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47

[경향의 눈] 보수야당이 띄운 ‘사상의 시장개방’(2021.5.20)

국민의힘의 4·7 재·보선 승리에 대해서는 ‘이제 표를 줘도 될 만한 당이 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장 그럴듯하다. 여권에 아무리 실망했더라도 극우와 손잡은 황교안 대표의 자유한국당이었다면 표를 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들이 주위에 꽤 있다. 지난해 총선 이후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행보가 당의 이미지를 중화(中和)시켰는데 그중 5·18묘지 앞 ‘무릎사죄’가 컸다. 한여름 뙤약볕 돌바닥에 무릎을 꿇은 80대 노정객의 모습은 빌리 브란트 총리의 ‘역사적 사죄’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의힘을 일으켜 세우기엔 족했다. 그가 떠났으니 ‘도로한국당’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요즘 그 당의 움직임을 보면 ‘글쎄요’다. 지난달 출판사 민족사랑방이 북한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를 출간했다. 보수단체가 법원에 판매·배포 금지 가처분..

칼럼 2021.05.25

[경향의 눈] ‘최종단계’를 왜 미리 걱정하나(2021.4.22)

미·중 갈등 정세를 놓고 보수성향의 지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주장은 이런 것이다. “한국도 이제 미국 쪽에 확실히 서야 할 때 아닌가. 균형외교도 좋지만 종국에는 미국과 함께 가는 게 맞지, 중국과 함께 갈 수 있나?” 그의 말을 이해 못할 건 아니지만, 갈등의 최종단계(end state)를 미리 당겨와 당장 양자택일하라는 태도에는 위화감이 들었다. 보수논객들은 미·중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으니 균형외교를 그만 접으라고 한다.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미국의 중국 견제에 맞장구치자 ‘거봐라’며 한·미 동맹의 완전 복원을 외친다. 지금의 한·미관계가 복원이 필요할 만큼 손상됐다는 것인지, 문재인 정부가 ‘반미 행각’이라도 벌였다는 건지 요령부득이다. ‘퍼줬다’는 비판을 받을 만큼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칼럼 2021.05.25

[경향의 눈] 존엄을 지키는 한·일 화해 방안(2021.3.25)

2+2 회담차 한국을 찾은 미국 국무·국방장관이 청와대를 예방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들에게 “한·일관계 복원에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11년 만에 미국 주요 장관들이 방한한 진짜 목적이 한·일관계 복원임을 시사하는 장면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구축 중인 다자 연대에서 가장 약한 고리를 주요 장관들의 첫 순방지로 정했다는 분석대로다. 며칠 뒤 서욱 국방장관도 “한·일 안보협력이 가치 있는 자산”이라고 했다. 한·일의 불화가 북한 위협보다 더 걱정이라던 바이든 행정부로선 흐뭇해할 만한 상황 전개이다. 문제는 한·일이 미국의 한마디에 쉽사리 풀릴 사이인가 하는 점이다. 한·일관계는 갈등이 단단히 구조화돼 있다. 두 가지다. 우선 양국 간 힘의 차이가 현저히 좁혀졌다. 1965년 한·..

칼럼 2021.05.25

[경향의 눈] ‘헬조선’과 ‘국뽕’을 넘어서려면(2021.2.25)

1980년대 중반의 ‘사회구성체 논쟁’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신식국독자’(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인가, ‘식반’(식민지반봉건사회)인가를 둘러싼 논전이 대학가를 달궜다. 어떤 쪽이건 한국 경제가 대외종속적이고 전근대성을 면치 못하니 변혁이 필요하다는 인식론이었다. 하지만 당시 경제는 1970년대 말 불황과 1980년대 초반 외채위기를 딛고 재도약하던 참이었다. 이론이 미처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경제가 역동하던 시기였던 것이다.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은 민주주의는 후퇴시켰으나 경제 볼륨과 역량을 키우는 데는 소홀하지 않았다. 박정희는 노동은 물론 자본도 통제하는 총력전 방식으로 ‘원시적 축적’을 꾀했다. 박정희식 국가자본주의가 막을 내린 것은 1997년 외환위기다. 김대중은 국제통화..

칼럼 2021.05.25

[경향의 눈]'먹방' 대신 배달을 해보라(2020.1.28)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3일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어묵을 먹었다. 민주당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예비후보들이다. 국민의힘 나경원 예비후보는 같은 날 양천구 신월시장에서 호떡을 먹었다. 선거철임을 알리는 정치인들의 ‘먹방’ 사진들이 포털 뉴스난을 장식했다. 그런데 올해 먹방투어는 안 하느니만 못해 보인다. 코로나 시대에 예비후보와 수행원, 기자 수십명이 비좁은 시장통로에 뭉쳐 있는 것부터 우선 거슬린다. ‘국민들은 5명도 못 만나게 하면서 정치인들은 떼로 몰려다니냐’는 기사 댓글들은 틀린 게 없다. 모처럼 시장까지 와놓고 상인들과 제대로 대화하는 것 같지도 않다. 경기가 바닥이니 딱한 사정들을 꽤나 들을 법한데도 동영상을 보면 ‘어묵이 진시황 때 만들어졌다’ 따위의 ‘..

칼럼 2021.05.25

[경향의 눈]국가보안법 놔두고 ‘표현의 자유’ 외치나(2020.12.31)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 누명을 썼다가 지난 25일 대법원 판결로 7년 만에 무죄가 확정된 홍강철씨는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받은 경험을 묻자 “1주일이 아니라 하루도 버티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가 갇힌 독방은 안에서는 열 수 없는 구조였고, 폐쇄회로(CC)TV가 24시간 감시했다. 구치소에 머물며 검찰에 가서 조사받는 방식과 달리, 생활공간과 조사공간이 동일할 경우 피조사자는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한다. 실상이 폭로되면서 조사기간이 단축되고, 독방 수용은 폐지됐다. 국가정보원법 개정으로 대공수사권도 3년 뒤 경찰로 이관된다. 하지만 국정원이 탈북인들을 조사하는 기본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홍씨 변호인인 장경욱 변호사는 “이대로라면 국정원의 간첩 생산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칼럼 2021.05.25

[경향의 눈] '바이든의 전략적 인내' 없게 하려면(2020.11.26)

‘미국 오바마 정부 초기 북한이 쏜 미사일 한 방이 전략적 인내를 초래했다’는 인식에는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 ‘은하 2호’를 발사한 것은 2009년 4월5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 특별연설을 하기 몇 시간 전이었다. 세계의 시선이 프라하에서 일제히 평양으로 쏠리며 체면이 구겨지자 오바마의 대북 태도가 일거에 경직됐다. 그런데 북한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200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한·미 양국은 북한 급변사태 대비 ‘작전계획5029’를 구체화한다. 한·미 군수뇌부는 ‘북한 정권교체’를 공공연히 거론했다.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은 공개석상에서 “북한에 대한 전면전, 북한의 불안정 사태, 정권교체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

칼럼 2021.05.25

[경향의 눈]조성길 부인, 북한식당 종업원들, 김련희(2020.10.15)

지난해 7월 입국한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의 부인 이모씨는 처음부터 한국행을 내키지 않아 했다고 한다. 부모와의 동행을 거부하고 북한으로 돌아간 딸의 안위 때문이다. 졸지에 이산가족이 된 이씨가 그간 겪었을 고통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오죽하면 입국 사실이 누설될 위험을 무릅쓰고 언론사의 문을 두드렸을까. 북으로 보내달라는 간청이 당국에 묵살된 뒤로는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씨의 송환은 법 테두리 안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입국과정에서 보호신청서에 자필 서명을 하고 대한민국 국민이 된 만큼 현행법상 북송(北送)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다른 나라라면 몰라도 ‘반국가단체’인 북한으로 보내는 것은 국가보안법에도 위배된다. 그렇다고 ‘북송 불가’로 결론짓고 묻어버리는 것은 천륜(天倫)..

칼럼 2021.05.25

[경향의 눈] ‘경항모는 되고 재난지원금은 안 된다’는 재정 형편(경향신문 2020.9.10)

2차 재난지원금이 선별지급으로 낙착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모두에게 지급하자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재정상 어려움이 크다”면서 “한정된 재원으로 효과를 극대화하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재정 형편은 현실적인 이유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재정지출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돈 들어갈 곳은 많은데 세수는 제자리걸음이어서 내년에도 적자살림이다. 허리끈을 조이자는 설명을 이해 못할 건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군비에 뭉텅이로 돈을 쏟아붓는 걸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정부는 지난달 ‘국방중기계획’에서 향후 5년간 방위력 개선에 100조원을 포함해 301조원의 국방비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규모도 천문학적이지만, 경(輕)항공모함과 극초음속 미사일, 북한 장사정 포탄 요격용 아이언돔 등 타당성과 현..

칼럼 2020.09.15

[경향의 눈] ‘제2차 토지개혁’ 더 미룰 수 없다(경향신문 2020.8.6)

이승만 정부의 토지개혁은 “불꽃이 튀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화약통’ ”(미 군정 정치고문 배닝호프) 같던 한국 사회를 진정시켰다. 이승만 대통령은 초대 농림부 장관에 사회주의자 조봉암을 파격 기용했고, 조봉암은 당시 정부가 용인 가능한 가장 급진적인 인물로 토지개혁팀을 구성했다. 농림부의 초안은 지주세력이 중심이던 민국당의 반발로 좌초했지만 이승만은 전국 각지에서 청문회를 개최하는 등 대중동원 선풍을 일으키며 지주들을 압박했고, 개혁은 모처럼 언론과 농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추진됐다. 인구의 70%가 농민이고 그중 80%가 소작인이던 당시 남한에서 토지문제는 가장 정치적인 의제였다. 토지개혁이 “이승만 정부가 사회에 침투하고 지지를 이끌어내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는 평가(박명림 )는 이후 “농민은 (한국..

칼럼 2020.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