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일 ‘핵무장’ 법적 근거 마련

서의동 2012. 6. 22. 10:58

ㆍ‘안전보장 목적’ 문구 추가

일본 국회가 ‘원자력의 헌법’으로 불리는 원자력기본법의 기본방침을 34년 만에 바꾸면서 ‘안전보장 목적’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일본의 핵무장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이 같은 조치에 일본은 물론 국제사회에 파장을 낳고 있다. 

21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일본 국회는 20일 참의원(상원)을 통과한 원자력규제위원회 설치법의 부칙을 통해 원자력기본법의 기본방침을 변경했다. 이 법은 부칙 12조에서 원자력 연구와 이용의 평화적 목적을 규정한 상위법 격인 원자력기본법 2조의 내용에 ‘원자력 이용의 안전 확보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 및 재산의 보호, 환경보전과 함께 국가의 안전보장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항목을 추가했다.

‘안전보장에 이바지한다’는 부분은 당초 일본 정부가 각료회의에서 결정한 법안에는 없었으나 국회의 법안수정 협의 과정에서 보수성향인 자민당의 요구로 여야가 합의해 슬그머니 추가한 것이다. 

또 법안이 지난 15일 중의원(하원)을 통과한 이후에도 국회 홈페이지에 게재하지 않는 등 공론화 과정도 생략됐다. 법안 수정을 주도한 자민당의 시오자키 야스히사(鹽崎恭久) 중의원 의원은 “일본을 지키기 위해 원자력 기술을 안전보장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원자력기본법 기본방침의 변경에 일본은 물론 국제사회도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일본의 첫 노벨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등이 창설한 지식인 단체 ‘세계평화 호소 7인 위원회’는 “실질적인 (핵의) 군사이용의 길을 열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면서 “국익을 해치고 화근을 남겼다”는 긴급 호소문을 19일 발표했다. 

한국 외교통상부는 21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본이 핵확산금지조약 가입국이기 때문에 당장 핵무장 국가로 변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일본 측의 진의, 앞으로 가져올 영향 등에 대해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일본 평화헌법 원칙 허물어..핵도미노 우려 

일본이 지난 20일 원자력 관련법에‘안전보장 목적’을 추가해 핵의 군사적 이용을 향한 길을 열어놓으면서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일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말 ‘무기수출 3원칙’을 완화하는 등‘재무장’을 위한 빗장을 풀어왔으며, 원자력관련법의 변경도 이런 흐름과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본 정부는 핵무장 가능성을 전면 부인하고 있고, 당장 행동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잠재적 핵보유국이자 핵 비보유국이면서 유일하게 ‘핵 재처리’를 할 수 있는 나라다. 지난해 내각부 보고를 보면 일본은 1만~1만5000개 정도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30t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잠재력을 가진 일본이 핵의 군사적 이용 가능성을 법에 명시했다는 점이 주변국의 우려를 사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관방장관은 21일 기자회견에서 “원자력의 군사 전용은 없을 것”이라면서 “원자력의 평화이용 원칙인 비핵 3원칙의 견지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호소노 고시(細野豪志) 원전담당상 겸 환경상도 “‘안전보장’의 의미는 핵 확산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법 조항 자체가 해석이 바뀔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어 우려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야마자키 마사카쓰(山崎正勝) 도쿄공대 명예교수(과학사)는 “‘안전보장에 이바지한다’는 표현의 의미가 확실치 않아 핵무장으로 연결될 우려를 불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법 해석을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의미다. 특히 법제정과 개정이 여론수렴 없이 여야 합의로 슬그머니 이뤄지면서 원자력 이용의 평화주의와 공개·민주·자주의 원칙을 규정한 법정신을 허문 것도 의혹을 사고 있다. 

 일본은 ‘전쟁과 무력행사 포기’를 규정한 평화헌법 9조 조항과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고, 보유하지 않으며, 도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화 3원칙, 무기수출을 사실상 금지한 ‘무기수출 3원칙’이라라는 3개의 버팀목으로 재무장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해 왔다. 하지만 일본은 지난해 12월 무기수출 3원칙을 완화해 외국과의 무기 공동개발과 수출의 길을 텄고, 20일 통과된 우주활동 관련법에서 우주 활동의 ‘평화적 목적한정’을 삭제했다. 

 일본의 이런 재무장 움직임은 북한의 핵 보유, 중국의 군사력 팽창과 해양진출에 따른 위기감 속에서 탄력을 받고 있다. 특히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경제적·군사적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도 자체 무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로 꼽힌다.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은 동북아 핵도미노를 유발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도 주변국의 우려를 낳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일본이 핵확산금지조약 가입국이기 때문에 당장 핵무장 국가로 변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예의주시하겠다고 밝힌 점도 이런 부정적 연쇄파장을 경계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