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은퇴… 일본 충격

서의동 2013. 9. 2. 19:22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72·사진) 감독이 전격 은퇴를 선언하자 일본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일본의 민영TV는 그의 작품을 긴급 방영하기로 했으며, 언론들은 “은퇴를 번복했으면 좋겠다”는 국내외 팬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2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미야자키 감독의 은퇴작이 된 <바람이 분다>의 여주인공 목소리를 맡은 배우 다키모토 미오리(瀧本美織·21)는 “갑작스러운 은퇴 소식에 놀랐다”며 “매우 건강하기 때문에 작품을 계속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안타깝다”고 밝혔다. <바람이 분다>가 경쟁부문에 출품된 제70회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한 이탈리아 팬은 “건강상의 이유라면 모르지만 다른 이유라면 생각이 바뀌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민영방송 니혼TV는 미야자키 감독이 은퇴 기자회견을 하기로 한 오는 6일 그의 작품인 <붉은 돼지>를 긴급 방영키로 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바람이 분다> 제작과정에서 이미 은퇴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은 영화가 완성된 뒤 인터뷰에서 감독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판타지를 계속 만드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역사작가 한도 가즈토시(半藤一利)는 “지난 7월 감독과의 대담 당시 감독이 ‘이번으로 마지막’이라고 말해 ‘너무 이르다’고 만류했지만 이미 결심을 굳힌 듯 보였다”고 말했다. 

미야자키의 은퇴설은 제작사인 스튜디오 지브리가 2010년 요네바야시 히로마사(光林宏昌) 감독의 <마루 밑 아리에티>를 공개할 때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지브리는 지난해에도 감독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宮崎吾郞) 감독의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내놓는 등 은퇴에 대비해왔다. 

도쿄신문은 미야자키 감독이 “인간본연의 호기심이 사라지고, 협소해지는 현대사회에 위기감을 품은 채 창작방향을 모색해왔다”면서 특히 “감독이 반전과 비폭력의 신념을 관철하면서도 작품 속에서 전투장면을 그려야 하는 모순에 고뇌해 왔다”며 감독이 이미 오래전부터 은퇴를 결심했음을 시사했다. <바람이 분다>는 어릴 적 전쟁을 체험하고 전쟁을 반대해온 감독이 한편으로는 전투기를 동경해온 모순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반전·반핵·평화주의자인 미야자키 감독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사옥에 ‘원전반대’ 현수막을 내걸었으며, 지난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의 개헌움직임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등 사회적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미야자키 감독은 1979년 <루팡 3세 카리오스트로의 성>으로 극장 애니메이션에 데뷔한 뒤 2001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 등을 수상했다. 

<이웃집 토토로>(1988년)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1984년) <모노노케 히메>(1997년) 등의 작품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새 지평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