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상·하원 과반 꿰찬 아베, ‘자위대 군대화’ 개헌 본격화할까

서의동 2013. 7. 21. 23:48
ㆍ집권당, 일 참의원 선거 압승

21일 열린 일본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자민당과 연립여당 파트너인 공명당이 압승해 참의원 의석 과반수를 확보함으로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장기집권의 길을 텄다. 지난해 말 중의원 선거에 이어 연승을 거둠으로써 아베 정권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정권(1982~1987년)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2001~2006년)에 필적할 정도로 ‘롱런’할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유력시되고 있는 2020년 하계올림픽의 도쿄 유치도 정권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이번 선거 이후 2016년 7월 참의원 선거 때까지는 국정선거가 없는 ‘황금의 3년’을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집권 이후 반년 동안 경제문제에 치중하며 강약을 조절해온 아베가 선거 이후 ‘필생의 목표’인 헌법 개정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 선거 없는 ‘황금의 3년’ 맞아 “경제 매진”서 선회 가능성
연정 공명당 반대가 관건… 대외관계도 장기집권 변수


입 닫은 ‘망언 제조기’ 일본유신회 공동대표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21일 오사카 호텔에서 참의원 선거 개표를 지켜보면서 수건으로 입을 닦고 있다. 이날 선거에서 일본유신회는 하시모토와 이시하라 신타로 공동대표의 잇단 망언 퍼레이드 탓에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참패했다. 오사카 | AP연합뉴스

하지만 아베가 곧바로 개헌 드라이브를 걸 수 있을지에는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우선 여론이 개헌에 부정적인 데다 연립여당 파트너인 공명당도 개헌 움직임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천명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단독으로 과반수를 얻지 못한 만큼 공명당과의 협력이 앞으로도 필요하게 됐다. 더구나 선거를 감안해 침묵을 지켜온 자민당 내 온건파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당내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우려를 감안한 듯 아베 총리는 선거 승리가 확정된 뒤 21일 밤 NHK와의 인터뷰에서 우선 과제로 “경제정책의 성과를 서민들이 실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당분간 경제정책에 주력할 것임을 강조했다. 헌법 개정 문제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불가능하다”며 개헌에 부정적인 여론을 거론하면서 “(헌법 개정에 관한) 논의를 깊이 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며 서두르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간사장도 최근 선거유세에서 “자민당이 압승한 뒤에도 공명당과 긴밀하게 협의해 정권을 운영할 것”이라며 개헌에 부정적인 공명당을 배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베의 장기집권 여부에 최대 변수로 꼽히는 것은 아무래도 대외관계로 보인다. 상·하원에서 다수를 차지하고도 중국, 한국과의 긴장관계를 풀어내지 못할 경우 아베 정권의 무능력이 추궁받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세계전략 관점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심화시키고 있는 미국이 아베 정권을 불안시할 경우 정권의 롱런도 위협받을 수 있다.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 문제에 대해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이 때문에 동아시아가 불안정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미국이 친중 노선을 유지하는 한 아베 정권이 튀지 않도록 견제할 것으로 보인다.

이종원 와세다대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아베 정권이 선거 이후 개헌이나 역사인식 등 이념적 쟁점에 힘을 기울이다 주변국의 반발을 살 경우 정권 기반이 급속히 와해될 수 있다”면서 “이 때문에 정권 내부에서도 신중론이 대두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정책에서도 만만치 않은 과제가 도사리고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과 원전 재가동 문제는 여론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오는 10월로 예정된 소비세 인상 문제도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와 한편으론 1000조엔에 이르는 막대한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해서는 세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 속에 선택을 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아베노믹스로 기업경영은 호전되고 있는 반면 물가 인상으로 서민생활이 어려워지면서 격차가 심화되는 문제에 대한 해법도 마련해야 한다.


꼬여 있는 한·일관계 풀 첫 시험대는 아베 ‘8·15 야스쿠니 참배’ 여부

아베 정권은 참의원 선거 이후 경색된 한·일관계를 풀기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한국 등 근린국과의 외교를 안정시키지 못할 경우 정권 유지에 치명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나 진정성을 보일지는 불투명하다. 일본의 진정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가 8·15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여부다. 아베 총리나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 등을 비롯한 아베 정권의 주요 각료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가게 될 경우 한·일관계는 다시 한번 경색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일본도 이런 점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8·15를 문제없이 넘길 경우 한·일관계는 호전의 전기를 마련하게 될 가능성이 있지만, 한·일 간에 도사리고 있는 여러 현안들은 해법이 녹록지 않은 것들이어서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도 주목된다.

최대 현안은 역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역사인식 문제이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등을 인정하고 사죄한 1993년 ‘고노 관방장관 담화’와 1995년 식민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총리 담화’ 등에 대해 한때 부정시하는 태도를 비치기도 했던 아베 정권이 이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배상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답을 내놔야 한다.

그러나 아베 정권의 속성상 ‘올바른 역사인식’을 강조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납득할 수준의 해법을 내놓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한·일 간에는 이 밖에도 독도 문제, 식민지 시기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 교과서 기술 개편 등 복병이 산적해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서는 일본 정부 안에서도 한국과의 관계 회복에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웃나라이기 때문에 무조건 관계 회복을 해야 한다는 식의 발상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들도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기류를 전했다. 

하지만 한·일관계를 방치할 경우 일본의 외교적 고립은 심화되고, 아베 정권에 대한 미국의 불신이 가중될 수 있는 만큼 하반기 들어 본격적인 교섭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달 들어 사이키 아키타카(齋木昭隆) 외무성 신임 사무차관과 김규현 외교부 제1차관이 양국을 교차방문한 것은 참의원 선거 이후 양국의 물밑 노력이 본격화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