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대지진1년] 방사능 없는 채소가게 운영하는 후쿠시마 시민들

서의동 2012. 3. 7. 11:00

ㆍ방사능 정보교류 마당 역할

하모루 진열대에 가득찬 유기채소들. 야채가게라기 보다는 카페 분위기가 물씬났다./by 서의동


후쿠시마(福島)현 후쿠시마시 신마치(新町) 상가에 자리잡은 야채가게 ‘하모루’. 10평 남짓한 공간에 교토(京都), 가고시마(鹿兒島) 등 서일본 쪽에서 재배된 야채들이 비닐포장에 쌓여 진열돼 있다. 야채가게라고는 하지만 야채만을 파는 곳이 아니라 방사능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나누는 교류의 장이기도 하다. 서점 책꽂이를 연상케 하는 진열대에 소량의 야채들이 진열돼 있고, 가고시마 재배농민 사진과 재배방법을 소개한 글이 붙어 있다. 이곳에서 파는 야채의 방사능 측정 결과 세슘 134, 137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결과 보고서도 진열대 입구에 게시돼 있다. 

진열대에는 각 채소의 방사능측정결과가 붙어있다.


6일 낮 12시30분쯤 하모루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점심 장을 보러 온 손님들이 바구니에 담긴 야채들과 재배지에 관한 설명을 유심히 살펴본 뒤 물건을 골랐다. 이곳 직원은 “많을 경우 하루에 20~30명이 온다”며 “시내 슈퍼마켓보다 2배가량 비싸지만 무(無)방사능은 물론 무농약이라는 점에서 고객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안쪽 진열대에는 방사능에 관한 기초지식을 알려주는 소책자와 원전문제를 다룬 책들이 진열돼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탁자와 의자 2개도 놓여있다. 가게 내실의 다다미방에서는 간담회도 자주 열린다.

하모루는 후쿠시마 시민단체 ‘아이들을 방사능으로부터 지키는 후쿠시마 네트워크(후쿠시마 네트워크)’가 지난해 11월 만들었다. 영어 하모니(harmony)의 뜻처럼 여러 사람의 힘과 지혜를 합치자는 취지에서 정한 이름이다. 사고가 난 원전에서 50㎞가량 떨어져 있는 후쿠시마시는 후쿠시마현 안에서도 공간 방사선량이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후쿠시마 네트워크 사토 사치코(佐藤幸子·52) 대표는 “원전사고 이후 아이엄마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궁리한 끝에 만들었다”고 말했다. 유기농업을 30년 가까이 해온 사토는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를 계기로 농사와 양계를 그만뒀다. 사토 대표의 논밭은 후쿠시마현 내에선 비교적 오염이 덜 된 가와마타에 있다. 그러나 원전사고 이후 토양을 채취해 프랑스에 있는 연구기관에 측정을 의뢰한 결과 ㎏당 600㏃(베크렐)이 넘는 방사성물질이 검출됐다. 이후 지난해 3월 말 가와마타 학교 교정에서도 기준치를 넘는 방사선량이 측정됐다. 일본 정부가 4월5~7일 각급 학교의 공간 방사선량을 측정한 결과 후쿠시마현 내 학교 75%가 시간당 0.6μ㏜(마이크로시버트)를 넘어섰다. 0.6μ㏜는 ‘방사선관리구역’에 해당되는 것으로, 법적으로 18세 미만 청소년들을 놔둬서는 안된다.

“이 결과를 토대로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는 진정을 냈지만 정부가 이후 기준선량을 연간 20m㏜(밀리시버트)로 정하더군요. 아이들을 피난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를 만들기 위해 엄청나게 느슨한 기준을 설정하는 꼼수를 쓴 것이죠.”

시민단체 '아이들을 방사능으로부터 지키는 후쿠시마 네트워크' 대표인 사토 사치코씨. 원래는 농부출신이었다고 한다./By 서의동


사토 대표는 시민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정부만 믿고 있다간 큰일이겠다 싶어 지난해 5월 ‘후쿠시마 네트워크’를 출범시켰다. 아이들의 피난처 알선을 비롯해 강연회 개최, 개별상담 등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시민차원에서 가능한 한 모든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모루는 가게 운영취지에 뜻을 같이하는 서일본 지역의 농민들의 호응을 얻어 다양한 곳에서 야채를 구입하고 있다. 

사토 대표는 지난 1년간 정부에 적지 않게 실망했다고 한다. 후쿠시마 네트워크가 하는 일도 따지고 보면 정부나 행정기관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토 대표는 최소한으로 정부가 해줬으면 하는 게 뭐냐고 묻자 “후쿠시마에 있는 아이들이 적어도 1년에 2~3개월 정도는 방사능이 없는 곳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일시피난을 시키는 일”이라며 “일본 정부는 체르노빌 사태 당시 구 소련 정부보다도 못하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