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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스 <한국전쟁의 기원 1부>-1

브루스 커밍스의 을 읽고 있다. 1부만 끝내고 아직 2부는 시작하지 않았는데, 1부는 1945년 이전사부터 시작해 1946년말까지를 다룬다. 방대한 자료 조사에 근거한 그의 통찰력을 보여주는 접근들을 메모해둔다. 1. 커밍스는 한국의 토지소유 관계와 한국전쟁과의 관련성을 깊이 다루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일제시기에 이르는 전사(前史)에 대한 개괄도 적지 않은 분량으로 다루면서 급진적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국의 토지문제(지주-소작관계)는 희망이 없다고 봤다. 토지문제를 한국이 안고 있던 기본모순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2. 일본의 1930년대 산업정책으로 토지를 이탈해 만주와 일본으로 수백만이 이동했다가 해방을 맞아 대거 귀환했던 것, 그들이 꾹꾹 눌러놓은 에너지의 폭발력에 주목했다. 일제말의 강제동원을..

카테고리 없음 2023.06.19

197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 경제사 '쇼크독트린'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군사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집권한 피노체트의 사례가 나오미 클라인이 명명한 '쇼크 독트린'의 전형적인 예라는 점을 사실 잘 몰랐다. 칠레의 사례 뿐 아니라 천안문 사태이후의 중국, 동유럽과 러시아의 체제전환,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라크전쟁, 아파르트헤이트 이후의 남아공, 싱가포르 쓰나미 등 비정상적인 상황이 만들어질 때마다 극단적인 자본주의로의 개조가 이뤄졌다. 재앙같은 사건이 벌어진 뒤 공공부문에 대한 치밀한 기습공격을 가하면서 기업과 자본은 막대한 초과수익을 거두는 반면 민생은 피폐해졌다. 나오미 클라인의 (김소희 역, 살림비즈)은 전쟁, 테러, 자연재해, 주식시장 붕괴 같은 총체적인 대규모 충격을 받아 대중의 방향감각이 상실된 틈을 이용해 정부가 경제적 쇼크요법을 밀어붙인 사례들..

읽은거 본거 2022.09.15

<카탈로니아 찬가>, 오웰이 몸으로 쓴 '배반당한 혁명'

조지 오웰은 , 로도 유명하지만, 그가 남긴 논픽션으로도 세계문학사에서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20세기 전반 영국 북부 탄광노동자들의 극한 노동을 취재한 , 직접 참전해 겪은 스페인 내전을 다룬 (정영목 옮김, 민음사)가 대표적이다. ‘발로 뛰며 쓴다’는 표현은 기자들의 공들인 기사를 표현하는 관용어지만, 오웰의 논픽션이야말로 온몸으로 쓴 르포기사이다. 오웰은 1936년 겨울부터 1937년까지 통일노동자당의 의용군으로 참전해 프랑코의 파시스트 군대와 맞서 싸웠다. 20세기 전반 혁명의 이상에 달뜬 젊은이들이 유럽 전역에서 스페인으로 몰려 들었고 오웰도 그중 하나였다. 스페인 내전은 사정이 다소 복잡했는데 프랑코에 맞서는 인민전선의 정부군에는 통일사회당, 통일노동자당, 전국노동자연맹 등 공산주의, 사회주의..

읽은거 본거 2021.08.14

그들은 왜 3년 후에 돌아오겠다고 했을까.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

바다를 건넌 일본인 아내들은 3년 후에는 북한과 일본이 서로 왕래할 수 있게 되리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곳에 온 일본인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어요"라고 어느 일본인 여성은 말한다. 북한으로 가는 걸 반대하는 부모님에게 "3년 후에 돌아올게"하며 이해를 시켰다는 여성도 있다. (42쪽) 일본인 사진작가 하야시 노리코의 (정수윤 옮김, 정은문고)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이다.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이뤄진 재일동포의 북송사업에서 재일동포 배우자(주로 남편)를 따라간 일본인 배우자는 1830명 가량이다. 그런데 북으로 갈 당시에 영영 되돌아가지 못하리라고 여긴 이는 없었다. '길어야 3년 정도 지나면 북한과 일본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리라. 북한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고 나서 부모님을 만나러 가야지' ..

읽은거 본거 2021.08.13

<페스트>, 감염병 시대를 건너기 위한 윤리적 선택

알베르 카뮈의 . 집에 굴러다니던 책을 드디어 읽었다. 사실은 딸이 독서 모임 때문에 먼저 읽은 뒤에 재밌다며 추천해 용기를 냈다. 카뮈라고 하면 을 만화로 읽었을 뿐이고, 프랑스 문학이라고 하면 어딘지 지루하고 사변적이라는 인상 탓에 책을 잡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는 생각 외로 재미있었다. 서사가 빠르고 박진감있게 전개되는 소설은 분명 아니고, 등장인물과 이 ‘연대기의 서술자’가 늘어놓는 사변이 꽤 분량을 차지하기 때문에 다소의 인내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페스트 창궐이라는 소설의 설정과 코로나19가 휩쓸고 있는 지금 상황의 유사성 때문에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책장을 넘길 수 있다. 도시 곳곳에서 쥐들이 죽어나가는 장면 묘사로부터 소설이 시작되는 장면은 코로나의 창궐 과정을 익히 알고 있는 우리들이 ..

읽은거 본거 2021.08.10

[경향의 눈] 보수야당이 띄운 ‘사상의 시장개방’(2021.5.20)

국민의힘의 4·7 재·보선 승리에 대해서는 ‘이제 표를 줘도 될 만한 당이 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장 그럴듯하다. 여권에 아무리 실망했더라도 극우와 손잡은 황교안 대표의 자유한국당이었다면 표를 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들이 주위에 꽤 있다. 지난해 총선 이후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행보가 당의 이미지를 중화(中和)시켰는데 그중 5·18묘지 앞 ‘무릎사죄’가 컸다. 한여름 뙤약볕 돌바닥에 무릎을 꿇은 80대 노정객의 모습은 빌리 브란트 총리의 ‘역사적 사죄’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의힘을 일으켜 세우기엔 족했다. 그가 떠났으니 ‘도로한국당’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요즘 그 당의 움직임을 보면 ‘글쎄요’다. 지난달 출판사 민족사랑방이 북한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를 출간했다. 보수단체가 법원에 판매·배포 금지 가처분..

칼럼 2021.05.25

[경향의 눈] ‘최종단계’를 왜 미리 걱정하나(2021.4.22)

미·중 갈등 정세를 놓고 보수성향의 지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주장은 이런 것이다. “한국도 이제 미국 쪽에 확실히 서야 할 때 아닌가. 균형외교도 좋지만 종국에는 미국과 함께 가는 게 맞지, 중국과 함께 갈 수 있나?” 그의 말을 이해 못할 건 아니지만, 갈등의 최종단계(end state)를 미리 당겨와 당장 양자택일하라는 태도에는 위화감이 들었다. 보수논객들은 미·중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으니 균형외교를 그만 접으라고 한다.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미국의 중국 견제에 맞장구치자 ‘거봐라’며 한·미 동맹의 완전 복원을 외친다. 지금의 한·미관계가 복원이 필요할 만큼 손상됐다는 것인지, 문재인 정부가 ‘반미 행각’이라도 벌였다는 건지 요령부득이다. ‘퍼줬다’는 비판을 받을 만큼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칼럼 2021.05.25

[여적] 올림픽 보이콧(2021.4.8)

박정희의 유신시대가 막을 내린 1979년은 국제적으로도 격동의 해였다. 중동 최대의 친미 국가 이란의 팔레비 정권이 이슬람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이끈 이슬람 혁명으로 무너졌다. 이란 혁명의 파장은 동쪽 아프가니스탄으로도 번져 무장 게릴라 무자헤딘이 ‘좌파 세속주의’를 강요하는 소련에 맞서 봉기했다. 친소 정권이 위태로워지자 소련군은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24일 새벽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넘었다. 이란 혁명과 소련의 아프간 침공으로 혼미해진 중동 정세는 우유부단하던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을 강경파로 돌려놨다. 카터는 소련군이 철수하지 않으면 1980년 모스크바 하계올림픽에 불참하겠다고 경고했다. 1980년 3월21일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한 자리에서 카터는 보이콧을 확정했다. 동맹인 한국..

여적 2021.05.25

[경향의 눈] 존엄을 지키는 한·일 화해 방안(2021.3.25)

2+2 회담차 한국을 찾은 미국 국무·국방장관이 청와대를 예방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들에게 “한·일관계 복원에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11년 만에 미국 주요 장관들이 방한한 진짜 목적이 한·일관계 복원임을 시사하는 장면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구축 중인 다자 연대에서 가장 약한 고리를 주요 장관들의 첫 순방지로 정했다는 분석대로다. 며칠 뒤 서욱 국방장관도 “한·일 안보협력이 가치 있는 자산”이라고 했다. 한·일의 불화가 북한 위협보다 더 걱정이라던 바이든 행정부로선 흐뭇해할 만한 상황 전개이다. 문제는 한·일이 미국의 한마디에 쉽사리 풀릴 사이인가 하는 점이다. 한·일관계는 갈등이 단단히 구조화돼 있다. 두 가지다. 우선 양국 간 힘의 차이가 현저히 좁혀졌다. 1965년 한·..

칼럼 2021.05.25

[여적] 불황형 가계 흑자(2021.3.24)

1990년대 경제 거품이 빠지면서 장기불황의 초입에 들어선 일본에서는 기업들의 가격파괴 경쟁이 치열해졌다. ‘게키야스(激安·매우 쌈)’ ‘고쿠야스(極安·극도로 쌈)’ 표시 상품들이 진열대를 메우기 시작했다. 일본 맥도널드는 1998년 130엔이던 햄버거 가격을 반값인 65엔으로 내렸다. 과도한 할인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판매량이 1년 전의 10배에 달할 정도로 대박을 쳤다. 100엔숍, 저가 의류업체 유니클로, 규동(소고기덮밥) 체인 요시노야(吉野屋) 등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기업들이다. 요시노야가 후발업체 스키야, 마쓰야와 벌인 할인경쟁은 ‘규동전쟁’으로 불릴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덮밥 가격이 180엔(약 1870원)까지 하락했다. 저가경쟁은 불황경제의 특징이다. 줄어든 수입에 맞춰 지출을 줄이..

여적 2021.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