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109

[여적]자위권 행사(2020.1.15)

제3차 중동전쟁은 1967년 6월5일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됐다. 이스라엘은 이날 새벽부터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의 비행장을 공습해 이집트 공군전력의 80%를 괴멸시키며 하루 만에 제공권을 장악했다. 지상전에서도 이스라엘군은 파죽지세로 요르단에 있는 예루살렘,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점령했고, 골란고원에서 시리아군을 몰아냈다. 이스라엘로서는 두차례 중동전쟁 이후 아랍국가들의 보복 위협이 상존하는 가운데 “당신을 죽이러 오는 자가 있으니 일어나서 그를 먼저 죽이라”는 히브리 속담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중동분쟁의 씨앗을 뿌린 셈이 됐다. 이 선제공격론은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미국 안보전략의 중심에 서게 된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2002년 국가안보전략에서 테..

여적 2020.01.31

[여적]북한의 로펌(2019.12.12)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끈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은 “중국 공산당은 법을 통해서 통치해야 한다. 법과 제도는 지도자가 교체된다고 해서 바뀌면 안된다”고 했다. 중국은 수차례 헌법개정을 통해 어떤 조직이나 개인도 헌법과 법률을 초월하는 특권을 갖지 못한다는 법치주의 원칙을 확립했다. 시장경제를 뒷받침하는 민법과 상법도 정비됐다. 중국 공산당이 법치주의를 강화한 이유는 해외투자 유치 때문이기도 하다. 투자자의 재산권이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법률로 제한하는 것은 경제성장의 마중물인 외국인 투자유치에 필수적이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법치주의 강화는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이와 유사한 움직임 김정은 시대의 북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 가족농 중심의 포전담당..

여적 2020.01.31

[여적] '혐한 증폭기' 일본 와이드쇼(2019.12.7)

일본에서 오전 또는 낮 시간대 TV를 켜면 어느 채널이건 예외 없이 ‘정보프로그램’을 방영한다. 사회자 외에 5명 안팎의 패널이 등장해 뉴스와 예능, 생활정보 등에 대해 제작진이 마련한 리포트를 보고 의견을 주고받는다. 테마가 다양하고 방송시간도 2시간이 넘기 때문에 ‘와이드쇼’로도 불린다. 1964년 일본교육방송이 미국 NBC의 뉴스·정보프로그램 를 본떠 만든 가 성공을 거두자 다른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했다. 와이드쇼는 시청률 확보를 위해 뉴스프로그램과 달리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이야기식으로 연출하며, 전문가 외에 입담 좋은 예능인들도 패널로 출연시킨다. 시청률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취재 가이드라인을 일탈하는 일도 심심치 않다. TBS 와이드쇼 제작진이 1989년 10월 옴진리교 비판에 앞장서온 ..

여적 2020.01.31

[여적]교도소 책 반입(2019.11.12)

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감옥은 대학이었다. 김 대통령은 1980년부터 2년반 동안 수감생활을 했던 청주교도소의 독방을 탐구의 공간으로 활용했다. 러셀의 , 플라톤의 , 아우구스티누스의 , 토인비의 를 비롯해 철학·신학·정치·경제·역사 등 다방면의 책을 읽었다. 푸시킨·투르게네프·도스토옙스키·톨스토이 등 러시아 문호들의 소설을 탐독했고, 등 동양 고전을 섭렵했다. 이 기간 중 이희호 여사가 구해 들여보낸 책만 600여권이다. 이 여사는 프랑스어 공부를 하고 싶다는 김 대통령을 위해 을 넣어주기도 했다. 영어실력을 결정적으로 다진 시기도 1976년부터 1980년에 걸친 수감·연금생활이었다. “내가 감옥에 있지 않았더라면 어찌 나이 오십 줄에 들어서 감히 영어를 공부했겠는가.”(김대중 자서전) 국내 1세대 환경..

여적 2020.01.31

[여적] 베를린의 '마음 장벽' (2019.11.9)

엘베 강변에 형성된 독일 작센주의 주도(州都) 드레스덴은 옛 동독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힌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츠빙거 궁전을 비롯해 오페라극장인 젬퍼오퍼, 호프 교회와 레지덴츠 궁전 등 다양한 건축물이 황홀한 자태를 뽐낸다. 드레스덴은 이런 명성에 걸맞지 않게 극우운동 조직 ‘페기다(서방의 이슬람화에 저항하는 애국적 유럽인들)’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페기다의 시위가 젬퍼오퍼 앞 광장에서 열리는 것도 아이러니다. 극우세력들의 발호가 심상치 않자 급기야 드레스덴 의회가 지난달 말 극우주의를 배격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작센주와 튀링겐주를 비롯한 동독 지역에서는 극우성향의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부상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년이 지났지만 독일의 동서 간..

여적 2020.01.31

[여적]오키나와 슈리성(2019.10.31)

“정전은 그야말로 바다의 왕국답게 용궁처럼 보였다. 일층은 정면 좌우로 길게 벌린 것 같았는데 정중앙에 두 겹의 지붕이 높직하게 올려다보였다. 맨 꼭대기의 용마루에는 황금의 용 머리가 푸른색 뿔을 세우고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붉은 기와를 얹은 지붕에는 흰 회칠과 붉은 전돌로 나무 잎사귀를 새겨넣었고, 이층 지붕의 활처럼 둥그런 가리개에는 황금색과 푸른 비늘에 뿔을 쳐들고 이빨을 드러낸 용두가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황석영 중 슈리성에 대한 묘사)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에 있는 슈리성(首里城)은 중국과 일본의 건축양식이 어우러진 독특한 건축물이다. 옛 류큐(琉球)왕국의 정치·군사·문화의 중심지로 14세기 축성됐다. 왕의 거처인 정전(正殿)은 옻나무로 붉은 칠이 돼 있고, 기와 형태에도 중국의 영향이 배..

여적 2019.11.03

[여적]일본의 정교분리(2019.10.21)

일본 고유종교인 ‘신도(神道)’는 일본인들의 생활 속에 깊게 뿌리박고 있다. 동네마다 한 곳 이상 신사(神社)가 있어 주민들이 가볍게 들러 복을 빌 수 있다. 매년 동네별로 열리는 축제 마쓰리(祭り)도 신사가 중심이다. 마쓰리의 목적이 ‘신을 찬양하며, 신과의 교류를 통해 오곡풍성, 상업번창, 이웃이나 가족의 번영을 기원하는’(일본 정부 관광국) 것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신사에 보관된 미코시(神輿·가마)를 메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이 마쓰리의 핵심이기도 하다. 마쓰리는 대체로 동네 상인들이 주축이 되고 주민들도 준비 단계부터 적극 참여한다. 일본의 마을공동체가 여전히 결속력을 유지하는 데 신도가 톡톡히 한몫하는 셈이다. 군국주의 시대 신도는 국가종교였다. 신사 숭배가 국민의 의무였고, 신궁요배(神宮..

여적 2019.11.03

[여적]‘하기비스 휴전’(2019.10.15)

제19호 태풍 ‘하기비스’가 일본을 강타하면서 사망·실종자만 5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연 강수량의 3분의 1이 이틀 만에 쏟아지는 등 기록적인 폭우로 21개 하천의 제방이 무너지고 142개 하천이 범람하면서 막대한 침수피해도 동반했다. 태풍 피해소식을 알리는 일본 방송화면에는 불어난 강물로 지반이 깎여나가 단독주택이 통째로 무너지는가 하면 골프연습장의 철주가 인근 가옥을 두 동강이 낸 처참한 광경이 비쳤다. 일본은 남북으로 길게 펼쳐진 탓에 국토 면적에 비해 자연재해가 많은 편이다.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이웃나라가 도와주면서 관계개선의 전기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일 간에는 거꾸로 양국감정을 악화시키는 쪽으로 흘러갔다. 2011년 3월11일 동일본대지진으로 2만명이 쓰나미에 휩쓸리는 대재..

여적 2019.11.03

[여적]‘동북아의 화약고’ 대화퇴(2019.10.8)

퇴(堆·bank)는 대륙붕에서 불쑥 솟아 있는 해저지형이다. 육지의 고원처럼 윗부분이 평평하고 널찍하게 펼쳐져 있다. 동해 중앙부에 펼쳐진 대화퇴(大和堆)는 강원도와 경상북도를 합친 크기(3만600㎢)에 가장 얕은 곳이 236m에 불과하다. 동해의 최저수심이 3700m, 평균수심이 1700m이고 보면 꽤 높은 해저고원이다. 대화퇴는 영양염류가 풍부한 데다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조경수역이어서 오징어, 꽁치 등이 두루 잡히는 황금어장으로 꼽힌다. 독도에서 북동쪽으로 약 380㎞, 일본 이시카와(石川)현에서 서쪽으로 약 300~400㎞ 떨어진 대화퇴는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속하지만 1998년 한·일 신어업협정에서 중간수역의 동쪽 한계선이 동경 135도30분으로 그어지면서 일부가 한·일 공동수역으로..

여적 2019.11.03

[여적]고이즈미 부자의 ‘탈원전’(2019.9.16)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정계은퇴 이후 행적은 일본의 정치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친정인 자민당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탈원전’ 소신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2014년 2월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는 탈원전을 내걸고 입후보한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를 지원했다. 5년5개월간 장수 총리를 지내며 은퇴한 그가 승산이 낮은 지방선거에 직접 출마도 아닌, 후보 지원에 나서 ‘정치적 제자’인 아베 신조 총리가 내세운 후보와 대결한 것은 ‘탈원전’ 소신 외에 달리 설명하기 힘들다. 고이즈미는 2013년 핀란드의 핵폐기물 최종처분장을 방문, 지하 400m의 암반에 구멍을 뚫어 만든 시설에 핵폐기물을 10만년간 보관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각성한 고이즈미는 “자민당만 방침을 바꾸면 일본..

여적 2019.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