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거 본거 68

197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 경제사 '쇼크독트린'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군사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집권한 피노체트의 사례가 나오미 클라인이 명명한 '쇼크 독트린'의 전형적인 예라는 점을 사실 잘 몰랐다. 칠레의 사례 뿐 아니라 천안문 사태이후의 중국, 동유럽과 러시아의 체제전환,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라크전쟁, 아파르트헤이트 이후의 남아공, 싱가포르 쓰나미 등 비정상적인 상황이 만들어질 때마다 극단적인 자본주의로의 개조가 이뤄졌다. 재앙같은 사건이 벌어진 뒤 공공부문에 대한 치밀한 기습공격을 가하면서 기업과 자본은 막대한 초과수익을 거두는 반면 민생은 피폐해졌다. 나오미 클라인의 (김소희 역, 살림비즈)은 전쟁, 테러, 자연재해, 주식시장 붕괴 같은 총체적인 대규모 충격을 받아 대중의 방향감각이 상실된 틈을 이용해 정부가 경제적 쇼크요법을 밀어붙인 사례들..

읽은거 본거 2022.09.15

<카탈로니아 찬가>, 오웰이 몸으로 쓴 '배반당한 혁명'

조지 오웰은 , 로도 유명하지만, 그가 남긴 논픽션으로도 세계문학사에서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20세기 전반 영국 북부 탄광노동자들의 극한 노동을 취재한 , 직접 참전해 겪은 스페인 내전을 다룬 (정영목 옮김, 민음사)가 대표적이다. ‘발로 뛰며 쓴다’는 표현은 기자들의 공들인 기사를 표현하는 관용어지만, 오웰의 논픽션이야말로 온몸으로 쓴 르포기사이다. 오웰은 1936년 겨울부터 1937년까지 통일노동자당의 의용군으로 참전해 프랑코의 파시스트 군대와 맞서 싸웠다. 20세기 전반 혁명의 이상에 달뜬 젊은이들이 유럽 전역에서 스페인으로 몰려 들었고 오웰도 그중 하나였다. 스페인 내전은 사정이 다소 복잡했는데 프랑코에 맞서는 인민전선의 정부군에는 통일사회당, 통일노동자당, 전국노동자연맹 등 공산주의, 사회주의..

읽은거 본거 2021.08.14

그들은 왜 3년 후에 돌아오겠다고 했을까.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

바다를 건넌 일본인 아내들은 3년 후에는 북한과 일본이 서로 왕래할 수 있게 되리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곳에 온 일본인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어요"라고 어느 일본인 여성은 말한다. 북한으로 가는 걸 반대하는 부모님에게 "3년 후에 돌아올게"하며 이해를 시켰다는 여성도 있다. (42쪽) 일본인 사진작가 하야시 노리코의 (정수윤 옮김, 정은문고)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이다.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이뤄진 재일동포의 북송사업에서 재일동포 배우자(주로 남편)를 따라간 일본인 배우자는 1830명 가량이다. 그런데 북으로 갈 당시에 영영 되돌아가지 못하리라고 여긴 이는 없었다. '길어야 3년 정도 지나면 북한과 일본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리라. 북한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고 나서 부모님을 만나러 가야지' ..

읽은거 본거 2021.08.13

<페스트>, 감염병 시대를 건너기 위한 윤리적 선택

알베르 카뮈의 . 집에 굴러다니던 책을 드디어 읽었다. 사실은 딸이 독서 모임 때문에 먼저 읽은 뒤에 재밌다며 추천해 용기를 냈다. 카뮈라고 하면 을 만화로 읽었을 뿐이고, 프랑스 문학이라고 하면 어딘지 지루하고 사변적이라는 인상 탓에 책을 잡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는 생각 외로 재미있었다. 서사가 빠르고 박진감있게 전개되는 소설은 분명 아니고, 등장인물과 이 ‘연대기의 서술자’가 늘어놓는 사변이 꽤 분량을 차지하기 때문에 다소의 인내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페스트 창궐이라는 소설의 설정과 코로나19가 휩쓸고 있는 지금 상황의 유사성 때문에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책장을 넘길 수 있다. 도시 곳곳에서 쥐들이 죽어나가는 장면 묘사로부터 소설이 시작되는 장면은 코로나의 창궐 과정을 익히 알고 있는 우리들이 ..

읽은거 본거 2021.08.10

[영화]카운터스

에무시네마란 곳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밥 먹으러 자주 다니는 신문로파출소 뒤편 골목이다.(참고로 에무는 에라스무스의 약자다) 를 상영하는 곳을 찾다보니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에무시네마였다. 공연장도 있고 영화관도 있는 복합문화 공간이다. 50석 남짓 돼 보이는 초미니 영화관이다. 객석을 다 채우리라곤 생각도 안했지만, 혹시나 혼자 보게 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그래도 5명이나 됐다. 영화는 일본의 헤이트스피치, 혐한시위에 힘으로 맞서는 카운터스의 활약에 관한 이야기다. 팔뚝에 문신을 새긴 전직 야쿠자 다카하시와 기모토 등이 혐한 시위대에 몸으로 부딪혀 저지한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시바키타이(しばき隊)라고 불리는데 '두들겨패는 집단'이라는 뜻이다. 특히 몸으로 부딪히는 '오토코구미(男組)'의 활약이..

읽은거 본거 2018.08.18

불편한 미술관

고대 그리스의 조각에서부터 그래피티 작품 등을 통해 여성, 인종차별, 표현의 자유 등 인권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김태권 작가의 (창비). 저자의 문제의식도 충분히 공감하지만 미술 문외한인 내게 도움이 되는 깨알지식이 많다. 1. 보통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에서 털옷 입은 남자는 세례 요한, 자기 머리카락을 털옷 처럼 두른 여자는 막달라 마리아임. 온몸에 화살이 꽂힌 순교자는 세바스티아노 성인. 죽은 예수를 안은 어머니 마리아의 도상을 가리켜 피에타라고 함. 2. 조각상 등에서 짝다리(콘트라포스토) 짚은 나체는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임. 3. 서양미술에서 벌거벗은 채 거울을 보는 여성이 나오면 비너스(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일 가능성이 큼. 곁에 날개달린 꼬마 쿠피도(큐피드)가 나오면 100%임. 3. 동양..

읽은거 본거 2018.02.04

새로 읽는 남북관계사 - 70년의 대화

김연철 교수의 (창비)를 읽었다. 전쟁이후 1954년 제네바 회담부터 박근혜 정부까지의 남북관계의 주요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프롤로그의 한 대목이 와 닿는다. "두개의 코리아는 더 많이 접촉하고 더 많이 소통해야 한다. 상대를 이해하고 차이를 인정해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거울앞에서 내가 웃으면 거울 속의 상대도 웃고, 내가 주먹을 들면 상대도 주먹을 든다. 그러나 주체와 객체는 분명하다. 거울 속 상대가 나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거울 속 상대를 움직인다. (중략)"거울의 비유는 남북관계를 가리킨다. 북한의 변화를 원하고 남북관계를 원한다면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책을 보며 새로 알게 된 내용을 정리했다. 1. 1954년 제네바 회담은 휴전협정 이후 한반도의 통일문제를 논..

읽은거 본거 2018.02.04

[영화-세바스토폴 상륙작전]스나이퍼가 돼야 했던 소련 여대생의 일대기

지난 주말 집에서 IPTV로 러시아 영화 을 봤다. 지난번에 본 영화가 인상적이어서 러시아 영화에 호감을 갖고 있었는데 이 영화 역시 그랬다. (헐리우드 영화 문법으로 본다면 어딘가 어색하고 허술해 보이기도 할 것 같다.) 스토리는 실화에 기반한 것인데 '세상에 이런 일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적이다. 주인공은 루드밀라 파블리첸코. 키에프대학의 역사학도인 파블리첸코는 대학합격을 확인한 뒤 친구들과 사격장으로 놀러간다. 사격장에서 천부적인 사격실력을 발휘했고, 이 사실이 군부에까지 알려지게 된다. 군부는 파블리첸코의 학업을 중단시키고 6개월 코스의 스나이퍼 훈련을 시킨다. 이어 독소전에 참가한 파블리첸코는 우크리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와 크림반도의 항구도시 세바스토폴 전투에서 309명의 독일..

읽은거 본거 2017.06.26

재중동포 장률감독의 문제작 <두만강>

재중동포 장률 감독의 영화 (2009년)을 봤다. 굉장히 여러가지를 동시에 생각하게 하는 인상깊은 작품이다. (페북에 썼지만 블로그에 기록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 포스팅한다) 영화는 두만강이 지척인 중국의 한 조선족 마을에 탈북자들이 드나들면서 발생하는 사건을 소재로 했다. '사건'에는 긍정적 부정적 의미가 다 포함된다. 배가 고파 넘어온 북한 소년들과 조선족 소년들이 함께 어울려 축구를 하면서 우정이 싹트는가 하면 밤에 배가 고프다고 불쑥 찾아온 탈북자에게 밥과 술을 주는 친절을 베푼 소녀가 성폭행을 당한다. 탈북자가 늘어나면서 널어놓은 명태와 염소가 도난당하는 일도 발생한다. 이 외딴 조선족 마을 주민들에게 북한과 남한의 이미지는 굉장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곳은 접경지역이라 TV를 켜면 북한..

읽은거 본거 2017.05.02

[책]박점규의 <노동여지도>-'노동르포르타주'의 가능성을 보여준 책

한국에는 ‘르포르타주’가 빈약하다는 생각을 평소 해왔다. 2월에 소설가 장강명을 인터뷰하면서 그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는데 그 역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어서 반가웠다. 장강명은 르포문학이 빈약한 이유로 현장취재가 쉽지 않다는 점과 현장에서 채집해서 스스로 텍스트를 만드는 훈련이 없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을 꼽았다. 현장취재가 쉽지 않은 이유로는 타인에게 질문하거나 소통하기 어려운 어려운 언어체계와 권위주의 문화를 들었다. 그는 그래서 "그나마 현장을 접하기 쉬운 기자들이 책을 많이 쓸 필요가 있다"면서 "신문사에 있는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책을 쓰라'고 권한다"고 한다. 장강명 = “취재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나 보죠. 교육도 우리는 정전을 보고 빨리 소화해서 텍스트를 보고 답하는 식이지 않나. 미국학생들..

읽은거 본거 2017.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