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히로세 다카시 “후쿠시마 반경 60㎞ 유아 절반, 성인 허용치의 26배 피폭”

서의동 2011. 6. 20. 13:41
“지금 당장 일본 내 모든 원전의 가동 중단을 정부에 명령해야 합니다. 호소가 아니라 우리가 살기 위한 정당한 명령입니다. 시민들이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아이들의 미래를 지킬 수 없습니다.”

지난 18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개항기념관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 관련 강연회장. 일본내 반핵운동의 지주인 저술가 히로세 다카시(廣瀨隆·68)는 “원전에서 60㎞ 떨어진 고리야마시의 유아 절반이 이미 성인 허용치의 26배 피폭을 당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히로세는 500여명의 청중들을 상대로 2시간 동안 원전현황 및 사고원인과 방사능 피폭의 위험성 등을 설명하면서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를 강하게 비판했다.
 

요코하마개항기념관에서 강연하는 히로세 다카시/경향신문DB



그는 먼저 미국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원전 3호기내 연료봉이 폭발과 함께 건물 밖으로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떤 충격으로 3호기 폐연료봉 저장수조의 핵연료봉들이 서로 들러붙어 임계상태를 일으켜 폭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원전건물 부지의 방사선량이 치명적인 상태인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는 또 2호기는 멜트다운(노심용해)으로 핵연료가 격납용기 바닥을 뚫고 지하로 가라앉는 ‘차이나 신드롬’ 현상이 발생했을 가능성 있다고 말했다. 또 후쿠시마 원전의 수습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몇십년간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는 음울한 전망도 내놨다.

히로세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쓰나미에 의해서가 아니라 중력가속도 500갈(gal)의 비교적 약한 진동으로 원자로 배관이 파열되면서 발생했음을 강조했다. “일본 정부가 이를 한동안 숨겨온 것은 평균 540갈에 불과한 일본내 원전들의 내진성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판한 까닭이다. 그는 특히 일본 정부가 당초 지진규모를 8.4로 발표했다가 9.0으로 뒤늦게 수정한 것에 거대한 음모가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3·11 동일본대지진 이전까지 써오던 기준 대신 ‘모멘트 규모’라는 새로운 기준을 별다른 설명없이 동원해 지진규모를 높였다는 것이다. “지진을 ‘상정외’의 규모로 부풀려 도쿄전력의 법적 배상책임을 면제토록 하려는 의혹이 있습니다.”

히로세는 일본이 1995년 한신대지진을 계기로 지진활동기가 본격화됐으며 하마오카 원전부근의 태평양 플레이트(암판)의 움직임이 3년전부터 활발해지고 있다며 도카이(東海) 대지진이 정부가 거론한 87%가 아니라 100% 발생한다고도 강조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발생한 지진들에 의한 진동이 점차 강해지고 있음을 거론하며 “지금까지 요행히 원전을 직격하는 지진이 없었던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손자 4명을 서일본으로 피난시켰다면서 어린이들의 방사능 피폭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성장기의 아이들은 정부발표 수치에 10배를 곱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60㎞ 떨어진 고리야마 시의 초등학생 16%의 피폭량이 어른 피폭한도의 33배에 달하고 유치원 아이들은 52%가 성인한도의 26배의 피폭을 당했는데 실제론 200배 이상 피폭된 셈입니다.”

그는 강연 내내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친원전 전문가들과 일본 언론들을 비판하며 시민들이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지금의 일본은 아이들을 방사능 속에 방치한 채 추가로 닥칠 원전사고를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꼴입니다. 동일본대지진은 하마오카 원전 내진설계 수준의 178~1000배로 예상됩니다. 하마오카 원전의 가동 중단에 그치지 말고 수조속의 연료봉을 반출해 캐스크(고방사성 폐기물 저장용기)에 보관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강연이 끝난 뒤 일부 청중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히로세에게 “이제야 눈을 뜨게 됐다”며 감사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강연 뒤 기자와 만난 히로세는 “동아시아의 원전 보유국 중 일본에서 먼저 사고가 터진 것일 뿐”이라며 “일본 서부지역까지 점차 오염범위가 확대되고 있어 한국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원전정책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데 이웃나라의 참사에서 배우지 못하고 있는 셈”이라며 “시민운동이 지속적이고 끈질기게 반원전 운동을 벌여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히로세 다카시는 30여년 동안 철저한 현장조사와 광범위한 자료를 토대로 일본 정부의 원전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해온 반핵평화운동가다. 그의 저서 <원전을 멈춰라>가 최근 한국에서도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