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산호군락·옥빛바다 철책엔 분노 글귀 빼곡
ㆍ13년째 반대… 일 정국 뒤흔드는 뇌관 될수도
지난 6일 오전 일본 오키나와현 나고(名護)시 동쪽의 헤노코(邊野古) 해안. 산호군락이 밀집해 옥색빛의 바다와 모래사장이 펼쳐진 이곳 해안은 철책선으로 분단돼 있다. 철책 너머는 해안 쪽에는 미 해병대 캠프 슈와브가 주둔해 있다. 영어로 민간인 출입금지를 알리는 입간판은 살풍경을 연출한다. 하지만 철조망 곳곳에는 ‘헤노코는 평화의 바다’ ‘일본은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일본 헌법 9조가 적힌 글들이 빼곡히 걸려있다.
‘전노련(全勞連)’ 깃발을 든 노동계 인사 30여명이 이곳을 방문했다. “헤노코로 미군기지를 옮겨서는 절대 안됩니다.” 핸드마이크를 통해 울려퍼지는 외침이 평온하던 휴일 아침 해안의 정적을 깼다.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끝나고 민주당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오키나와에서는 미군기지의 이전 및 증설 계획을 둘러싼 미·일 간 갈등이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미국을 추종했던 자민당 정부에 비해 오키나와 주민들의 견해를 존중하는 쪽인 민주당 정권 탄생의 후폭풍이다. 지난달 8일에는 오키나와현 기노완시 해변극장에 2만1000명이 모여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증설계획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일본은 물론 동북아의 시선도 오키나와에 쏠리고 있다. 개번 매코맥 호주국립대 명예교수 등 한국·일본·호주 3국의 저명한 학자들은 지난 4일 나고시에서 국제 컨퍼런스를 열어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의 해법을 모색했다.
기지 이전을 둘러싼 논란의 시발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대 초반 오키나와에서는 주일미군이 현지 여학생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빈발했다. 여론이 들끓었다. 1996년 미·일 양국은 기노완(宜野灣)시 중심부의 후텐마 기지를 헤노코 지역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헤노코 앞바다를 너비 2500m, 폭 730m로 메워 활주로를 지으려는 이 계획은 미국이 내심 추진해 왔던 사안이다. 미국은 헤노코의 조류나 기상조건이 해상기지에 최적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성폭행 사건을 기회로 삼은 것이다. 오키나와 주민 입장에서는 ‘아랫돌을 빼다 윗돌 괴는 격’이었다.
계획이 발표된 뒤 두 달이 지나지 않은 1997년 1월27일부터 헤노코 지역 주민들은 ‘생명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해 13년째 반대운동에 나서고 있다. 헤노코 어항에서는 연좌농성이 6년째 이어지고 있다. 텐트 옆에 세워둔 입간판에는 ‘투쟁 2058일째’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아시토미 히로시(安次富浩·63) ‘헬기기지반대협의회’ 대표는 “일본 정부는 일본의 안보를 위해 오키나와가 참아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미군과 일본 정부에 대한 오키나와 주민들의 불신감은 뿌리깊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19세기 일본에 편입된 이후 일본 본토에 의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아왔다. 1945년 태평양 전쟁 말기 오키나와 전투 때는 일본군이 주민들에게 집단자결을 강요하면서 수많은 양민들이 숨졌다. 1972년 반환되기 전까지는 일본 정부가 아닌 미군의 지배를 받아왔다.
같은 날 오후 헤노코 해안으로부터 북쪽으로 40㎞ 떨어진 밀림지역 다카에(高江) 마을의 미군 헬기장 입구에서도 반대농성이 열렸다. 다카에 마을 주변 미군 북부연습장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글전을 위한 전투훈련시설이다. 농성 참가자인 모리오카 나오코(24)는 “헬기가 밤 10시까지 저공으로 비행훈련을 하면서 주민들이 늘 폭음 피해를 겪고 있다”며 “헬기가 너무 낮게 날아 가로수가 넘어지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 이미 15곳의 헬기 이착륙장이 있지만 미국과 일본 정부는 6곳의 이착륙장을 더 짓기로 했다. 미군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신기종 헬기 오스프레이를 배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키나와 기지 문제는 일본 정부가 미·일 협의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에 따라 일본 정국을 뒤흔드는 뇌관이 될 수 있다. 오키나와 국제대학 사토 마나부(佐藤學) 교수는 “후텐마 기지 문제가 오키나와의 독립 또는 자치요구를 강화시키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며 “꾹꾹 눌러왔던 오키나와민의 울분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ㆍ13년째 반대… 일 정국 뒤흔드는 뇌관 될수도
지난 6일 오전 일본 오키나와현 나고(名護)시 동쪽의 헤노코(邊野古) 해안. 산호군락이 밀집해 옥색빛의 바다와 모래사장이 펼쳐진 이곳 해안은 철책선으로 분단돼 있다. 철책 너머는 해안 쪽에는 미 해병대 캠프 슈와브가 주둔해 있다. 영어로 민간인 출입금지를 알리는 입간판은 살풍경을 연출한다. 하지만 철조망 곳곳에는 ‘헤노코는 평화의 바다’ ‘일본은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일본 헌법 9조가 적힌 글들이 빼곡히 걸려있다.
‘전노련(全勞連)’ 깃발을 든 노동계 인사 30여명이 이곳을 방문했다. “헤노코로 미군기지를 옮겨서는 절대 안됩니다.” 핸드마이크를 통해 울려퍼지는 외침이 평온하던 휴일 아침 해안의 정적을 깼다.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끝나고 민주당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오키나와에서는 미군기지의 이전 및 증설 계획을 둘러싼 미·일 간 갈등이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미국을 추종했던 자민당 정부에 비해 오키나와 주민들의 견해를 존중하는 쪽인 민주당 정권 탄생의 후폭풍이다. 지난달 8일에는 오키나와현 기노완시 해변극장에 2만1000명이 모여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증설계획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일본은 물론 동북아의 시선도 오키나와에 쏠리고 있다. 개번 매코맥 호주국립대 명예교수 등 한국·일본·호주 3국의 저명한 학자들은 지난 4일 나고시에서 국제 컨퍼런스를 열어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의 해법을 모색했다.
기지 이전을 둘러싼 논란의 시발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대 초반 오키나와에서는 주일미군이 현지 여학생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빈발했다. 여론이 들끓었다. 1996년 미·일 양국은 기노완(宜野灣)시 중심부의 후텐마 기지를 헤노코 지역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헤노코 앞바다를 너비 2500m, 폭 730m로 메워 활주로를 지으려는 이 계획은 미국이 내심 추진해 왔던 사안이다. 미국은 헤노코의 조류나 기상조건이 해상기지에 최적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성폭행 사건을 기회로 삼은 것이다. 오키나와 주민 입장에서는 ‘아랫돌을 빼다 윗돌 괴는 격’이었다.
계획이 발표된 뒤 두 달이 지나지 않은 1997년 1월27일부터 헤노코 지역 주민들은 ‘생명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해 13년째 반대운동에 나서고 있다. 헤노코 어항에서는 연좌농성이 6년째 이어지고 있다. 텐트 옆에 세워둔 입간판에는 ‘투쟁 2058일째’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아시토미 히로시(安次富浩·63) ‘헬기기지반대협의회’ 대표는 “일본 정부는 일본의 안보를 위해 오키나와가 참아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미군과 일본 정부에 대한 오키나와 주민들의 불신감은 뿌리깊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19세기 일본에 편입된 이후 일본 본토에 의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아왔다. 1945년 태평양 전쟁 말기 오키나와 전투 때는 일본군이 주민들에게 집단자결을 강요하면서 수많은 양민들이 숨졌다. 1972년 반환되기 전까지는 일본 정부가 아닌 미군의 지배를 받아왔다.
같은 날 오후 헤노코 해안으로부터 북쪽으로 40㎞ 떨어진 밀림지역 다카에(高江) 마을의 미군 헬기장 입구에서도 반대농성이 열렸다. 다카에 마을 주변 미군 북부연습장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글전을 위한 전투훈련시설이다. 농성 참가자인 모리오카 나오코(24)는 “헬기가 밤 10시까지 저공으로 비행훈련을 하면서 주민들이 늘 폭음 피해를 겪고 있다”며 “헬기가 너무 낮게 날아 가로수가 넘어지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 이미 15곳의 헬기 이착륙장이 있지만 미국과 일본 정부는 6곳의 이착륙장을 더 짓기로 했다. 미군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신기종 헬기 오스프레이를 배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키나와 기지 문제는 일본 정부가 미·일 협의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에 따라 일본 정국을 뒤흔드는 뇌관이 될 수 있다. 오키나와 국제대학 사토 마나부(佐藤學) 교수는 “후텐마 기지 문제가 오키나와의 독립 또는 자치요구를 강화시키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며 “꾹꾹 눌러왔던 오키나와민의 울분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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