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한·일협력위원회에 아베, 아소 참석... 일본 정부 1·2인자 참석 ‘이례적’

서의동 2013. 11. 15. 19:49

ㆍ정상회담 등 연이어 강력한 대화 제의

ㆍ“한국 어리석은 나라” 망언 보도 돌출
ㆍ한·일관계 복원 동력 상실 우려도

15일 오전 일본 제국호텔에서 열린 한·일협력위원회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가 나란히 모습을 보였다. 이번에 50회를 맞는 한·일협력위원회 합동총회에 현직 총리가 참석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일본을 이끄는 1인자와 2인자가 한 행사에 참석한 것도 이례적이다. 하지만 한·일관계 복원의 전기가 될 뻔했던 행사는 아베 총리의 한국 비하 발언을 소개한 보수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의 보도 파문으로 한국 측 국회의원들이 일정을 보이콧하며 파행했다. 

아베 총리는 앞서 13일 이병기 주일 한국대사, 14일 한·일협력위원회 한국 측 방문단과 연이틀 만나 조기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관계 회복을 향한 ‘아베식 삼고초려(三顧草廬)’라고 할 정도다. 이처럼 집중적이고 강력한 대화 제의를 보낸 것은 그만큼 한·일관계 타개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일관계 소식통은 “이 정도는 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움직일 여건이 조성되는 것 아니냐”고 논평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5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협력위원회 합동총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도쿄 | 연합뉴스


아베는 취임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대화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고 밝혀왔고, 지난 8월에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이 이병기 대사를 통해 정상회담을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역사인식 문제를 들어 피해왔고, 지난 8일 벨기에에서는 “정상회담을 해서 관계가 좋아져야 하는데, 만약 그렇지 않으면 관계가 더 악화될 수 있다”고 못을 박았다. 한국 측의 완고한 태도로 일본에서 ‘한·일관계 개선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정치적 위험 부담을 감수한 행보인 셈이다. 바꿔 말하면 박 대통령이 이번에도 외면할 경우 아베 정권 내에서 한·일관계 복원을 위한 동력 자체가 상실될 수 있다. 한·일 전문가들 사이에선 그런 만큼 아베가 일본군 위안부와 역사인식 문제 등에서 어느 정도 해법을 마련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아베의 대화 제의에 대응해 한·일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선제적으로 해법을 제시해 일본에 공을 넘기자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이날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 ‘강제동원 문제는 한국 정부가 책임진다’고 했던 기존 방침을 정부가 재천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대법원 판결도 존중하면서 정부의 기존 입장도 견지하는’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대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행사는 전날 발매된 슈칸분슌 보도로 빛이 바랬다. 한·일협력위원회 참석차 방한한 서병수 새누리당 의원 등 국회의원 7명 전원은 15일 아베 총리가 “한국은 어리석은 국가”라고 말했다는 보도와 관련, 항의 차원에서 오전 개막식 행사만 참석한 뒤 일본 의원들과의 오찬 행사와 총회는 불참했다. 

의원들은 성명을 내 “일본 정부가 기사 내용이 한·일관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파장을 충분히 인식해 사실관계를 즉시 밝히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슈칸분슌은 14일 발매된 최신호에서 아베 총리가 “중국은 어처구니없는 국가지만 아직 이성적인 외교 게임이 가능하다. 한편 한국은 단지 어리석은 국가”라고 말했다고 총리 주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한·일 간에 팬 골이 얼마나 깊은지를 재확인한 하루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15일 오전 9시부터 열린 도쿄 제국호텔에서 열린 한일협력위원회 합동총회 개막식에 10분쯤 늦게 등장해 5분쯤 인사말을 하고 먼저 퇴장했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가 한일협력위원회 초대 회장을 지낸 ‘인연’을 소개하면서 “대국적인 관점에서 협력을 강화해 중층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해 나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의 참석은 당초 예정에 없다가 전날에야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승윤 전 부총리는 인사말에서 “한일협력위원회 합동총회 개막식에 국가정상이 직접 참석한 전례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전 부총리는 “한일간에는 세계 여러나라가 보기에도 부담스러운 갈등관계가 지속되고 있다”며 “이번 총회가 한일 사이의 얼음을 깨는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5년간 일본측 회장을 지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에 이어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는 인사말에서 “앞으로도 한일 양국은 아시아와 동북아에서 가치관을 공유해가며 나아가야 한다“며 ”양국 사이에 곤란한 문제들이 있을수록 대화는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날 총회에 “한·일 양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이웃으로서 양국 협력위원회가 창의적인 기여를 해 주기를 기대한다”는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고 총회에 참석한 한국 의원들이 전했다.

 

하지만 모처럼 화기애애하던 장내 분위기는 아베 총리가 “한국은 어리석은 국가”라고 발언했다는 슈칸분슌(週刊文春) 보도 내용이 알려지면서 술렁거렸다. 한일협력위원회 총회 참석 국회대표단은 성명을 내 “기사는 한일관계 악화를 초래하는 것으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면서 “일본 정부가 기사 내용이 한일관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파장을 충분히 인식해 사실 관계를 즉시 밝히고 책임있는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1969년 발족된 한일협력위원회는 양국의 국회의원, 재계 인사, 문화계 인사 등이 참여해 양국간 협력방안 등을 논의하는 기구로 토의 결과를 양국 정부에 제언하는 역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