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강상중 교수 "동북아 원전안전 공동체 만들자"

서의동 2011. 6. 20. 13:27
도쿄대 강상중 교수(61·학제정보학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재발방지를 위해 동북아시아가 ‘원전안전공동체’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강 교수는 3·11동일본 대지진 100일을 맞아 지난 16일 경향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제2차 세계대전 주축국 중 독일, 이탈리아는 ‘탈원전’을 선언한 반면 일본이 주저하는 것은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는 습성 탓이기도 하지만 역내의 협력관계가 없었던 점도 이유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경향신문DB




협의체를 통해 원전 안전관리와 대체에너지 개발에 협력하되 “당장 정책전환이 어렵다면 원전 안전관리를 위한 기본협약을 만들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자신이 북핵과 한반도 안전보장과 관련해 제기한 바 있는 ‘동북아 공동의 집’ 개념을 원자력에 적용하자는 취지다.

강 교수는 대지진과 원전사고 이후 정치불신이 커지는 데 주목하면서도 1920년대 국민의 정치염증이 군국주의로 쏠렸던 현상이 재현될 가능성을 경계했다. 그는 일본 정치권의 ‘대연립’ 구상에 대해 “전시의 ‘익찬(翼贊)체제’와 유사하게 소수의견을 배제하려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이 독도교과서 문제에 개의치 않고 일본을 지원한 점을 평가하는 한편 위기에 정면으로 맞서는 한국적 역동성이 일본에 주는 시사점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인터뷰는 도쿄대학 인터뷰실에서 1시간20분간 진행됐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에 대한 일본 정부와 정치권의 움직임에 실망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고대응 과정에서 치밀하고 효율적인 것으로 보였던 일본형 시스템이 얼마나 경직된 것이었는지 드러났습니다. 경제와 사회는 급속히 바뀌고 있으나 전후 60년 이상 관료를 중심으로 유지돼 온 시스템이 시대 적응능력을 결여하고 있음을 보여준 계기입니다.”
 
-대지진을 계기로 전후(戰後)를 끝내고 재후(災後)체제로 가야 한다는 논의들이 제기된 바 있는데 이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3·11을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기폭제로 활용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헌법개정 등을 염두에 둔 우파적 시각이 섞여 있는 점도 주의해야 합니다. 3·11을 기폭제로 중앙의 지배를 강화하거나 헌법개정 움직임이 가속화됐을지 모르지만 원전사고라는 예상 못한 리스크를 안게 되면서 이런 변화가 어려운 상황에 빠졌습니다.”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대연립’도 이런 논의들과 관련있는 것입니까. 
“이번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대연립을 추진해야 한다는 발상은 과거 태평양전쟁 당시 등장했던 ‘익찬체제’와 마찬가지로 소수의견을 배제하려는 위험한 발상입니다. 대연립을 한다고 해서 그리 나아질 것도 없습니다. 여야가 타협해가며 재난과 원전사고에 총력대응하면 될 것입니다.”

-후쿠시마 사고로 원전추진과 관련해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자민당의 장기집권 체제인 ‘55년 체제’하에서 중앙정부는 관료통제형 에너지 정책을 펼쳐왔고 지역사회도 (보조금을 받기 위해) 원전을 유치하는 이익공유형 중앙-지방 지배구조가 공고화됐습니다. 이 체제가 균열되고 있는 것은 매우 큰 변화입니다. 지금은 구체제를 유지하려는 힘과 시민사회형 에너지 체제를 만들려는 힘이 대립하고 있는 국면입니다.”

-재생, 대체에너지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 힘들이 한데 모아지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한국은 특정 현안에 대한 전선(戰線)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반면 일본은 그렇지 않는 방식으로 일이 진행됩니다. 아젠다 세팅을 되도록 애매하게 하는 것이죠. 다만, 지금 확실히 원전에 대해 ‘노’라고 자기입장을 표시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은 새로운 현상입니다. 2차 대전 당시 추축국이었던 독일, 이탈리아는 ‘탈원전’을 선언한 반면 일본은 원전정책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반발하는 아래로부터의 흐름이 정치를 바꾸는 다이내미즘이 될지 지켜봐야 할 상황입니다.”
 
-지진 이후 일본 사회의 변화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이율배반적인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지역사회 단위의 자발적인 네트워킹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반면 위(정부)에서 아래(시민사회)로 흐르는 힘이 강해질 수 있습니다. 전력을 비롯해 물자부족 사태가 발생하면 정부가 가격통제에 나설 가능성도 있습니다. 과거 일본이 전력 국유화를 시작으로 전시 국가통제를 본격화한 점을 감안하면 주목해야 할 점입니다.” 

-재난 대응에 대한 불신으로 정부와 국민 사이에 균열이 나타나는 흐름입니다.
“일본은 국가와 국민간에 일체감이 큰 나라였지만 최근 갭이 생기고 있습니다. 전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정당정치에 대한 염증도 커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정치인이 등장하면 좋지 않은 쏠림현상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간토대지진 이후 국제협조주의가 등장했다가 1929년 대공황을 겪으며 군국주의로 급격히 쏠린 것이 좋은 예입니다. 당시 국민이 정치부패에 염증을 느끼면서 일거에 군부 의존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아직 예측이 어렵습니다.”

-간 나오토 총리 체제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간 총리는 리더십에 문제가 많지만 종래의 권력구조를 통해 자신의 이해를 도모하지 않는 점은 평가할만 합니다. 하마오카 원전을 가동중단토록 하는 등 과거와 다른 방향을 지향하는 점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간 총리가 퇴진하고 ‘대연립’이 만들어진다면 사회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강화되는 체제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본이 독일처럼 되기 어려운 이유는 뭐라고 생각합니까. 
“독일이 탈원전 결정을 내린 것은 이웃 프랑스에서 전력공급을 받을 수 있기도 하지만 유럽연합 내에 원자력과 관련한 논의·협력체제가 꾸준히 가동돼왔던 배경도 있습니다. 반면 중국·한국·일본은 어느 한곳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치명적인 재난이 초래될 수 있는데도 각자 알아서 원전정책을 추진해왔습니다. 후쿠시마라는 문명사적인 재난을 계기로 한·중·일이 원전안전 관리, 대체에너지 개발 등에 협력하는 동북아 원전안전공동체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이 당장 합류하기 어렵다면 핵물질 보존과 안전관리 등에 3개국이 어그리먼트(기본협약)를 만드는 것도 고려할만 합니다.”

-최근 한·일관계는 일부 문제점에도 불구,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간 총리의 한·일병합 100년 성명이나 조선왕조의궤 반환 조치는 분명히 긍정적인 현상입니다. 한국이 대지진을 맞아 대규모 일본 지원에 나선 것도 전후 처음 있는 현상이구요. 독도교과서 문제에도 중단되지 않은 것은 한국 여론이 그만큼 성숙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독도문제는 미해결 상태입니다. 일본 내 내셔널리즘이 강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는 한·일 양국이 문제를 키우지 않은 채 지금처럼 서로 자기 주장을 하는 현상유지 방식이 하나의 해법일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으로서도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고, 일본 입장에서도 북방영토(쿠릴열도) 등과 비교해 중대사안이 아닌 만큼 쟁점화하지 않은 채 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선학교 무상화 등 재일동포 현안들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지금은 북한의 위협보다 원전 등 일본사회 내부의 리스크가 더 큰 만큼 일본내에서 북한이슈는 과거에 비해 다소 엷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사카부에서도 조선학교에서 납치문제 등 교과서 내용을 좀 바꾸면 보조금을 지급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일본은 지진과 원전사고 외에도 재정적자, 고령화 등 여러 심각한 문제들이 있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느낌입니다.
“한국은 어젠더가 발생하면 뚜렷하게 부각시킨 뒤 대응을 해온 반면 일본은 현안들을 계속 뒤로 미뤄왔습니다. 이런 대응이 문제를 복잡하게 하고 점점 손대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갑니다. 사회운동이 활성화되지 않아 대안들에도 힘이 실리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 전체적으로 폐색감이 짙어집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원전반대 시위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는 획기적인 현상입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 한국과 일본 간에는 상당한 차이점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원전사고는 고향 구마모토 현에서 발생한 미나마타병의 전말과 유사점이 많습니다. 일본은 지난 잘못에서 교훈을 찾거나 반성하지 않기 때문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을 겪고도 이런 참상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일본은 원전위험성을 경고하는 마이너리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반면 한국은 어느 시대에도 마이너리티가 있었고 그들의 목소리가 사회에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한국은 시민운동이 활성화돼 있고, 정권이 교체되면 관료들도 바뀝니다. 앞으로 한국의 여러 긍정적 측면들이 일본 사회에 미치는 임팩트(영향)가 커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