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18. 23:51


에무시네마란 곳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밥 먹으러 자주 다니는 신문로파출소 뒤편 골목이다.(참고로 에무는 에라스무스의 약자다) <카운터스>를 상영하는 곳을 찾다보니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에무시네마였다. 공연장도 있고 영화관도 있는 복합문화 공간이다. 50석 남짓 돼 보이는 초미니 영화관이다. 객석을 다 채우리라곤 생각도 안했지만, 혹시나 혼자 보게 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그래도 5명이나 됐다.


영화는 일본의 헤이트스피치, 혐한시위에 힘으로 맞서는 카운터스의 활약에 관한 이야기다. 팔뚝에 문신을 새긴 전직 야쿠자 다카하시와 기모토 등이 혐한 시위대에 몸으로 부딪혀 저지한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시바키타이(しばき隊)라고 불리는데 '두들겨패는 집단'이라는 뜻이다. 특히 몸으로 부딪히는 '오토코구미(男組)'의 활약이 돋보인다. 혐한 데모대와 충돌하면서 체포되고 그 뉴스가 전국에 알려지면서 거꾸로 헤이트스피치 규제 여론이 형성돼 마침내 규제법이 통과된다.(일본의 법안처리 속도로 봤을 때는 상당히 빨리 입법화됐다)


영화는 일본의 헤이트스피치에 힘으로 맞서는 카운터스의 활약에 관한 이야기다. 팔뚝에 문신을 새긴 전직 야쿠자 다카하시와 기모토 등이 혐한 시위대에 몸으로 부딪혀 저지한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시바키타이(しばき隊)라고 불리는데 '두들겨패는 집단'이라는 뜻이다. 특히 몸으로 부딪히는 '오토코구미(男組)'의 활약이 돋보인다. 혐한 데모대와 충돌하면서 체포되고 그 뉴스가 전국에 알려지면서 거꾸로 헤이트스피치 규제 여론이 형성돼 마침내 규제법이 통과된다.(일본의 법안처리 속도로 봤을 때는 상당히 빨리 입법화됐다) 재특회(재일특권을 반대하는 모임)가 주도하는 혐한시위대와의 충돌 장면 등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담고 카운터스 참가자들을 인터뷰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인상깊은 대목은 카운터스의 활동에 대한 재일동포 활동가의 평가다. "일본의 사회운동은, 깨끗하고 정당하고 아름답게(清く,正しく,美しく)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데, 카운타스의 활동은 이런 고정관념을 날려 버렸다"고. 일본의 시민운동은 주로 '강단좌파'이거나 온실속 화초처럼 얌전하게 전개되면서 역동성을 잃어버리고 사회적 영향력도 크게 약화됐다. (60~70년대 학생운동의 극좌화, 폭력화가 사회에 충격을 주면서 '폭력은 절대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생긴 탓이다) 


이런 가운데 카운터스가 무력충돌을 불사하는 충격요법으로 혐한시위, 헤이트스피치의 문제점을 사회에 환기시키면서 '일을 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머리와 말이 아닌 몸으로 부딪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민주적인 방식이 아니라고 비판 받을지 모르지만, 거꾸로 시내 한복판에서 차별과 혐오조장 발언을 일삼는 헤이트스피치 데모가 합법으로 인정돼 경찰의 보호를 받는 '일본식 민주주의'의 황당함을 정면에서 공격해 혁파한 공로는 부인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신오쿠보에서 재특회의 혐한 데모를 취재하던 중 카운터스들이 등장해 재특회와 욕대결을 벌이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아니 이 넘들은 또 뭐야' 싶었던 게 당시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아주 신오쿠보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는데 카운터스가 한몫한 것도 사실이었다) 


영화에는 재특회 대표인 사쿠라이 마코토의 인터뷰도 등장한다. 반대편의 입장을 열심히 취재해 화면에 담은 노력이 돋보인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사쿠라이가 한국의 반일시위에 대해 뭐라뭐라 하는데(스포일 때문에 안알려줌) 우리도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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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 4. 22:47

고대 그리스의 조각에서부터 그래피티 작품 등을 통해 여성, 인종차별, 표현의 자유 등 인권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김태권 작가의 <불편한 미술관>(창비).  저자의 문제의식도 충분히 공감하지만 미술 문외한인 내게 도움이 되는 깨알지식이 많다. 


<알게 된 것 정리>


1. 보통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에서 털옷 입은 남자는 세례 요한, 자기 머리카락을 털옷 처럼 두른 여자는 막달라 마리아임. 온몸에 화살이 꽂힌 순교자는 세바스티아노 성인. 죽은 예수를 안은 어머니 마리아의 도상을 가리켜 피에타라고 함. 


2. 조각상 등에서 짝다리(콘트라포스토) 짚은 나체는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임.  

 

3. 서양미술에서 벌거벗은 채 거울을 보는 여성이 나오면 비너스(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일 가능성이 큼. 곁에 날개달린 꼬마 쿠피도(큐피드)가 나오면 100%임. 


3. 동양미술에는 유민도를 그리는 전통이 있음. 백성들의 굶주리는 참상을 그림으로 그려 황제에게 올리면 정책이 바뀌기도 했다고 함. 1930년대 대공황기 미국 농업안정국은 유명사진가들을 모아 가난에 시달리는 농촌모습을 촬영하도록 함. 이들의 참상이 보도되면서 빈민구제를 위한 세금 정책에 영향을 줬다고


4. 바로크 회화의 특징은 빛의 효과와 구도가 강렬함. 또다른 특징은 '작품속 행위가 관람자의 공간에까지 확장'된다고 함. 그림이 그림밖으로 튀어나온다는 뜻. 뒤틀린 몸, 화면을 쪼개는 대각선 구도 등도 이 시대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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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 4. 22:13


김연철 교수의 <새로읽는 남북관계사 - 70년의 대화>(창비)를 읽었다. 전쟁이후 1954년 제네바 회담부터 박근혜 정부까지의 남북관계의 주요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프롤로그의 한 대목이 와 닿는다. 

 "두개의 코리아는 더 많이 접촉하고 더 많이 소통해야 한다. 상대를 이해하고 차이를 인정해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거울앞에서 내가 웃으면 거울 속의 상대도 웃고, 내가 주먹을 들면 상대도 주먹을 든다. 그러나 주체와 객체는 분명하다. 거울 속 상대가 나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거울 속 상대를 움직인다. (중략)"

거울의 비유는 남북관계를 가리킨다. 북한의 변화를 원하고 남북관계를 원한다면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책을 보며 새로 알게 된 내용을 정리했다. 


1. 1954년 제네바 회담은 휴전협정 이후 한반도의 통일문제를 논의한 처음이자 마지막 다자회담. 대한민국이 주권국가로 참가한 첫번째 국제회의. 중국은 이 회담에서 인도차이나 문제의 중재에 큰 역할을 하면서 국제외교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 


2.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두달전에 합의됐지만 박정희 정권은 합의내용을 공개하길 꺼려해서 곧바로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다 북한 김일성 주석이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4단계 군축안을 공개하는 등 적극적인 평화공세로 나가자 뒤늦게 발표. 


3. 76년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을 계기로 판문점에 38선이 그어짐. 높이 7센티미터, 너비 40센티미터의 콘크리트 선으로, 이번에 남북회담 할 때 이 콘크리트 선을 넘는 장면이 여러번 등장. 


4. 북한은 1950년대 이후 전력송전, 수재민 원조 등의 제안을 꾸준히 해옴. 이를 한국정부는 번번이 거부해오다가 1984년 수해 때 전두환 정권이 덜컥 제안을 수용해버림. 전두환은 88올림픽을 앞두고 긴장완화가 필요했기 때문. 


5. 1988년 노태우 정부가 발표한 7.7선언은 사전에 미국과 협의하지 않았고 발표 이틀전 외교채널을 통해 선언의 사본을 전달. 하지만 동아시아 전략변화를 추진하던 미국은 이를 환영.


6. 남북기본합의서는 북한이 수세적으로 응했던 사례이고, 이 과정에서 몇가지 양보를 얻어냄. 가장 큰 것은 해상경계선에 관한 것으로 남북합의서에서는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리해온 구역으로 한다'고 합의. 이로써 남측이 관리해온 NLL을 북한이 인정하게 된 셈. 


7.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지만 정부내 강온대립으로 방침과 제도가 충돌하는 사례가 많았음. 7.7 선언을 했음에도 남북학생회담을 수용하지 않았고, 정주영의 방북은 허용했지만 문익환, 황석영 등은 처벌. 민간교류의 시대를 열자고 했지만 관련법은 민간교류를 처벌. 


8. 1994년 6월 김영삼 대통령이 현충일 연휴 놀러가는 사람들 보고 화를 내자 청와대가 방송사에 북핵보도를 늘려달라고 부탁. 6월8일부터 전쟁보도가 급증. 


9. 1994년 3월 남북특사 교환 실무접촉에서 불거진 '서울 불바다 발언'은 통일원(당시 통일부) 관계자가 불바다 발언을 돋보이게 편집한 2분40초짜리 테이프를 방송사에 전달해 공개됨. 이 발언의 파장으로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과 북한의 IAEA 핵사찰 수용을 동시에 한다는 북미간 합의가 공중분해됨. 여론이 들끓자 김영삼은 팀스피리트 재개를 선언하고 패트리어트 미사일 배치를 선언. 북핵문제가 교착되고 한반도 전쟁위기로 이어짐 


10. 1996년 강릉 잠수함 사건이 터진 뒤 6일만에 북한은 우발적 사고로 규정했으나 김영삼 정부는 이를 계기로 대북지원을 중단하고 기업인 방북을 금지했으며 남포공단의 대우직원 철수시킴. 


11.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실시된 대북 쌀지원은 차관형식으로 전달. 10년 거치 20년 분할상환으로 이자율은 연 1퍼센트. 


12.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는 북한에 대한 제재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과 동시에 '한반도의 안정' '평화적 해결' '6자회담 재개' '9.19 공동성명의 지지'를 언제나 포함. 중국이 '결의안의 완전하고 철저한 이행'을 강조하는 것은 제재를 제대로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제재하는 만큼 평화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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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6. 26. 17:20

지난 주말 집에서 IPTV로 러시아 영화 <세바스토폴 상륙작전>을 봤다. 지난번에 본 <레닌그라드: 900일간의 전투>영화가 인상적이어서 러시아 영화에 호감을 갖고 있었는데 이 영화 역시 그랬다. (헐리우드 영화 문법으로 본다면 어딘가 어색하고 허술해 보이기도 할 것 같다.) 스토리는 실화에 기반한 것인데 '세상에 이런 일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적이다. 

주인공은 루드밀라 파블리첸코. 키에프대학의 역사학도인 파블리첸코는 대학합격을 확인한 뒤 친구들과 사격장으로 놀러간다. 사격장에서 천부적인 사격실력을 발휘했고, 이 사실이 군부에까지 알려지게 된다. 군부는 파블리첸코의 학업을 중단시키고 6개월 코스의 스나이퍼 훈련을 시킨다.  

이어 독소전에 참가한 파블리첸코는 우크리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와 크림반도의 항구도시 세바스토폴 전투에서 309명의 독일군을 저격하는 혁혁한 전과를 거두며 전쟁영웅이 된다. 참고로 오데사는 소련 영화 거장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에서 수병반란이 일어났던 도시로 '오데사의 계단'신이 후대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정부군의 반란진압으로 시민들이 총에 맞고 쓰러지거나 도주하는 와중에 계단에서 유모차가 구르는 장면을 교차편집한 '오데사의 계단' 신은 몽타쥬 기법의 대표적인 사례다.    

바블리첸코는 이후 미국 캐나다 영국 등을 방문하게 되는데 서구 매스컴은 그에게 '죽음의 숙녀'라는 별로 기분좋지 않은 별명을 붙여 준다. 파블리첸코는 1942년에 국제 학생대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과 친분을 맺게 된다. 루스벨트 부인의 배려로 백악관에 머물면서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잊고 살아온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한국 포스터엔 '초대형 블록버스터'라고 쓰여있긴 하지만 헐리우드 영화같은 대규모 물량공세는 없다. 전투신도 어찌보면 허술해 보이지만 리얼리티를 느낄 수 있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총을 맞은 병사의 복부에서 시뻘겋게 내장이 튀어나와 있다든지, 언덕에 설치된 포대가 무너져 내리면서 참호를 덮친다든지 하는데 전장에서는 총이나 포탄 외에도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 많음을 일깨워준다) 파블리첸코는 입대후 두명의 상관과 사랑을 나누지만 모두 전장의 이슬이 되고 만다. 입대전부터 그를 좋아했던 군의관도 그를 살리고 희생된다.  

영화는 전쟁이 갖는 본질적인 비극성을 한 여성전사를 통해 드러낸다. 스나이퍼 훈련을 받을 때 물이 흥건한 진흙탕에서 낮은 포복으로 박박 기는 장면은 나 군대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도 하고, 소련군 장교의 당꼬바지는 한국전을 떠올리게도 한다.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여주인공인 율리아 페레실트의 눈매다. 백발백중 스나이퍼로서의 매서운 눈이기도 하지만, 연인들을 잇따라 떠나보내는 비련의 슬픔을 담은 눈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여주인공으로 율리아 페레실트를 캐스팅한 것은 훌륭한 선택인 것 같다.  

고작 두편으로 평가하는 건 얼토당토하지 않지만 러시아 영화는 일부러 감정선을 자극하지 않는 절제된 연출이 특징인 듯하다. 서정보다 서사가 많다고 할까? 워낙 크고 우여곡절이 많은 나라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세바스토폴은 흑해 크림반도 남부에 있는 항구도시다. 2차 대전때 독일과 소련간에 10개월간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면서 소련군 9만5000명이 숨지고, 독일쪽도 2만5000명이 희생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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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5. 2. 16:41

조선족 마을에 사는 소년 창호(가운데)가 배가 고파 강을 건넌 소년 정진(왼쪽)을 집에 데려와 함께 밥을 먹고 있다. 출처 = 다음

재중동포 장률 감독의 영화 <두만강>(2009년)을 봤다. 굉장히 여러가지를 동시에 생각하게 하는 인상깊은 작품이다. (페북에 썼지만 블로그에 기록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 포스팅한다) 

영화는 두만강이 지척인 중국의 한 조선족 마을에 탈북자들이 드나들면서 발생하는 사건을 소재로 했다. '사건'에는 긍정적 부정적 의미가 다 포함된다. 배가 고파 넘어온 북한 소년들과 조선족 소년들이 함께 어울려 축구를 하면서 우정이 싹트는가 하면 밤에 배가 고프다고 불쑥 찾아온 탈북자에게 밥과 술을 주는 친절을 베푼 소녀가 성폭행을 당한다. 탈북자가 늘어나면서 널어놓은 명태와 염소가 도난당하는 일도 발생한다. 

이 외딴 조선족 마을 주민들에게 북한과 남한의 이미지는 굉장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곳은 접경지역이라 TV를 켜면 북한방송을 볼 수 있다. 주민들은 술을 한잔하면 북한 노래를 즐겨 부를 정도로 북한에 친숙하다. 술자리에서 한 노인이 <두만강>을 부르자 동석한 이가 "재미없다"며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치매에 걸린 한 노파는 북한이 여전히 잘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1960년대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생활고가 심했을 때 많은 이들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강을 건너 북한에 들어갔다.) 이 노인은 수십년전에 강을 건너 중국에 정착했고 고향을 여전히 그리워 한 나머지 북한쪽으로 가출을 시도한다. 

이곳 주민들에게 북한인들은 '강건너 사람'들로 통한다. 강을 건너 오가는것을 그리 대단한 일로 여기지도 않는다. 같은 말을 쓰는 같은 민족이 사는 이웃마을일 뿐이다. 북한주민들과는 직접적인 접촉이 이뤄진다. 마을에서 신망받는 중년 남성은 탈북자들을 몰래 중국으로 도피시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조금 더 자연스러웠을 이 '왕래'는 공권력에 의한 통제가 강화되면서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또다시 강을 건너온 정진(오른쪽)과 창호가 마을 아이들의 아지트인 폐 건물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다음

주인공인 소년 창호의 엄마는 한국에 돈벌러 갔고 전화를 통해서만 소통한다. 한국서 일하러 가 허리를 다친 엄마를 위해 창호와 할아버지는 시내에 나가 약을 사서 우편으로 부친다. 우체국서 일하는 여성은 "한국 약값이 비싸다"면서 "나도 한국에 일하러 갔다가 다쳐서 왔다"고 한다. 

다시 말해 한국은 돈을 벌게 해주는 기회의 땅이면서도 사람을 병들게 하는 위험한 곳으로 그려진다. 돈 벌러 가는 이들이 많아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가 없이 할아버지나 큰아버지 밑에서 자란다. 가족해체의 원인을 한국이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창호의 누나가 탈북자에게 성폭행을 당해야 했던 원인도 거슬러 올라가면 가족해체 탓이기도 하다. 이 마을 주민들이 남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은 자연 복잡할 수 밖에 없다.  


이 주민들의 시선에는 접경지역 마을에서 자라났던 감독 장률의 생각이 담겨있는 듯하다. 장 감독이 연출한 영화 <경주>를 보면 베이징대 정치학과 교수 최현(박해일 분)이 한 술자리에서 우연히 지방대 교수와 마주하게 된 장면이 떠오른다. 이 지방대 교수는 최현이 유명한 국제정치학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김정은의 북한이 얼마나 갈 거 같냐"고 묻는다. 최현은 잠시 대답을 보류하다 "100년"이라고 답한다. 지방대 교수가 "날 무시하는 거냐"고 재차 묻자 "진지하게 말하는 겁니다. 100년"이라고 답한다. 한국에서 통용되는 북한에 대한 표준적인 인식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극의 흐름과는 무관한 이 에피소드를 장률이 집어넣은 걸 보면 "한국이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었던 것 같다. 


등장배우들중에서는 조선족 출신 록가수 최건외에는 모두 아마추어들이고 클로즈업 촬영도 등장하지 않아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다. 함경도 사투리가 알아듣기 어려워 모든 대사가 자막처리됐다. 

이 영화를 보면 뉴스에서나 접해온 중국과 북한 접경지대의 분위기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강이 어는 겨울에는 10대 소년들이 한달음에 건널 수 있는 거리다. 


<두만강>은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넷팩상(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을 수상했고, 러시아에서는 제3회 이스트웨스트 국제영화제(2010년)에서 감독상과 최우수 여자 연기자상을 받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국내 관객수는 3000명에도 못미쳤다. 일부 대자본이 미는 한국영화들이 스크린을 독점하는 탓에 문화다양성이 말살되고 있는 한국 극장가의 현실이 참으로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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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sh 2017.05.02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평 잘읽었습니다 기자님,
    장률감독님 개봉작을 챙겨보는 관객으로서, 저도 두만강을 아주 인상깊게 관람했답니다.
    장률 감독님 개봉작의 국내 상영관을 찾기가 대단히 힘들다는 문제가 제일 고질적입니다. 안타까워요!

2017. 3. 17. 14:25



 

한국에는 ‘르포르타주’가 빈약하다는 생각을 평소 해왔다. 2월에 소설가 장강명을 인터뷰하면서 그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는데 그 역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어서 반가웠다. 


장강명은 르포문학이 빈약한 이유로 현장취재가 쉽지 않다는 점과 현장에서 채집해서 스스로 텍스트를 만드는 훈련이 없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을 꼽았다. 현장취재가 쉽지 않은 이유로는 타인에게 질문하거나 소통하기 어려운 어려운 언어체계와 권위주의 문화를 들었다. 그는 그래서 "그나마 현장을 접하기 쉬운 기자들이 책을 많이 쓸 필요가 있다"면서 "신문사에 있는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책을 쓰라'고 권한다"고 한다.   


장강명 = “취재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나 보죠. 교육도 우리는 정전을 보고 빨리 소화해서 텍스트를 보고 답하는 식이지 않나. 미국학생들은 다음주에 발표를 위한 리서치를 해오라고 하면 우리 보기엔 생뚱맞은 발표를 한다. 하지만 직접 가서 보고 자기 손발과 눈을 이용해 텍스트가 아닌걸 텍스트로 만드는 훈련이 있다. 두번째로는 젊은이가 명함없이 뭘가서 질문하고 하는게 쉽지 않다. 상당히 고리타분한 사회니까.”


-취재원들도 사실은 기자가 아니면 잘 안만나주기도 하지 않나. 

“굉장히 권위주의적인 사회여서 '어린애가 나한테 뭘 물어봐?' 이렇게 질문 자체를 비판이나 공격으로 간주한다. 별로 질문하지 않는 사회이니 두세번 같은거 물어보면 화내고. 질문하는 프로토콜도 상당히 복잡해서 조금 삐끗하면 건방진 놈 소리를 듣게 된다.”


-한국어의 호칭도 존대도 그렇고 소통하기 어려운 구조이지 않냐.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굉장히 안되는 나라인데 그게 이런 취재를 막는 한 원인. 대한민국의 여러가지 나쁜 것의 밑바닥에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안되는 문제도 있는 거 같다.” (2월6일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인터뷰중 나눈 대화)




나온지 2년쯤 된 책이긴 하지만 박점규의 <노동여지도>는 ‘노동르포’의 가능성을 보여준 책이다. 2014년 3월 ‘삼성의 도시’ 수원에서 시작해 2015년 4월 ‘책의 도시’ 파주까지 1년2개월 간 전국 28개 지역을 발로 뛰면서 쓴 책이다. 자동차 부품사, 조선소, 병원, 증권사, 출판사, 공항, 호텔, 패스트푸드점 등 다종다양한 일터에서 땀을 흘리는 이들을 기록했다. 


책에는 아픈 노동현실과 악덕 사업주만 그려져 있는게 아니다. 부도난 회사를 인수해 노동자 자주관리회사로 운영한지 10년만에 회사를 흑자로 돌린 청주의 버스회사 우진교통, 자신을 낮추고 노동조합을 인정하는 병원장을 만나 새롭게 태어난 파주의 공공병원도 등장한다. 노동을 존중하고 협력파트너로 여긴다면 경영상의 어려움 쯤은 능히 극복할 수 있음을 증언한다.  


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을 정도로 출판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리 많이 팔리지는 못했다. 인터뷰 때 물어보니 “<직업여지도>라고 이름을 붙였다면 더 팔렸을지 모르겠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이란 단어가 갖는 장벽을 실감했다”고 했다. 르포가 빈약해 거대담론만 넘쳐나는 한국사회에서 이런 류의 르포들이 활발하게 나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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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3. 8. 23:41

출판사에 다니는 처제가 준 오쿠다 히데오의 <무코다 이발소>(북로드). 한두장 넘기다가 다 봐버렸다. 홋카이도의 쇠락한 옛 탄광촌에서 벌어진 몇가지 에피소드를 엮어 이야기거리로 만드는 작가의 관록이 돋보인다. 

한때 탄광촌으로 번성했던 홋카이도의 시골마을 도마자와. 주인공 50대 남성 무코다는 도시의 광고회사에 다니다가 귀향한 뒤 가업인 이발소를 물려받아 25년째 운영하고 있다. 도시로 떠났던 아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귀촌을 해서 가업을 이어받겠다고 나서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별로 변화가 없는 쇠락한 시골마을에 크고작은 사건들이 등장하면서 마을 주민들의 대응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중국인 신부과 40대 매력적인 술집 여주인이 등장하고, 영화촬영과 이곳 출신 청년이 사기사건을 일으켜 이곳으로 숨어드는 장면까지.

책을 읽다보면 '무라(村)사회'라고 불리는 일본 촌락공동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가 어렴풋이 그려진다.

인구가 얼마 안되는 시골이다 보니 주민들이 서로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밖에 없는 '익명성 제로'의 사회. 게다가 변화나 외부의 자극이 거의 없다보니 조그만 일 갖고도 온 동네가 떠들썩하다.

사생활 제로의 분위기가 싫은 이들이 한때 사람들을 피하면서 갈등을 키우기도 하지만 이내 중재자-이 소설에선 무코다-가 나타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해서 다시 사람들과 어울리며 서로 도와가며 즐겁게 늙어간다. '오이라쿠(老い楽)'의 세계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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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3. 1. 21:25

 윌리엄 맥닐의 <전쟁의 세계사>(이산). 고대와 중세 시대의 전쟁방식, 무기의 발달과정 등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일단 책을 잡았지만 단순한 전쟁방식이나 무기에 관한 저서가 아니었다. 무기와 전쟁이 어떻게 역사를 움직여왔나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무기와 전쟁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책이 고찰하는 범위는 제철업, 해운업, 선박금융 등 사실상 산업전반에 걸쳐있다.  

저자는 이 책의 주제를 '전쟁의 상업화'와 '전쟁의 산업화'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전쟁의 상업·산업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것은 서기 1000년으로 잡되 최근 1~2세기 동안 걷잡을 수 없이 속도가 붙었다고 본다. 


먼저 중국. 저자는 중국이 제철및 해운에서 유럽의 기술적 성과를 먼저 달성했지만 이 성취가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중국은 '시장'대신 '명령'에 의해 작동하는 체제였기 때문이다. 


"정부의 명령구조는 맹아단계의 시장경제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때로는 위태로운 적도 있었지만 결코 근본적인 통제력을 잃지 않았다. 제철업자나 조선업자도 다른 모든 사회구성원과 마찬가지로 끝내 한번도 자율성을 갖지 못했다(75p) 이런 이유로 11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의 상업과 공업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보여준 자기촉매적인 성격 같은 것은 중국에서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76p)


정허(鄭和)제독이 원정(1405~1433년)에 나섰을 당시 함대규모는 15세기말 포르투갈에서 인도양까지 갔던 바스코 다 가마 함대의 기함규모(300톤)의 5배에 달하는 크기였고 선박조종술, 내항성도 콜롬버스나 마젤란 시대의 유럽인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았음에도 15세기 중반에 명나라 조정이 내린 해금(海禁)조치에 의해 중국의 해양기술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반면 유럽의 경우 시장지향적 행동양식과 군사지향적 행동양식이 놀라울 정도로 융합을 이뤘다. 이는 그리스도권이 통일돼 있지 않고 다양한 정치체제로 분열돼 끊임없이 불화했으며 영토권이나 재판관할권에 대한 분규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여러 도시에서 14세기부터 용병군대가 등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시장지향적 행동양식이 발달한 국가가 전쟁에서도 우위를 점하게 된다. 영국이 16세기말 해상강국으로 떠올랐던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다시 정치에도 영향을 미쳐 '전쟁을 경영'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 정치구조를 형성시켰다. 무기와 전쟁이라는 주형(鑄型)에 정치와 경제, 사회가 담겨 형상화돼 온 것이 유럽의 역사였던 셈이다. 


"근세 유럽과 아시아의 역사적 경험에 나타난 근본적인 차이는, 아시아에서는 명령에 의한 동원이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1차집단적 패턴을 보존하는 데 기여했으며 동시에 그 보존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었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결국 복종하는 자는 오랜 기간에 걸친 친밀한 접촉을 통해 잘알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잘 복종하기 마련이다. (중략) 시장을 매개로 하는 사회관계는 이와 반대로 인간사이의 상호작용에서 전통적이고 국지적이며 1차집단적인 성격을 해체하고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이방인들은 각자 시장의 유인에 반응함으로써 종종 자기도 모르게 협력하게 되었다."(157p)


저자는 영국의 산업혁명이 대 프랑스 전쟁에 대비한 정부의 대대적인 개입으로 인해 촉진되고 발전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예컨대 증기기관의 개량을 가능케 했으며, 제철업에 대한 전시의 자극이 없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좋은 조건속에서 철도나 철선과 같은 결정적인 기술혁신이 일찌감치 실현될 수 있도록 했다."(284p)


'전쟁의 산업화'로 불릴 수 있는 이런 추세는 1880년대 해군을 중심으로 한 군비경쟁 과정에서 '군산복합체'의 등장으로 정점을 맞이하고 결국 양차 세계대전이라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경제학에서 일컬어지는 '구성의 오류'인 셈이다. 


"가장 큰 역설은 모든 일을 합리적으로 경영하려고 하는 인간의 노력이 모든 개별적인 측면에서는 위대하고 인상깊은 성과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시스템 전체는 제어불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399p) 이 상황은 불행히도 현대에까지 바뀌지 않고 있다. 


어찌보면 '전쟁으로 본 거시경제사'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이 책의 또다른 미덕은 무기의 발달과정에 대한 디테일한 서술에도 있다. 전차의 보급, 석궁과 축성술, 머스킷및 라이플총, 대포의 발전과정, 군대편제의 전술의 변화 등에 대해서도 꽤 상세히 기술돼 있어 '밀덕'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책이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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