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아베 정권, 전후 민주주의 부정” 도고 가즈히코 전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

서의동 2013. 7. 29. 17:27

“아베 정권, 전후 민주주의 부정… 미·일관계에 역사갈등 위험성”

ㆍ도고 가즈히코 전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

“전후체제에서 벗어나자는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은 중국, 한국뿐 아니라 미·일관계에서도 가장 심각한 위험요인입니다.”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을 지낸 외교전문가 도고 가즈히코(東鄕和彦·68·교토산업대 교수·사진)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역사인식과 헌법 개정이 향후 외교에서도 중대한 걸림돌이 될 가능성을 지적했다. 도고 전 국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26일 도쿄시내 호텔에서 1시간 반에 걸쳐 진행됐다.

그는 “일본에서 패전 이후 민주주의와 평화가 정착됐는데 아베는 전전 상태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그렇다면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와 평화는 무엇이었냐며 미국인들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며 미·일관계에서 역사문제가 가장 큰 리스크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도고 전 국장은 “아베 정권이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반성과 사죄를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와 위안부 강제동원을 시인한 ‘고노 담화’를 수정할 경우 미국은 이를 전후체제 탈피를 향한 행동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면서 “아베 정권은 전후체제의 탈피라는 영문 모를 소리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갈등에 대해 “언제 무력충돌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위험한 상태인 만큼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굳건히 하는 동시에 한국, 러시아와도 좋은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도고 전 국장은 중국이 제기하고 있는 ‘센카쿠 유보론’(양국 간 영유권 갈등이 있음을 인정하고 해결은 후세로 미루자는 논리)과 관련해 “일본은 지금까지 센카쿠에 일본인의 상륙을 불허하고, 해양조사도 실시하지 않는 등 ‘유보론’에 사실상 동조하는 태도를 보여왔다”고 말했다. 아베 정권이 공식적으로 ‘유보론’을 수용하긴 어렵지만 타협의 실마리는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는 “아베가 자민당 내에서도 가장 강경파이기 때문에 오히려 양보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일 갈등의 가장 큰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할머니들이 생존해 있을 동안 해결되지 않으면 양국의 불행으로 남게 된다”며 “1~2년 안에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해법으로 “일본 정부가 예산을 세워 배상하는 방안이 마련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다만 ‘법적 책임’을 인정하라는 한국의 주장은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은 한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현재 상태를 바꿀 생각이 없다”면서 “그런 만큼 한국은 독도에 대해 일본의 주장을 일축하기보다는 적어도 ‘주장이 뭔지 들어보자’는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 어렵다면 민간 차원에서 대화창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한국, 중국 등과의 대화에서 ‘어법’에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과거사 문제를 ‘미래지향적’으로 접근하자는 어법은 ‘과거사는 잊어버리자’는 것과 같은 뜻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상대국이 ‘이제 됐다’고 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과거 잘못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도고 전 국장은 외무성 재직 당시만 해도 헌법 개정론자였지만 최근 자민당의 움직임을 보면서 ‘헌법을 그대로 두는 게 낫다’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나도 전후 극동군사재판에 매우 비판적이었지만 그래도 ‘전후체제 탈피론’을 지켜보면서 현재의 평화헌법은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현행 헌법의 전문에 수록돼 있는 평화에 관한 언급은 이상론이긴 하지만 이상론을 쓴다고 해서 ‘뭐가 나쁜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 도고 가즈히코는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전 당시 외무상이자 연합국에 의해 A급 전범으로 옥사한 도고 시게노리(東鄕茂德·1882~1950)의 손자다. 도고 가문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 도공의 후손이다. 외무성 조약국장과 유럽국장, 네덜란드 대사를 지냈으며 2002년 퇴임 뒤 러시아·영토분쟁 분야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