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도쿄는 거대한 '난민' 대기소

서의동 2011. 3. 18. 12:26
17일 오전 9시쯤 도후쿠 지방 야마가타현의 야마가타 공항. 시골의 고속버스 터미널 정도로 협소한 2층 짜리 공항의 출국장에 이른 아침부터 큼직한 여행용 트렁크를 앞세운 승객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미야기현 등 지진과 쓰나미 피해지역에서 비교적 안전한 야마가타현을 경유해 도쿄 이남으로 빠져나가려는 주민들의 행렬이다. 미야기·이와테→야마가타→도쿄의 탈출경로다. 야마가타 공항은 도쿄행 승객이 늘어나자 이날 임시항공편을 증설했으나 폭설로 도쿄발 여객기가 잇따라 연착하면서 11시30분발 도쿄행 JAL기가 오후 2시를 넘겨 출발했다. 오후 3시30분쯤 도쿄 하네다 공항의 국내선 도착장 로비에는 도호쿠 지방을 탈출한 친지들을 마중나온 이들로 붐볐다. 
 

지진다음날 나리타공항 표정/신화



일본의 수도이자 메트로폴리스인 도쿄가 도호쿠 대지진 이후 하나의 거대한 ‘난민 대기소’로 변모하고 있다. 후쿠시마, 이와테, 미야기 등 지진피해가 극심했던 지역의 주민들이 비교적 안전한 도쿄로 피신하기 위해 거대한 유민(流民)의 물결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도쿄가 후쿠시마 원전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데다 정전으로 불편한 만큼 도쿄를 거쳐 오사카, 후쿠오카로 떠나는 이들도 늘고 있다. 

도쿄에 체류중인 외국인들도 자국 정부의 철수권고를 내리면서 도쿄를 떠나기 위해 하네다와 나리타 공항으로 몰려들고 있다. 사무실을 폐쇄한 글로벌 기업들도 등장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추이에 따라 200㎞가량 떨어진 도쿄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무부는 16일(현지시간) 도호쿠 대지진및 원전위험으로 일본에서 귀국을 원하는 주일 미국대사관 직원가족 귀국을 위해 항공기를 임차했다고 교도통신이 17일 보도했다. 주일 프랑스대사관은 에어프랑스에 자국민 귀국을 위한 임시항공편을 요청했고 이미 두대가 이날 출발했다. 법률회사와 이탈리아은행 등은 도쿄 사무실을 폐쇄했으며 영국의 로펌 허버트스미스는 도쿄에 있는 직원들에게 원격 근무를 지시했다. 의류브랜드 H&M은 도쿄내 10개 매장 중 9개의 문을 닫았으며 도쿄를 떠나기를 희망하는 직원들을 돕고 있다. 프랑스 자산운용사 아문디는 일본내 230명 직원 중 자국민 가족들을 탈출시켰다. 

독일 외교부는 원전 인근이나 수도권에 거주하는 자국민에게 일본에서 철수하거나 서부 오사카 지역으로 이동하라고 권고했으며, 도쿄 소재 독일 대사관은 일부 직원들을 오사카의 총영사관으로 이동시켰다. 영국은 도쿄 및 일본 북동지방 여행은 가급적 자제하고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자국민들에게 철수를 권고했다. 프랑스는 도쿄에 사는 자국민에게 프랑스로 귀국하거나 일본 남부 지방으로 이동하라고 촉구했다. 

호주 외교통상부는 이날 일본 거주 자국민들에게 일본 여행경보를 발령하면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출국할 것”을 권고했다. 호주 측은 “방사능 오염과 일본 출국 권고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여진이 이어지고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이 크게 훼손돼 일본에서 편안한 일상을 기대할 수 없는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도쿄에서 외국으로 떠나려는 수요는 넘치는 반면 도쿄행 항공편은 줄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