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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와 잃어버린 장미>종교가 구원이 아니라 굴레가 된 까닭은?

서의동 2009. 10. 12. 20:52
다 빈치 코드의 비밀 -성배와 잃어버린 장미 
마가렛 스타버드 (지은이) | 임경아 (옮긴이) | 루비박스  
  고등학교 때 한때의 유행처럼 교회에 다닌적이 있다. 나는 성격상 쏠림 내지는 몰입현상이 심한 편이어서 당시 기독
교에 꽤 빠져들었다. 교회가 가장 부정적으로 미친 영향을 꼽으라면 죄책감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게 마련이라는 점. 이 죄는 반드시 기독교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등등이 내 뇌리속에 깊게 새겨졌다. 사춘기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에 그 때문에 고뇌했던 적도 적지 않았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철없다는 생각 뿐이다) 

 이후 대학에 들어가서 언더써클(당시엔 동아리란 말이 없었다)에 가입하게 됐다. 사회과학책을 열심히 읽으며 때때로 가두시위에 동원되곤 했는데  2학년이 됐을 때 이 조직이 공개써클(당시엔 오픈이라고 했다)의 한 줄기였다는 걸 알게 됐다. 그 공개써클 이름은 기독학생연합회였다. 기독교를 표방하긴 했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이름뿐인 기독교써클이었다. 신학에 대해 한줄도 모를 뿐 아니라 공부도 하지 않았고, 그냥 하던대로 스포츠(?)에 집중했다. 

 3학년인가 딱 한번 예배를 본 적이 있다. <시국기도회>란 것이었는데 1학년인 1984년에 학원자율화 조치에 따라 학교바깥으로 철수했던 사복들이 때때로 들어와서 학내시위조차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이런 이완(?)된 분위기를 틈타 보수 기독교 써클들이 학교 도서관앞 광장에서 밴드를 동원해 선교를 하는 일이 횡행하자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시기였다. 그해 5월 문익환 목사가  시국강연을 할 때 한 학생이 학생회관 4층에서 분신한 채 투신하는 일까지 있었고(당시 현장에서 온몸을 떨며 그 광경을 지켜보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 비장한 학내분위기에서 <시국기도회>는 나쁠게 없는 이벤트였다. 그런 와중에 읽었던 책이 어느 일본인이 쓴 <예수라는 사나이>와 <신학과 실천>이라는 정기간행물, <숨은 신> 정도였다. 
 이런 저런 일들이 얽히면서 기독교에 대한 내 감정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종로 5가의 기독교 방송 건물에 자리잡은 한국기독학생연합(KSCF)에 가끔갔다가 그 건물 주위를 맴돌며 “WCC는 빨갱이”라고 확성기로 떠드는 가두선전 차량을 보며 혀를 차던 기억도 새롭다. 한국교회는 왜 이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빈치 코드>를 최근에 본 뒤 <성배와 잃어버린 장미>를 보며 기독교에 결핍된 게 뭔가 어렴풋이 잡히는 것 같았다.(이 책의 주된 타깃은 물론 로마 카톨릭이겠지만) 고교때 여학생을 동경하며 동시에 가져야 했던 죄의식은 기독교의 불완전성 탓이 아닐까 싶었다. 남녀의 문제를 외면해 버려야 종교로서, 대로마제국의 국교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기독교의 숙명도 이해가 됐다. 거세된 기독교, 화석화된 기독교, 신자들을 한없이 괴롭게 하는 ‘인간의 굴레’로서의 종교가 원래 본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제시된 내용들 - 여성이 기독교 이야기에서 누락된 이유, 그 상실이 서구 문명에 가져왔던 파괴, 회복될 수 있는 방법 등은 반드시 맞다는 보장은 없지만 개연성이 높은 내용들이다. 만약 이 가설들이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진다면? 기독교는 이 이설들을 끊임없이 부정할 것이고, 되도록이면 근절하고 싶어할 것이다. <다빈치 코드>에서 오푸스 데이 같은 보수 카톨릭 집단들과 시온 수도회 등 성배를 수호하려는 집단간의 물밑 갈등이 지금 이 시간에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 다빈치 코드를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면 기독계열 출판사들이 낸 수십권의 반론서적들이 뜨는 것에서도 이런 개연성을 추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