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특파원칼럼] 대지진 3년, 절전의 3년

서의동 2014. 3. 12. 21:00
돌이켜보면 3년 전의 도쿄는 어둑한 암회색의 이미지로 뇌리에 남아 있다. 전철은 낮에 실내 조명을 끄고 운행했으며, 역 구내 에스컬레이터에는 ‘통행금지’ 표시판이 놓여 있었다. 사무빌딩들의 엘리베이터도 반 이상 멈췄다. 도쿄의 밤을 화려하게 수놓던 도쿄타워도 준공 이후 처음으로 조명 스위치를 내렸고, 주택가의 가로등은 절반 이상 꺼졌다.

수도권 전력 공급의 10%를 담당하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 폭발사고가 나자 일본 정부는 지역별로 번갈아 ‘계획정전’을 실시해 도쿄 일부지역도 전원공급이 끊겼다. 당시 쓰던 휴대폰에는 내가 살던 지역이 언제 정전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입력해 둔 문의전화 번호가 아직도 ‘정전’이란 이름으로 남아있다.

37년 만에 전력사용제한령이 발동되던 그해 여름은 견디기 힘겨울 정도로 무더웠다. 사무실의 실내온도가 30도 가까이 치솟아도 냉방은 들어오는 둥 마는 둥이고, 퇴근 전철마저 ‘찜통’이어서 땀범벅이 되어 귀가하던 기억이 새롭다. TV에선 열사병 환자들이 병원으로 이송되거나 사망했다는 뉴스가 연일 흘러나왔다. 알코올 성분의 스프레이를 뿌려 목에 두르는 스카프, 휴대용 쿨 스프레이 같은 절전·납량상품이 속속 쏟아져 나왔다.

분게이슌주(文藝春秋) 편집장을 지낸 역사가 한도 가즈토시(半藤一利)는 2009년에 쓴 <소화사(昭和史)전후편>에서 1970년대 두 번의 오일쇼크가 일본 사회에 긍정적 충격을 가져다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1974년 오일쇼크로 고급 술집이 즐비한 긴자의 네온사인이 꺼지고 TV도 밤 11시로 방영을 제한하던 당시를 상기하면서 “언제나 고도성장이 지속될 줄 알았던 착각에서 벗어나 반성해보는 기회가 됐다”며 성장만을 위해 질주하던 삶에서 보다 인간다운 생활, 자연친화의 관념들이 생겨나게 됐다고 적었다. 성장 열차에서 잠시 내려 성찰할 기회를 가진 일본사회는 1979년 닥친 2차 오일쇼크를 빠르게 극복했다. 에너지 절약을 뜻하는 조어 ‘쇼에네(省エネ)’가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일본 사회의 절전 노력은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저변을 더 넓혀갔다. 일본 근대사 권위자 미타니 히로시(三谷博) 도쿄대 교수는 대지진 이후 일본의 변화를 묻자 “정전으로 모두들 고생했지만, 그 덕에 절전인식이 정착됐다”고 했다. 기업들에 비해 다소 에너지 낭비적이던 가계의 생활패턴이 크게 달라졌다는 평가다. 기업들은 저에너지 주택인 ‘스마트 하우스’ 개발과 연비를 크게 낮춘 자동차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전력부족 사태를 겪은 소비자들은 후세의 나은 삶을 위해 다소 돈이 들어도 에너지절약형 상품을 선택하는 ‘사회적 소비’를 실행에 옮겼다. ‘나쁜’ 에너지 대신 태양광과 풍력, 지열 등 ‘좋은’ 에너지의 비중을 늘리려는 민간차원의 노력도 본격화하고 있다.

계획정전이 실시된 일본 시부야 지역 빌딩의 광고판 대부분이 조명을 꺼 도심이 컴컴한 모습이다. (출처 :AP연합)



그 결과 일본은 지난 3년간 원전 20기분의 에너지 소비량을 줄였다. 도쿄신문이 사고 전인 2010년과 2012년의 8월 전력소비량을 비교한 결과 원전이 대부분 가동 중단되면서 원전 발전량이 90% 이상(240억㎾) 줄었고, 화력·수력을 포함한 발전총량은 120억㎾가 줄었다. 사고 전에는 일본 전역에 40기 안팎의 원전이 가동 중이었음을 감안하면 단순 계산으로 원전 20기분의 발전량에 해당하는 절전이 이뤄진 셈이다.

대지진 이후 일본의 에너지 정책방향은 아직 ‘조정 중’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가동 중단 중인 원전을 다시 돌리고 싶어하지만 여전히 3분의 2에 달하는 탈원전 여론을 감안하면 재가동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탈원전을 둘러싼 논란을 잠시 접고 본다면 대지진 이후 3년간 일본 사회의 절전 노력으로 일본은 원전 1기 안 돌리고도 혹한과 혹서를 거뜬히 넘기고 있다. 이는 지난 3년간 일본인들이 이룩한 가장 긍정적인 성과다! 일본의 ‘탈원전’은 미래의 꿈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