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동일본대지진 3년]“자신감 잃은 일 청년 급격히 우경화… 긍정적 내셔널리즘 필요”

서의동 2014. 3. 6. 18:59

ㆍ(3) 일본 근대사 권위자 미타니 히로시 도쿄대 교수


“일본 청년들이 자신감을 되찾도록 하기 위해 긍정적 내셔널리즘이 필요합니다.”

일본근대사 연구의 권위자인 미타니 히로시(三谷博·64) 도쿄대 교수는 동일본대지진 3년을 맞아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자신감을 상실한 청년들이 급격히 우경화하고 있는 현상에 주목했다. 그가 제시한 ‘긍정적 내셔널리즘’은 일본에 대한 세계의 평가를 높여 자긍심을 회복하는 것을 가리킨다. 배외주의로 흐르는 저급한 내셔널리즘이 아니라 일본이 가진 미덕을 살려 누구나 ‘오고 싶은 나라’로 만듦으로써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자는 취지다. 다만, 과거 잘못된 역사를 인정하는 것이 전제가 돼야 한다고 미타니 교수는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4일 도쿄 메구로(目黑)구에 있는 도쿄대 고마바캠퍼스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미타니 히로시 도쿄대 교수가 지난 4일 도쿄대 연구실에서 동일본대지진 3년 후 일본 사회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도쿄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 ‘20년 사죄’ 소용없다 느껴 비열한 국가주의로 기울어
과거사 잘못 인정 전제로 청년층의 자긍심 키워줘야


▲ 후쿠시마 원전 사고 계기‘탈원전’ 여론이 반 넘어
“전후 탈피” 아베 본심은외할아버지 명예회복일 것


- 동일본대지진 이후 3년 동안 일본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보나. 

“돌이킬 수 없는 확실한 변화는 ‘탈원전’ 여론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3년을 맞은 최근에도 여론조사에서 탈원전 여론이 반을 넘는 것을 보면 일본 전체가 핵발전에 공포감과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아베 신조 정권은 ‘원전재가동’에 집착하고 있다. 

“성장을 중시하는 아베 총리로서는 엔저 때문에 유류나 천연가스의 수입가격이 높아져 성장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보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원전은 비전이 없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말하듯 핵폐기물을 처리할 장소도 없다. 아베 정권은 ‘성장지상주의’이지만 국민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최근 중소기업 간부를 만났는데, 그 역시 예전 같은 고도성장을 바라지 않고 있어 놀랐다.”

- 동일본대지진과 1923년 발생한 간토(關東)대지진을 비교하며 일본의 우경화를 우려하는 견해도 있다. 

“간토대지진의 상흔으로 일본인들이 울분을 축적한 것이 군부의 대두로 이어졌다고 보는 데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일본 군부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돼온 군축 논의를 피하기 위한 측면이 있다. 다만, 쇼와(昭和)시대 초기인 1920년대 중반에 사회격차가 확대됐고, 1929년 발생한 세계대공황으로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만주사변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점은 있다.”

-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를 보면 특히 청년층의 우경화가 눈에 띈다. 

“일본 청년들이 왜 그러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태어나서 한번도 좋은 시절을 경험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에는 한신대지진(1995년), 3년 전엔 동일본대지진을 겪었다. 경제는 내내 불황인 데다 줄곧 한국·중국으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 영광이나 번영을 체감한 적도 없고 계속 고난만 겪어왔다. 어떻게 하면 이 세대들이 원기와 희망을 가질 것인가가 과제다.”

- 진보적인 기성세대들이 이런 과제를 소홀히 해온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년들에게 ‘일본은 좋은 나라’라고 말해주는 이들이 없었다. 진보적 지식인들은 일본의 내셔널리즘을 부정해왔을 뿐이다. 이런 태도로는 청년들의 반감만 살 뿐이다. 지난달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극우인사인) 다모가미 도시오(田母神俊雄) 전 자위대 간부에게 20~30대의 4분의 1이 투표한 것이 이를 대변한다. 현재 일본 젊은이들을 파고드는 것은 남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비열한 감정에 기초한 내셔널리즘으로, 아베 총리와 측근들이 조장하고 있다.”

- 청년들이 평화주의에 매력을 잃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청년들 상당수는 ‘일본은 주변국에 지난 20년간 줄곧 사죄했지만, 주변국의 비판은 더 거세지고 있다. 이 때문에 더 이상 사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한국·중국의 태도를 보면 이런 인식에 대해 반론하기도 쉽지 않다.” 

미타니 교수는 일본 젊은이들이 비열한 내셔널리즘에 휩쓸리는 것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긍정적 내셔널리즘’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긍정적 내셔널리즘은 일본의 장점을 살려 외국인들이 ‘오고 싶은 나라’로 만들고, 그에 따라 상실한 자긍심을 회복하자는 취지입니다. 물론 20세기 전반의 잘못된 역사를 제대로 인정하는 것이 전제가 돼야 합니다. 다만, 청년들에게 ‘너희는 죄가 없다’는 점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타니 교수는 본래 보수적 시각이 강한 사학자였으나 점차 입장을 전환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특히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아베 정권의 전후질서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에는 매우 비판적이다. 

- 아베 정권이 ‘전후체제로부터의 탈피’를 강조하는 것을 어떻게 평가하나. 

“전후와 1990년대 버블붕괴 이후는 다르다. 일본이 잘살게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전후’가 처음이다. 전전(戰前)에는 군사강국이었을지 몰라도 국민들이 잘살지는 못했다. 더구나 일본은 1960년대 경제성장과 격차축소를 동시에 달성했다. 전후를 부정할 경우 일본인들이 일궈온 풍요까지도 부정될 수밖에 없다. 아베의 본심은 아무래도 A급 전범인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명예회복에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