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3. 18:53

2018.05.21 18:58

서울 환경영화제 참석차 방한한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왼쪽), 영화 <태양의 덮개> 프로듀서 타치바나 타미요시가 20일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후쿠시마 원전 다룬 ‘태양의 덮개’ 서울환경영화제 출품···당시 일본 총리 간 나오토 방한

 

7년 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일본 정부와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의 긴박했던 대응 과정을 다룬 영화 <태양의 덮개>가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에서 열린 서울환경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공개됐다.

 

후쿠시마 사고를 다룬 영화는 100여편에 달하지만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사고 대응 과정을 본격 추적한 영화는 <태양의 덮개>가 처음이다. 당시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를 비롯한 관료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등 사실기록에 방점이 찍혀 있다.

 

영화제 참석차 방한한 간 전 총리와 <태양의 덮개> 프로듀서 다치바나 다미요시(橘民義·64)가 20일 서울극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했다. 간 전 총리는 “원전사고 이후 탈원전을 추진하던 나를 끌어내리려고 당시 원전 추진세력들이 터무니없는 가짜뉴스를 만들어 퍼뜨렸다”며 “당시 자민당 의원이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현 총리도 가짜뉴스를 퍼뜨린 장본인”이라고 밝혔다.

 

서울 환경영화제 참석차 방한한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왼쪽)가 20일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 영화에는 도쿄전력이 정부에 정보를 제대로 주지 않아 사고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장면이 부각돼 있다.

“도쿄전력은 정보를 주지 않은 것은 물론 가짜뉴스를 흘리기까지 했다. 대표적인 게 두 가지다. 도쿄전력은 당시 사고 원전의 ‘멜트다운’(노심용해) 사실을 몇 달간 감췄다. 도쿄전력 사장이 직원들에게 ‘멜트다운’이란 용어를 쓰지 말라고 지시한 건데 나중에 ‘간 총리가 쓰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허위사실을 퍼뜨렸다. 당시 NHK가 이 가짜정보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드라마화하기도 했다.”

 

- 또 하나는 뭔가.

“사고 초기에 냉각수가 떨어지자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해수를 주입했다. 그런데 사고 두 달 뒤인 2011년 5월21일자 요미우리신문이 ‘간 총리 지시로 해수 주입이 55분간 중단돼 사태가 악화됐다’고 1면 톱으로 보도했다. 이는 하루 전인 5월20일 아베 신조 당시 자민당 의원이 메일매거진을 통해 퍼뜨린 가짜뉴스다.”

 

- 왜 이런 가짜뉴스가 유통됐나.

“원전 추진세력들은 사고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조속히 재가동하고 싶었다. 그런데 동일본대지진 이후 여진이 잦아 불안이 커지던 5월6일에 내가 수도권과 가까운 하마오카(浜岡)원전을 가동 중단시키자 ‘간 총리를 이대로 두면 원전들이 속속 중단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낀 듯하다. 그래서 도쿄전력과 자민당이 언론과 합세해 나를 끌어내리기 위해 가짜뉴스를 퍼뜨렸던 것이다. 자민당은 실제로 그 다음달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 논란은 지난 3월 국회에 출석한 도쿄전력 사장이 ‘간 총리가 해수 냉각 중단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밝혀 ‘가짜뉴스’임이 확인됐다.”

 

- 사고 대응이 늦어진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나.

“커뮤니케이션 부재도 있었지만 이런 엄청난 사고가 일어나리라곤 아무도 생각조차 못했던 만큼 대비가 안돼 있었던 것이 컸다. ‘안전신화’에 안주했던 거다. 그나마 저 정도에서 그친 것은 신의 가호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 사고를 계기로 ‘원전마피아’에 대한 비판이 일었지만 지금도 그들의 파워는 여전한 것 같다.

“그래도 절대 권력은 잃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내 원전 54기 중 7년이 지난 지금도 5~6기만 재가동되는 것은 탈원전 세력의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법원이 큰 역할을 해 원전 가동을 둘러싼 소송에서 도쿄전력이 거의 예외 없이 패배했다. 후쿠시마 사고가 법관들의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인다.”

 

간 전 총리가 소속된 입헌민주당은 여타 4개 야당과 협력해 지난 3월9일 ‘원전제로기본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등 일본 내 보수·혁신을 아우르는 탈원전 추진세력들과 힘을 모으고 있다. 간 전 총리는 “다음 총선은 이 법안에 대한 찬반을 묻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했다.

 

- <태양의 덮개> 제작에 어려움은 없었나.

(다치바나) “간 총리 역할을 맡을 배우를 물색하는 데 애를 좀 먹었지만, 그래도 꽤 알려진 배우가 맡아줘 힘이 됐다. 정치인들은 다 실명을 썼지만 도쿄전력만 ‘도비전력’으로 개칭했다.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상영을 못하게 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했기 때문이다.”

 

- 일본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

(다치바나) “시중 영화관, 주민상영회 350회, 비디오 대여점 등을 통해 5만~6만명 정도가 봤으니 독립영화로는 꽤 관객이 든 편이다. 공개된 지 2년가량 지난 지금도 주민상영회를 하고 싶다는 의뢰가 온다. 영화를 보고 ‘실상이 이랬구나’ ‘역시 원전은 안된다’는 반응들이 많다. 많은 한국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원전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 사고 이후 한국에서도 탈원전 여론이 높아졌지만 지난해 ‘신고리 3호기’ 건설 계속 여부를 놓고 벌인 공론조사에서 계속 건설로 결론이 났다.

“원전을 대신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산시키지 않으면 탈원전 운동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비율이 낮은 편이다. 한국의 기술력 등을 감안하면 5~6년이면 재생에너지 비율이 10%까지는 올라갈 수 있다.”

 

- 한국은 기상여건이 자연에너지 보급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일본에서도 예전엔 그런 논리가 통용됐다. 30여년 전에 도쿄 근처의 미야케섬에 풍력발전기를 견학하러 간 적이 있다. 도쿄전력이 2기를 세웠는데 몇 년 뒤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며 철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의지할 건 원전뿐이라는 인식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 보여준 뒤 철거한 게 아닌가 싶다. 기술력이 발전하고 있어 기상여건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태양광 발전을 하기 어려운 곳은 지구상에서 남극과 북극 두 군데뿐이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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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2. 22. 16:35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 소장 @이준헌기자

경향신문 토요판팀에서 인물 인터뷰를 11개월 가량 담당했다. 광고없이 1개면을 통으로 쓰는 와이드 인터뷰였는데 다방면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내게도 크게 공부가 됐다.

이 연재를 하면서 만난 마지막 인물은 7년전 고려대 자퇴선언을 했던 김예슬 나눔문화 사무처장이다. 2016년 12월17일자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시작으로 올해 11월25일까지 11개월간 29명을 했으니 한달에 3명 정도 한 셈이다.

최승호 뉴스타파 PD(현 MBC 사장) @이준헌 기자

박주민(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정우(판도라 감독), 주진형(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김광길(전 개성공단 법무팀장), 장강명(소설가), 서천석(소아정신과 전문의), 박점규(비정규직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김제동(방송인), 박원순(서울시장), 구수정(한베평화재단 이사), 문정인(연세대 명예교수), 최승호(뉴스타파 PD), 심상정(정의당 대통령 후보), 김종술(금강지킴이), 강영식(우리민족서로돕기 사무총장), 김현아(자유한국당 의원), 장경욱(국정원과 싸우는 변호사), 박경서(경찰개혁위원회 위원장), 박종운(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 김홍걸(김대중 대통령 3남,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 윤태웅(과학기술인단체 ESC대표), 황석영(소설가),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 김상조(공정위원장), 이종석(전 통일부 장관), 김미화(코미디언), 이희옥(성균중국연구소장), 문성현(노사정위원장), 김예슬(나눔문화 사무처장)

황석영 작가 @김영민 기자

그 11개월간 정권이 교체되면서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됐고,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MBC 사장이 됐다. 박경서 경찰개혁위원장도 대한적십자사 사장, 김홍걸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이 됐다.

인터뷰는 인물선정이 가장 어려웠다.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을 우선 선정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인터뷰 시간은 가장 짧았던 경우가 1시간반(김상조), 가장 길었을 때가 5시간 반 정도(주진형, 황석영)였다. 녹음을 한 뒤에 녹취를 직접 풀어서 정리한 뒤에 요약하는 방식이라 5시간 반 정도 인터뷰를 하면 녹취푸는데만 꼬박 10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다.

가급적 워딩 그대로를 살리려 노력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다. 황석영 선생의 경우 일산 자택근처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다가 중간에 한시간 가량은 녹음이 안된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고 간청해 한번 더 만나기도 했다.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대표의 경우 손혜원 민주당 의원과의 페북 라이브 토크 내용을 묶은 책 <경제, 알아야 바꾼다>에 이 인터뷰 내용을 일부 인용해 싣기도 했다.

길고 재미없을 수도 있는 내용인데도 읽어주시고, 호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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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2. 22. 15:42

김예슬 나눔문화 사무처장.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라카페에서 만났다. @이상훈 선임기자


포항 강진이 발발한 지난 15일, 세간의 관심은 포항의 피해상황보다 다음날 치러질 예정이던 대입 수학능력시험이 예정대로 치러질지에 더 쏠렸다. 지진으로 다친 이들과 삶의 터전이 무너진 이재민들에겐 미안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현실은 그랬다. 

 

대학입시는 한국사회에서 나고 자라온 아이들에게 가격표가 붙는 경매입찰과 비슷하다. 요즘은 경매를 거친 뒤에도 스펙을 쌓거나, 자격증, 공무원 시험 같은 2차, 3차 입찰을 통과해야 하지만 첫 가격이 매겨지는 대입의 중요성엔 미치지 못한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삶이 보장된다’는 유일신앙이 지배하는 한국의 수능날 풍경은 해외언론들의 조롱거리가 되곤 한다. 학벌체제는 남북분단보다 더 심각한 한국사회의 ‘기본모순’이다.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 사무처장인 김예슬(31)은 한때 ‘학벌트랙’에서 함께 경쟁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우수한 경주마였다. 그는 그러나 어느날 트랙의 울타리를 부수고 초원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고려대 경영학과 3년생이던 그가 2010년 서울 안암동 고려대 구내 게시판에 붙인 ‘자퇴선언’은 한국 사회에 파문을 몰고 왔다.  

 

학벌체제의 가장 큰 이벤트인 수능을 이틀 앞둔 지난 21일 김예슬을 만나 학벌트랙을 이탈한 이후의 삶에 대해 물었다. 나눔문화가 운영하는 서울 부암동 ‘라카페’에서 만난 김예슬은 “자퇴이후 여러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배우면서 내 세계가 조금씩 넓어졌다”며 “내 안에 나도 모르거나 어쩔 수 없이 억눌러왔던, 엄청나게 큰 내가 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대학에 돈을 들인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보장이 없다는 점을 알아챈 이들이 점차 나타나고 있다”며 “기본소득 같은 최소생존비용이 제공돼 청년들이 하고픈 일을 할 수 있다면 학벌체제에도 변화가 생겨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예슬은 자퇴이후 비로소 진심으로 울고 웃을 줄 알게 됐고, 그만큼 성장했다. 물론 시장가치로는 매기기 어려운 성장이겠지만. 

 

■“학교에서 키워야 할 건, 생각·손발·우정의 힘”

 

- 수학능력시험이 포항지진으로 1주일 연기됐지만, 매년 수능시즌은 수험생 당사자 뿐 아니라 전 국민이 열병을 앓는 시기이기도 하다. 

 

“포항 지진과 관련한 소식중 가장 먼저 뜨는게 원전과 수능이더라. 수능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걱정임을 지진으로 재확인한 셈이다. 초·중·고 12년의 결과가 하루에 결판나는, 그 결과가 아이의 수십년을 좌우할 거라고 믿는, 불행하면서 불안한 구조가 한국사회의 단면이다. 

 

- 수험생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안쓰럽고 마음이 아프다. 나눔문화에서 개최한 라오스 사진전을 보러온 고교생들이 소수민족 아이들이 눈을 반짝거리며 공부하는 사진을 보고 감탄하더라. ‘우린 배움의 열정이 없는데, 저 아이들은 사진으로도 열정이 느껴질 정도’라고.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게 가장 큰 고민’이라고도 하더라. 지금의 청년들은 ‘꿈을 찾아내는 게 꿈인 세대’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내 꿈이 뭔지 모르겠다’는 거다.”

 

- 어릴 적부터 쉴틈없이 지식이 주입되다 보니 배움의 즐거움을 모르는 게 당연할 것 같다. 배움의 ‘단식기간’이 필요한 것 같다. 

 

“맞는 말이다. 스마트폰만 열면 도서관 분량의 지식을 접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도 초·중·고 12년간을 의자에 붙어앉아 교과목의 지식들을 암기해야 하는 처지다. 지나고 보니 살아가는데 쓸모있는 지식도 많지 않다. ‘꿈이 없고 하고픈 게 없다’고 하는데 12년간 공부말고 다른 걸 좀 해봐야 꿈도, 자아도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김예슬 나눔문화 사무처장 @이상훈 선임기자

- 비유가 어떨지 모르지만 학생들이 ‘지식의 물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뇌발달에 결정적인, 생명력이 왕성한 시기의 아이들을 꼼짝없이 의자에 묶어놓고, 배움을 강요하는 건 고문이다. ‘100세 시대’에 아이들에게 뭘 가르칠 것인가 근본적인 물음이 필요하다. 나눔문화에서 여는 학교에서 10대들을 접하면서 ‘생각의 힘’ ‘손발의 힘’ ‘우정의 힘’, 이 세가지만 제대로 학교에서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 학생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앞가림할 능력을 기르지 못한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어떤 순간에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게 인생인데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박탈당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 교과목 뿐 아니라 위험 대처능력을 기르는 실습교육도 필요하고, 스스로 자신을 지키도록 체력도 길러야 하지만 모든 게 입시로 쏠리다 보니 생략돼 버린다.  

 

“위험도 삶의 당연한 속성인데 학교는 이런 위험을 원천 차단한 ‘무균실’ 같은 공간이 돼버려 저항력을 기를 수 없다. 아이들이 맘껏 뛰놀고, 부딪히고, 스스로 경험할 수 있어야 하는데.”

 

-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나서 ‘번아웃증후군’에 걸린 청년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진짜 하고픈 일이라면 밤을 새워도 피곤함을 못 느낀다. (오히려) 번아웃할 대상을 못찾아 고통받는 이들이 많다. 자아실현 과정으로서의 노동이 아닌 그저 생존을 위한 일이고, 그렇게 번 돈으로 내 삶과 시간을 따로 찾으려 한다. ‘언젠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지금은 견뎌야 돼’하고. 그 ‘언젠가’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함도 있다. 어린시절 여기저기 부딪혀가며 스스로가 어떤 존재임을 깨우치는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내 안에 나도 모르던, 엄청나게 큰 내가 있었다”

 

- 대학이든 사회든 ‘질문’이 많이 오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답정너(답은 정해져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란 말에서 보듯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대학(大學)은 ‘큰 배움’이고, 이는 ‘큰 물음’에서 시작할텐데 ‘나는 누구이고, 세상은 어떤 곳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같은 물음을 스무살 넘도록 내 자신에게 제대로 던져본 적이 없었다. (자퇴)이후로는 남에게도, 나에게도 질문을 많이 던졌다. 대학 2학년, 나눔문화에 처음 왔을 때 박노해 시인이 ‘꿈이 뭐냐’고 물으시더라. ‘언론인이 되고 싶다’고 하니 빙긋 웃으시면서 다시 ‘꿈이 뭐냐’고 묻더라. ‘아!’하고 깨달았다. 꿈이 직업보다 훨씬 큰 거라는 걸. (내 인생에서)결정적인 질문이었던 것 같다.”

 

- 자퇴이후 7년간을 돌이켜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뭔가. 

 

“특정한 활동이나 사건보다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 세계가 조금씩 넓어진 것 같다. (고공농성을 하기 위해) 철탑 꼭대기에 올라간 노동자들부터, (송전탑 설치에 반대해) 밀양 산속에서 몇년째 저항중인 할머니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배웠다. 그분들이 모두 하나의 사건이자, 세계였다.”

 

- 대학을 그만두는 과정에서도 고민했겠지만 학벌체제를 깨뜨릴 방안은 뭘까. 

 

“내가 하고픈 일, 나답게 살 수 있는 일을 하면서도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된다면, 예컨대 ‘기본소득’ 같은 최소생존비용이 제공된다면 변화가 있지 않을까. 나랏돈이 잘못 쓰이는 걸 바로잡고 독점과 부패를 근절해 복지토대를 강화하면 청년들이 획일화되지 않은, 다른 길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 복지의 토대가 강화되면 ‘단선사회’가 바뀔지도 모르겠다.  

 

“성공에 대한 잣대나 가치가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는 듯 하다. 10~20대가 선호하는 직업은 여전히 공무원, 대기업이지만 ‘돈과 안정에만 매달려 살고 싶진 않다’는 가치관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생겨나고 있다고 본다.”

 

- 대학이 문제라면서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그런데 한편으로 대학진학률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사회가 바뀌었다기 보다, 포기하는 개인이 늘어나고 있는 것 아닌가. 

 

“포기일 수도, ‘직시(直視)’일 수도 있다. 이미 아무도 ‘대학을 진리의 전당’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대학에 돈을 들인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보장도 없어지고 있다. 초·중·고·대학까지 16년동안 들어가는 비용이 아무리 적게 잡아도 1억원은 들텐데, 그 시간과 비용으로 다른 걸 하면 더 나은 삶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시작한 거다. 좋은 대학을 못갈 거라고 예상되는 고교생들중에서는 쿨하게 대학진학을 포기하는 이들도 주변에 있다.”

 

- 그래도 경제 생태계를 다원화하지 않으면 학벌문제는 풀리지 않을 것 같다. 중소기업에 다니면서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면 대학에 목멜 이유가 없다. 

 

“촛불혁명에서 삶의 고통과 열망이 많이 표출됐고, 시급한 과제가 5개로 압축됐는데 경제민주화도 그 안에 들어있다. 그외에 적폐청산, 남북화해, 젊은농촌, 생태안전이다.”

 김예슬은 지난해 10월 말부터 올해 3월까지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을 기록한 <촛불혁명 2016 겨울 그리고 2017 봄, 빛으로 쓴 역사>를 출간했다.  

 

- 촛불현장을 계속 지켜왔는데 학벌사회를 바꿔보자는 청년들의 열망을 느꼈나. 

 

“촛불혁명의 도화선 중 하나가 정유라의 이대 특혜입학이었으니, 분노의 목소리가 많았다. 촛불혁명 과정에서 느낀 건 개인은 진화하고 있는데 사회구조는 낙후돼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로 전 지구가 연결돼 있는 시대이고,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똑똑하고 재능도 많은 반면 체제는 너무 낡았다.” 

 

■“나 자신을 새롭게 알아온 7년”

 

- 자퇴할 때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을텐데 지금은 어떤가. 

 

“믿어주신다. 자퇴할 당시 부모님께 미리 말씀 안드렸다. 대학을 그만두러 가는 그날, 엄마가 뭔가 느끼셨는지 교수님을 만나러 학교에 오셨다. 밤새 쓴 대자보를 붙이고 1인 시위를 한 뒤 자퇴서를 내러가는 길에 엄마와 우연히 마주쳤다. 처음엔 많이 말리셨지만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구나’ 생각하신 듯 하다. ‘나쁜 짓하는 거 아니고, 틀린 길 가는 거 아니니 믿는다’는 마음으로 7년간 지켜봐주고 계신다.”

 

- 계획을 세우는 게 아니라 ‘인연따라’ 산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이야기 했던데.  

 

“계획을 세운다고 그대로 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다.(웃음) 좋은 사람을 따라가면 좋은 길이 보이는 것 같더라. 선후배들과 젊은 친구들 10명과 함께 나눔문화 활동을 하고 있는데 세월호·천안함 진상규명, 4대강 복원, 노동 등 여러 부문에서 운동을 계속하는 한편으로 좋은 삶을 모색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적은 소유로도 기품있게’ 살아가는 방식 같은.”

 

@이상훈 선임기자

- 적은 소유로도 기품있게? 

 

“나눔문화가 쓰는 말이다. 이곳 사람들은 사회운동을 통해 좋은 사람이 되기를 지향한다. 좋은 삶이 돈으로만 되는게 아니라는 태도도 멋있고, 그걸 꿈꾸고 있는 것도 좋다.”

 

- 지난 7년간 스스로 돌이켜보면 어떤 점이 달라지고 성장한 것 같은가. 손기술이 늘었다든지?

 

“(웃음)‘뱃속에서부터 웃고 있구나’ 싶을 정도로 기쁘게 웃는 힘, 진심으로 슬퍼서 우는 힘이 커졌다고 할까. 많이 울고 웃으며 살아있음을 느낀다. 예전엔 울고 웃는 능력이 마비됐던 것 같다. 손을 쓰는 일도 많아졌고 (솜씨도) 늘었다. 나눔문화에서 처음 배운게 테이프 붙이기였는데 이곳에선 떼는 이의 수고를 덜기 위해 테이프 끝을 접더라. 사소하지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거다. 하나의 일이 세계와 연결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절실히 알리고 싶다 보니 글을 쓰게 됐고, 책의 에디팅도 하게 됐다. ‘내 안에 나도 모르거나 어쩔 수 없이 죽여왔던, 엄청나게 큰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하나하나 새롭게 알아온 7년이었다고 할까.”

 

- 수능을 치른 대학 예비생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나.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다. ‘결코 시험의 등수가 고스란히 인생의 등수가 되지는 않을거다. 정말 고생많았다. 우선 잘 자고 잘 먹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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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2. 22. 15:18

문성현 노사정 위원장이 11월 10일 노사정위원장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서울 평화시장의 청년 재단사 전태일(1948~1970)은 돈이 없어 점심을 굶는 어린 여공들에게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청계천에서 창동까지 걸어 다니곤 했다. 청계천 봉제공장의 지옥같은 노동현실에 항거한 전태일의 분신은 한국 노동운동의 기폭제가 됐고 많은 대학생들이 노동현장에 투신했다. 그 이듬해 대학에 들어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 위원장 문성현(65)도 그들 중 하나였다.  

 

47년이 지난 지금 노동운동에서 차비를 아껴 풀빵을 돌리던 전태일의 연대정신을 떠올리는 이들은 많지 않다. 노동운동이 기업의 울타리 안에 고립돼 갈라파고스 섬의 생물처럼 퇴행하고 있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말로는 전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을 외치면서도 어느 대공장 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합원 자격을 빼앗는가 하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가로막는 노조도 있다. 문성현 역시 노동운동이 ‘화석(化石)’이 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많은 이들이 해고·구속되고 죽기까지 하면서 지켜온 노조가 국민과 동떨어진 존재가 돼버렸다.” 

 

지난 10일 정부서울청사 노사정위원장실에서 만난 문성현은 “산적한 노동현안을 풀기 위해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새로운 사회적 대화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며 생각이 달라도 함께 논의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숙의 민주주의’가 노동에서도 실현되기를 희망했다. 그는 “최저임금 문제는 사용자나 정부만 바라볼 게 아니라 노동운동이 연대정신을 발휘해 풀어야 한다”며 SK이노베이션 노조가 기본급 일부를 갹출해 협력업체 지원 등 상생기금에 출연하기로 한 사례에 주목했다. 

 

문성현은 70년대 후반부터 노동운동을 시작해 민주노총 금속연맹 위원장, 민주노동당 대표를 지낸 1세대 노동운동가다. 한때 전투적 노동운동의 상징이던 그가 2시간의 인터뷰에서 가장 강조한 건 ‘대화’였다. “노조가 사회적 광장에서 합리적 토론을 통해 국민이 바라는 것을 하나라도 풀어나갔으면 좋겠다. 내 모든 걸 던져 풀고 싶다.”

 

■“국민은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참여 바란다”

 

-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6개월이 됐다. 노동분야에서 여러가지 정책들을 많이 내놨다. 

 

“문 대통령이 비정규직, 최저임금, 노동시간 등 노동분야 핵심의제의 방향을 명확히 짚고 있다고 본다.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청으로 돌리거나 계약직 노동자로 채우는 비정상 노동의 정상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무슨 일이든 성실히 하면 연봉 2500만원, 부부라면 5000만원에서 삶의 기초를 닦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최저시급 1만원’의 취지다. ‘무조건 주라’는게 아니라 ‘줄 수 있도록 하자’는 거다. 지난해 촛불집회의 핵심동력은 어디가서 무슨 일을 하든 차별받지 않고, 제 대접을 받고 싶다는 청년들의 열망이었다고 본다.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주 40시간 노동’으로도 경제가 유지·발전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대통령이 ‘지난 반년간 나는 이렇게 해왔으니, 여러분들도 해보자’며 노동계·재계에 주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 10월24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동계 대표 만찬에 민주노총이 불참했다. 민주노총 집행부 선거에서는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란 구호도 나온다.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여론의 시선은 싸늘하다. 

 

“노사정위원회는 법적으로 사회적 대화의 책임과 권한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대화하겠다면 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도 나도 노사정위가 바뀌어야 한다고 보지만 바꾸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참여해야 한다. 노사정위를 우회하는 사회적 대화는 없다.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대해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민주노총이 집행부 선거중이니 기다리겠다. 선거과정을 통해 ‘사회적 대화’와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했으면 좋겠다. ‘사회적 합의주의’를 거부한다면 대안은 뭔지, 추상적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민주노총은 1999년 전교조를 합법화하는 대신 정리해고와 파견법 제정이 통과되자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이후 현재까지 복귀하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은 노사정위가 노동자의 희생을 사회적으로 정당화시키는 기구라는 인식이 강하다. 

 

- 민주노총으로서는 노동친화적인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금이 정책파트너로 자리잡을 기회일 수도 있지 않나. 

 

“촛불혁명의 교훈은 방법이 좋아야 한다는 것 아닐까. 87년 군부독재 타도투쟁할 때는 쇠파이프, 화염병을 들었지만 이번에는 일 다하고 저녁에 나와 촛불을 들었다. 지난 30년간 이만큼 성숙해진 거다. 해결이 쉽지 않던 (신고리) 원전 문제도 (공론으로) 해결했다. 격변기에 극한적인 노사대립 현장에 있던 나로선 국민에게 매일 108배를 하고 싶을 정도다. 민주노총도 생각이 다르더라도 함께 대화하며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본다. 국민들은 그런 모습을 바란다.”

 

- 정부가 검토중인 ‘한국형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는 양대노총 뿐 아니라 비정규직·하청·청년·여성 대표도 참여하도록 돼 있는데 어떤 방식이 검토되고 있나.

 

“지난달 서울대 비정규직 노동자 대상 강연에서 ‘여러분들이 (참여)방안을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당사자가 잠자코 있는데 밖에서 ‘넣자 말자’ 할 수는 없다. 양대노총이 ‘(비정규직 대표를) 넣을 것 없이 우리가 대변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 다만, 뒤틀린 노동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선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어떤 사안이건 당사자가 가장 잘 알게 마련이고, 최선이 아닐 경우 차선을 택하는 지혜도 발휘한다. 당사자가 있어야 의견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 오랫동안 비정규직을 대변해온 분들중에서 대표가 선출돼 노사정위에서 양대노총에 버금가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 

 

문성현 노사정위원장 @이상훈 선임기자

- 서울대 강연에서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 여러분의 투쟁을 응원한다’고 했다가 보수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은 노조를 결성할 권리, 단체교섭을 할 권리, 파업을 할 권리다. 파업은 악이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을 깨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의 정상화를 위해 불가피하고 정당한 투쟁이 있다는 걸 우리 사회가 인정해줘야 한다. 노사정위원장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현장을 방문하고 격려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 대기업 노조를 만날 때는 투쟁이 능사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임금인상률에 연연하지 말고, 산업의 미래를 노동이 주도적으로 고민하고, 사회적 책임도 다해야 한다. 우리 노사관계의 복합적인 측면들을 이해해야 한다.”

 

■“최저임금 노동이 연대정신 발휘해 풀어야”

 

- 최저시급 1만원 달성을 위해 대기업 노사도 역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1만원을 달성하려면 15조원 안팎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임금 지급여력이 부족한 중소·영세사업자들을 위해 정부가 조달할 수 있는 재원은 5조원 안팎이다. 재정만으로 감당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원·하청간 공정거래 확립, 세제지원이나 카드수수료 인하 같은 수단을 동원해도 부족하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대기업 노사가 사회연대적 차원에서 부족분을 채우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은 격차를 좁히는 출발점인데 이 문제만큼은 사용자나 정부만 바라보지 말고 노동이 주도했으면 좋겠다. 전태일 열사가 돈이 없어 점심을 굶는 어린 노동자들에게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던 연대정신이 필요하다.”

 

- 최근 SK이노베이션 노조가 사원의 기본급 1%를 내고, 사측도 동일 금액을 내 협력사 직원 등을 위한 기금을 만들기로 한 합의는 주목할만 하다.

 

“노사정위원장 되고 나서 두번 잠을 설쳤는데 하나는 SK이노베이션 합의, 또하나는 기간제 교사 문제였다. 대기업에서 이런 선도적인 움직임들이 나오면서 사회적 공감을 얻어가면 노사정위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해볼 수 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대기업 노동자들의) 연봉은 충분히 올라갔지만 회사 울타리 바깥은 어떤가. 격차는 내 자녀의 문제다. 죽기살기로 스펙 쌓아봐야 내 자식은 내 자리에 올 수 없다. 세대간 연대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SK이노베이션의 노사합의는 내가 생각해오던 방향과 정확히 일치하는 합의였다.”

 

-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한 전교조의 입장도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다. 이런 문제야말로 사회적 대화나 ‘숙의 민주주의’를 거쳐야 했을 것 같다. 

 

“기간제 교사 뿐 아니라 곳곳에 비슷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 정규직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온 사람들이다. 하는 일이 같으니 동일한 대우를 해야 한다면 정규직이 반발할 것은 당연하고 그게 현실이다. 그래도 2년 계약을 계속 갱신해 10년째 일하는 비정규직이 있다면 능력이 검증된 게 아닐까. 여하튼 풀기 쉽지 않다.”


- 노사정위원회는 내년 2월쯤이면 정상화될 것으로 봐도 될까.


“양대노총이 노사정위를 탈퇴해 바퀴가 두개나 빠진 상태다. 한국노총은 참가의사를 비치고 있는데, 민주노총도 노사정위를 통한 새로운 사회적 대화에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 문 대통령도 민주노총이 오는 첫 회의에 반드시 참석하겠다고 했다. 민주노총 새 집행부가 12월말 선출되면 내년 1월쯤 대표자회의를 갖자고 제안할 생각이다. 노사정위의 정상화방안을 논의하자는 거다. 이 과정을 거쳐 노사정위원회가 2월이든 3월이든 열리면 우선 체제개편을 논의할 생각이다.”

 

- 문재인 정부 1년이 되는 내년 5월이면 노동분야에서 사회적 대화가 무르익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  

 

“비정규직·노동시간·최저임금 하나하나가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 1년씩 걸릴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노동현장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도 논의될 수 있다. 서둘러서 될 게 아니고 충분히 숙의해야 할 과제다. 과거 노사정위를 돌이켜보면 노동이 제대로 존중받지 못했고, (합의에) 동원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주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사용자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사회적 대화는 정부가 아닌 노사가 주도해야 한다.”  


■“희생으로 지켜온 노조, 국민과 동떨어진 존재가 됐다”

 

- 87년 노동자대투쟁 30주년을 맞아 최근 열린 토론회를 보면 ‘노동운동의 위기’라는 인식이 큰 것 같다. 이런 비판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변화하지 않으면 민주노총도 ‘갈라파고스화’가 될 수 있다. 

 

“민주노총이 ‘노정교섭’을 하자고 하지만 분명히 말하면 사용자로서의 정부와 교섭하는 ‘노사교섭’이 맞다. ‘노정’이란 용어에 굳이 집착할 이유가 없다. 법개정 문제라면 국회에 요구하면 된다. ‘총파업’이라곤 하지만 실제로 전 조합원이 참가하는 파업은 없었다. 자기 현안 때문에 파업하는 사업장과 간부들이 모여 집회하는 정도다. 금속연맹 위원장 시절 ‘총파업’이란 말을 쓰지 말고, 실제 파업 사업장이 몇곳, 간부 집회만 하는 곳이 몇곳인지 정확히 집계해 발표하라고 했다. 총파업이라는 공세적 용어를 쓰는 취지를 이해는 하지만 좀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 노동운동의 선배로서 지금의 노동현실을 어떻게 보나. 

 

“금속연맹 위원장이던 시절 ‘주 5일제 도입’이 현안이었다. 그런데 주 5일제에 단체협약상 휴무까지 포함하면 휴일이 너무 많아져 연차휴가나 월차휴가를 양보해야 할 상황이었다. 양보하는 대신 전 국민, 특히 중소기업이 마음놓고 주 5일제를 실시할 여건을 노사정위에서 마련하자고 제안했지만 집행부는 노사정의 ‘ㄴ’자도 꺼내지 말라면서 거부했다. 민주노총이 국민을 대표할 찬스를 살리지 못하고 결국 월차만 없어진 셈이 됐다. 양대노총이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하면 ‘화석(化石)화’된다. 많은 이들이 해고·구속되고 죽기까지 하면서 노조를 지켜왔는데 국민들과 동떨어진 존재가 돼버린 거다. 이러자고 내 삶을 바쳤나 싶은 생각도 든다. 노동을 존중하는 대통령이 나왔으니 내 모든 걸 던져 풀어보고 싶다. 노조가 광장으로 나와 합리적 토론을 거쳐 국민들이 바라는 것을 하나라도 풀어나가 봤으면 한다. 대학생인 딸이 ‘다른 거 하지 말고 최저시급 1만원이라도 확실히 해달라. 친구들도 최저임금 문제 꼭 해결해 달라고 한다’더라.”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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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1. 6. 13:29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장(성균관대 교수)가 지난달 30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세계를 뒤흔든 1주일이었다. 지난달 18일부터 24일까지 열린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는 시진핑(習近平) 천하가 개막됐음을 세계에 선포한 이벤트였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자신의 이름을 넣은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당의 헌법인 당장(黨章)에 삽입하면서 마오쩌둥(毛澤東)에 버금가는 반열에 올라섰다. 시진핑은 최고 지도그룹인 중앙위 상무위원 7명 중 3명, 정치국 위원 25명 중 13명을 측근으로 채웠고 후계자 지명도 하지 않음으로써 1인 천하를 구축했다.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중국몽’을 달성하겠다고 했고, ‘창치라이(强起來·강대해짐)’를 시대정신으로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서방과 담론·체제 경쟁을 본격화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선거로 권력을 선출하는 서구 민주주의 대신 장기간 키워온 인재풀에서 지도자를 선발하는 ‘현능(賢能)주의’ 체제를 고수해온 중국이 앞으론 제3세계를 상대로 ‘체제 수출’에 나설 수도 있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좌충우돌’이나 포퓰리즘에 쏠리는 정당정치, 파탄을 맞은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맞서 ‘대안’이 되겠다는 중국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1년이 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갈등을 통해 중국이라는 ‘숙명’을 뼈저리게 겪은 한국으로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영화 <남한산성>을 보며 ‘호란(胡亂)’과 사드 갈등을 겹쳐 생각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지난달 30일 만난 성균중국연구소장(성균관대 교수) 이희옥(57)은 “대전환기라는 역사적 압력 요인과 국민들의 체제 자부심이 시진핑의 절대권력을 성립시킨 셈”이라면서 “중국이 세계질서를 만들어 가는 ‘룰세터(rule-setter)’의 역할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2002년 설립된 성균중국연구소는 중국 정계 핵심인사들과도 활발히 소통하는 유력 싱크탱크다. 그는 “한·미동맹만 중시하고 중국을 과소평가하는 태도를 탈피해 우리의 핵심이익을 지켜가면서 중국에 어떻게 대응할지 모색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며 “중국이라는 숙명을 극복하려면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모멘텀)를 찾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른백년’ 이끌기 위해 강력한 리더십 용인”


- 이번 당대회를 보면 마오쩌둥 이후 권력이 가장 노골적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마오쩌둥도 ‘마오쩌둥의 사상’이라는 일반명사에서 ‘마오쩌둥사상’으로 고유명사화된 건 7차 전당대회(1945년)부터다. 덩샤오핑(鄧小平) 때도 ‘중국특색을 지닌 사회주의’에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로, 다시 ‘중국특색 사회주의’로 단어 하나씩 빼는 데 오랜 과정을 거쳤다. 이번에는 시진핑이라는 이름을 붙인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당장(黨章·당의 헌장)에 곧바로 포함시켰다. 신시대의 ‘시대’는 ‘이어러’(era)의 의미, 요즘 말하는 ‘다른백년’ 격이다. 질서가 급격히 전환되는 다른 100년에 걸맞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 중국식 ‘현인통치’가 의회민주주의에 비해 우위성이 있는지 의문인 상태에서 권력이 더 집중화된 것인데.  


“4차 산업혁명 같은 산업의 대전환기를 맞아 리더십이 더 강력해질 필요성이 있었던 것 같다. 마오로 인해 사회주의 국가가 건설됐고, 덩샤오핑 시기에 먹고 살게 됐으니 이번에는 ‘창치라이(强起來)’ 즉 강력해지겠다는 거다. 사회주의의 핵심 가치관의 첫번째가 부강(富强)인데 ‘부’는 이뤘으니 ‘강’을 이룰 차례다. 이렇게 자신의 역사적 위상을 설정하려는 것이다. 중국은 당 바깥에 견제와 균형이 없다보니 당내민주와 ‘협상민주’를 결합해 당-국가체제를 유지해왔다. 정당간 경쟁체제가 없어 위험하게 볼 수도 있지만 중국 스스로는 사회주의 체제에 전통적 정치문화가 접맥된 지속가능한 체제로 본다. 엘리트를 안정적으로 충원하고 제도화를 통해 정치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밑으로부터 권위를 받아 정치를 하려니 동원주의적인 오류가 나타날 위험은 있다.”


- 당장에 시진핑 이름을 넣을 정도로 의미부여를 할 만한 무게가 있는 건가. 시진핑 어록 베껴쓰기 운동이 전개되고 ‘영수’라는 칭호가 나오는 걸 보면 중국이 ‘좌경화’된다는 느낌도 있다.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중국공산당의 세가지 원칙이 있는데 ‘지도자는 반드시 교체된다, 지도자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기초로 통치한다, 지도자는 역사적인 과제를 어깨에 진다’는 거다. ‘좌경화’라기 보다는 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 것 같다. 2008년 금융위기를 중국은 미국 자본주의가 가진 종합위기로 간주했다. 미국이 지도국가가 아니라는 회의감이 강해지면서 중국 나름의 질서와 가치를 전파할 필요를 느낀 거다. ‘베이징 컨센선스’ ‘중국모델’ ‘중국정신’ 등으로 표현돼 오다 최근엔 ‘중국방안’이란 말도 쓰인다. 그 핵심은 사회주의성의 강화다. 공평·인본주의 같은 마르크스주의의 본래 가치를 변화된 질서에 접맥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간 서양의 규범안에서 경쟁해 왔다면 이제는 ‘자신의 판을 새롭게 돌리겠다’는 것이다. ‘역사의 관건기’이다 보니 권력이 집중화되는 것 같다.”


- 시진핑의 권력집중이 미리부터 예견된 결과인가.  


“당대회에서 갑자기 나타났다기 보다는 집권 초기부터 나타났던 조짐이다. 장쩌민(江澤民)은 총서기는 내려놓되 군사위원회 주석직은 유지하는 ‘반퇴’를 했다. 반면 후진타오는 시진핑의 강력한 요구로 곧바로 은퇴했다. 보통 중국 정치는 지도자의 임기 10년중 첫 5년은 전임 지도자의 정책을 계승한 뒤 집권 후반부터 자기 정치를 본격화한다. 그런 식으로 ‘매몰비용’을 줄여온 것이 전통이었지만 시진핑 체제는 초기부터 자기 부대에 자기 술을 붓기 시작했다.”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장 @이준헌 기자

-‘신형대국관계’ 대신 ‘신형국제관계’를 제시하고 아프리카와 저개발국 등 제3세계에 중국모델을 수출하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중국모델 수출은 정확히 말하면 ‘중국의 경험으로 아프리카나 저개발국에 공헌한다’는 표현을 쓴다. 최근의 저개발국은 신자유주의로부터 소외됐거나 피해를 본 곳이다. 세계화의 영향으로 불거진 새로운 남쪽, 즉 ‘글로벌 사우스’ 문제에 적극 대처하겠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중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대체로 수용했고, 그래서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도 가입했다. 다만 이 질서를 미국이 주도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고, 순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신형대국관계’는 강대국과의 외교, 강대국으로서의 외교가 중첩된 개념이다. 중국 스스로 외교의 규범과 철학, 질서 형성을 시도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을 얼마 안돼 ‘신형국제관계’로 바꾼 건 더 큰 틀에서 세계질서를 만들어 가는 룰세터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 지방 경험이 없는 왕후닝을 정치국 상무위원(중앙서기처 제1서기)에 발탁한 것도 주목된다.  


“지방이나 기층에서 업적을 쌓아야 상무위원에 오르는 관행이 처음으로 깨졌다. 장쩌민 시기부터 참모역할만을 해온 왕후닝을 국가지도자인 1~4위 다음의 서열(5위)에 배치한 것은 시진핑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게 이념과 담론, 제도의 설계 문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 같다. 왕후닝은 ‘신형대국관계’나 ‘일대일로’의 개념을 설계했고, 깨끗하고 강력한 리더십이 중국을 통치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21세기에 맞춰 중국문명론이라는 거대한 담론체계를 만드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 역사적으로 본다면 아편전쟁(1840년) 이후 서구의 지배질서가 170년간 유지되다 몇차례 위기가 대두됐다. 중국이 마침내 떨쳐 일어나 서방과 체제경쟁을 본격화하는 셈인가.


“아편전쟁 전까지만 해도 중국이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30%이상을 차지했었다. 긴 역사를 돌이켜보면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 잠깐 몰락했던 셈이고, 최근 중국의 부상은 ‘재(再)부상’이다.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표현을 즐겨쓴다. 아편전쟁 전 구가하던 황금시대를 재현하겠다는 발상이니 ‘다른백년’보다 스케일이 훨씬 큰 거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개막식의 퍼포먼스에 15세기초 대항해를 했던 정화(鄭和)가 등장했는데 정화의 대항해 루트가 ‘일대일로’를 연상시킨다.”


- 그런 맥락속에서 본다면 시진핑의 권력강화가 다소 거칠어보이긴 해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셈이네?


“대전환의 시기에 거대담론을 쥐고 가야 하는 역사적 압력요인이 있었고, 국민들도 체제 자부심이 상당히 커진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시진핑을) 밀어 올렸다.” 


- 당대회에서 강조된 공정·공평도 사회주의성 회복이라는 맥락으로 볼 수 있나. 중국특색사회주의라고 하지만 실은 굉장한 신자유주의이지 않나. 


“중국의 사상투쟁은 ‘주요모순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마오쩌둥 시기에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었다가 덩샤오핑 시대에는 낙후된 생산력과 인민수요간의 모순, 즉 전형적인 생산력 모순으로 바뀌었다. 시진핑은 ‘인민의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수요와 불균형·불충분한 발전의 차이’ 즉, 격차와 불평등으로 변경했다. 이를 해소해 사회주의성을 복원해야 하고, 그러려면 성장모델을 바꿔야 한다. (등소평 시대의) ‘선부(先富)론’ 대신 함께 부유해야 한다는 ‘공부(共富)론’이 등장했다. 당대회를 보면 엄청난 내부 사상토론이 있었던 게 감지된다. 국가-시장관계에서도 과거엔 시장이 혁신의 주체라고 봤지만 지금은 국가가 시장에 효과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강조된다. 시장에 대한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이 높아야 사회주의라고 보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같은 예측불가의 미래에 대비해 국가가 지식과 정보 인프라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고 효과적인 산업정책으로 혁신을 유발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 시진핑 집권 2기는 반부패 운동이 더 강화될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1기 때 관료들의 관행과 행태를 바꾸려는 시도를 했다. ‘밥값은 얼마 이하’라는 식으로. 상당한 저항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는 극복된 것 같다. 반부패 운동은 단순히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 관행타파라기 보다 임계점에 달한 특권·부패·지대추구 현상을 없애 시장의 역동성을 풀기 위한 것이다. 운동의 성패는 ‘성역’을 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데 저우융캉(周永康) 같은 정치국 상무위원까지 쳐내면서 개혁에 동력이 생겼다.”


■“중국이란 ‘숙명’ 극복하려면 남북관계가 돌파구”


- 당대회 이후 미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는데 처음부터 마찰을 겪으며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진핑이 ‘중미관계가 좋아질 이유는 1000가지가 되고, 나빠질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했다. 중국이 아무리 부상해도 종합국력의 차이는 있거든. 미중관계가 갈등위주로 가면서 부분적으로 협력하기 보다는, 협력위주로 가되 국가이익을 둘러싼 갈등이 부분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미국도 겉으로는 중국을 강력 비난하는 레토릭을 구사하기도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상호의존에 기초해 협력을 극대화하려 할 것이다.”


- 양제츠의 정치국 위원 승격은 대미외교를 중시하겠다는 뜻외에 다른 함의가 있나. 외교관의 정치국 위원 진입은 첸치천이후 14년만이다.


“미국통이기 때문에 승격시켰다기 보다 외교가 중요한 시대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 같다. 미·중(및 대외)관계의 설계는 왕후닝의 머리속에서 나온 걸로 봐야 하는데 왕후닝이 정점에 있고, 양제츠가 정치국 위원, 왕이 외교부장이 당 중앙위원에 포진하는 라인업을 통해 대외정책의 전략적 큰 그림을 그려갈 것이다. 왕후닝은 (시진핑의) 모든 해외순방을 비롯한 주요 일정에 항상 함께 움직인다. 한중 정상회담에도 배석했다.” 


@이준헌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축전을 보냈고, 북한매체에 시진핑이 8개월여만에 등장했다. 당대회 이후 북중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인지, 북핵문제에 중국이 적극 나설지 궁금하다.  


“중국은 북한이 핵보유를 포기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 같다. 다만, 북한이 내년 신년사에서 핵능력 완성을 선언하게 되면 문제를 풀기가 더 어렵게 된다. (핵완성도가) 90%든 95%든 여지를 남겨둬야 협상 공간이 생길 수 있으니 연내에 (대화의) 모멘텀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당대회가 끝나면 북·중간 당 대 당 교류가 본격화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의 북핵해법이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활동과 한·미 연합훈련의 동시중단)과 쌍궤병행(비핵화와 북미 평화체제 협상 병행추진)’인데 북한이 9월15일 이후 추가행동을 하지 않고 있으니 사실상 ‘쌍중단’을 수용한 상태이기도 하다. 미국의 군사훈련이 내년 3월 평창 장애인올림픽 무렵 재개될 예정인데 그 이전에 모멘텀을 찾지 못하면 굉장히 어려워질 수 있다.”


- 사드 이후의 한·중 관계는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할까. 


“우선 중국에 더 많은 대북압박을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지난 7월6일) 베를린 한·중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이 대북압박을 거론하자 시진핑이 ‘중국과 북한이 피로 맺은 관계임에도 제재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발끈했다. 중국에 대북압박을 요구할수록 (북핵과 관련해) 중국의 운신공간을 좁히게 된다. 세컨더리 보이코트(북한과 거래한 기업·금융기관에 대한 추가제재)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한국이 중국기업을 제재하는 의미로 읽히기 때문에 사드봉합으로 호전된 분위기를 다시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로 한국의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지만 결국 우리 하기 나름 아닌가. 


“지금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5년내에 한국외교가 종속변수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전에 공간을 적극 파고 들어가야 하고, 양자관계 중심에서 벗어나 포괄적 접근, 즉 ‘패키지 딜’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다층적으로 큰 틀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가 요청된다. 지나치게 인격화된 한미동맹도 업데이트 할 필요도 있다. 한중관계도 단순 복원이 아니라 장기 비전을 세우고 방향을 잡아야 한다. 한국 외교가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익과 지켜야 할 가치를 외교자산으로 축적할 필요도 있다. 중국의 반체제 운동가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건으로 중국이 연어수입을 중단하자 노르웨이가 ‘인권과 연어를 바꾸지 않겠다’며 버틴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텼다. 핵심이익,”


- ‘한미동맹의 인격화’는 미국에 노(No)라고 말 못하는, 순응주의를 말하는 건가. 어떻게 업데이트 해야 하나.  


“동맹의 역동성에 주목하면서도 시대상황에 맞게 조정될 필요도 있다는 뜻이다.”


- 핵심이익은 뭘 가리키는 건가. 


“예컨대 촛불혁명으로 표출된 민주주의, 인권, 자유 같은 가치가 외교정책에 녹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정치에서 표출되는 아래로부터의 역동성을 외교에 담아 행사해 본 적이 드물다. ‘한반도에서 전쟁카드는 쓸 수 없다’는 점도 핵심이익이다. 핵심이익은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지켜져야 한다. 외교정책의 ‘진자’가 정권에 따라 크게 흔들리면 외교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진자의 운동폭이 제한되도록 우리 사회 ‘미들클래스’의 인식이 더 탄탄해져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전술핵 배치나 핵무장론 같은 거친 논의들이 줄어들지 않겠나.”


- 한국의 가장 큰 외교자산은 남북관계 아닐까. 어떤 대북태도가 필요한가.  


“최대 압박의 목표가 대화에 있고, 한반도 문제는 평화적·외교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중국외교에서 본받을 대목은 한번 원칙을 정해놓으면 바꾸지 않고, 호흡이 오래간다는 점이다. 2013년 1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중국이 미중 외교장관 전화회담을 통해 유엔안보리 제재를 합의하는데 그때 밝힌 원칙이 ‘북한이 나쁜 행동을 벌이면 유엔안보리의 제재강화에 참여한다. 하지만 제재의 목표는 대화에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일관되게 유지한다. 반면 우리 외교는 미국변수, 중국변수에 따라 요동친다. 결국 (대통령이) ‘지금은 북한과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외교에서 사건·국면·구조를 섬세하게 구분해 메시지 관리를 해야 우리의 외교공간이 마련된다. 사건에 구조의 대응카드를 쓰면 스텝이 꼬여 버린다.”


- 중국이 북핵문제에 무기력한데다 사드갈등 과정에서 대국답지 못하게 경제보복을 하면서 국내여론에 부정적 정서가 축적됐다. 


“중국이 부상하긴 했지만 덩치에 걸맞지 않은 사고방식이 여전히 남아있는 거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피해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중국의 정책이 투사되니 감정이 증폭된 면도 있다. 한편으로 우리 의식구조에서 중국에 대한 비판과 미국에 대한 의존이 동전의 양면처럼 돼 있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한미동맹 외에 대안이 없다며 모든 사안을 동맹에 귀착시키는 ‘동맹환원론’이 폭넓게 자리잡으면서 중국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70%대인 반면 사드배치 찬성률도 높게 나타나는 현상이 말해준다.”


- 성균중국연구소는 언제 설립됐나. 


“원래 동아시아지역연구소였는데 중국에 포커스를 맞추자는 학교방침에 따라 2002년 설립됐다. 중문으로 내는 계간지는 중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거의 보는 편이다. 중국 외교가와 정가의 핵심인사들도 ‘잘 읽고 있다’고 한다.”


- 한국인들이 중국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요즘처럼 뼈저리게 느낀 적이 없는 것 같다. 


“양국간에 서로를 잘 안다고 착각하는 ‘이웃증후군’이 있었던 같다. 중국의 외교행태를 과거 중화체제나 조공체제로부터 반추해 내면서 읽기 시작한 게 사드문제다. 우리가 중국에 대해 어떤 부분은 순응하거나, 적응하거나 (정면)대응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이 숙명을 극복하려면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모멘텀)를 찾는 수밖에 없다. 국가의 힘이 커지려면 ‘매핑파워’ 즉 지도를 그리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남이 그린 지도안에 갇혀 있다. 우리가 가고 싶은 길을 가려면 (동맹환원론 같은) 기존 경로를 답습하지 말고 때로는 바깥길로 벗어나 볼 필요가 있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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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23. 14:14

방송인 김미화 @강윤중 기자

김미화(53)의 직함을 쓰려다 기사 첫줄부터 잠시 멈칫했다. 방송인, 코미디언 어느 쪽일까? 어릴적 마을공터에서 이미자 흉내를 내며 어른들 배꼽을 잡게했고 코미디를 평생의 업으로 삼아왔지만, 지금은 ‘코미디언’으로 부르기 어색해진 것도 사실이다. 코미디 프로 축소라는 방송환경 변화에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이력 때문이겠지만, 권력이 벌인 ‘난장’에 휩쓸리다 보니 그 스스로 이야기하듯 ‘분위기가 딱딱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김미화는 지난 보수 정권의 집중타깃이 됐다. 라디오 생방송 도중 갑자기 정보기관원이 스튜디오에 난입하는 봉변을 겪는가 하면, 보수인터넷 신문으로부터 황당무계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방송에서 정책 비판을 3분 내보낸 며칠 뒤 장관의 해명에 30분을 할애했는데도 편파적이라는 지적을 받은 적도 있다. 이 ‘블랙 코미디’의 총연출을 국가정보원이 해온 사실이 최근 국정원 적폐청산 태크스포스(TF)의 조사로 밝혀지면서 김미화는 뉴스의 중심에 섰다.


“내가 다시 코미디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사회뉴스에 나와 인상쓰고 있으니 내 자리에서 더 멀어지는 것 같아 슬프고 암담하다.” 지난 16일 서울 상암동 TBS 스튜디오에서 만난 김미화는 이런 ‘사회성 인터뷰’를 그리 내켜하지 않는 듯 했다. 


김미화는 “코미디언을 하면서 어려운 이들을 돕는게 내가 원하던 삶이었고,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데 나를 정치적이라고 보는 시선은 30년이 지나도록 여전하다”며 “소셜테이너라는 말로 연예인들을 편협하게 규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하루에 80%를 코미디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직도 코미디에 대한 열정은 엄청나다”고 했다. 정치가 코미디를 하는 시대가 지나가고, 김미화가 다시 코미디 무대에 설 날이 오게 될까.


■“국정원에 ‘김미화 파일’만 20건”


- 국정원이 이명박 정부 시기 82명의 문화예술인과 연예인을 ‘좌파’로 분류해 활동을 압박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달 검찰에 참고인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국정원이 작성한 파일을 보니 다른 이들은 파일은 1~2건이던데 내 건 20건 가까이 되더라. 건건이 다 내가 (마음 먹는다면) 법의 심판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내용들이다. 방송단체 뿐 아니라 재계에도 내가 진행하는 프로에 광고를 붙이지 말라는 식으로 내 활동을 전방위로 막는 지침들을 보냈다. 어떤 파일엔 ‘김미화 수용불가’란 말도 있더라.”


- ‘수용불가’는 무슨 뜻인가.


“사회에서 수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뜻 같았다. ‘좀비화’를 시킨다는 등 별별 표현을 끌어다 썼더라.”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들이 있었는지 묻자 김미화는 노트를 꺼내 메모한 내용을 읽었다. ‘각 방송사 경영진에게 퇴출되도록 주의를 환기시켜라’ ‘연예인 건전화사업 TF팀을 꾸려 좌파 문화예술인 척결활동을 하라’ ‘방송활동 차단 강화’ ‘비리를 적출하라’ ‘사회공분을 유도하라’…. “한번은 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여성부가 공익광고를 붙였는데 ‘앞으로 못 붙이도록 강력 시정권고를 했다’는 내용도 있다. 국정원이 방송협회, 경제단체, 각 대기업에 문서로 협조요청을 한 거다.”


방송인 김미화 @강윤중 기자

- 국정원이 이런 작업을 하는 기간 동안 행사 출연요청 같은게 슬슬 끊긴다는 느낌을 받았나. 


“‘KBS 블랙리스트’ 사건(2010년 7월)이후 방송 퇴출압력이 커졌지만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추진되는 줄은 몰랐다. KBS 블랙리스트는 막연히 방송사의 ‘갑질’ 정도로 생각했었다. 당시 KBS 내부에 출연금지 문건이 존재하고, 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블랙리스트가 실제로 있는지 밝혀달라고 했을 뿐인데 KBS가 곧바로 고소했고, ‘무조건 사과하라’는 식으로 나왔다.” 


- 경찰조사는 어땠나.  


“4~5차례 출석해 경찰조사를 받았는데 그때마다 7~8시간씩 조사를 받았다. 블랙리스트의 유무가 아니라 ‘누구한테 들었냐’만 집중적으로 캐더니 통화기록까지 다 뒤져 끝내 찾아내더라. 조사받던 도중에 경찰서 창문이 열려 있는 걸 보고 ‘저기서 딱 뛰어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더라. 반년 가량 힘들었고, 똑같은 악몽을 계속 꾸기도 했다.”


- 라디오를 진행하는데 괴한이 스튜디오에 난입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 


“MBC라디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생방송 도중 스튜디오 부스에 외부인이 갑자기 들어와 PD에게 대본을 보자고 요구하더라. PD가 ‘당신 뭐야’하고 소리지르고 난리가 났다. 정보기관 쪽 사람이었다고 들었다. 최근에 뉴스를 보니 MBC에 상주하는 국정원 직원이 연예인 퇴출계획 등을 작성해서 MBC간부에게 전달했다고 하니 그 직원이었을 수도 있겠다.”


- 당시 특별관리대상이었으니 점검차 왔던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웃음) 그만두기 전까지 압력이 많았다. 2009년에는 PD들이 피켓시위해서 퇴출은 피했는데 2011년에 김재철 사장이 ‘다른 좋은 프로그램 많다’며 그만두라고 했다. 사장이 그러는데 견딜 수 있겠나. 자존심이라도 지키려고 자진해 그만둔 거다.”


- 이후 CBS 라디오 프로를 진행할 때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던데. 


 “꼭 찝어서 내 프로만 문제 삼더라. 경제학자들이 나와 3분 가량 정부 농업정책을 비판한 적이 있고, 그 며칠 뒤 부처 장관이 나와 30분간 정부정책을 설명했다. 그런데도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벌점을 매겼다. 장관이 출연한 건 카운팅 안하고 3분 비판한 것만 문제삼은 거다.”


■“코미디언이 고개 빳빳이 들고 대드니 더 찍힌 듯”


- ‘친노’라는 딱지를 붙인 인터넷 언론과 소송도 했었는데. 


“한 보수인터넷 신문이 나를 친노·종북·좌파라고 비판한 기사를 실었다. SBS에서 청소부 역할로 화장실에서 게스트를 모셔 진행하는 ‘삼순이 부르스’를 할 때 의원시절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출연한 적이 있다. 이후 대통령 선거 때 SBS 차량을 타고 각 당사를 돌며 후보들과 만나는 방송을 했는데 노 당선자에게 하회탈을 선물했다. 그걸 갖고 ‘친노’로 엮은 거다.”


- 이후에 어떻게 됐나. 


“SBS가 사장명의로 사실확인서를 써줬다. 노 의원 섭외나 노 당선자 하회탈 선물은 SBS의 기획이었다고. 그런데 그 기자가 사실확인서가 가짜라며 나를 사문서 위조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검찰에서 무혐의 처리가 됐는데 얼마뒤 똑같은 건으로 다른 경찰서에 고소를 했고 그게 다시 무혐의 처리가 됐다. 이번에 검찰 조사 때 국정원 파일을 보니 ‘김미화는 사문서위조 혐의가 있는 범법자이니 퇴출시켜야 한다’며 그 기사를 붙여놨더라.” 


- ‘퇴출명분’ 쌓으려고 고소한 것 아닌가. 


“그래서 두번씩이나 고소를 한 거 같다. 당시엔 대체 왜 저러나 했는데. (국정원의) 행동대원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다. 정말 코미디다. 진짜.” 


- 왜 그토록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코미디언이 시사 프로그램을, 그것도 MBC에서 진행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정권이 MBC노조를 ‘빨갱이’로 여기면서도 당시까지는 구성원들을 함부로 못했으니 우선 만만한 연예인들을 건드린 것 아닐까. 시사프로 진행 초기에 ‘코미디언이 뭘 안다고’라며 비웃는 이들이 꽤 있었다. 예전부터 코미디언은 비하의 대상이었으니. 게다가 ‘KBS 블랙리스트’로 내가 정권에 ‘엉깐(덤빈)’ 셈이 된거다. 아마 깜짝 놀랐을 거 같다. 웬만하면 수그러들 법도 한 코미디언이 끝까지 고개 빳빳이 들고 대드니 그래서 더 찍힌 것 같다.”


-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은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서 시사문제를 다뤄 호평을 받았는데. 


“당시 청취율도 좋았고 광고도 120% 팔았다. 근데 식자층, 칼럼을 쓰는 위치에 있는 분들에게 김미화라는 코미디언의 존재가 너무나 가볍게 보였던 거 아닐까. 게다가 방송하면서 궁금한 건 즉석에서 물어보고 하니 기분 나쁘게 생각한 정치인들이 꽤 있었다. ‘의원님 이건 이해가 안된다’ ‘반대편에선 다른 이야기를 한다’며 대본에 없는 질문을 해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거지. 실제로 통화 끝나고 제작진에 항의한 정치인들도 꽤 있었다.”


■“소셜테이너란 말 안 썼으면 좋겠다”


- 한창 인기있던 80~90년대부터 사회활동을 꾸준히 해온 것인데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소셜테이너’로 규정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섞인 느낌도 든다.


“일단 영어를 섞어 쓰는 것 자체가 혼란을 주잖아. 소셜테이너와 폴리테이너를 뒤섞어 쓰기도 하고. 왜 이런 단어를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사회복지 공부도 했고, 사회와 어려운 이들에 관심도 많았다. 코미디언으로 성공해 인기를 얻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게 내가 예전부터 원하던 삶이었다.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도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온 궤적을 보면 알 수 있는데 ‘김미화가 코미디언으로 성공하고, 불우이웃 돕기로 인지도를 쌓은 뒤 정치를 할 거’란 말이 나오더라. 벌써 30년이 넘었는데도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정치적이라는데, 뭐가 정치적이라는 거야? 시사프로에서 정치를 다뤘을 뿐인데도 사람들은 희한하게도 그런 시선으로 본다.”


- 정치권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영입제의를 했지만 응하지 않았던 거 아닌가. 그런데도 이런 인식이 한번 박히면 잘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30년간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건데. ‘쟤는 되게 만만하네. 건드려도 되네’ 했던 거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내가 견뎌온 세월이 너무 억울하다. 세상이 이제 조금 바뀌고 있다지만 다시 코미디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뉴스에 나와 ‘이명박 고소하겠다’고 인상쓰고 그러니 내 자리에서 더 멀어지는 것 같아 암담하다. 이제는 그냥 담담하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자고 마음 굳게 먹고 있다.”


@강윤중 기자

- 한 주요 일간지가 ‘폴리테이너’라고 쓴 것도 영향이 있는 것 같다. 


“반페이지나 되는 지면에 내가 ‘노사모’인 양 노란옷을 입은 사진을 커다랗게 실어서 기사를 썼다.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정정보도 결정이 내려졌지만 이제는 보수인터넷 언론들이 비슷한 취지로 기사를 쓰더라. 인용하기 시작했다. 주요 신문의 책임이 크다. 이름있는 신문이 가진 위력을 기자들이 생각하고 기사를 써야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으니.”

 

- 6살 때부터 코미디언이 꿈이었다고 했다.


“내겐 코미디가 전부였고, 하루에 80%를 코미디만 생각했던 시절도 있다. 지금도 정말 재밌게 코미디를 만들 자신이 있는데, 내 스스로 딱딱해질 일들이 너무 많았다.”


- 예전 프로를 보면 달동네 셋방살이 새댁이나 화장실 청소부 아주머니, 소녀가장 같은 서민역할이 많았다. 


“‘쓰리랑 부부’, ‘삼순이 블루스’, ‘누나야’ 같은 코너가 그랬다. 한국 코미디언은 직접 아이디어를 내는데 그러다 보니 자기에 맞는 소재들을 하게 된다. 내가 잘한 거는 내가 경험했던 것들이기도 하다. ‘삼순이 부르스’는 친정엄마가 중소기업의 화장실 청소부를 하던 걸 지켜보면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내가 학생 때였는데 엄마가 내게 ‘너는 인사를 잘하고 다녀라. 매일 화장실에서 얼굴 마주치는 직원이 엄마를 투명인간 취급한다’고 하더라. 코미디언이 되고 나서 청소부 아주머니나 세트 만드는 분들에게 꼬박꼬박 인사를 했더니 ‘방송국에서 가장 인사를 잘하는 코미디언’ 소리를 들었다. 그 분들 볼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났던 거지. 쓰리랑 부부는 달동네 살 때 공부 팽개치고 만화방에서 보던 길창덕 선생님의 <순악질 여사>가 너무 재밌어서 나중에 꼭 하겠다고 맘먹었던 거다.” 


- 코미디언 초년 시절부터 비디오를 하루에 한 편씩 보고, 책도 많이 읽었다고 들었다. 

“TV를 보다 코미디 소재로 쓸 만한 게 나오면 즉시 눌러 비디오테이프에 녹화를 해놓곤 했다. ‘오데로 갔나’라는 노래를 개그비전송 페스티벌에 이봉원씨와 함께 나가 불러 상을 받았는데 이건 ‘남북의 창’이라는 프로에서 ‘벌목꾼의 노래’라는 북한 노래를 보다가 저무 재밌어서 녹화해 뒀다가 패러디한 거다. TV프로를 녹화한 비디오를 보면서 공부를 해온 거다. 이런 식의 보는 작업이 상당히 도움이 된다. 책도 읽으면서 코미디의 모티브를 찾곤 했다.”


- ‘서민형 코미디’를 해왔고 인기를 얻었고, 그 뒤 꾸준히 사회활동을 하면서 서민들을 도와왔던 거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 그런데 SNS가 발달하면서 ‘어느 연예인이 무슨 행동을 했더라’하는 게 도드라져 보이게 된 거지. 그걸 반대편에선 입맛대로 이용한 거고, 그래서 평가가 달라지고. 나는 지금도 누군가가 도와달라고 하면 고맙다. 아직은 유명해서 내 힘을 필요로 하는 거잖아. 얼마 전에도 동물권 홍보하는데 도와달라고 하더라. 내가 가서 손잡고 안아드리는 걸로 힘이 된다면 참 소중한 일이다. 내가 한때 80곳이 넘는 단체의 홍보대사를 했었다. 내가 높은 자리보다는 현장에서 일하는 걸 좋아해서 그렇게 된 건데 이 단체들이 정권에 따라 좌파가 되기도 우파가 되기도 한다. 자연보호 단체가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면 좌파가 돼버린다. 그러다 보니 이 때는 좌파, 저 때는 우파에서 활동하는 것처럼 비쳤던 거다.”


■“이명박 덕에 새 인생 시작한 셈”


김미화는 고향인 경기도 용인에 거주하면서 4년 전 카페 ‘호미’를 열었다. 남편(윤승호)과 자신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서 지었다. 


- 요즘 일과는 어떤가.   


“아침에 카페에 나가 꽃들을 손보거나, 물건들을 사놓고 12시쯤 이곳 방송국에 온다. 오후 생방송이 끝나면 다시 내려가 남편과 저녁을 먹거나 동네사람들과 어울리거나 한다. 주말에는 카페에서 보낸다. 동네에 친환경 작목하는 분들이 농산물을 갖다 놓으면 대신 판매하기도 하고, 그림전, 인형전도 하고 음악공연도 한다. 봉사활동 다니는 색소폰 동아리나 플룻 동아리들이 들러 ‘공연 좀 하고 갑니다’라며 마이크 켜고 30분쯤 하다 가곤 한다. 그러면 내가 사회도 봐주고. 재밌는 공간이다.”


@강윤중 기자

- 권력의 탄압이 인생의 전기가 된 셈인가. 


“갑자기 일이 끊긴 뒤 ‘아 뭐하지’ 생각하다 꼭 화려한 데가 아닌 곳에서라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이명박 덕분이다. 카페 손님이 한달에 6000명 쯤 된다. 직원들 월급 주고 손해는 안나니 괜찮다. (돌아보면) 괴로운 나날도 있었지만 즐겁게 인생을 꾸려온 것 같다.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 있으면 ‘열심히 해봤으니 됐어’하는 쪽이었다.”


- 동네 공터에서 어른들 앞에서 공연하던 어린 시절과 비슷한 느낌이다. 


“사실 그 때부터 프로였다.(웃음) 어릴 적 동네에 넓은 공터가 있었다. 공장과 주택이 섞여 있는 동네였는데 비닐장판이 깔린 큰 평상에서 공연을 했다. 어른들이 주신 5원짜리 동전이나 자두, 사과를 손에 쥔 채 전파상 아저씨가 만들어준 마이크를 잡고 가수 이미자 흉내를 내면 어른들이 무척 좋아했다. 종일 광주리이고 생선, 과일 팔고 돌아오던 어른들께 즐거움을 드린 거지.”


- 다시 코미디에 복귀해야 하지 않나.


“열정은 아직도 엄청난 데 안 써준다.(웃음) 젊은 PD가 ‘선배님’하며 말을 걸지 혹시 모르지만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러다 일이 생기면 더 기쁘잖아.”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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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16. 17:43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김기남 기자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의 출발은 매끈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계승하겠다는 취지를 천명했고, 신베를린선언을 통해 남북대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 6·15, 10·4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른 것도 보수정부와 달랐다. 


그런데도 한반도의 긴장수위는 오히려 치솟고, 남북대화의 문도 굳게 닫혀 있다. 북한이 핵실험에 미사일을 쏘아대고,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말폭탄과 군사적 압박을 번갈아가며 불안감을 키우고 있지만 한국 정부의 ‘존재감’은 제로에 가깝다.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한국의 능동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미국 주도의 ‘최대의 압박’에 올라탄 채 손을 놓고 있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가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다”고까지 했다. 이대로 가다간 박근혜 정부 때 시작된 ‘코리아 패싱’이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달랐다. 북·미 대화 성사를 위해 당국자들이 백방으로 뛰었고, 부시 행정부의 호전적인 태도에 마찰을 불사하고 제동을 걸었다. 이런 노력들이 북·미의 태도를 조금씩 바꿨고,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에 걸맞은 독자적 공간을 키웠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고 하겠지만 북핵구도의 본질이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다.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종석(59)은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포비아(공포증)’에 걸려 있다”고 본다. 한반도 정책을 실질적으로 총괄했던 그가 보기에 현 정부 외교안보팀은 험난한 정세를 돌파하기엔 치열함이 부족하고 ‘얌전’하다. 지난 9일 경기 성남시 세종연구소 연구실에서 만난 이종석은 “트럼프가 무슨 행동을 해도 정부가 ‘이해한다’는 식으로 입을 다물고 있는 게 가장 위험한 상황”이라며 “미국 하자는 대로 그저 따라가다간 결정적 시기에 미국이 한국을 ‘패스’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폭풍우가 몰아쳐도 꿋꿋하게 버티며 할 말을 해야 우리 공간이 생긴다”면서 “대통령과 외교안보라인이 의지를 갖고 우선 미국의 위험한 행동에 적극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 대북정책 시스템 부재, 무책임”


- 추석 연휴 기간에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폭탄이 쏟아졌다. 북한보다 오히려 미국의 태도가 종잡을 수 없다. 


“북핵이 심각하다면서도 트럼프 행정부 출범 9개월이 넘도록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동아·태차관보가 아직 지명조차 안되는 무책임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미 국무부가 요즘 보면 북핵이나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의미 있는 이니셔티브를 취한 적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건지 여러 논의구조를 거쳐 만든 전략이 없는 것 같다. 일부는 정보에 기반한 것도 있겠지만 트럼프가 자기 기분이나 선입견에 의해 정제되지 않은 언어들을 쏟아내는 식으로 가장 중요한 몇달이 흘러가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 트럼프가 ‘군사옵션’ 가능성도 계속 흘리고 있다. 


“미국 사회가 한반도 문제에 대해 갖고 있는 최소한의 컨센서스는 한국정부의 동의 없는 군사행동과 주한미군 철수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정부가 분명하게 입장을 피력해야 지켜진다. 김영삼 대통령이 ‘반북’으로 일관하다가도 1994년 영변 핵시설 폭격이 거론되자 미국에 단호하게 ‘그건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가 무슨 말을 해도 ‘이해한다’는 식인데 한국정부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트럼프가 그 성격에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른다. 그런 점이 걱정이다. 한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반발하면 물론 트럼프와 삐그덕거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트럼프에게는 중요한 제어요인이 되는 거다.”


@김기남 기자

- 소설가 한강이 뉴욕타임스에 ‘미국이 전쟁을 언급할 때 한국은 몸서리를 친다’는 내용의 기고를 했다.


“그런 이야기는 당국자들이 해야 할 역할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한테 ‘디스맨’이라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설득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조지 부시 행정부의 강경정책에 맞섰다.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자 노 대통령이 2004년 11월 정상회담에서 ‘그런 말은 협상에 도움이 안된다’고 충고했다. 부시는 그 지적을 수용했지만 그러고 나서도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이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하자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이 기자회견(2005년 6월21일)을 열어 유감표명까지 했다. 불편해도 자꾸 이야기하면 미국도 듣게 된다.”


- 트럼프가 트위터에서 ‘25년간 잘해줬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했지만 팩트체크를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미국이 결정적인 국면에서 신뢰를 깬 적도 있지 않나.


“클린턴 행정부 마지막 해인 2000년부터 조지 부시 대통령 취임 이듬해인 2002년 초까지 북한의 도발이 한건도 없었다. 그런데도 부시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전임 정부의 북·미 합의를 뒤집었고, 2002년 1월에는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몰아붙였다. 2005년에도 9·19합의(북한 핵포기 및 북·미 관계정상화) 직후 미 재무부가 달러위조 증거를 찾는다며 마카오에 있는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했으나 결국 증거는 나오지 않았고 동결한 자금을 돌려줬다. 이 파장으로 9·19합의가 좌초하면서 북한이 1차 핵실험에 나선다. 이 두가지만 봐도 트럼프의 이야기가 일방적인 주장임을 알 수 있다.”


■“한국 정부, 목소리 안 내면 나중에 미국에게도 ‘패스’당할 수도”  


- 문재인 정부의 전략에서 창의적이거나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안 보인다. 


“바깥에서 보기엔 전략적 큰 그림이 과연 있는지 의문스럽다. 전략적인 방향, 그에 기초한 정책,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시스템, 운용하는 인력 등 4가지 층위에 골고루 문제가 있다고들 한다. 나는 전략적 방향부터 눈에 띄게 이상하게 가니까 그 이야기만 주로 하지만, 그 아래의 이야기를 하면 끝이 없다.”


- 문 대통령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대북 원유공급 중단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일은 사실상 ‘외교참사’ 아닌가. 


“그래서 시스템, 사람의 문제까지 거론되는 거다. 푸틴이 불과 며칠 전 ‘북한은 풀을 뜯어 먹더라도 핵개발을 포기 안할 거다’라면서 원유공급 중단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벌어지니 시스템이 뭔가 제대로 안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푸틴이 거부했다는 사실을 왜 공개했는지도 의문이다. (미국에 보여주려던 거였을까) 그런 건 비공개로 전해도 된다.”


- 북한이 문재인 정부 초기에 대북특사 파견을 기대했는데 보내지 않아 실망했다는 말들이 있다.


“북한으로서는 기대하지 않았을까. 선거기간은 남북관계 개선이나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수평적 한·미관계를 지향하는 후보에게 불리한 시기다. 사실 한·미관계는 무조건 잘 가자고 하는 게 호소력이 있고, 남북관계도 3단논법으로 유권자들을 설득해야 하는 포용정책이 ‘때려잡자 공산당’식의 강경정책에 비해 선거에선 불리하다. 그 시기에도 남북대화 의지를 보였을 뿐 아니라,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주도하고 사드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겠다고 했잖아. 예민한 시기는 잘 버텨내더니 가장 파워가 있는 집권 초반에 입장이 너무 쉽게 변하고 미국에 끌려가는 듯하는 게 놀랍고 미스터리한 거다. 북한도 중국도, 심지어 미국과 일본의 전문가들도 모두 ‘왜 이러나’ 했을 거다. 의지는 변치 않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평화는 의지가 아니라 실천으로 이뤄진다.”


- 한국 정부가 할 말을 하지 않으면 ‘코리아 패싱’이 실제 상황이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지금은) 북한이 문재인 정부를 쳐다볼 이유가 없다. (트럼프의) ‘최대의 압박’에 동참하고 있으니 한국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어진 거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남북대화에 조건을 안 걸었는데 문재인 정부는 ‘올바른 여건 조성’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고 하지만 조건을 거는 것은 상황과 무관한 우려스러운 변화다. 북으로서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제안을 하고 있는 거다. 김정은이 문 대통령을 쳐다보도록 하려면 우리 독자적 공간을 가져야 한다. 대북제재에 대해서도 ‘실패하지 않았느냐’고 말할 용기가 있어야 김정은이나 중국이 귀를 기울이게 된다. 말이 ‘한·미공조’지만 우리 판단을 주장하지 못하면 결국 ‘대미추종’이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미국도 한국을 ‘패스’할 거다. 폭풍우가 아무리 몰아쳐도 입장을 견지하며 꿋꿋하게 서서 견뎌야 입지가 생긴다.”


■“북한, 제재 없다면 15% 성장도 가능”


- 보수정부 9년간 북한은 체제 내구성이 강화됐고, 경제발전이 중국의 90년대 상황을 방불케 한다는 증언들도 나온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북한의 미래를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잡았다. 그해에 중국을 두차례 방문해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를 만났고 나선(나진·선봉)과 신의주 부근 황금평을 양국이 공동개발·공동관리하는 데 합의한다. 김정일의 뒤를 이은 김정은이 2013년 전국 도처에 경제개발구를 조성하는 내용의 경제개방을 공식화했고, 농업에서 포전담당제 도입 등 개혁을 추진한다.”


- 2013년이 굉장히 중요한 해였네?


“그해 말에 장성택 처형이 있었는데 북·중 공동관리 프로젝트의 북한 책임자가 장성택이었다. 북한 역사를 보면 사람을 숙청하면 그 정책까지 날아가는데 이번엔 달랐다. 북한 개혁개방 책임자였던 장성택만 대열에서 핀셋으로 뽑아낸 거다. 제재가 없었다면 박정희 개발독재 시기처럼 15% 안팎의 성장도 가능할 거다. 김정은은 현장점검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김정일과 달리 경제를 열심히 챙기고, 손이 달리면 박봉주 총리에게 대신 챙기게 한다. 그런데 우리는 당시 선언한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핵에만 주목하느라 경제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지금 와서야 ‘이렇게 제재로 찍어누르는데 북한이 왜 플러스 성장을 하느냐’며 미스터리하게 보고 있는 거다.”


@김기남 기자

- 제재무용론이 나오지만, 유엔 안보리 9월 제재의 섬유수출 금지나 노동허가 금지 같은 것들은 효과가 있지 않을까. 


“북이 이번 제재로 경제타격을 받긴 하겠지만 핵정책을 변화시킬 가능성은 매우 낮다. 사상 최강의 제재로 북한을 굴복시키겠다고 했으면 좀 지켜봐야 하는데 말폭탄에 군사옵션 카드를 꺼내고 있는 건 트럼프조차 제재 성공에 확신이 없단 얘기다. 안타까운 건 최근 제재에 맞서 ‘자립적 민족경제’를 강조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북한경제가 세계 경제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정상국가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매우 부정적인 거다. 제재가 북한경제의 시장화나 개혁을 막고 우리가 동북아 북방경제에서 얻을 거대한 이익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북한의 개혁·개방’을 거론할 때마다 북한이 반발하곤 했는데, 돌이켜보면 북한이 실제로 그 길을 걸어온 셈이네?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야기하고 설득하면 그 순간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나중엔 따라왔던 셈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정부 대북정책(평화번영정책) 이름을 그대로 따온 ‘한반도평화번영선언’이 채택됐다. 그런 정도로 따라온 거다. 대북정책에서는 한번에 승부를 보는게 아니라 끊임없이 끌고 오는게 중요하다. 남북협력이 재개된다면 난관에 빠진 한국경제에 또다른 도약의 기회가 열릴 수 있다. 대륙으로 뻗는 길이 다 트이면 우리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 건가에 대한 청사진과 안목을 가져야 한다. 김정은은 핵과 실용주의라는 두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김정일 시대가 허장성세였다면 김정은은 계획을 점검하는 스타일이다. 북한이 우리가 생각하는것보다 훨씬 더 정상국가로 이행되고 있다.”


- 북한의 최종 목표가 평화협정인가.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북한의 최종 목표는 미국의 군사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하는 것이다. 2011년 리비아의 카다피가 미국과의 핵협상에서 핵을 포기하고 수교했지만, 나중에 나토의 공격을 받아 몰락했다. 우크라이나도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겼지만 러시아 침공을 받았다. 북한이 이를 지켜보면서 핵무기가 체제안전에 결정적 무기라고 생각하게 됐고, 핵 보유 자체가 목표가 됐다. 그런데 핵개발로 치러야 할 대가가 크기 때문에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고 체제안전을 보장해주면 입장을 바꿀 여지를 두고 있는 거다. 미국의 북·미수교와 불가침을 담은 평화협정을 수용한다면 핵과 ICBM을 포기할 수 있다는 의사로 보는 게 타당하다.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북한의 목표가 평화협정이라고 전제하면 ‘북한이 핵을 만든 뒤 평화협정 협상에 나설 거다. 그때까지 기다리자’는 묘한 논리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 가장 좋은 협상환경을 만들어주는 무책임한 논리다. 지금 협상하는 게 낫지, 그때 가면 더 비싸게 먹힌다.”


■“대통령이 정책전환 의지 보여야”


-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운전석을 양보받았다고 하지만 운전을 하지 않고 있는 느낌이다.


“운전석에 앉으라고 명확히 말한 적이 있었나.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보면 ‘한국정부가 한반도의 평화통일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 주도적 역할을 지지했다’고 돼 있다. ‘한반도 문제’가 아니라 ‘평화통일 환경조성’이다. 남북대화도 ‘인도주의적 사안을 포함한 남북간 대화를 재개하려는 문 대통령의 열망(aspiration)을 지지했다’고 돼 있다. 남북대화를 지지해야지, 열망을 지지하는 건 이상하잖아. 문안 작성과정에서 미국이 물타기한 것 같다. 노무현 정부 때 정상회담 문안작성 과정에서 미국이 ‘모든 옵션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다’는 표현을 넣자길래 안된다고 버텼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후라는 민감한 시기여서 시소게임 끝에 ‘추가적 조치’로 절충했다. 이번 회담에선 그런 물밑 노력의 흔적이 안 보인다.”


- 문재인 정부도 ‘전쟁반대’를 강조했지만 미국은 아랑곳없는 듯하다.   


“이야기를 했다고 하지만 상대방이 분명히 알아듣도록 하지 않고 그냥 혼잣말 하는 수준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은 안된다’고 했는데도 트럼프가 어깃장 놓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누군가 지적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안하고 있다. ‘트럼프포비아’에 걸린 것 같다. 미국에서 (부적절한 발언이) 나올 때마다 참모들이 촌철살인의 논평을 내놔야 한다. 한반도의 운명을 ‘도마 위 생선’ 다루듯 하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라는 거다. 미국의 합리성은 동맹국인 한국이 당사자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내놓으면 그것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돌출발언이 나올 때마다 외교안보 라인이 ‘무슨 소리 하느냐’고 쳐줘야 한다. 트럼프가 기분 나쁘다는 트위트를 날릴지 모르지만 그래도 굴하지 않아야 우리 공간이 확보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2~3년차를 지나면서 보수강경 부시정부가 우리 의견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9·19 합의까지 간 것 아니냐. 독자적 공간을 갖는게 한·미 공조를 깨는 건 아니다.”


- 지금이라도 대북 특사를 보내야 할까. 


“북한은 외국 지도자와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외정책에서 획기적 전환을 해왔다. 김정은이 2011년 말 지도자가 된 뒤 6년이 다 돼도록 외부 지도자와의 정상회담이 없었다. 김정은에 대해 우리가 아는게 거의 없는 거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북한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외정책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했다. 김정은을 만나면 굉장히 중요한 전기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눈치보지 말고 성과가 없다는 비판에 직면하더라도 만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이 ‘조건 없는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특사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이 미국의 최대 압박정책의 선두에 서서 동참하는 지금 상황에서 특사를 보내봐야 북에 가서 할 말이 있을까.”


- 보수정권을 거치면서 반북여론이 강해지기도 했고, 상황이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지만 정부가 너무 여론에 신경을 쓴다는 느낌도 든다.


“상황이 굉장히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기본적인 사물의 이치와 원리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자적 공간을 갖고 움직여야 하고 전쟁 위험에 대해서는 정부가 앞장서 반대하고 막아내야 하는 건 기본적으로 같다. 동북아의 세력균형이 무너지는 일은 막고, 동북아 다자안보로 가야 한다. 그러나 사드가 세력균형에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정부 측 인사들은 상황이 어렵다고 항변하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기본은 있어야 한다. 미국과 같이 가야 한다는게 미국을 추종하라는 뜻은 아니다. 정부측 인사들이 노무현 정부 때는 북핵해결을 위해 이라크 파병을 양보해다고 하지만 당초 미국이 전투병 보내달라는 걸 조율해서 비전투병으로 바꿨다. 미국을 일방적으로 따라가면 안되고 조율해야 한다는 거다.” 


- 외국에선 한반도 상황을 매우 위험하게 보지만 국내에선 ‘전쟁반대’ 목소리도 안 들린다. 


“문재인 정부가 정책을 전환할 계기가 뭘까 생각해 봤는데, 지지층이 문제시한다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 평화운동 진영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할 말을 해야 한다고 본다.”


- 일반인들이 남북관계나 북핵문제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점이라면 뭘까. 


“오해보다도 불신이 너무 깊어졌다는 게 문제다. 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가 진행됐고, 촛불혁명까지 있었다. 민주주의라면 이념적인 다원성과 관용성이 커지는 것인데 북한에 대한 관용도는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예전엔 웬만하면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김정일’이라고는 했는데 요즘 댓글을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정은’이라고들 한다. 민주주의는 발전하지만 북한에 대한 관용성의 폭은 더 좁아드는 이 역설이 가장 안타깝다.”


- 북핵문제는 결국 북·미 협상을 통해 풀어야 할 텐데 트럼프의 태도를 보면 그렇게 안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미국 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불신이 굉장이 깊은 만큼 북한문제를 긍정적으로 푸는 것이 지지에 도움이 되기 힘들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전격 합의했다고 해도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겠냐는 의구심들이 당장 나올거다. 북한에 강경하게 대응하는게 오히려 인기에 도움이 되는 구조다. 사업가인 트럼프가 긍정적 시나리오를 택하기 쉽지 않고, 미국내에서 북핵문제를 풀 긍정적인 동력이 나오기가 쉽지 않은 거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불쏘시개를 제공해 미국 내에서 협상파가 움직일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트럼프가 성질내더라도 버텨줘야 한다.”



@김기남 기자

-대통령이 정책전환에 대한 의지를 보여야 할 것 같다.  


“대통령이 (할 말을 해야 한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흔들자는 게 아니라 우리가 위험해질 수 있는 일들을 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문제제기하라는 거다. 나중을 기약하기 위해 ‘미국의 가랑이 밑을 기고 있다’는 옹호론도 있지만, 나중에 ‘제재해도 소용없으니 우리말 들으라’고 해도 미국이 들을 거 같나. 오히려 뒤통수 친다고 생각할 거다. 그게 강대국의 속성이다. (지난 6월)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특보의 발언이 논란을 빚었을 때 청와대가 부정했지만, 대통령이 회의석상에서 ‘그런 정도도 이야기하면 안되는 건가요’라고 슬쩍 짚고 넘어가면 될 일이었다. 그런 게 외교고 지혜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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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12. 14:43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이상훈 선임기자

문재인 정부는 경제면에서는 운이 좋은 편이다. 취임을 전후해 외환위기나 SK글로벌 사태 같은 대형 악재가 없었고, 경제 불안요소도 수면아래로 내려가 있다. 조선·해운업 사태로 위기감이 엄습하던 지난해 하반기에 비하면 ‘안온한’ 상황이지만 한국경제는 언제든 응급상태로 치달을 수 있는 만성병 환자다. 공정거래위원장 김상조(55)는 “문재인 정부는 1년 간의 시간을 벌었을 뿐”이라고 한다. 내년 상반기까지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한국경제는 다시 급속히 어려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학자이자 시민운동가에서 새 정부의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변신한 김상조는 기업, 특히 대기업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책임을 맡고 있다. 재야에서 ‘감시자’로서 20년 가까이 고민해온 과제를, ‘집행자’의 위치에서 직접 풀려는 것이다. 그의 취임이후 우선 가맹·유통·대리점 분야에서 개혁효과가 빠르게 가시화됐고, 공정위 조사 소식이 전해지자 마자 업체들이 치킨값 인상을 철회하는 ‘김상조 효과’도 나타났다. 

 

그는 ‘재벌개혁’을 위해 전담조직인 기업집단국을 신설하는 한편, 재벌들에게 올 연말까지 숙제를 줬다. ‘뭐가 문제고 어떻게 해결할지를 스스로 판단해 늦기 전에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지라’는 게 요체다. 결정장애라는 ‘오너 3세 증후군’에 빠진 재벌들로서는 꽤 어려운 숙제일지 모른다. 

 

지난 25일 서울 공정거래조정원에서 만난 김상조는 “지배구조 리스크가 표출되던 시점에서 산업경쟁력이 약화되는 ‘비지니스 리스크’가 겹친 지금, 오너들이 더이상 결단과 행동의 타이밍을 놓치면 돌이키기 힘든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며 “너무 오래 기다릴 수는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재벌 오너들에 대해 “대중 앞에 직접 나서 비전을 제시하고 메시지를 던져야 재벌들이 변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될 것”이라며 ‘은둔’에서 벗어나라고 했다. 

 

■“새 법 만드는 것보다 기존 법 엄정집행이 중요”

 

- 시민운동 하면서 공정위를 오래 상대해 왔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어떤가. 

 

“업무자체는 생소할 게 없다. 사실 나만큼 공정위나 금융위원회의 업무계획을 찬찬히 뜯어본 사람이 누가 있겠냐. 하지만 문제제기와 대안 제시로 역할이 끝나는 시민단체와 달리 기관장은 그걸 성과로 만들어 내야 한다.”


- 지난해 조선·해운사태 때 기자들에게 심각한 어조로 한국경제의 장래를 걱정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경제위기는 수면아래로 일단 내려간 느낌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발생하는 모든 일은 새 정부 책임이 돼 버린다.” 

 

- 오늘(25일) 직원 조회에서 ‘취임후 100일간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었다’고 했다. 

 

“8월25일부터 한달간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1심 판결(‘삼성 측의 공정위 접촉이 성공한 로비’로 판결문에 적시된 점), 한진그룹 총수일가 사익편취 제재 패소, 가습기 살균제 문제 등을 겪으며 공정위가 국민 기대에 걸맞는 역량을 갖고 있는지 위기감을 느꼈다.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김상조의 공정위’도 김상조 만큼이나 긴장의 나날을 보내온 듯 하다. “열흘전쯤 세종 청사로 가는 차안에서 지인의 문자를 받았다. ‘잠이 부족하고 숨쉬기가 어렵다’는 어떤 직원의 하소연이 담긴 문자를 대신 전해준 거다. 너무나 미안한 생각이 들어 그날 밤 사무실을 돌면서 직원들을 격려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이상훈 선임기자

- 2007년 좌담집 <한국경제 새판짜기>에서 ‘집행기관이 부패해 그간 마련된 규칙도 제대로 집행안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규칙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게 한국경제의 문제 아닌가.

 

“순환출자 규제 같은, 실체와 관련한 제도를 새로 만들어야 개혁으로 여기곤 하지만 나는 이미 있는 법을 엄정하게 집행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법 집행에 관한 예측·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게 개혁의 핵심’이다. 공정위 직원들이 부패해 법집행을 제대로 못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공정위에 권한을 부여하는 최고 통수권자, 임무를 구체화하는 기관장의 역할이 제대로 안짜여졌기 때문일 거다. 사실 지난 보수정부는 공정위가 가능한 한 일을 하지 말라는 식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었겠나.”

 

- 100일간 내놓은 정책들 중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 있나. 

 

“‘법집행 체계개선 태스크포스’가 그런 것 같다. 공정위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려면 공정거래법과 소관 6개 법률의 형벌조항을 정리해야 한다. 모든 조항에 형벌이 부과돼 있고 고소고발이 난무하니 (전속고발권을) 풀면 기업인들은 항상 검찰에 가 있게 될지 모른다. 권한을 자치단체에도 위임하고, 당사자들이 사적자치로 해결할 길도 열어주고, 그래도 안되면 검찰에 맡기는 시스템화가 필요하다. 각 이해관계자들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실체법적인 요소는 1997년 이후 많이 개선됐지만, 절차 또는 법제도나 관행들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 우리 사회가 20년간 ‘병목’에 걸려 비틀거린 원인이다.”

 

- 이런 취지를 설명하지 않았나. 

 

“‘왜 김상조가 재벌개혁에 뜸을 들이느냐’고들 하는데 개혁의 핵심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이미 스타트했다. 법집행개선 TF를 통해 법제도와 관행의 개선을 이끌어내는게 위원장 3년간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임기를 마칠 때 쯤엔 ‘재벌개혁’하면 순환출자나 금산분리만 떠올리는게 아니라 이런 수단들을 잘 설계하고 집행하는 것이 진짜 개혁임을 인식하도록 하는 게 목표다. 개혁에 뜸을 들이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김상조는 페이스북 같은 SNS를 하지 않는다. “조금전 이야기를 500자 이내로 쓰고, 1분내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니 이미 국민 머리에 들어있는 아이템들을 반복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20년간 순환출자, 금산분리, 지주회사 이슈를 되풀이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조금 걸려도 공정위의 존립목적에 대해 좀더 차분하게 설명하면서 조금씩 바꿔가는게 필요하다.”

 

- <한국경제 새판짜기>에서도 결국은 ‘집행’의 문제를 강조한 것 아닌가. 

 

“어느날 갑자기 생각난 건 아니고, 현실속에서 공부했기 때문이다. 현안에 부딪힐 때마다 ‘되게 만들려면 어떤 방법일까’가 머리속에서 줄곧 되뇌어져 온 거다.”

 

■“대기업들 변화 연내 시작될 것”

 

- 대기업을 담당하는 ‘기업집단국’이 최근 출범했다. 재벌에 대한 일종의 ‘컨설팅’ 역할도 염두에 두는 듯 하다. 

 

“오늘 세종 현지의 사무실 개소식에 가서 직원들을 격려했다. 세종청사에 공간이 없어 인근 상가건물에 입주했다. 사람 또는 사회를 바꾸려면 당근과 채찍 둘다 필요하다. 이름을 ‘조사국’에서 ‘기업집단국’으로 바꾼 것도, 채찍 일변도가 아니라는 뜻에서다. 대기업을 건전하게 바꿔가기 위해선 기업이 어떤 상황이고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디테일하게 파악하는 작업이 먼저다. 이를 기초로 변화를 위한 당근과 채찍을 함께 고민하는 조직으로 운영할 생각이다. 공무원이 기업을 이끌어간다고 하면 오만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공정위의 존립목적이 기업들이 잘한 일에 상을 받게 하고 못한 일에 벌을 받게 만드는 거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컨설팅’도 포함돼야 할 거다.”

 

- 대기업들에게 ‘3세 증후군’이 심화되고 있는 듯 하다.  

 

“‘지배구조 리스크’가 커진데다, 도전정신을 상실한 ‘오너 3세’들이 의사결정자가 됐다. 그래도 돈이라도 잘 벌면 경험을 쌓으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공교롭게도 전통산업들이 경쟁력을 잃어가는 ‘비지니스 리스크’가 겹쳤다. 이 상황에서 하나의 선험적 정답을 제시하며 ‘이렇게 가라’고 하는 거야말로 오만한 거다. 현대차더러 순환출자를 끊으라거나 삼성더러 금산분리 해결하라는 차원이 아니라, ‘뭐가 문제고 어떻게 해결할 건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거다. 더이상 결단과 행동의 타이밍을 잃어버리면 돌이키기 힘든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겠지만, 너무 오래 기다릴 수는 없다. 이런 말을 지난 100일간 해왔다. 재벌들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시종일관 같다. ‘더 이상 시간낭비 하지 말고 빨리 결단을 내리고 책임을 지라’는 거다. 어떤 문제든 간에.” 


- 오너 3세들이 ‘의사결정 장애’도 있어 보인다. 

 

“1세, 2세 때만 해도 총수가 참모 몇명 도움을 받으면 그룹내 저 끝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까지 다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아무리 뛰어난 최고경영자(CEO)라도 삼성이나 현대차 정도의 규모와 구조가 되면 절대 파악할 수 없다. 게다가 시련의 경험이 없는 3세가 가신들의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으니 타이밍에 맞게 필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 네이버와 관련한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지만, 취지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려는 거 였던 것 같다. 

 

“네이버는 국내 검색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다. 네이버가 플랫폼에서 어떤 생태계를 만들어 내느냐가 네이버는 물론 한국사회의 미래를 좌우한다. 모든 정보가 모이고 그걸 통해 사람들의 경제활동과 일상생활이 이뤄지니. 막중함을 인식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려 했던 거다.”

 

- 대기업들에게 꾸준히 메시지를 보냈는데 아직 반응이 나오길 기대하기는 이른가.  

 

“정책은 과학이 아니라 아트(예술)이다. 딱 정해진 답을 찾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공정위원장의 메시지 전달도 ‘아트적인’ 솜씨가 필요하다. 취임초기 4대 그룹 전문경영인들을 만났고 청와대 미팅에서도 기업인들을 만났는데 ‘변화가 필요하고,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너무 늦어선 안되겠다’는 생각들은 갖고 있다. 연내 긍정적인 소식이 있을 거다. 모든 기업은 아니지만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기업들이 나올 걸로 기대한다.”

 

- 개혁의 성과가 국민에게 체감돼야 할텐데.

 

“우리 사회의 결핍된 점이 ‘절차’인데 ‘부처간 칸막이’에서도 드러난다. 보상과 벌칙을 잘 조합해야 하지만 한 부처가 커버하기 힘들다. 경제 영역만 봐도 상법, 금융감독, 공정위, 세법, 형법 등 다양한 수단들을 조합하려면 각 부처가 소관분야를 넘어 전체를 보는 안목과 경험이 있어야 하고 그걸 조율하는 컨트롤타워가 절실히 필요하다. 김동연 부총리가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

 

- 경제팀 구성원의 결이 조금씩 다른 것 같다. 

 

“물론 그렇지.(웃음) 나와 장하성 정책실장이야 20년 이상 호흡을 맞춰온 셈이지만 나머지는 대체로 친밀하다고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한 나라의 경제팀을 형성했으니 처음부터 완벽하게 호흡을 맞추는 건 기적이겠지. 지금은 각 장관의 업무스타일이 어느 정도 공유된 것 같고, 그게 하나의 팀으로 모아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새 정부의 가장 큰 자산은 ‘실패의 경험’”

 

- 지난해 조선·해운업 사태에 비한다면 지금은 경제위기가 체감되는 것 같지는 않다. 한국경제가 어떤 상태에 있는 건가. 


“지난해 말에 비해서는 상황이 나아진 게 사실이다. 참여정부는 인수위 시절 SK글로벌 사건이 터졌고, 3월에 카드대란, 4월에 화물연대 파업이 불거졌다. 정권 첫 반년간 악재가 연발하면서 경제문제에 자신감을 잃었고, 관료 의존도가 임기 초반부터 높아졌다. 선거캠프에 있던 지난 5월초쯤 문재인 후보에게 ‘후보님은 참 운이 좋다. 1년 정도의 시간 여유를 갖게 된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1년을 벌었을 뿐이다. 이 기간 중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않으면 내년 중반쯤에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위기는 언제나 코앞에 닥칠 때까지 모르는 법이다. 1년쯤 뒤에 누구도 예측못한 충격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이 소득주도 성장론인데 공정위의 역할이 소득주도 성장과 연결되는 건가. 

 

“공정경제는 일자리 중심경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을 떠받치는 인프라 혹은 기본질서다. 정책수단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한 전제가 공정성이다. 공정해야 소득주도 성장도 되고 혁신도 된다.”


@이상훈 선임기자

 -보수진영에서는 벌써부터 ‘기업하기 어려워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런 지적에 대해 ‘틀렸다’고 반론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좋은 정책은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그래, 우리 이 방향으로 한번 가보자’며 기다려줘야 한다. 국민들이 이런 마음을 갖지 못하면 어떤 정책도 실패한다. 법안은 (국회를 통과해야 하니) 시간이 걸리지만 (시행령 같은) 행정력으로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작지만 구체적인 성과들을 쌓아가야 인내심이 커질 수 있다. 이게 새 정부가 참여정부와 다른 점이다. 국무회의에서도 법개정에 너무 기대하지 말고, 행정력으로 성과들을 계속 만들어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진짜 성과를 내야지.”


- 그러고 보니 참여정부에 비해 문재인 정부는 ‘말수’가 적고 ‘로키(Low-Key)’로 간다는 생각이 든다. 비판에 일일이 대응하며 논란을 키우면 정책이 잘 가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내가 제일 말이 많았지.(웃음) 새 정부의 가장 큰 자산은 ‘실패의 경험’이다.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모두들 새기고 있다.”

 

- 12월까지 몇개 기업을 조사하는가. 

 

“잠재적인 대상은 두자리 수이지만 다하기 어려우니 한자리 정도일 거다. 기업집단국이 출범했지만 상당수가 6주간 교육을 받아야 해 업무를 실제로 하는 건 12월부터다. 60명이나 있는데 왜 몰아치듯 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총수가 직접 사회와 소통해야”

 

김상조는 해외유학을 하지 않은 ‘국내파 경제학자’다. “당시엔 ‘현실에 천착하는 한국경제학을 해보자’는 분위기가 있었고, 그래서 유학을 안가는게 드문 일은 아니었다. 지도교수였던 정운찬 선생이 유학을 여러차례 권유하셨는데, 지금은 ‘그때 상조가 내 말을 들었다면 지금과 같은 활동은 못했을 것’이라고 하신다. 유학을 안간 게 현실경제에 천착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 시민단체 활동을 한지 18년쯤 되는데, 당시에도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가 재벌이라고 봤던 건가.   

 

“2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생각은 ‘한국경제에서 낙수효과는 유효성을 상실했다’는 명제다. 때마침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과거 방식으로는 더이상 성장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봤다. ‘낙수효과’에 기대는 방식이 재벌중심 경제이니, 재벌개혁을 주장하게 된 거다.”

 

- 재벌개혁의 두가지 핵심이 ‘지배구조 개선’과 ‘경제력 집중 해소’인데 초점이 ‘지배구조 개선’에만 모아졌다는 지적도 있다. 

 

“소액주주 운동은 의사결정 구조의 변화를 통해 경제력 집중의 폐해까지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한 거다. 기업이 커지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다만, 그 성공의 혜택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려면 경제력 집중자체를 억제하기 보다 조직의 의사결정이 사회와 시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본거다.”

 

- 공정위의 결정이 사법부에 의해 제동이 걸리곤 한다. 

 

“공정위가 패소하는 건 충분한 역량을 갖고 근거자료를 만들어 설득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고 본다. 경제분석 능력을 강화해 패소하더라도 기존 판례보다 한발짝 더 나아가거나 변화된 경제현실에 부합하는 공정위의 판단을 자꾸 만들 필요가 있다. 경제문제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판단하는 조직문화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심정이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거치면서 더욱 아쉬움을 갖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 가습기 살균제는 지난해의 사안이었다. 

 

“취임 전의 일이라도 취임한 이상 모두 내 책임이다. ‘나와는 무관하다’는 식이거나 마치 외부에서 와서 파헤치듯 접근하고 싶지는 않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지난 100일간 가장 곤혹스러운 문제였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경우 법률적인 설명이 의미가 없다. 공정위는 소비자 문제의 최종 주무기관이니 국민 생명과 안전이 걸린 사안은 좀더 적극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입장을 빨리 정해 국민과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각오를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가습제 살균제의 기사들을 보면 ‘박근혜 정부의 공정위’라고 표현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김상조의 공정위’라고 할 거다.”

 

- 위원장이 생각하는 변화된 재벌총수의 모습은 어떤 건가.  

 

“지배구조를 투명하고 책임성 있게 만들겠다는 말은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계열사 사장이 아니라 이재용 부회장, 정의선 부회장의 입에서 나왔을 때만 의미가 있다.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설명하는 모습에 왜 열광했을까. 제품 설명에 그치지 않고 철학과 비전,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우리 재벌총수들은 항상 은둔해 있으니 불법·부당행위, 재판출두 장면 같은 부정적 이미지만 각인될 뿐이다. 총수가 직접 나서 사람들에게 메시지와 비전을 전하고 소통해야 한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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