 겁을 먹었다"며 너스레를 떠는 재일동포들이 있지만, 생각해보면 차별속에서 단련돼온 이들이니 그럴 법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건 12년간의 교육과정을 거친 만큼 총련계 사람들은 민단쪽 동포보다는 한국말(조선어)를 잘하는 편이다.(민단계열의 한국학교가 있긴 하지만 조선학교에 비해 숫자가 적고, 민단동포들의 상당수는 일본학교를 다닌다) 


하지만 이들의 말은 엄밀히 말해 한국어와도, 북한에서 쓰는 말과도 다르다. <박치기>에서는 일본어로 '도시타노(どうしたの?)'라는 대사가 등장했는데 자막에 이를 '어떻게 했어?'라고 번역했다. '도시타노'는 한국말로 의역하면 '무슨 일이야?'쯤 된다. 하지만 이를 일본말 그대로 직역하면 '어떻게 했어'라는 의미불명의 말이 된다. 재일동포들 사이에선 통하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이들의 언어는 오랜 기간 본국(남이든 북이든)으로부터 떨어진 상태에서 자체적으로 진화한 '갈라파고스적'인 언어라는 생각도 든다. 


조선학교의 한 여학생이 일본 TV와 인터뷰하고 있다. "학교에선 조선말을 쓰는게 습관으로 돼 있습니다. 외국어를 쓴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조선학교 출신들이 민단 동포들에 비해 한국어 실력이 나으니 가끔 촌극이 벌어진다. 민단이 주최하는 한 행사장에 간 적이 있었다. 일본 내빈들과 한국 대사관 관계자들도 많았던 행사였는데 일본말과 한국말을 번갈아 하며 진행됐다. 그런데 두사람의 사회중 한국말을 담당하는 여성의 억양은 완전 북한식이어서 취재를 갔던 특파원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이 여성은 어릴 적 조선학교를 다녔고, 그때 억양이 굳어졌던 것으로 추정됐다. (물론 민단계 동포들중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한국 대학으로 진학한 이들도 적지 않고, 이들이 일본으로 돌아와 활동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민단 동포가 한국말에 서투르다는 것은 편견일지도 모른다)


조선학교를 나온 총련 동포들은 대체로 한국이름을 고수한다. 나중에 사정이 있어 총련을 이탈한 동포들도 대체로 한국이름을 쓴다. 반면 조선학교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에서 자라오다 보니 '우물안 개구리' 같은 문제도 있다고 한다. "가족같은 공동체의 테두리 내에서만 있다보니 세상물정에 어둡고, 일본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조선신보의 자매지에서 일하다 수년전 일본 주간지로 직장을 옮긴 한 재일동포로부터 들은 말이다. 


일본에서 민단과 총련의 대립을 마치 남북간의 대립과 갈등같은 것처럼 오해하는 경향이 없지 않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고려산천 내사랑>을 부른 재일 오페라가수 전월선은 총련출신이지만 한국에서도 활동하고 있다.도쿄에서 꽤 유명한 한국 요리집은 원래 총련계 음식점이지만, 한국인 유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일하기도 한다. 총련계 음식점과 한국인들이 차린 음식점은 메뉴에서 차이가 있고 조리법도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한국을 다녀온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한국식 메뉴를 도입하고, 한국인 손님들도 자주 찾고 있다.


조선학교에도 의외로 한국 국적자들이 많다. 자식교육 등을 이유로 한국국적을 취득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총련 상공인단체의 간부들 중에도 자녀의 유학을 위해 한국국적을 취득한 이가 있는 것으로 정보당국자들은 전한다. 2012년 현재 일본내 73개 조선학교에 8000명 가량이 재학하고 있는데, 고교과정 재학생은 1800명 가량이며, 도쿄 조선중고급학교의 경우 470명의 재학생 가운데 53%가 한국 국적이다. 


레이디스 코드 멤버로 교통사고로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권리세는 후쿠시마 출신의 재일동포 4세였다. 그는 총련계의 조선학교에 다녔고, 이 이력이 한국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권리세가 조선학교에서 우리말을 열심히 익힌 것이 한국에서 활동하는데 자산이 된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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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kaya 2014.10.08 0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그래도 요새 재특회때문에 재일동포들이 가뜩이나 힘든걸 생각하면 일본정부들 특히 아베총리를 때려도 시원치도 않아여 그들의 무책임이 도쿄올림픽을 열때 부작용이 생길거라고 확신이 듭니다

2014. 9. 14. 19:33

1편에서 재일동포의 진로가 야키니쿠, 빠친코, 야쿠자 등 세군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좁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실제로는 연예계와 체육계에도 대거 진출해 있다. 다만 '커밍아웃'(재일동포임을 밝히는 것)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즈쓰 가즈유키 감독의 영화 <박치기2>를 보면 자이니치들이 연예계에 대거 포진해 있다는 대사가 나온다. 매년 12월31일 저녁 NHK가 방영하는 노래자랑 대결 '홍백가합전'도 자이니치가 없으면 성립이 안된다는 이야기는 업계의 정설처럼 돼 있다.


영화 <박치기>



특히 엔카가수 중에 재일동포들이 많다. 다만,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공개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일세를 풍미하던 유명한 엔카가수인 미야코 하루미(都はるみ)가 유일하게 자이니치임을 고백한 바 있다. 필자가 재일동포들을 상대로 확인한 결과 엔카가수인 이쓰키 히로시(五木ひろし)는 재일동포임이 확실시된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기무라 타쿠야(木村拓哉)가 속한 일본의 국민그룹  'SMAP' 멤버 중 상당수가 재일동포라는 설도 있지만 확인은 못했다.



오사카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프로야구팀 한신타이거즈 역시 재일동포가 아니면 유지가 되지 않을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최근 은퇴한 한신의 베테랑 선수 가네모토 도모아키(金本知憲)는 재일동포 3세로 2001년 일본으로 귀화했다. 연예계와 체육계에 재일동포들이 많았던 것은 일반 기업에 취직하기 어려웠던 이유가 크다. 


연예인이나 체육인들이 재일동포가 많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동포사회가 의외로 좁아 금방 소문이 번지기 때문이다. 연예인이나 프로야구 선수들이 나오면 "아, 그 사람은 어디서 무슨 가게를 하는 누구네 집의 아들(딸)"이라는 식의 풍문이 재일동포 사회에서 도는데 대체로 사실에 부합한다고 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생모인 고영희도 재일동포로 그는 재일동포의 북송(귀국사업이라고 그들은 부른다)사업 당시 북한에 가족이 이주했다. 일본의 유명 가수겸 방송인인 와다 아키코(和田アキコ)의 어릴적 친구로도 유명하다. 재일동포들사이에서는 손마사요시(孫正義) 소프트뱅크 사장외에도 IT대기업 사장, 의류대기업 회장도 자이니치라는 풍문이 돈다. 


일본사회에서 활약중인 '숨은 재일동포'들이 많은 이유는 달리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의 통계를 보면 1945년 115만명에서 이듬해인 1946년 64만명으로 줄었다가 줄곧 50~60만명대를 유지해왔다. 2013년말 현재는 51만9737명이다.1944년 193만명에 달했던 재일동포들은 해방을 맞아 상당수가 한국으로 돌아갔고, 나머지 70만명 가까이는 일본땅에 정착해온 것이다. 물론 최근 통계에는 총련계열의 동포수가 제외돼 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어림잡아 70만명이 해방이후 70년가까이의 세월간 아이를 낳고 자손을 불려오면서 상당수가 귀화해 일본인으로 섞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일본 사회에서 재일동포라는 집단은 200만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일본인구의 2%가량을 차지하는 셈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각 분야에 자연스럽게 많은 재일동포들이 진출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들이 재일동포임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이니치로 알려지는 순간 받을 불이익이 두려운 것이다. 재일동포들이 특권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우익세력들의 시선도 부담이다.일본에서 최근 증오발언(헤이트 스피치)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자이톡카이(在特會)'는 '재일동포 특권을 용인하지 않는 시민모임'의 약자다. 이들은 재일동포들이 대부분의 상권을 쥐고 있는 파친코에 대해 정부가 규제를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 파친코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정치권을 지원한다는 의혹도 여전하다. 


생활상에서도 '커밍아웃'을 하기가 쉽지 않다. 불편할 뿐 더러 엄청난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 일본의 재일동포 작가인 가네시로 가즈키(金城一紀)의 소설 <GO>를 보면 자이니치 고교생인 주인공이 사귀던 일본 여학생에게 재일동포임을 고백했다가 차이는 장면이 나온다.(물론 극단적인 예다) 이 여고생은 말한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는데 자이니치는 피가 더럽대." 


영화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극도로 예민한 사춘기에 이런 아픔을 겪는 사례들을 주변에서 흔히 봐온 재일동포들은 '커밍아웃'을 꺼린다. 학교에서는 본명 대신 일본이름을 쓸 수 있으니 일본이름으로 학교를 다니며 단짝친구에게도 좀처럼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알고 지내던 재일동포는 고교 때까지 통명(일본명)으로 학교를 다니다 입학한 대학에서 통명을 쓰면 안된다는 규정 때문에 크게 쇼크를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어느 교수는 몇해전 아들을 잃었다. 자이니치로서 '정체성'을 고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가 정년을 몇년 앞두고 학교를 옮긴 데는 이 충격도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저런 사연을 접하다 보면 일본사회에서 한국명을 쓰고 당당하게 활동하는 재일동포들을 보면 존경의 마음이 저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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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kaya 2014.10.08 0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에도 아직 재일동포들 따돌리는분들이 계시는데 이걸보니 참 창피해지네여 괜스래 존경도들고 숨은곳에서 정말 노력해주시고 감사합니다 덕분에 알고갑니다

2014. 9. 9. 17:53

일본에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자이니치(在日)로 불리는 재일동포들과 가까이 지낼 기회가 많았다. 


우선 스포츠신문에 자이니치 선배가 있었다. 일본의 종합지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채용된 재일동포 선배인데, 현재는 스포츠지로 옮겼다. 이 선배와 거의 일주일에 한번씩 술을 먹으러 다니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 신문사에서는 아직도 한국을 차별하는 은어들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바카총 카메라'라는 말이 있다. 수동카메라(DSLR)가 아닌 '똑딱이 카메라'를 바카총 카메라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바카'(馬鹿)나 '총(チョン)’라도 작동할 수 있는 카메라라는 뜻이다. 여기서 '총'은 한국인(조선인)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다. 즉, 바보나 조센징이라도 다룰 수 있는 카메라라는 뜻이다. 


2012년에 열린 대한민국민단 집회장면


이 '총'이라는 차별적 은어는 의외로 이곳 저곳에서 쓰이고 있었다. 대학수강 과목중에서 쉬운 과목을 가리키는 말에도 '총'이라는 말이 쓰인다고 들었다. (정확한 어휘는 기억나지 않는다)


자이니치로 신문사에 입사해 보이지 않는 차별을 겪어오던 이 선배는 한차례 크게 갈등을 빚기도 했다.그의 고향은 경북 경주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지금 연락이 제대로 닿는 친척은 없다. 그래도 고향에 가보고 싶어서 예전의 기록만을 들고 경주 일대를 뒤질 정도로 '모국'에 대한 애착은 깊었다. 


자이니치의 일본 사회 진출범위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한때 자이니치의 사회 진출 경로로 야키니쿠(불고기집)나 빠친코, 혹은 야쿠자 행동대원 정도였다는 말이 있었지만 옛말이 됐다. 요즘은 변호사, 의사, 기자, 영화제작 등 전문직으로도 폭을 넓히고 있다. 최근에는 송 아무개라는 의사가 여성의 성(性) 문제와 관련한 솔직한 이야기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의사는 한국명을 쓰고 방송에 나와서도 자이니치임을 밝힌다. 


하지만 자이니치들의 한국에 대한 생각은 대단히 복잡하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들에게 한국은 '조국'이긴 하되 너무 낯설고 이질적인 공간으로 느끼고 있는 듯 싶었다. 특히 그들은 한일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매우 우려했다. 한일관계가 나빠질수록 자이니치는 기를 펴지 못하고 산다. 


한 자이니치의 이야기다. 


"올해 도쿄에서 열리는 향우회에 몇년만에 갔더니 꽤 많은 이들이 귀화했다. 향우회 사무국 직원도 나에게 '귀화하는 게 어떠냐'며 권하더라. 예전엔 귀화하면 향우회에 나오지 않는 이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대개 3대나 4대쯤 돼 '모국'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자라며 차별을 당한 이들도 적지 않다. 지금도 사업을 하는 이들은 편의상 일본이름을 쓴다. 그러다 뭔가 법률적으로 서류를 작성해야 할 시기가 되면 자이니치라는게 밝혀지게 된다. 그로 인해 겪는 어색하고 애매한 분위기. 이런 모든 것들이 그들이 살아가는데 핸디캡이 된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왜 국적을 지키고 있는 걸까.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대체로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의지하고 싶은 정신적 고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낯선 사람과의 자리나 잠깐 섞여야할 공간에서는 '자이니치'임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설명하기 번거롭기 때문에 이름도 가급적 '일본명'을 쓰고 만다. 그런 탓에 재일 3, 4세가 되도록 한국이름을 쓰고 있는 이들을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런 조국은 그러나 자이니치들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화제작자 이봉우씨다. 원래 총련 출신으로 조선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기자를 지내기도 했던 이봉우는 <서편제> <쉬리> <공동경비구역> 등을 수입해 일본에 소개한 이다. 일본에 한류붐이 부는데 상당한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영화제작에도 나서 <박치기> <훌라걸즈> 등을 만들어 성공했다. 그는 서울 명동에 건물을 임대해 일본영화 전문관으로 운영하다 사기를 당해 투자금 40억원을 날렸다.  


어떤 이는 한국에 있는 아버지의 고향에 투자를 해보려다 터무니없는 바가지에 그만뒀다고 한다. 심지어 일본에 주재할 무렵에 알게된 금융회사 직원조차 자신을 속이려는 듯한 태도를 취해 염증을 느끼고 한국에 대한 투자를 깨끗이 포기했다. 그뒤로 한국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고 한다. 


재일동포들이 차별을 받아가며 한국의 발전에 기여해온 공로는 생각외로 크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이런 공로를 제대로 몰라준다. 아니면 재일동포들을 '반쪽발이'라고 업신여기거나 '봉'정도로 간주한다. 

권리세라는 아이돌의 이름은 교통사고가 나서야 처음 알게 됐다. 하지만 일본에서 건너와 여러 어려움을 무릅쓰고 막 인기를 얻으려던 참에 이런 불행을 겪게 됐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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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배이섭 2014.09.10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레슬링 선수 김일선생님 아릿하게 생각납니다,우리들 어린 시절 용기를 주신분 일본에 계신다는 언어 매체 소식으로 ,,,,지금은 살아계실까요!,,,,?

  2. Favicon of http://m.blog.daum.net/illuminati27/157154 BlogIcon 배이섭 2014.09.10 15: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쓰다만 나의 령혼 역사를 외곡 말라!
    '신'세워 장사말라!,,,,

  3. 남궁정 2014.09.12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이니치는 말그대로 재일조선인, 아직까지도 남과 북 중 국적을 선택하지 않고
    일본 내에서 국적이 '조선'으로 분류되어 있는 사람을 말하는게 아닌가요?
    민단이나 총련계 동포들에게 자이니치라고 말하는거 같진 않은데...

2014. 5. 28. 15:46

지난해 일본아카데미상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요코하마영화제, 마이니치영화콩쿨 등에서 각종상을 휩쓴 영화 <기리시마, 부카츠 그만둔대(桐島, 部活やめるってよ)>는 일본 지방 고교의 부카츠(部活·클럽활동)를 소재로 한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다. 배구부 주장에 학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기리시마가 배구부를 그만두기로 했다는 소식을 계기로 학생들 사이의 미묘한 인간관계가 표면화되는 과정을 묘사했다.


영화에는 학생들이 수업이 끝나면 어김없이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배구·배드민턴 연습을 하며 땀을 쏟거나 관현악부에서 연습에 열중하는 장면들이 비친다. 대회를 앞두고 기리시마가 빠지면서 위기에 처한 배구부원들은 한층 더 연습에 몰입한다. 영화부원들은 학교건물 옥상이나 건물 뒤 공터에서 열심히 8㎜ 카메라를 돌린다. 


동아리 대신 입시학원 다니는 '귀가조'는 소수


학급내에서는 다소 겉도는 한 여학생이 수업이 끝나면 수십명의 관현악부를 지휘하는 권위있는 대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고 입시학원으로 직행하는 ‘귀가조’도 없지 않지만 소수에 속한다.


영화 <기리시마 부카츠 그만둔대>

 

<기리시마>를 보고 나서 주변의 일본인들에게 ‘학교다닐 때 어떤 부카츠 활동을 했는지’를 물어보는 게 버릇이 돼 버렸다. 지난해 도쿄의 중위권 사립대학에 진학한 한 재일동포의 딸은 고교시절 리듬체조 동호회를 했다고 한다. 대회에 입상할 정도의 실력도 아니고, 학교에서 정식 클럽으로 인정받지도 못했지만 입시준비가 한창인 고3 때에도 거르지 않고 연습을 계속했다. 


진학생도 예외없는 방과후 활동 


사립명문 와세다(早稻田) 대학을 졸업한 일간지 기자는 고교시절 록밴드를 결성해 기타와 보컬을 담당했다. 시민회관에서 록밴드 공연까지 했다는 그는 쉰이 넘은 나이에도 당시의 추억을 자랑스럽게 회고한다. 

도쿄 오타(大田)구에 있는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JR역인 카마타(蒲田)역 구내에는 주말이면 체육복 유니폼 차림의 중고생들이 곳곳에 모여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주말도 반납한 채 부카츠 연습을 하기 위해 모였지만 즐겁게 떠드는 얼굴들을 보면 절로 흐뭇해진다. 집 부근 타마가와(多摩川) 둔치에는 수십개의 야구·축구 그라운드가 설치돼 있어 주말이면 이곳에서 유니폼을 입고 먼지를 뒤집어 쓰며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응원차 나온 가족들로 늘 축제 분위기다. 

일본에서는 명문대학 진학을 꿈꾸는 학생들도 부카츠를 거르지 않는다. 30년 연속 도쿄대 합격자 1위인 도쿄의 가이세이(開成)중고교에는 50개의 공식클럽과 15개의 동호회가 활동하고 있다. 이 학교 홈페이지에 실린 운동부 클럽에는 축구, 농구, 배구, 검도, 유도 등 기본 스포츠는 물론 궁도, 게이트볼, 연식테니스, 핸드볼, 펜싱, 보트(조정), 럭비, 육상 등 다양한 종목이 망라돼 있다. 학술부에는 관현악, 사진, 서예, 바둑, 연극은 물론 마술, 퀴즈연구, 철도연구부 등 ‘오타쿠’적인 클럽도 즐비하다.

 

도쿄대 교수를 지낸 뒤 2011년 부임한 야나기자와 유키오(柳澤幸雄) 교장은 한 인터뷰에서 “본교는 지력(知力) 만이 아니라 학생들이 사회성과 윤리성을 높이도록 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를 배양하기 위해 부카츠 활동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가이세이 중·고교에 입학한 중학교 1년생 301명중 96%인 288명이 클럽·동호회에 참가한다. 운동회와 문화제, 수학여행 등을 준비하는 각종 위원회 활동까지 포함하면 연인원 620명, 즉 1인당 2개 이상의 과외활동에 참가하는 셈이다.


선배와의 인적교류도 부카츠의 한 부분


이 학교에 입학한 중학교 1년생들은 입학후 2주뒤에 열리는 쓰쿠바대 부속고교와의 보트경기 대항전에 참가하기 위해 고3 선배들로부터 응원가를 배운다. 5월의 둘째 일요일에 열리는 운동회에서 학생들은 기마전에 참가하는 데 이 지도도 고교선배들이 담당한다. 5월말 중간고사 마지막날이 되면 클럽 설명회가 열려 어떤 동아리에 들어갈지를 결정한다. 보트경기와 운동회 과정에서 선배들과의 접촉을 경험한 학생들중에서는 “저 선배가 지도하는 클럽에 들어가고 싶다”고 미리 결정해둔 이들도 적지 않다. 부카츠 참가율이 높은 데는 이처럼 선배와의 인적교류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이세이 학생들의 부카츠 활동은 대체로 고교 3학년 5월 운동회때까지 이어진다. 중고교 5년여간 갈고 닦은 기량을 고교 마지막해 운동회에서 ‘완전 연소’시킨 다음에야 수험생 모드로 돌입한다. 이처럼 강약조절을 함으로써 입시준비의 집중도도 높아진다고 학교측은 설명한다. 부카츠를 통해 의기투합한 친구들이 자체적으로 입시준비 동아리를 만들어 서로 도우면서 공부하는 환경도 조성된다.

 

학과수업과 부카츠를 병행하는 만큼 효율적인 시간관리 습성이 몸에 배는 것도 장점 중 하나다. 


“중학생때는 주로 선배들의 지도를 받는 입장이지만 고2~3년이 되면 지도자의 위치에 서게 돼 고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자연스럽게 리더십이 형성되는 것도 부카츠의 장점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 대화하는 배려심과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길러지게 되지요.”(야나기자와 교장)


학창시절의 덕목인 '문무양도'

동네사람 아들중 올해 와세다대에 입학한 후지사와 료(19)는 중학·고교시절 6년간 부카츠로 검도를 했다. 고교시절에는 매주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연습을 하고, 방학때는 지방에서 1주일간 합숙훈련도 한다. 한해에 지구단위의 학교대항전과 소케이센(早慶戰·와세다-게이오간의 고교대항전)을 포함해 최소 5차례 이상 시합이 열린다. 꽤나 빡빡한 일정이지만 료는 물론 부모도 부카츠를 절대 지지한다.


료의 어머니는 “특히 운동부는 상하관계가 엄격하기 때문에 아이가 가끔 갈등하기도 했지만 그런 과정을 겪으며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물론 스포츠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일부 소수는 추천입학으로 진학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취미활동이다. 학교측도 부카츠를 열심히 한 학생에 대해서는 내신성적을 좋게 매기는 배려정도는 한다.


일본 어느 학교의 밴드부


꼭 부카츠가 아니라도 일본 학생들은 체육활동을 열심히한다. 그걸 '군국주의의 잔재'로 볼 필요는 없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 도다 이쿠코의 말이다. 


"일본에서는 소학교(초등학교) 시절부터 정규 수업시간에 강도높은 운동을 의무적으로 시킨다. 한주 4시간이나 되는 체육수업 때는 철봉이나 매트운동, 단거리 마라톤, 배구나 농구 등을 시킨다. 철봉이나 뜀틀은 실기시험도 치르기 때문에 잘 못하는 학생들은 늦도록 학교에 남아서 연습을 해야 한다.

게다가 체육수업 외에도 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내가 다니던 소학교에서는 '숙제를 하지 않으면 운동장 다섯바퀴 돌기' 등의 체벌이 이뤄진다. 또 여름방학에도 라디오 체조를 해야 하고 학교에 가서는 수영 보충수업을 받지 않으면 안됐다. 더욱이 중고교 때는 체육대회 외에도 전교 마라톤대회나 계절마다 반대항 구기대회가 있어 바쁜 나날을 보냈다.

특히 한국과 다른 점은 방과후 클럽활동이 있다. 반수이상의 학생이 참가하고 있어 때로는 정규수업보다 의미가 클 때가 있다.
나는 중고교 6년간 농구부에 소속돼 있어 수업시간 전 1시간, 방과후 2시간씩 운동했고, 여름방학에는 거의 매일 농구연습을 했다. 물론 체육 전문학교를 다닌게 아니고 보통의 진학학교였는데도 말이다."  


부카츠를 소재로 한 영화 <워터보이즈>


내신성적을 잘 받기 위해 부카츠를 하는 식의 사고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대신 아무리 바빠도 세수나 양치질을 생략할 수 없는 필수적인 과정이며 학교 다니며 공부만 해서는 별 볼일 없는 인생이 된다는 인식이 정착돼 있다. 일본인들은 이를 문무양도(文武兩道)라는 사자성어로 설명한다. 학문과 무예를 치우침없이 닦아야 한다는 옛 성현의 지혜가 학교공부와 과외활동을 병진하는 개념으로 정착한 것이다.

사회 진출 후에도 취미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

부카츠는 고교시절을 풍요롭게 할 뿐 아니라 대학이나 사회에 진출한 이후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취미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 물론 체육부에서 구타사건 등의 부작용도 없진 않지만 부카츠로 인해 일본인들의 중고교 시절은 '아름다운 추억의 시공간'으로 남는다. 그런 이유로 일본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은 물론 대중가요에도 중고교 시절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꽤 많다.

2010년에 개봉된 <쇼도 걸즈(書道ガ-ルズ)>는 시코쿠(四國) 에히메(愛媛)현 소도시의 고교의 서예부원들이 마치오코시(町おこし·마을진흥)를 위해 서도 퍼포먼스 고시엔(甲子園)을 개최한다는 스토리다. 썩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일본 고교생들의 부카츠에 대한 열정을 엿보게 한다. 

한국에서 개봉된 <스윙걸즈>나 <워터보이즈>, <으라찻차 스모부>도 부카츠 활동을 소재로 했다. 90년대를 풍미했던 아이돌 가수 모리타카 치사토(森高千里)가 부른 <이 거리>는 고교를 졸업한 뒤 고향을 떠난 친구들과 나눴던 추억을 노래하는 데 학창시절의 추억과 지역커뮤니티에 대한 애정이 오버랩돼 있다.

가이세이 고교 교장이 강조한 것처럼 학생들은 부카츠를 통해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배우고, 동료·선후배와 우정과 협동심을 쌓는다. 또 스포츠나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내수산업의 유지에 도움이 될뿐 아니라 전통의 계승발전에도 역할을 한다. 학교에서 서예나 궁도, 바둑·장기, 하이쿠(俳句) 활동을 한 이들이 회사에 들어가거나 지역커뮤니티에서 취미활동을 지속하면서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다.

한국의 학창시절은 '만인대 만인의 투쟁' 

한국은 어떨까? 지난해 초 시내버스 광고에 등장했다가 논란을 불러일으킨 학원재벌 메가스터디의 광고문구는 기막힌 한국고교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으니 넌 우정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질 거야. 그럴 때마다 네가 계획한 공부는 하루하루 뒤로 밀리겠지. 근데 어쩌지? 수능 날짜는 뒤로 밀리지 않아. 벌써부터 흔들리지 마. 친구는 너의 공부를 대신해주지 않아.”

‘좋은 대학이 인생을 결정하는’ 교육현실 속에 한국의 중·고교시절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모라토리엄’의 시공간, 좋은 내신을 받기 위한 ‘만인대 만인의 투쟁의 장’으로 전락했다. 가장 빛나야할 청춘시대가 중세시대를 연상케하는 암흑시대가 되는 것이다. 

사실 일본의 부카츠가 세계적으로 보면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닐 것이다. 독일 등 유럽 선진국에서도 부카츠가 활성화돼 있다. 한국이 비정상적인 상황인 셈이다. 물론 일본에서는 게이오를 비롯한 명문유치원에 들어가기 경쟁이 치열하다. 유치원을 잘 가면 명문 게이오대학까지 대체로 수월하게 진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쟁은 극히 일부에서 벌어질 뿐이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현실이 바뀌어야

한국 학생들이 학업일변도에서 벗어나 부카츠를 즐기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반드시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기업생태계가 조성돼야 한다. 중소기업에서도 안정된 생활을 하도록 대기업-중소기업간 ‘갑을관계’가 개선되고, 사회안전망도 갖춰질 필요가 있다. 

입시제도를 아무리 뜯어고치고, 교육개혁에 힘을 들여도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운 한국 현실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 한국의 아이들이 우정과 꿈이 넘치는 학창시절을 보낼 날을 과연 기대할 수 있을까.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일본공간>에 쓴 글을 토대로 한 것입니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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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junmo0529.blogspot.ca BlogIcon 박준영 2014.05.29 1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2008년 2월에 고등학를 졸업한 아직 새파랗게 어린 학생입니다. 한국 중고등학생들의 현주소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다녔을 때만 해도(고작 5~6 년 전이죠) 중학교에서는 담당 선생님을 필두로 한 볼링 클럽 액티비티 활동을 3년 간 했고 또 고교시절에는 원하는 동아리, 저 같은 경우는 연극부에 들어가 많은 추억과 나름의 리더십, 인간관계를 배웠습니다. 물론 더러는 부모님 등쌀에 못이겨 동아리 활동을 그만 두고 친구들과 멀어진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이 또한 사회 속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부분이라고 보면 꽤나 재밌게 생각할 수 있을 거 같네요. 동아리 활동이 비활성화되고 점점 대학 진학에 걸림돌이라는 인식이 늘어가는 건 사실입니다. 허나 길을 가다 아무 어른이나 붙잡고 고등학교의 동아리 활동과 그 추억에 대해 묻는다면 대게 잠시 고민한 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근데 정말 기자님의 글처럼 현재 2015년 대한민국 중고교생들에게 이러한 기회와 여유가 전연 존재치 않는다면 이만한 비극이 또 없을 거 같네요. 일본에 대한 이야기 참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한국을 다룬 부분은 비중도 적고 인터뷰도 거의 없어 조금 아쉽지만 좋은 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이종현 2014.05.29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역시 2008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새파란 어린 사회인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에 수없이 많을 지역의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썩 성적이 좋지도 않은, 오히려 평균에도 못 미치는 학교였죠. 그런데 저는 고등학교시절에 방과후 활동이나 클럽, 동화리 활동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있었다고 하더라도 참여했으리라곤 장담 못하지만, 그런 시설이나 환경이 전무했던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는 제가 다녔던 학교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지역 대다수의 학교들의 분위기였구요. 9교시였나요? 저녁먹기전까지 빠듯하게 잡혀있는 정규 수업 후 야간자율학습이라는 강제 학습에 붙잡혀서 문학작품을 읽는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시간이었는데 부활동은 꿈도 못꾸죠. 문제는 이런 야자문화가 대한민국에 완전히 뿌리내렸고, 심지어는 추가로 학원까지 갑니다. 전부가 그렇다는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 부활동을 즐기며 학창시절을 보낸다는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되네요.

      이런 학생들이 대학교로 진학해서 많은 활동에 참여하는데, 경험도 없는 학생들이 대학교 간다고 갑자기 문화활동, 단체활동에 눈떠서 잘하지는 않겠죠. 그리고 사회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되구요.. 대한민국 교육시스템은 공장에서 좋은제품 찍어내는 모양새라고 생각되네요. 물론 전체가 아니라 대다수가

    • Favicon of https://soidong.khan.kr BlogIcon 서의동 2014.05.30 15: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시군요.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제가 구체적이지가 못해서 많이 쓰진 못했습니다.

    • Favicon of http://junmo0529.blogspot.ca BlogIcon 박준영 2014.05.31 14: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종현님의 말이 맞는 게 사실이네요. 근데 아무런 기회가 없었다니 굉장히 슬퍼지네요. 제가 다녔던 학교와 주변 여고, 공학 모두 동아리 활동이 꽤나 활발했거든요.

      서의동 기자님 답변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junmo0529.blogspot.ca BlogIcon 박준영 2014.05.31 1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에 대해 잘 모르지만 미친듯한 경쟁은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만 일본의 경우 기자님이 말씀하셨듯이 그들 고유의 문화가 현재 학생들의 인식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 다른 거 같네요. 한국과 전반적으로 비슷하지만 동아리 활동으로 특징지어지는 일본의 고교문화가 부럽긴 하네요.

  2. BlogIcon 허원 2014.07.02 08: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1년에 졸업한 사람입니다. 중학교는 거의 없었으나 고등학교때는 그래도 서클활동이 좀 있었던 학교를 다녔습니다.검도부와 합창부를 했었고 매년 열렸던 축제기간의 행사준비로 검도는 거의매일 방과후에 합창은 매일 점심시간에 연습했지요..2학년까지 했던 기억이..지금도 그 합창부 일부가 기수별 중창단을 만들어 계속 활동 중이라던데...전 두개의 활동은 했지만 기억은 없네요 요즘 휴배들은 어떨지...
    참고로 일본에 고모가 사셔서 재일교포 산촌덩생들이 있는데 그중 한명이 대학을 서울로 와서 가까이에서 봤는데...트럼펫을 가지고 다니더근요...중학교부터 오케스트라 일원이라고 하더근요...조금 부럽기도....

  3. BlogIcon ㅉㅉ 2014.10.25 06: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딴 과목보다도 한국학생들은 일본학생들보다 영어에 투자하는 시간이 훨씬 많은것도 예체능 활동의 소멸에 한몫 한것같아요. 그냥 한국은 100년이 지나도 일본을 따라잡진 못할것 같네여... 인구수부터 시작해서.. 통일하면 격차눈 더 벌려질거고.

2014. 4. 3. 16:43

지난 2일(현지시간) 칠레에서 발생한 규모 8.2의 강진에 따른 쓰나미가 3일 일본의 태평양 연안지역에 도달, 지역별로 최고 60㎝의 쓰나미가 관측됐다. 쓰나미 도달지역이 3·11 동일본대지진 당시 피해지역과 겹치자 일본은 당시 악몽을 떠올리며 새벽부터 초긴장의 하루를 보냈다. 


3일 NHK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22분쯤 도호쿠(東北)지방의 이와테(岩手)현 구지(久慈)항에 60㎝의 쓰나미가 관측된 것을 비롯해 이날 오전부터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수도권인 지바(千葉)현에 이르는 태평양 연안지역에 쓰나미가 20~30㎝의 쓰나미가 관측됐다. 기상청은 이날 오전 3시 쓰나미 주의보를 발령하고, 이와테와 미야기(宮城) 등 3개현 주민 3만여명에게 피난 권고령을 내렸다. 기상청은 앞서 2일 저녁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쓰나미 주의보를 발령하게 되면 3일 새벽 3시쯤이 될 것”이라는 발령예고를 했다. 

NHK를 비롯한 각 방송사들은 이른 아침부터 쓰나미 피해예상 지역의 표정을 집중 중계했으며, 정규방송 중에도 하루종일 지역별 쓰나미 도달상황을 자막속보와 지도로 표시했다. 총리실은 전날 위기관리센터에 정보 연락실을 설치하는 한편 정부 경계회의를 열어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다. 미야기현 어업협동조합 등 쓰나미 예상지역 어민들은 어시장의 아침 거래와 톳·청각채 등의 수확을 중단했다.

쓰나미주의보는 예상 높이가 20㎝~1m의 경우 발령되지만 빠른 물살에 휩쓸릴 수 있고, 소형선박은 전복할 위험이 있다. 일본 내각부가 3·11 동일본대지진 당시의 쓰나미 피해 결과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쓰나미가 70㎝ 높이일 경우 침수시 사망률이 71.1%에 이르며, 1m일 경우 100% 사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일본이 초긴장 상태를 보이고 있는 것은 1960년 규모 9.5의 칠레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하루가 지난 뒤 1∼4m 높이의 쓰나미가 일본을 강타해 142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11년 3·11 동일본대지진의 쓰나미 피해가 아직도 복구되지 않은 도호쿠(東北) 주민들은 쓰나미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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