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지금 내몸을 긍정하자'...일본서 '뚱뚱패션' 각광

서의동 2013. 4. 4. 18:01

일본에서 뚱뚱 패션이 각광을 받고 있다. 비만여성들을 위한 패션시장이 성장세를 보이면서 패션 전문 잡지까지 등장했다. 뚱뚱 패션이 주목받는 것은 연예계에 거구여성들이 활약하고 있고,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현재에 충실하자는 생각이 확산되면서 비만 여성들이 스스로를 긍정하는 움직임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와타나베 나오미가 표지모델로 나온 '라 파파'. 라 파파는 이태리어로 나비라는 뜻


지난달 21일 창간된 ‘라 파파(la farfa)’는 비만 여성들을 독자층으로 한 최초의 패션잡지로, 체중 95㎏의 개그우먼 와타나베 나오미(渡邊直美·25)를 표지모델로 기용했다. ‘라 파파’ 창간에 맞춰 출판사인 ‘분카샤’가 도쿄 시부야에서 지난달 18일 개최한 패션쇼에는 14명의 거구 여성 모델들이 등장했고 방송사 등의 취재진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출연한 모델들은 출판사가 인터넷 응모를 통해 선발된 18~40세의 일반 여성들이다. 주최 측은 체중 공개를 응모조건으로 내세운 만큼 응모자가 적을 것으로 우려했지만 예상을 깨고 250명이 넘게 지원자가 몰렸다.

 

‘통통한 이들의 세련된 패션을 지원하는 매거진’을 표방한 ‘라 파파’는 비만 여성들을 위한 코디네이션, 화장 및 머리손질법 등을 망라했다. 잡지에 등장하는 모델의 신장과 체중, 신체사이즈를 모두 표기해 현실감을 높였다. 출판사 측은 편집방향에 대해 “뚱뚱한 몸매를 감추기보다는 예쁘게 드러내도록 하는 코디네이션에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한다. ‘라 파파’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이어서 소셜미디어 일본 ‘트위터’에서는 지난달 30일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뚱뚱패션 잡지의 등장에는 최근 일본 TV에서 비만 연예인들이 활약하고 있는 흐름과도 관련이 있다. ‘라 파파’ 표지모델인 와타나베 외에 최근 휴대폰 광고 등에도 출연 중인 개그우먼 트리오 ‘모리산추’(森三中), 바바조노 아즈사(馬場園梓·32) 등이 대표적이다. ‘모리산추’의 멤버인 오시마 미유키(大島美幸·33)은 키 166㎝에 84㎏의 거구지만 몸매를 웃음의 소재로 삼는 자학형 개그가 아닌 자연스러운 웃음을 선사한다. 후지TV는 최근 거구 연예인들이 주축이 된 심야토크쇼를 신설하기도 했다. 


일본 개그우먼 트리오 '모리산추'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미래보다는 현실에 충실하자는 의식도 비만 여성들의 ‘자기 긍정’에 영향을 미쳤다. ‘언젠가 다이어트에 성공한 뒤 멋진 옷을 입겠다는 생각보다는 지금의 몸매를 긍정하자’는 쪽으로 생각이 바뀐 것이다. 

 

뚱뚱패션 전문업체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대형 사이즈 여성의류를 취급해온 통신판매업체 닛센이 지난해 도쿄 시부야에 매장 ‘스마일랜드’를 개설하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매장 직원들은 고객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모두 거구체형이며, 땀이 많아 입어보기를 꺼려하는 거구 여성들을 위해 시착실의 온도를 낮게 설정하는 등 주의를 기울였다. 패션은 고사하고 맞는 옷조차 찾기 어려웠던 거구 여성들을 타겟으로 하는 전략이 성공하면서 매년 10%씩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확대되고 있는 뚱뚱패션 시장에 미디어가 가세한 것은 의미가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패션잡지를 비롯한 매체들이 여성의 날씬한 몸매만을 부각시키면서 사실상 비만체형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조장해왔기 때문이다. 앞서 독일에서도 유명 패션잡지 ‘브리기트’가 보통 체형의 모델을 쓰기로 하는 등 ‘날씬 몸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일본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뚱뚱 패션 시장의 성장이 마른 모델에 의해 조장돼온 체형에 대한 차별의식을 완화하는 데 큰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