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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데 히로아키 "원자력은 국가가 국민을 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서의동 2012. 3. 7. 11:12

고이데 히로아키 교토대 조교 인터뷰

“원자력은 국가가 국민을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후쿠시마’라는 문명사적 재난을 겪고도, 국민이 피폭을 당하든 말든 내버려둔 채 원자력발전소를 재가동하려는 일본은 부끄럽고 한심한 나라다. 하지만 한국도 그런 사태가 발생하면 원전 주민들이 버림받을 수 있다.”


교토대라고 하지만 이곳 원자로실험실은 오사카에 있다. 고이데씨의 사무실은 무척 비좁고 낡았다./by 서의동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에서 가장 신뢰받는 원자력공학자이자 반원전 운동가인 고이데 히로아키(小出裕章·62) 일본 교토대학 원자로실험실 조교(한국의 조교수)는 3·11 동일본 대지진 1년을 맞아 지난 2일 오사카(大阪)부 구마도리초(熊取町) 교토대학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원전 재가동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일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1㎡당 방사성세슘이 4만㏃(베크렐)이 넘는 후쿠시마(福島)현 절반, 미야기(宮城)·도치기·군마(群馬)·지바(千葉)·사이타마(埼玉)현 일부는 법에서 정한 방사선관리구역이나 다름없는 곳”이라며 “원자로 실험실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사는 주민들의 복귀를 허용하고 농사까지 짓도록 하는 것은 일본이 이미 법치국가임을 포기했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녹아내린 핵물질 덩어리 100t

원전 주변 차수벽 설치 안 해

지하수 오염 급속 확산 우려

피폭 국민은 버림받고

원전 재가동 노력 한심

한국도 이 사태와 안 다를 것”


-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가 지난해 12월 원전사고가 발생한 지 9개월을 맞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수습됐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경제산업상도 지난달 “원전 재가동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일본 정부의 태도를 보면 지난해 원전사고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우라늄을 핵분열시키면 반드시 ‘핵분열생성물’이라는 방사성물질이 발생한다. 보통 원전의 발전용량이 100만㎾ 정도인데, 이를 1년간 가동하면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1000배가 넘는 양이 생성된다. 원전은 기계고, 기계는 언젠가 망가진다. 또 인간은 신이 아닌 만큼 언제든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원전을 지을 때는 사고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원전에서 손을 떼지 않으면 안되지만 유감스럽게도 일본 정부와 경제계는 재가동은 물론 수출도 하겠다고 한다. 일본은 매우 부끄럽고 한심한 나라다.” 

- 일본 정부가 원전 재가동을 위해 ‘스트레스 테스트’라는 이름의 안전평가를 하고 있지만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원전 입지를 결정할 때는 정부가 엄중한 안전심사를 통해 안전성을 확보한다고 말해왔고 후쿠시마 원전도 이 과정을 거쳐 건설됐다. 그런 원전에서 사고가 난 것은 정부의 안전심사가 잘못됐음을 증명해준 셈으로, 이런 관행을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러자 정부가 스트레스 테스트라는 것을 들고 나왔지만 이는 상정할 수 있는 조건을 입력해 시뮬레이션한 결과일 뿐이다. 하지만 상정 내의 조건으로 아무리 계산해본들 ‘상정 외’의 사태에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 후쿠시마 원전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어떤 상태라고 예상하는가. 

“화력발전소가 파괴됐다면 현장에 가서 눈으로 직접 보고, 어느 부위가 어떻게 파괴됐는지 조사해서 수리하면 된다. 하지만 원전은 치명적인 고방사능 때문에 현장 접근이 불가능하다. 멜트다운(노심용해)으로 녹아내린 핵물질 덩어리는 총량이 100t에 달한다. 이것이 원자로 압력용기와 격납용기 바닥을 차례로 뚫은 뒤 땅속을 파고 들어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차이나 신드롬’(미국 원전에서 핵사고로 녹아내린 핵연료가 땅속을 뚫고 내려가 지구 반대편인 중국까지 도달한다는 줄거리의 미국 영화)은 일어나지 않고 몇 미터쯤 땅속을 뚫고 들어가다가 멈출 가능성이 크다. 걱정스러운 것은 땅속을 뚫고 내려가는 과정에서 지하수맥과 만나 지하수 오염이 삽시간에 번질 가능성이다. 이를 우려해 원전 주변에 차수벽이나 지하댐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해왔지만 도쿄전력은 아직 착공조차 안하고 있다.” 

- 폐연료봉 저장수조도 구조물 자체가 지진으로 취약해 보강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연에서 지적한 바 있는데.

“후쿠시마 원전 4호기는 저층부까지 외벽이 다 부서졌고 지붕도 날아가 버린 상태다. 4층에 있는 폐연료봉 저장수조 바로 옆 벽에도 구멍이 뚫려있다. 만약에 강진으로 저장수조가 무너져 1331개에 달하는 폐연료봉이 쏟아져 나오면 끝장이다. 도쿄전력이 내진보강 공사를 했지만 고방사능 지역이라 제대로 공사가 이뤄진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최근 지진이 빈발하고 있는데 후쿠시마 쪽에 큰 지진이라도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 최근 일본 기상청이 원전사고로 방출된 방사성물질 총량을 4경(京)㏃로 추정했다.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20%에 해당되는 양이라고 한다. 일본 정부의 발표만 보더라도 토양오염은 후쿠시마뿐 아니라 수도권 쪽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곳에서도 실험을 할 경우 방사선관리구역에 들어가야 하는데, 실험을 마친 뒤 몸이 오염됐는지를 측정해야 한다. 이 기준치가 1㎡당 4만㏃이다. 후쿠시마 동부는 물론이고 후쿠시마시와 고리야마(郡山)시도 거대한 방사선관리구역이 돼 버렸다. 일본이 법치국가라면 그곳 주민들을 모두 피난시켜야 한다. 후쿠시마현과 인근 지역, 도쿄 일부까지 무인지대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되면 일본이란 국가가 토막이 나버리게 된다. 그래서 정부는 사람들이 피난하든 말든 수수방관하는 것이다.”

- 도쿄는 안전한가. 

“북부 일부와 산간지대는 오염됐지만 그 외에는 심각한 오염은 아니다. 이곳 오사카보다는 위험하지만.”

- 최근 들어 일본 정부가 지난해 쌀에서 세슘이 검출된 후쿠시마현 일부 농가에 벼농사를 허용하기로 했다. 후쿠시마 원전에 가까운 히로노마치(廣野町) 등은 공공기관이 마을로 복귀해 문을 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가 당연히 귀향을 막아야 하고, 4만㏃이 넘는 지역은 방사선관리구역으로 지정해 ‘무인지대’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재원을 감당하지 못해) 일본이 파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폭되더라도 어쩔 수 없으니 ‘귀향하라’는 것이다.”

- 어른이나 노인들은 몰라도 아이들까지 귀향시켜서는 안되는 것 아니냐.

“아이들만 귀향하지 않으면 가족이 붕괴돼 버린다. 정부가 가족, 마을단위로 다른 이주지를 만들어 피난시켜야 하는 게 맞지만 정부가 그럴 힘이 없다. 그럴 땅이 있느냐도 문제다. 땅을 확보했다 해도 집, 도로, 인프라 건설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 ‘원전마피아’들은 이번 사고에도 아랑곳없이 원전을 재가동하려 하고 있다. 한편으론 ‘탈원전’ 여론도 강해지고 있다. 정부로서는 눈치를 보고 있는 듯하다.

“지금 54기 중 52기가 멈춰있고, 4월이면 원전 전체가 모두 멈추게 된다. 하지만 원전마피아들은 착착 재가동 수순을 밟고 있다. 일본 정부가 최근에 원전수명을 40년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언론들이 ‘수명제한’이라며 긍정적으로 보도했지만, 이는 원전을 최소 40년간 가동하겠다고 정부가 선언한 것이다. 예외라고 하면서 20년 추가가동도 허용했다. 원전마피아들은 원전을 멈추면 전력이 부족하다고 협박한다. 하지만 화력과 수력발전을 최대한 가동하면 전력은 결코 모자라지 않다.” 

- 한국에서는 지진도 쓰나미도 없으니 원전을 추진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많다. 지진이 없는 나라라면 괜찮은 것인가.

“지진과 쓰나미에 의하지 않은 원전사고는 숱하게 많다. 1957년 영국의 윈즈 스케일 원전에서 화재가 발생해 영국은 물론 유럽에 막대한 오염이 발생했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원전사고, 1987년 체르노빌 사고도 지진과 쓰나미와 관계없이 발생한 사고다. 지진과 쓰나미가 없으니 한국 원전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한국이 최근 중동국가로의 원전 수출경쟁에서 이겼다고 하고, 터키에 원전을 수출하려고 대통령이 움직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웃나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미안하지만 한국도 (원전 추진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원전사고로부터 1년이 지났는데 앞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우선은 원전 재가동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으로는 아이들을 방사능으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어른들은 이런 상황을 허용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어른들이 피폭당하더라도 솔직히 크게 마음 아프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무런 책임도 없을 뿐 아니라 방사능에 대한 감수성이 어른에 비해 크게 높다. 일본 정부는 신경쓰지 않고 있으니 시민 차원에서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신해 오염된 음식을 사먹자고 주장해왔는데.

“일본에서 생산되는 식품 중에서 오염도가 낮은 것을 아이들에게 먹일 수밖에 없고, 그러자면 어른들이 오염도가 높은 걸 먹어야 하는 것이다. 후쿠시마에서 모든 이들을 대피시키고 농사를 포기하도록 하면 되지만 정부가 그럴 의지가 없으니 주민들은 살기 위해 농사를 짓거나 낙농·축산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오염식품은 불가피하게 생산된다. 이것이 현실이니 오염이 덜 된 것을 아이들에게 돌리려면 어른들이 오염된 식품을 먹을 수밖에 없다.” 

- 지금 상황을 보면 전시보다도 정부가 무책임한 것 아닌가.

“원자력이라는 것은 국가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만약에 사고가 날 경우 한국 주민들도 정부로부터 버림받고 피폭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피폭이란 건 공습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지금 곳곳에서 제염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효과는 없는가.

“제염은 오염을 없앤다는 뜻이지만 사실은 오염을 저쪽으로 옮기는 ‘이염’일 뿐이다. 그럼에도 아이들 보호를 위해 학교 교정이나 유치원 교정, 공원 등에서는 흙을 5㎝라도 걷어내 옮길 필요가 있다. 옮겨놓을 장소가 마땅치 않은 것이 문제다. 고리야마의 한 학교 운동장의 흙을 걷어내 쓰레기장에 버리려다 주민들의 반대로 흙을 다시 학교 교정으로 가져간 일도 있었다.”

▲ 고이데 히로아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가장 일본에서 신뢰받는 원자력공학자이다. 그가 지난해 쓴 <원전의 거짓말>은 20만부가 넘게 팔렸고, 사고 1년이 지난 요즘도 강연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경향신문과의 1시간 남짓한 인터뷰 동안에도 여러 차례 인터뷰 요청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1968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기여하겠다는 꿈을 품고 국립 도호쿠(東北)대 원자핵공학과에 입학했으나 1970년 미야기현 오나가와(女川) 원전 반대운동에 참가하면서 ‘반원전’의 길로 들어섰다. ‘원전을 없애기 위한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1974년 학풍이 자유로운 교토대 원자로실험소에서 조교로 취직해 38년이 지난 지금도 ‘조교’의 직함을 유지하고 있다. 조교는 우리나라 대학의 ‘조교수’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