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존재감 사라진 박근혜 외교

서의동 2013. 4. 18. 10:24

“당선됐을 땐 일본에서도 기대가 많았는데, 지금은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네요.” 

한국문제 전문가인 일본 신문사 간부가 들려준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이다. 주한특파원을 지낸 바 있고 평소 박 대통령에 호의가 깊었던 그의 말투엔 냉담함이 배어있다. “일본에 대한 메시지도 전혀 없어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방문으로 지난해 험악한 갈등을 겪었던 일본은 박 대통령의 당선을 환영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도 친분이 있는 데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 관계를 열었던 만큼 ‘양국관계에 대한 인식이 남다를 것’이고 ‘최소한 MB이상 아니겠느냐’는 기대감도 있었다. 오죽하면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의 당선 이틀 뒤 한국과의 합의도 없이 특사를 보내겠다고 발표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을까.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전 재무상과 아소 다로(麻生太郞) 전 총리,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가 줄줄이 한국을 방문해 박 대통령을 만났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역사를 올바르게 직시하라’는 말 뿐이었다. 3·1절 기념사에서도 새로운 메시지는 없었다. 


‘올바른 역사인식’은 물론 중요하지만 한·일관계의 기본전제일 뿐이다. 기본전제만 강조하는 것은 외교가 아니다. 독도·일본군 위안부 등 까다로운 현안이 양국간에 있음을 감안한다 해도 박근혜 정부의 태도는 신중함보다 ‘무신경’으로 비쳐졌다. 도쿄에서 열린 3·11 동일본대지진 2주년 추도식에 한국 대표가 불참한 사건은 결정적이었다. 신각수 주일대사가 외무성 사무차관에게 단순 사무착오로 불참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일본의 기대는 싸늘하게 식었다. 

 

2012년은 동북아의 한·중·일 3국의 정상이 한꺼번에 바뀌는 해였고, 3명 모두 세습 정치인이라는 공통점도 있었다. 박 대통령은 경제부흥을 달성했으나 독재로 치닫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대통령의 딸이자, 범상치 않은 역경을 딛고 정상에 오른 동북아 첫 여성지도자라는 점에서 ‘스타성’이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부친과 10년 전 직접 만난 적도 있는 만큼 북핵·미사일 국면에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당선일로부터 치면 넉달이 되도록 박근혜 정부는 국제사회에 아무런 인상도 심지 못했다. 북한문제에서 노출한 ‘갈팡질팡하는’ 태도가 이미지로 굳어질까 걱정될 정도다. 

 

그동안 아베 총리는 미국과 동남아 3개국·몽골을 돌았고, 일본 총리로는 이달 말 10년 만에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극동지역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스피드도 빨랐고, 대중국 견제를 위한 ‘가치관 외교’라는 메시지도 선명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도 지난달 러시아와 아프리카 3개국을 순방하며 일찍 시동을 걸었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인사혼란 때문에 출발이 늦었다고 항변하고 싶겠지만 국제사회에선 통하지 않는다. 

 

기대가 낙담과 실망으로 바뀌면서 국제사회에선 한국 정부를 무시하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이 최근 일본 기자들 앞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시점에 대한 한국 정보의 신빙성에 불만을 터뜨린 것은 그냥 웃고 지나갈 일이 아니다. 도쿄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사석에서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대북문제에서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역할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현 외교라인이 그럴 역량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공식 출범한 지 두 달이 채 안된 만큼 앞으로가 중요하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박근혜 정부에 대해 ‘북한 만큼이나 요령부득’이라는 첫인상을 갖게 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