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후쿠시마 아이엄마 "아이 손톱과 머리카락을 모아놨다"

서의동 2011. 6. 9. 14:42
지난 3일 일본의 아이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도쿄의 관청가인 가스미가세키에 출현했다. 숫자는 20여명 안팎이지만 관청가에서는 보기드문 광경이라 이목이 쏠렸다. 일본 정부의 어린이 방사능 대책이 무신경한 데 화가 난 아이엄마들의 모임이다.

그 모임을 주도한 도쿠라 유키에씨에게 후쿠시마와 도쿄에 사는 아이엄마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하자 신속하게 섭외를 해줬다. 인터뷰에는 도쿄 아다치구에 사는 무라카미 후미에씨(32)와 하세가와 요코씨(가명, 32)가 참석했다. 무라카미씨는 3살, 6살 아이, 하세가와씨는 4살난 딸이 있다.(딸을 직접 데리고 회사로 왔다)

무라카미 후미에씨/by 서의동



지면사정상 싣지 못한 부분까지 포함해 녹취한 내용을 그대로 싣는다. 

-(하세가와씨) 도쿄에는 언제 와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 

"도쿄에 친척이 없어 피난소를 이리 저리 전전하다가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맨션을 빌려주겠다는 이와 연락이 닿아서 세타가야구에서 5월 중순부터 머무르고 있다. 집세도 무료다. 오키나와나 해외에서도 자기네 있는 곳으로 피난오라는 이들이 인터넷에 찾아보면 꽤 있다. 남편은 후쿠시마에서 직장을 다니다 그곳을 그만두고 함께 내려왔는데 다행히 곧 재취업이 됐다. 그나마 다행이다."
 
-(하세가와) 후쿠시마 사정은 어떤가. 
 "원전에서 직선거리로 50km정도 떨어진 고리야마에서 죽 살았다. 50km라 정부가 정한 피난구역은 아니니, 자주(自主)피난을 한 셈이다. 부모님과 친척들도 다 그곳에 계시지만  아이 때문에 가고 싶지는 않다. 그쪽에서 할머니나 여동생 등이 가끔씩 만나러 온다. 집도 그대로 남아 있다. 가서 짐도 챙기고 해야 하지만 못가고 있다.
 지진과 원전사고 초기에는 생각못했다가 2개월 넘어서면서 '역시 피난하는게 옳았던 걸까'라는 후회가 들기 시작했고 뒤늦게 피난하는 이들도 많다. 우리도 처음엔 가더라도 어디로 가야 좋을지 망설여졌고, 한편으론 정말 그렇게 위험한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사고 초기엔  "괜찮으니 걱정마라"는 식으로 보도하던 방송, 신문들의 논조가 바뀌면서 불안이 커졌다. 하지만 방사성물질은 처음에 대부분 다 나왔을 거 아니냐? 그런 거 생각하면 분하다."
 
-후쿠시마 어린이들 고생많다고 들었다. 
 "아이 친구들은 유치원 다닐 때 마스크와 모자는 물론 긴소매 옷을 입고 다닌다. 고리야마는 내륙쪽이라 더울 땐 무척 덥다. 앞으로 생활이 괴로울 것 같다.
 30분 정도는 몰라도 기본적으로 창문을 안연다. 바깥 공기가 들어올까봐 에어콘도 켜지 않는다. 이불도 안에서 말린다. 요즘은 환기를 하지 않고 내부공기 순환형 에어콘이 인기이던데 후쿠시마 현내 학교에 이런 에어컨을 설치해야 한다."
 
-아이들 보호를 위해 일본 정부가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보는가. 
 "우선 어린이들에게 적용하는 20밀리시버트는 근거없고, 납득하기 힘들다. 국제기준인 1밀리시버트로 낮춰달라는 것이 대전제다. 그리고 피난이 필요할 정도로 위함하다고 판단되면 피난권고를 제대로 내려달라. 그리고 피난민들의 수용지를 전국으로 넓힐 필요가 있다. 방사성 물질 제거노력도 좀더 분발해달라. 교정의 흙을 객토하거나 학교 물청소 등을 지금은 학교가 자체판단으로 하고 있다. 이런 걸 정부가 의무사항으로 지시할 필요가 있다. 자치단체들의 대응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주민들이 혼란스럽다. 정부가 이런 문제들을 종합해서 판단하고 지시하길 바란다. 

하세가와 요코(가명)씨/by 서의동



-(무라카미씨에게) 아이들 때문에 불안을 느끼는가.
 "도쿄 북부 아다치구에 살고 있다. 집주변 공원을 측정했는데 시간당 0.12~0.16마이크로시버트에 달했다. 아라카와의 하천부지 풀밭은 0.3~0.4마이크로시버트나 된다. 하천부지는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인지 방사선량이 높은 편이다. 집 주변에도 연간 1밀리시버트가 넘는다. 외부피폭도 그렇지만 내부피폭이 특히 걱정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는가.  
 "후쿠시마 사고직후 1개월 가량은 밖에서 놀지 못하게 했다. 마스크를 쓰도록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공원이나 야외에서 놀게 할 필요가 있지만 걱정이다. 동네 공원의 모래밭도 0.1마이크로시버트로 사고전에 비해 2배라고 한다. 워낙 아이들이 흙장난을 좋아하니 흙을 갈아줬으면 좋겠지만 구청에서 그런 것까지 신경안쓰는 것 같다.(무라카미) 
 "
아이들을 밖에서 못놀게 하는건 불가능하다. 납득이 안가는 거는 얼마전에 도쿄전력 여사원이 1밀리시버트 넘어문제가 됐다고 하는데 후쿠시마 아이들은 20밀리시버트도 괜찮다는 정부의 태도다."
 
 
-모유에도 방사성물질이 검출됐는데.
  "도쿄도 내에서도 모유에서 방사성물질이 나온다고 한다. 세타가야구의 어떤 엄마도 그랬다고 들었다. 이는 내부피폭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식품의 방사능기준을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 잠정기준치도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내부 피폭자가 많아질 것이다. 물도 생수 사다 먹는다. 쌀 씻을 때 첫번째 물은 반드시 생수를 쓴다. 그때 쌀이 수분을 많이 머금으니까. 세탁물도 전부 방에서 말린다. 내부피복이 외부피폭보다 훨씬 심각하지만 이와 관련한 대책이 없는 것 같다.
 
-그밖에 식생활은 어떻게 하는가.
  "요구르트나 밀크제품 등은 반드시 산지가 어딘지를 확인한다. 도호쿠 쪽 제품은 사지 않는다. 생선은 거의 안먹는다. 생선은 원산지를 알 수 없으니 먹을 수가 없지 않느냐. 지금까지 적지 않게 생선을 먹었는데...화가 난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서는 '탈원전'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
이렇게 국민이 필요없다고 이야기하면 충분히 알텐데 일부 집단의 이익 때문에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고 있는 걸 보면 분하다. 오늘도 신문 보니까 국가전략대책실이 작성한 문서에 '원전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이 들어있다는 기사가 있더라. 우리같은 약자들이 일어나서 양심에 호소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본다."
 
-방사선측정기 구입이 많아지는 것 같다.
 "나도 앞으로 살 계획이다(하세가와). 후쿠시마에서는 많이들 갖고 있다. 내부피폭을 재는 기계(whole body counter)도 희망자에게 보급하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요오드제는 먹이고 있나.
 "아직 안 먹였다. 이와키시는 폭발 직후에 40대이하 여성과 어린이 모두에게 요오드제를 배급했다. 하지만 다른 자치단체에서는 하지 않고 있다. 
일본을 보면 '이 정도면 괜찮다'는 수치는 매우 많다. 하지만 피폭방지 대책은 거의 없다. 지금부터 이런 식인데 나중에 만성피폭으로 병이 나더라도 정부가 책임질지 의문이다. 아이의 머리카락을 몇군데 뽑아놓고, 손톱도 깎으면 보관해놓고 있다. 어느 의사가 트위터에 나중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대비하라며 올린 글을 본 뒤 '증거보전' 차원에서 시작했다."

-곧 여름이 본격화되는데.
 "여름 방학때 아이들을 집단소개할 필요가 있다. 여름캠프식으로 아이들을 피난보내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이런 정보를 제공하는 활동을 해줬으면 좋겠다. 자치단체들이 이런 일에 기민하게 움직이니 협력하면 될 것이다. 오키나와 같은 곳에서도 받아주겠다는 곳이 적지 않으니 이런 곳과 교섭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