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위험천만한 원전들 곳곳에... ‘폭탄’ 끌어안고 사는 불안한 일본

서의동 2011. 5. 25. 11:17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에서 남쪽으로 약 100㎞ 떨어진 이바라키 현의 도카이(東海) 제2원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난 3월11일 이곳에서도 아슬아슬한 상황이 벌어졌다. 지진으로 비상정지한 원자로를 100도 이하의 ‘냉온정지’ 상태로 만드는 데 평소보다 두배 넘는 사흘 반나절이 걸린 것이다. 운영사인 일본원자력발전은 “원자로와 터빈발전기가 안전하게 정지됐다”고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정황은 공개하지 않았다. 가동된 지 5년 밖에 안된 아오모리 현 히가시도리(東通) 원전도 지난달 7일 진도 4의 지진으로 외부전원이 끊겼다.
 지난달 26일에는 동해쪽 후쿠이 현의 쓰루가(敦賀) 원전 2호기에서 냉각수의 방사성물질 농도가 치솟아 가동이 중단됐다. 앞서 지난해 8월에는 후쿠이 현의 핵연료 재처리를 위한 고속증식로 ‘몬주’에서 무게 3.3t, 길이 12m의 대규모 설비를 운반하던 도중 크레인 줄이 끊어지면서 이 설비가 원자로에 처박히는 사고가 발생했으나 9개월이 지나도록 빼내지 못하고 있다.


원전 대부분 활단층에 위치… 방진책 무의미


주부(中部)전력이 간 나오토 총리의 요청으로 지난 9일 시즈오카 현의 하마오카 원전 가동을 전면 중단키로 했지만 일본 전역에는 위험천만한 원전들이 산재해 있다. 일본 정부는 하마오카 이외의 원전에 대해서는 ‘가동해도 괜찮다’는 입장이지만 원전 지역 주민과 전문가들사이에서 불안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크고 작은 사고와 고장이 되풀이돼온 데다 지진대에 위치해 유사시 대참사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원전이 숱하기 때문이다. 현지 전문가들이 당장 멈춰야 해야 한다고 꼽는 것만 해도 후쿠이 현의 쓰루가·미하마(美浜), 에히메 현의 이카타(伊方) 원전 등 10곳에 이른다.
 


가동이 중단된 하마오카 원전 외에 지진 관련 위험성이 가장 큰 곳으로 지목되는 곳은 쓰루가 원전과 이카타 원전이다. 후쿠이현 쓰루가 반도 북부의 쓰루가 원전은 건물 부지 바로 밑에 활단층이 지나고 있다. 활단층은 신생대에 활동했고 다시 활동할 가능성이 큰 단층이다. 그만큼 지진이 일어날 위험이 크다는 얘기다.

도요대학 와타나베 미치히사 교수에 따르면 활단층 위에서 지진이 발생할 경우 지면이 미끄러져 움직이기 때문에 아무리 내진 대책을 세워도 건물의 기초가 붕괴돼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일본에는 이런 활단층이 2000곳 넘게 있다. 부근에 활단층이 없는 원전은 사가현의 겐카이(玄海), 이바라키현의 도카이 제2원전 등 두 곳 뿐이다. 와타나베 교수는 “쓰루가 원전은 활단층의 존재가 공식화돼 있고 아오모리 현의 히가시도리 원전과 롯카쇼무라(六ケ所村) 재처리공장 부지도 활단층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에히메 현의 이카타 원전은 서일본을 횡단하는 일본 최대규모 단층인 ‘중앙구조선’의 바로 위에 있다. 예상 지진 규모는 매그니튜드(M) 8.6으로 동일본대지진(M 9.0)에 버금가는 대참사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도 출간된 <원전을 멈춰라> 저자 히로세 다카시는 최근 펴낸 저서 <후쿠시마 원전, 멜트다운>을 통해 “이카타 원전이 위치한 사다미사키 반도는 단층 활동으로 생겨난 토지인 만큼 주변에 대지진을 유발할 수 있는 활단층이 다수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활단층 속속 발견..."모든 원전 멈춰야"

시사주간 <아에라>가 전문가 9명을 대상으로 ‘위험도가 가장 큰 원전 5곳’을 물은 결과 쓰루가·이카타 원전외에 미하마·다카하마(高浜)·오이(大飯)원전과 몬주(이상 후쿠이 현), 히가시도리,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이상 아오모리 현), 오나가와(女川) 원전(미야기 현), 후쿠시마 제2원전(후쿠시마 현) 등이 꼽혔다. 
간 총리는 하마오카 원전의 가동중단 사유로 ‘30년내 대지진 발생확률이 87%’라는 예측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지진 위험도 0%였던 후쿠시마 원전이 M 9.0의 대지진으로 파괴된 점을 감안하면 일본 내 어느 원전도 안전하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고이데 히로아키 교토대 원자로실험소 조교는 <아에라>와 인터뷰에서 “새로운 활단층이 속속 발견되고 있어 어디서 지진이 발생할지 예측불허”라며 “모든 원전의 가동을 정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각 전력회사들이 원전 방재대책에 나섰지만 아직은 ‘낙제점’ 수준이다. 후쿠시마 원전이 예측치의 3배에 가까운 높이 15m의 쓰나미로 비상전원이 끊기면서 참사로 이어진 만큼 비상용 디젤발전기를 원전건물 내부로 옮겨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지만 이를 실행한 곳은 없다. 비상 발전기의 이설은 대규모 공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부분 비상 발전차를 배치하거나 발전기를 추가 설치하는 정도에 머물렀다. 쓰나미 방재대책도 26개 발전소가 방파제 보강작업을 막 시작한 단계다.

[뉴스라운드업]  후쿠시마 원전사고 


원전성하촌의 각성 


원전이 위치한 자치단체들은 ‘원전 성하촌(城下村)’으로 불려왔다.
하마오카 원전이 위치한 시즈오카 현 오마에자키시의 경우 원전 관련 교부금과 원자로에 매겨지는 고정자산세 등 원전관련 수입이 71억2100만엔(약 960억원)으로 올해 시 세입의 42.4%에 달한다. 1974년 전원개발촉진세법, 전원개발촉진대책특별회계법, 발전용시설주변지역정비법 등 ‘전원(電源) 3법’이 만들어지면서 지자체에 막대한 돈이 뿌려져 온 것이다. 원전 14기가 몰려있어 ‘원전긴자(原電銀座)’로 불리는 후쿠이 현에는 2009년까지 35년간 3245억엔(약 4조3800억원)이 지급됐다.

하지만 이 보조금은 지역의 원전 의존도를 심화시키는 ‘마약’이다. 보조금은 착공부터 운전개시까지 10년간 정점에 달한 뒤 점차 줄어들고, 원전시설에 대한 감가상각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고정자산세도 급감한다. 지자체들은 전력회사가 뿌리는 막대한 보조금을 흥청망청 써오다 재정난에 직면하자 새로운 원전유치에 목을 매는 악순환이 초래된다. 후쿠이 현 미하마초의 경우 미하마 원전1호기의 조기 폐로가 결정되자 4호기 신설을 위해 지역 상공인들이 발벗고 나서고 있다. 유치가 결정되면 착공부터 운전개시까지 10년간 449억엔(약 6060억원)의 교부금이 들어와 재정불안을 단숨에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하마오카 원전 가동중단 등을 계기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니이 세키나리 야마구치 현 지사가 현내 가미노세키초에 추진 중인 원전 신규건설과 관련해 공유수면매립허가 연장불허를 검토키로 한 것은 이런 기류변화를 나타내는 사례다. 후쿠이 현 니시카와 카즈미 지사도 지난 20일 정기점검 중인 현내 원자력발전소의 여름 재가동을 현 단계에서 인정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자치단체가 반대할 경우 원전가동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주민들의 ‘각성’이 ‘탈원전’의 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고나카 스스무 전 야마구치현 의원은 지난 20일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주민여론이 극적으로 바뀌었고 현 당국도 이런 변화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