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원전 믿느니 집에서 전기 생산” 일본 에너지 산업 지각변동

서의동 2011. 7. 12. 16:36
이바라키현 히타치오오미야시에 사는 고교교사 후지노 쓰토무(44)는 동일본대지진이 발행한 지난 3월11일 부득이 승용차 안에서 가족과 하룻밤을 지샜다. 가구가 무너지면서 집안이 엉망이 된 데다 정전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전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당시 “정전상태에서도 해가 있으면 자가발전을 할 수 있다”는 업체 직원의 말이 떠올라 스위치를 ‘자립운전’으로 전환하고 코드를 연결했다. 곧바로 불이 켜지고 TV와 세탁기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전력복구가 채 이뤄지지 않아 야간에는 전기를 쓰지 못하는 생활이었지만 “낮에라도 전기를 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실감했다”고 후지노는 말했다.   
 
후지노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것은 전기요금 절감을 위해서였다. 쓰고 남은 전력은 도쿄전력에 판매할 수 있다. 한달 판매액은 2만5000엔. 월 1만2000원쯤 내던 전기요금도 태양광 발전을 시작한 뒤 7000엔대로 줄었으니 월 3만엔(약 39만원) 가량을 태양광발전으로 벌어들이는 셈이다.

설치비용 370만엔(약 4810만원) 중 정부와 자치단체로부터 받는 보조금은 약 70만엔. 300만엔은 월 2만6000엔씩 15년에 걸쳐 갚는 조건으로 금융회사로부터 빌렸다. 판매기간이 10년으로 제한돼 있지만 전기요금 절약분과 전력판매 대금을 감안하면 당분간은 매달 채무를 갚아도 4000엔(약 5만2000원)씩 남는다.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전력부족 우려가 커지고 있는 일본 사회에서 ‘절전·창전(創電)산업’이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전력을 아끼고, 스스로 생산하는 상품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과 수요가 급증하면서 잠재력을 확인한 기업들은 속속 신규참여에 나서고 있다. 절전·창전산업은 유가와 가스 등 국제원자재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해외에서도 시장 잠재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일 도쿄 오다이바 지역에 있는 가전업체 파나소닉의 전용 전시관 ‘파나소닉센터 도쿄’. 전시된 최신 가전·광학제품들 중에서 최근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은 방재관련 가전제품을 모아놓은 1층 전시장이다. 태양광 패널이 부착된 문고본 책자크기의 휴대용 조명기는 태양광 패널로 생산한 전기를 충전식 건전지에 저장한 뒤 뒷면의 조명을 켜거나 휴대전화 충전용으로 쓸 수 있다. 15시간 충전해 60시간 동안 조명으로 사용할 수 있고, 건전지를 빼내 라디오 전원으로도 쓸 수 있어 방재대비용으로 적합하다. 판매예상 가격은 6000엔(약 원)으로 올해 60만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관심이 가장 큰 분야는 역시 태양광발전 설비다. 건물 3층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패널에서 생산되는 시간당 전력을 모니터로 확인해보니 시간당 2.6Kw. 센터 홍보담당자인 이노우에 유코 주사는 “대지진 이후 태양광 발전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예약방문객들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가정용 태양광 발전설비는 햇빛을 받아 전기를 생산하는 태양광 패널, 생산된 직류전기를 교류로 변환하는 파워컨디셔너, 발전상태와 전력사용량 등을 알려주는 에너지모니터 등으로 구성된다. 잉여 전력은 전력회사에서 1Kwh당 42엔씩 10년간 매입해준다. 올 연말까지는 Kw당 4만8000엔의 정부 보조금도 받을 수 있다.
 
 

파나소닉은 태양광발전을 향후 주력사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목표하에 지난 4월 이 부문에서 기술력이 뛰어난 산요전기를 인수했다. 파나소닉은 올해 태양광발전의 판매규모를 90억Kw로 설정했다. 이중 절반가량은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4개국에 수출할 계획이다.

도시가스와 공기를 활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연료전지의 가정용 시판준비도 서두르고 있다. 수소와 산소의 화학반응에 의해 발생하는 열에너지로 발전 뿐 아니라 물을 데우는 장치다. 고용량 리튬이온 축전지의 가정용 시판준비도 한창이다. 파나소닉 그룹 해외홍보담당 카도타 아키라 참사(55)는 “대지진을 계기로 가정에서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전기를 축전하는 분야의 사업 잠재력이 매우 커졌다”고 말했다. 
 

도쿄 오다이바에 있는 파나소닉 전시장/by 서의동

 

파나소닉 뿐 아니라 절전·창전 사업에 신규참여를 서두르는 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다. 미쓰이물산은 도호쿠 피해지역인 이와테·미야기·후쿠시마 현에 시간당 10만Kw 규모(3만 가구분)의 대형 태양광발전소(메가솔라)를 연내 착공할 방침을 세웠다. 요미우리 신문은 “일본 최대의 태양광발전 사업자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이라고 분석했다. 간사이 지역 등에 시간당 2만Kw의 메가솔라 건립구상을 내놓은 소프트뱅크는 36개 광역자치단체(도부현)가 참여하는 자연에너지 협의회를 오는 13일 발족한다. 
 
손마사요시(손정의) 사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는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자연에너지 발전과 전기의 공급·판매를 사업내용에 추가하는 내용의 정관 변경안을 승인한 바 있다. 태양광발전 사업에는 이밖에 미쓰비시 상사, 쓰미토모 상사, 쇼와셸 석유 등도 신규참여를 계획중이다. 
 
기업과 공장에서 주로 쓰던 축전지도 대지진 이후 일반 가정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특수를 누리고 있다. 축전지 제조업체 에리파워는 기업들만을 대상으로 판매해온 리튬이온 축전지를 올 가을부터 가정용으로 개발해 판매할 예정이다. 미쓰비시 자동차는 전기자동차 아이미브에 부착된 축전지의 전지를 가정으로 송전할 수 있는 장치를 내년 3월까지 개발, 시판할 계획이다. 기존 차량용 축전지와 달리 포터블 방식으로 개량해 지진 등 비상사태로 정전될 경우 전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카메라 등 광학기기 기업인 코니카 미놀타는 기존 백열전구에 비해 사용전력이 5분의 1에 불과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사업에 신규참여하기로 했다. 쓰지 않을 경우 족자처럼 둘둘 말아 접을 수 있는 신형 LED조명기구도 포함된다.
 
소비자들의 절전소비에 힘입어 대형 가전판매점인 빅카메라의 경우 지난해 9월~올해 5월의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9% 늘어났다. 절전형 에어컨 구매와 조명을 LED로 교체하는 등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소비자들의 절전노력이 새로운 가전특수를 몰고 온 것이다. 특히 6월 가전제품 매장에서 LED조명의 판매비율(43.5%)로 백열전구(38.2%)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LED조명기구는 대지진 이전 판매비율이 20%에 못미쳤으나 4월 29.6%, 5월 37.2%로 급성장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절전·창전산업의 확산 움직임과 사회적 관심확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다 타카노리 교토대 대학운 교수(경제학)는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 기고에서 “원전 사태 이후 전력회사가 필요한 전력을 안정공급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스스로 절전·창전을 실현하는 능동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며 “이번 전력부족 사태를 에너지 문제의 해결을 향한 스마트 커뮤니티 구축의 계기로 활용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