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47

[경향의 눈]북핵문제의 '팩트체크'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가 복원됐지만 한반도의 평화는 북·미 협상이 최종 보증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들어 남북대화를 지지하고 북·미 대화에도 전향적인 듯 하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미국은 지난 25년간 북핵협상 실패의 책임을 북한으로 돌린다. 북한이 최근 몇년간 핵능력 고도화에 집착하면서 국제사회도 이런 인식이 굳어졌다. 북핵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물론 북한에 있다. 하지만 지난 25년을 돌이켜보면 과연 북한에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게 하는 장면들이 적지 않다. 적어도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있던 2006년 이전 만 놓고 본다면 미국의 책임이 크다. 이 시기에 ‘제네바 합의’와 ‘9·19합의’ 같은 북핵해법의 ‘완결판’이 등장했지만 그 때마다 신뢰를 깨면서 파국을 유발한 건..

칼럼 2018.02.21

[경향의 눈]'쿨'해진 북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과 예술단, 응원단의 방한 행적은 북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다. 트집잡기, 신경전, 허세가 사라지고 ‘쿨(cool)’해졌다. 북한 응원단의 응원도구를 한국언론이 ‘김일성 가면’이라고 보도해도, 만경봉호가 기항한 묵호항과 서울시내에서 반북 시위대가 인공기와 김정은 사진을 불태워도 북한은 그냥 넘어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 현수막이 비에 젖은 것을 북한 응원단이 발견하고 울부짖던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와는 천양지차다. 삼지연 관현악단은 북한 노래에서 시빗거리가 될 만한 가사는 모두 뺐고, 소녀시대 멤버와 합동공연을 해 달라는 청와대의 갑작스러운 요청도 수용했다. 고전적인 헤어스타일에 수수한 옷차림으로 한국을 방문한 김여정은 예의와 성의로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았..

칼럼 2018.02.19

[경향의 눈] 일은 망루에서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외교를 평가하려면 먼저 사진 한 장을 들여다봐야 한다. 등장인물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배경은 중국 베이징의 톈안먼(天安門) 망루다. 2015년 9월3일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에서 세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인민해방군의 열병식을 지켜봤다. 북한 김일성 주석이 1954년 마오쩌둥 주석과 함께 섰던 그 자리다. 그날따라 햇살이 눈부셨는지 박근혜는 행사 도중 선글라스를 꼈고 푸틴은 손바닥으로 차양을 쳤다. 전승절 행사는 중국의 ‘군사굴기’를 과시하는 자리였다. 중국은 동·남중국해의 긴장을 키워 주변국의 반발을 사고 있던 참이었다. 미국·일본을 비롯한 서방 정상들은 ..

칼럼 2017.12.22

[아침을 열며]벳푸 온천에서 체감한 일본의 상인정신

일본 오이타현 벳부(別府)에 있는 ‘효탄온천’은 미슐랭가이드가 발행하는 관광가이드 일본판에 2007년부터 5년 연속으로 최고등급인 ‘별3개’를 받았다. 온천이 널린 규슈(九州)지역에서 세계 최고 권위의 여행정보안내서의 ‘별3개’ 인증을 받은 곳은 공공 미술관과 이 온천 뿐이다. 등재되는 것 자체가 영광이고 홍보거리이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별3개 표시는 눈에 띄지 않는다. “처음엔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고 으쓱했죠. 근데 생각해보니 이게 오히려 손님들의 신뢰를 잃는 독이 될 것 같아 더럭 겁이 났어요.”(고노 준이치 사장) 이런 정도로 ‘별3개’씩이나 받느냐고 욕먹을까봐 홍보 팜플렛에도 넣지 않았다. 일본내 온천수 용출량 1위를 자랑하는 간나와(鐵輪) 지구에 있는 이 온천 입구에는 ‘순간냉각장치’가 전시돼 있..

칼럼 2016.12.05

[칼럼]'총독부 자본주의' 100년

한국 경제가 벼랑에 선 이유를 짚어가다 보면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한국 경제와 사회 시스템의 원형질이 이 시기에 완성됐다. 대한제국을 무너뜨리고 등장한 일본은 조선에서 ‘식민지형 근대화’를 추진했다. 1910년대에는 농업 식민지와 일본 공업제품의 시장으로 조선을 유지하다가 1차 세계대전 이후 호황기를 맞아 팽창한 일본 경제가 중국 대륙 진출을 꾀하는 과정에서 조선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본격 공업화에 착수하게 된다.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금융을 장악했고, 산업정책을 수립해 기업들을 동원했다. 권력과의 유착 속에 경성방직 같은 기업들이 성장을 구가했다. 100년간 유지돼온 관치금융과 재벌체제가 이때 형성됐다. 이 시기 공업화와 자본축적이 진전됐고, 자본주의 유지·발전에 필요한 제도와 인프라..

칼럼 2016.07.17

[칼럼]남북협력이 한국경제의 돌파구다

박근혜 대통령은 제재와 압박을 가하면 북한이 핵개발을 취소하고, 경제가 붕괴할 것으로 정말로 믿고 있는걸까. 정부의 대북전략은 북한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하에 수립된 걸까. 이를 의심할만한 관측 두가지를 소개한다. 우선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2014년 탈북한 146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다. ‘하루에 세끼를 먹었다’는 응답률이 86.9%, 그것도 쌀로만 세끼를 먹었다는 응답자가 61.4%였다. 육류도 ‘일주일에 한두번 먹었다’는 응답이 30.8%, ‘거의 매일’ 먹었다는 응답이 22.6%였다. 북한을 등진 탈북자들의 절반이 일주일에 한두번 이상 고기를 먹었다는 증언은 북한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통념을 깬다. 연구원이 매년 실시해온 탈북자 조사를 보면 북한의 식량난은 해소단계에 접어든 것으..

칼럼 2016.06.06

[니시니혼신문 칼럼]北東アジアの「島国」韓国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가라는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이웃나라들과 공존·협력하는 것이 긴요하다. 이를 가장 잘 수행한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2000년 북한과 정상회담을 열었고, 1998년에는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이뤄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북한 방문을 도와준 것도 김대중 대통령이었다.노무현 대통령 때 일본과의 관계가 다소 나빠졌지만 북한과의 관계는 그런대로 안정됐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두 보수 정권을 거치면서 한국은 동북아시아의 ‘외딴 섬’이 돼버렸다. 한층 심각해진 ‘반일’과 ‘반북’ 이데올로기로 지리적으로 인접한 이웃나라들과의 유대감이 끊겼기 때문이다. ‘반북’은 한국에서 여전히 위력적인 정치수단이다. 박근혜 정부는 최근 북한의 핵..

칼럼 2016.03.07

[아침을 열며]아베와 박근혜의 '경제 3년 성적표'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아베노믹스’가 한계에 봉착한 듯 보인다. 금융완화·재정확대·구조개혁이라는 ‘3개의 화살’을 3년 내내 쏘아댔지만 세계 경제 불안의 여파로 닛케이지수가 15000선이 붕괴되고, 엔화는 치솟고 있다. 그런데 이달초 며칠간 체류하면서 접한 현지 분위기는 이런 소식들과 ‘온도차’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한국에는 없는 활기마저 느껴질 정도다. 우선 TV에서 전직(轉職)광고가 두드러지게 늘어났다. 인터넷을 통해 적성평가를 작성해 등록해두면 적합한 기업을 매칭시켜주는 서비스가 발달하면서 회사를 옮기는데 따른 부담이 한결 줄었다. “언제 몇시에 어느 기업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스마트폰 알림에 맞춰 면접을 보러가면 된다. “요즘 젊은 사원들이 툭하면 직장을 옮겨서 골치”(일본 대형I..

칼럼 2016.02.15

한국경제에 필요한 두 가지 처방

올해 한국경제에서 가장 아쉬운 장면을 꼽으라면 지난 3월13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벌어진 정부와 경제단체 간의 담판이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 5단체장과 만나 최저임금 인상에 협조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재계는 “최저임금 인상이 산업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외면했다. 만약 협상이 성공했더라면 한국 경제는 ‘지도에 없는 길’로 한 걸음 내디뎠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박근혜 정부 임기 내에 최저임금을 어느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연차계획 정도만 합의했더라도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40%대를 넘나드는 탄탄한 지지율에 카리스마까지 갖춘 박근혜 정부의 실세인 최 부총리가 재계의 반발에 힘없이 물러서는 장면을 지켜보며 좌절감이 느껴졌다. 그 한 달 뒤 미국의 월마트는 6년간 7달러대로 동결했..

칼럼 2015.12.20

[西日本新聞 칼럼]閉塞感深まる「ヘル朝鮮」

한국에서는 최근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헬(hell)은 지옥이고, ‘조선’은 한국의 예전 명칭이다. 이 말은 2010년부터 인터넷 상에서 쓰이기 시작했지만 올들어 신문에서도 특집기사로 다루고, 칼럼 제목에 등장할 정도로 ‘시민권’을 얻게 됐다. 헬조선이란 단어에는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사람들의 좌절이 응축돼 있다. 날로 심각해지는 청년실업과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한 정부의 대응실패, 부가 재벌과 부유층으로만 집중되는 현실, 사회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갑질’(신분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일) 등이 한국을 지옥상태로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헬조선과 동반해 쓰이는 말 중에서는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등의 ‘수저계급’도 있다. 부유층을 ..

칼럼 2015.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