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침을 열며]벳푸 온천에서 체감한 일본의 상인정신

서의동 2016. 12. 5. 16:31

일본 오이타현 벳부(別府)에 있는 ‘효탄온천’은 미슐랭가이드가 발행하는 관광가이드 일본판에 2007년부터 5년 연속으로 최고등급인 ‘별3개’를 받았다. 온천이 널린 규슈(九州)지역에서 세계 최고 권위의 여행정보안내서의 ‘별3개’ 인증을 받은 곳은 공공 미술관과 이 온천 뿐이다. 등재되는 것 자체가 영광이고 홍보거리이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별3개 표시는 눈에 띄지 않는다.  

“처음엔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고 으쓱했죠. 근데 생각해보니 이게 오히려 손님들의 신뢰를 잃는 독이 될 것 같아 더럭 겁이 났어요.”(고노 준이치 사장) 이런 정도로 ‘별3개’씩이나 받느냐고 욕먹을까봐 홍보 팜플렛에도 넣지 않았다. 

일본내 온천수 용출량 1위를 자랑하는 간나와(鐵輪) 지구에 있는 이 온천 입구에는 ‘순간냉각장치’가 전시돼 있다. 이름만 들으면 반도체나 최첨단 소재가 동원됐을 것 같지만 실물은 대나무 가지를 싸리빗자루 모양으로 정렬해둔 소박한 모양이다. 그런데 섭씨 100도에 달하는 온천물이 3~4중으로 정렬된 대나무 가지를 통과하는 단 몇초 사이에 50도 이하로 식는다. 물이 대나무 가지를 타고 흐르면서 물방울로 분해되면 표면적이 순식간에 넓어지게 되는데 공기에 닿는 면적이 커질수록 열이 빨리 달아나는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효탄온천의 고노 사장이 순간냉각장치를 설명하고 있다.


“온천원수를 밤새도록 식혀서 다음날 온천물로 사용해 왔는데 밤 늦게 찾아오는 손님들이 늘어나서 물 대기가 곤란하게 됐어요. 찬물을 섞으면 빠르지만 수질이 떨어지니 손님들에게 그런 물을 내놓을 순 없었죠.” 1921년부터 3대째 온천사업을 해온 고노 사장은 궁리 끝에 2005년 오이타현과 공동으로 이 설비를 개발했고, ‘물 식힐 걱정’이 해결되자 영업시간을 심야 1시까지로 연장할 수 있었고 매출도 덩달아 늘어났다. 정직이 발명의 어머니가 된 셈이다.   

지난 4월 중순 규슈섬 구마모토 일대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상당수 지역이 피해를 입었고 관광객이 급감했고, 한국인 관광객 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지진 넉달 뒤인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일본 포린프레스센터의 초청으로 구마모토(熊本), 오이타(大分)을 비롯한 규슈 일대를 돌아봤다. 구마모토 성의 중심건물인 천수각의 지붕이 무너졌고, 아소 신사는 입구건물이 통째로 주저 앉았다. 화산으로 유명한 아소산 정상을 지나는 도로는 통행금지 상태다. 그런데도 각 지자체의 브리핑을 들어보니 웬걸, 8월로 접어들면서 관광객수가 지난해 수준으로 거의 복원됐다. 

우선은 일본 정부의 신속하고 과감한 지원이 있었다. 주민 21명이 숨지고 지역내 건물 8할이 붕괴된 인구 3만여명 규모의 마시키마치(益城町) 관계자는 “적어도 열흘 정도는 걸릴 것 같던 국도 복구가 이틀만에 완료됐다”고 했다. 5년전 동일본대지진 취재 당시 혀를 내두를 정도로 늑장이던 당시와 전혀 달랐다. 7조원이 넘는 예비비를 규슈지역에 쏟아붓는가 하면 ‘부흥할인(割り)’이라는 이름으로 규슈지역 숙박·교통요금을 최대 70% 할인해주는 특별할인 이벤트를 실시한 것도 컸다. 

하지만 막상 돌아보니 일본의 관광을 지탱해온 민간의 저력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 저력은 정직과 궁리(아이디어)에서 나온다. 정직이 신뢰를 낳고, 궁리가 관광 컨텐츠를 풍성하게 만든다. 효탄온천 사장은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지만 별3개가 붙은 것은 “어떻게 하면 손님들에게 좋은 온천수를 공급할 수 있을까”를 늘상 궁리해온 노력이 인정받은 결과일 것이다.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구마모토성의 안내 팜플렛에는 천수각과 야구라(櫓)로 불리는 망루, 석벽의 파손된 사진이 설명과 함께 실려 있다. 무너진 석벽을 담은 사진에는 “(석벽의 무너진 형태를 보면) 벽이 어떻게 축조됐는지가 엿보인다”는 설명이 붙는다. 사고가 나면 가림막부터 치고 보는 한국과는 딴판이다. 

‘아베 마리오’를 연상케 하는 ‘유희(遊戱)정신’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 1일 구마모토현(縣) 청사에서 만난 가바시마 이쿠오(蒲島郁夫) 지사는 해외에서도 인기있는 ‘구마몬(구마모토를 상징하는 곰인형 캐릭터)’의 안부를 기자들이 묻자 “기왕 오셨는데…”라며 구마몬을 회견장에 깜짝 등장시켰다. 

인구가 정체된 사회에서 관광은 ‘제2의 내수’다. 반도체나 자동차를 파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인구감소에 고령화가 심각한 일본이 그래도 활기를 띨 수 있는 데는 관광의 힘이 크다. 이를 단순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엔화약세 정책 때문으로 돌리면 일본인들의 상인정신을 배울 수 없다. 한국에서 ‘바가지요금에 볼거리가 없다’는 불만이 높아지는 동안 일본은 2020년 관광객 4000만명 유치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2016년 9월5일자 <아침을 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