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20. 16:44

일본 미야기(宮城)현은 나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일본 특파원 근무를 시작한지 일주일만에 동일본 대지진을 겪었고, 그 사흘 뒤 쓰나미 피해현장을 취재하러 렌터카를 몰고 센다이(仙台)까지 갔다. 센다이는 간선도로인 국도 4호선에 건물잔해와 쓰나미로 떠밀려온 차량들이 뒤엉켜 통행이 불가능했다. 원래 이와테(岩手)현에 가려고 했지만 더이상의 북상은 포기해야 했다. 택시를 잡아 미나미산리쿠초(南三陸町)의 피해 현장에 접근해 취재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후쿠시마를 포함해 도호쿠(東北)으로 불리는 미야기, 이와테현을 특파원 재임기간중 7번 찾았다. 살아남은 이들의 생활은 고달팠다. 보금자리를 잃은 주민들은 비좁은 가설주택에서 고역의 일상을 보냈다. 마을 커뮤니티를 잃은 노인들은 가설주택 삶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몇차례 취재하다보니 도호쿠 주민들의 고난이 남의 일 같지 않았고, 복구가 늦어지는 것을 보면 내가 다 화가 날 정도였다. 


그 미야기현을 6일부터 9일까지 다녀왔다. 지역부흥을 위해 제주올레와 협력해 만든 올레코스가 개장된 것이다. 대지진 때 불바다가 됐던 게센누마(気仙沼)와 오쿠마쓰시마(奥松島) 코스다. 오쿠마쓰시마 코스는 쓰나미 이후 곳곳에 콘크리트 방조제가 설치됐다. 사람으로 치자면 여기저기 붕대를 감은 채 재활에 들어간 모양새다.시간이 지나 새살이 돋고 옛 상처의 흔적이 희미해지듯 세월의 더께가 방조제의 살풍경을 지워줄 것이다. 치유와 힐링을 위해 개설된 올레코스의 도중에 있는 이런 풍광들이 방문객들에게 어떤 느낌을 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의 흔적들을 겸허하게 마주하는 것이 또다른 의미에서 '치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게센누마, 가라쿠와 코스 개장식(2018년 10월7일) @서의동

10월7일 열린 게센누마 가라쿠와 코스 개장식에는 수백여명의 올레꾼과 무라이 미야기현 지사 등이 참석했다. 이날 강풍 탓에 코스가 일부 변경됐다. 


게센누마 코스의 해안길. 이 바다가 일본에서 하와이와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한다. 퍼렇다 못해 가끔은 시커멓게 보이는 바다에는 상어들도 많다고 한다. 게센누마는 상어와 꽁치, 황새치 등이 많이 잡히는 곳이다. 


제주도의 외돌개처럼 홀로 솟아있는 바위가 오레이시(折石). 1896년 이 지역을 덮친 쓰나미 때 끝이 2미터 가량 부러져 현재의 모양이 됐다고 한다. 


마침 날씨가 맑았기에 이런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었지만 거친 날이었다면 어땠을까.  


가운데 보이는 바위가 쓰나미바위, 큰 것은 150t에 6m가 넘는다. 2011년 쓰나미 때 해저에서 이 해안까지 밀려 왔다고 한다. 쓰나미의 엄청난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이동중 휴게소에 마련된 쓰나미 전시관. 국도 45호선을 관리하는 게센누마국도유지출장소가 2011년 쓰나미에 휩쓸렸다. 당시 사무소에 걸려 있던 시계. 


이번 개장식에 참가한 이들과 한 컷. 배우 유승룡씨(가운데)는 2016년 제주올레 걷기 축제 때부터 꾸준히 올레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규슈 올레 2개 코스 개장식 때에 이어 두번째 동행이다. 함께 도시락도 먹고, 온천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일본 미야기현의 홍보대사 격인 '무스비 마루'. 무스비는 오니기리(삼각김밥)과 동의어다. 미야기현은 쌀의 질이 좋기로 유명하고, 히토메보레(一目ぼれ)라는 브랜드의 쌀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전국시대 이곳의 맹주인 다테 마사무네의 복장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런 지역홍보 마스코트 캐릭터를 유루캬라(ゆるキャラ)라고 하는데 구마모토현의 구마몬이 대표적이다. 



두번째 날(10월8일) 오쿠마쓰시마 코스는 쓰나미의 상흔들이 좀더 뚜렷했다. 마쓰시마(松島)는 암초들이 바위에 산재한 다도해로 일본 3대 명승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하지만 쓰나미 이후 이렇게 군데군데 방파제와 방파용 구조물들이 설치돼 있었다. 


히가시마쓰시마시의 노비루(野蒜) 기차역.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쓰나미가 정차해 있던 열차까지 덮쳤던 곳이다. 역은 폐쇄됐지만 역터는 이렇게 보전돼 있다. 

쓰나미로 못쓰게 된 승차권 판매기. 노비루 역 앞 편의점 건물 2층에 당시의 참상을 기억하기 위한 전시관이 있다.  

역 뒤편에 추모탑이 서 있다. 히가시마쓰시마에서 쓰나미로 죽거나 실종된 1152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쓰나미를 경계하기 위해 설치된 비석. '平成の大津波'라고 쓰인 글씨 바로 아래 파란색 물결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곳까지 물이 찼다는 걸 표시하고 있다. 



[여적] 쓰나미 피해지의 올레길(2018년 10월18일자 경향신문)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지 나흘 뒤인 2011년 315일 쓰나미가 공격한 미야기(宮城)현 미나미산리쿠를 찾았다거대한 쓰레기 더미로 변한 거리 곳곳에서 집전신주차량들이 뒤엉켜 있었다어느 집 벽에 걸려 있었을 그림 액자이불전기밥솥전화기가 목조 가옥의 잔해들 사이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가랑비가 흩뿌리는 영하의 날씨 속에 탐지견을 앞세운 구조대원들이 이날 하루 6구를 잔해 속에서 수습했다미나미산리쿠 외에도 이시노마키나토리 등 해안 지역은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고 게센누마는 지진으로 유류탱크가 넘어지면서 시가지 전역이 불바다가 됐다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전체 사망·실종자 18434명 중 1763명이 미야기현에서 나왔다미나미산리쿠 취재 도중 잔해물 더미에서 발견한 앨범 속 소녀는 무사할지저 집계에 포함됐을지줄곧 궁금했다.

 

그 미야기현에 트레킹 코스 올레가 만들어져 지난 7~8일 현지에서 개장식이 열렸다미야기현청이 지역부흥을 위해 사단법인 제주 올레와 협력해 게센누마와 히가시마쓰시마 2곳에 길을 냈다. 6년 전 남부 규슈에 생긴 이래 일본에선 두번째 올레 코스다정갈한 마을 길을 지나 야산 숲길을 통과하면 태평양 너른 바다와 제주 외돌개를 닮은 바위 형상들이 어우러진 해안길이 나타나는올레 이름에 값하는 풍광 좋은 길이다.

 

다만 걷는 도중에 7년 전 재해가 남긴 상흔들과 마주치게 되는 것이 여느 길과 다르다절경의 다도해가 펼쳐진 히가시마쓰시마의 해안에는 콘크리트 방조제들이 군데군데 설치돼 있다시간이 흐르며 새살이 돋아 상처가 희미해지듯 세월의 더께가 방조제의 이물감을 지워가겠지만지금 당장은 붕대를 감고 재활에 애쓰는 환자를 떠올리게 한다.


배경지식 없이 자연 속에서 한때를 보내려던 이들에게는 조금 당혹스러운 광경일 것이다하지만 자연의 속성이란 원래 그런 것임을 마주하는 기회일 수 있다늘 자연 위에 군림하려 하지만 인간 존재란 실은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를 되돌아보고 재난 지역주민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치유가 아닐까무시로 태풍에 시달리는 제주와 미야기의 올레길은 꽤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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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3.02 0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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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29. 00:50

타이베이의 건물들에 이어 여행중 느낀 점을 간추렸다. 타이베이 물가도 정리해 봤다. 


■보행자, 자전거, 오토바이 이용자에게 편한 거리 


타이베이 시내 건물은 대체로 '기루'라고 불리는 보행자용 공간을 두고 있다. 건물을 지을 때 1층의 바닥면적을 2층 이상보다 작게 짓는다. 인도쪽으로 면한 공간을 보행자들이 다닐 수 있도록 내주는 것이다. 2층부터는 바닥면적을 원래대로 늘려 건물을 지으니 지붕역할을 하게 돼 이곳으로 다니면 비를 피할 수도 있다. 인도외에도 이 '기루'로 다닐 수 있으니 그만큼 보행자들의 공간이 넓다.

인도에 그려진 자전거 도로 표시. 왼쪽 건물에 보이는 기둥 안쪽이 '기루'다. @서의동


인도에는 차도쪽 공간에 흰색 페인트로 자전거 도로를 표시해 놓는다. 행인들도 웬만하면 그쪽으로는 다니지 않는다. 인도 자체가 널찍한데다 '기루'까지 있으니 그쪽으로 갈 이유가 많지 않다.

차도에는 횡단보도 바로 앞쪽부터 차량들의 정지선 사이에 오토바이의 전용 공간을 표시해뒀다. 차량과 오토바이가 도로를 주행하다가 횡단보도앞에서 멈추게 되면 오토바이들이 앞에 정차하고 차량은 그 뒤에 정차한다.

■권위주의의 흔적이 역력한 거리이름과 기념관

지명과 거리 곳곳에 엄청난 국가주의의 자취가 남아 있다. 우리가 묵은 호텔 부근 거리의 지명은 무려 쫑샤오푸싱(忠孝復興)이다. 신해혁명의 주역인 쑨원(孫文)을 기리는 국부기념관의 주소는 신이(信義)구 런아이(仁愛)로다. 대만을 세운 장제스(蔣介石)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중정기념당'은 장제스의 또다른 이름을 그대로 딴 중정(中正)구에 위치해 있다. 쑨원의 또다른 이름인 중산(中山)도 거리명으로 쓰인다. (비유하자면 서울시내에 박정희의 이름을 따 '정희로'가 있는 식이다. 물론 우리도 을지로, 세종로, 충무로 같은 지명이 있긴 하지만 이들은 옛 인물이니 좀 다른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지명에 '난징(南京)'이나 '베이핑(北平)'같은 본토의 지명들도 있다.

장제스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중정기념관. 스케일이 어마어마해서 김일성 광장을 연상케 할 정도.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가 국공내전에서 패해 대만으로 옮겨오면서 대만을 새롭게 건국하자는 취지에서 지명에 이런 이름들을 붙였을 것이다. 베이핑은 베이징(北京)의 대만식 표기인데 수도를 뜻하는 경(京)을 붙이지 않기 위해 옛 지명을 쓴다고 한다.
본토 지명을 거리이름에 붙인 것은 언젠가는 '수복'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인다. (서울거리에 평양로, 함흥로 등을 붙인 격이다) 어쨌거나 국가주의 냄새가 폴폴 풍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중정기념관 구내에 있던 표지석에 쓰인 글귀가 무려 '충용건신장(忠勇健身場)'이다.


국부기념관과 중정기념당은 타이베이의 대표적 관광지이긴 하지만 건축물의 규모가 압도적이어서 김일성 광장을 연상케 한다. 국부기념관과 중정기념당에 있는 쑨원과 장제스의 동상크기도 압도적이다.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이 박정희 정권이상으로 권위주의적 독재체제였던 역사였음을 이 건축물들이 말해준다.

■물가는 한국보다 확실히 싸다

물가가 대체로 한국의 절반 혹은 3분의2 수준이다. 타이베이 시내에서 공항으로 가는 버스는 145대만 달러(5300원)이다. 호텔 주변의 저렴한 아침식당에서 루로우판(돼지고기 간장덮밥)은 40대만달러(1500원)이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빠오즈(包子)로 불리는 만두(속에 돼지고기 다진 거나 야채 등으로 채움)는 1개에 15대만 달러(550원)인데 두개만 먹어도 훌륭한 아침식사가 된다.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뉴러우미엔(소고기면)을 동네 식당에서 사먹었는데 145대만달러(5300원)였다. 쇠고기가 듬뿍 들어간 찐한 국물이 일품이었다.

호텔주변의 아침가게. 조찬(早餐)이라고 쓰여진 곳이 많다. 여기도 1층 부분이 움푹 들어가 있는데 이 부분을 기루라고 한다.

지하철 요금도 가장 가까운 거리는 20달러(730원), 편의점에서 파는 아사히맥주(355ml) 캔은 1개에 45달러(1650원)였다. 반면 카페의 커피값은 비싼 편이어서 분위기 좋은 커피숍의 아메리카노 한잔이 140달러(5100원)에서 비싼 곳은 180달러(6600원)나 된다.

용캉제에 있는 한 카페



■만화와 그림이 많은 공공디자인

시내 분전함에 이런 그림이...ㅎ


공공디자인에 그림이나 만화를 많이 넣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경우가 많다. 타이베이 도심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자전거 유바이크(U Bike)에는 U글자를 웃는 얼굴 이모티콘으로 그려 넣었다. 꽃그림이 그려진(광고가 아닌) 버스도 볼 수 있었다.
길거리에 설치된 분전함 겉면에 공룡그림이 그려져 있기도 했다. 대만의 에바 항공사가 취항 20주년을 기념해 비행기 동체를 '헬로키티'로 꾸민 것은 잘 알려져 있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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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27. 22:35

지난해 겨울 휴가에 이어 올해에도 대만에서 5일간의 휴가를 보냈다. 지우펀에 당일치기로 다녀온 것외엔 주로 타이베이 시내를 어슬렁 대며 배고프면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 '부라부라' 형 휴가였다.


타이베이는 볼수록 마음에 드는 구석이 많지만 특히 '도시재생'면에서 배울 점이 많아 보인다. 이번에 처음 가본 '화산1914창의문화원구'라는 곳은 일본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과일주 공장이 있던 곳인데 공장건물들을 철거하지 않고 고스란히 살려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들었다. 타이베이 도심에 있는 이 공장터를 지금까지 그대로 둔 것도 신기하다.(한국 같았으면 벌써 철거하고 아파트를 지었을지도...)

화산1914창의문화원구 입구 @서의동


창의문화원구라는 이름이 어울리게 통통튀는 창의력 만점의 물건들을 파는 공간, 오르골 전시장, 카페, 식당 등이 산재해 있다. 공장으로 사용될 당시에 지어진 굴뚝이 백년이 넘도록 도심 한가운데에서 우뚝 솟아있는 것도 우리 같으면 생각하기 어렵다. 

창의문화원구내 판매시설 입구의 엽기적인 부조


창의문화원구내 전시공간

창의문화원구에 솟아 있는 굴뚝

공장건물 외벽이 벗겨져 있지만 오히려 친근한 느낌을 준다.

이곳 말고도 도심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지어진지 50~60년은 족히 돼 보이는 건물들이 여전히 현역으로 쓰이고 있다. 을지로나 삼각지 주변에서 보일 법한 낡은 건물들이 시내 중심가에 우뚝 버티고 있고, 일제시대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들도 적지 않다. 우리의 청와대격인 '총통부'도 일제시대의 총독부 건물을 그대로 쓰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묵었던 호텔은 'HOTEL' 표지도 찾아볼 수 없어 호텔이라고 보기 힘든 낡은 건물이지만 실내는 꽤 깔끔한 시설이다.(엘리베이터는 물론 복도도 낡아빠졌다) 

우리가 묵은 호텔의 출입구. 외견상으론 이곳이 호텔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호텔주변 주택가.

화단들이 많다.

테라스에 화분들이 많다.


낡음의 미학을 보여주는 호텔옆 건물

호텔 주변의 주택가들은 5~7층 가량되는 연립주택들이 많은데 이 건물들도 무척 낡아 보인다. (오래된 것인지, 대만의 기후탓에 외벽이 일찌감치 바랜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테라스마다 화분을 놓고 꽃을 가꾼 집들이 많고, 집 주변 도로도 담배꽁초 하나 보기 힘들 정도로 청결하게 청소돼 있다. 

타이베이 역 부근에 있는 대형 건물. 외관이 족히 60년은 돼 보인다.

건물의 외양은 낡았어도 열심히 가꾸면 '올디스 구디스'한 느낌을 주게 마련인데 타이베이가 그 본보기인 것 같다. 한국의 거리에 외양이 새롭고 첨단건물은 확실히 더 많지만, 거리가 지저분한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대만의 거리에서는 어딘가 기품이 느껴지는 노인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오래된 건물들을 툭하면 헐어 버리고 새로 짓는 '신장개업 증후군'을 대만에서는 느낄 수 없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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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22. 16:46

가미코지는 나가노현 북알프스 남쪽에 있는 평원이다. 5월에도 꼭대기가 눈에 덮인 3000m급 산들이 줄지어 있고, 연간 150만명이 찾는 관광지면서도 자연경관이 거의 원시에 가깝게 보존돼 있다. 연못에 나무들이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어도 내버려둔다. 그 쓰러진 나무가 또 자연의 일부가 된다. 숲속에 난 길을 걷다보면 원숭이들이 길가에 나와 태연하게 사람들을 맞이한다. 



가미코지 가는 길은 쉽지 않다. 금요일 저녁 도쿄 신주쿠에서 특급열차를 타고 2시간반 걸려 마쓰모토(松本)에 도착해 하룻밤을 잤다. 다음날 아침일찍 다시 역으로 가 가미코지에서 가장 가까운 역인 신시마시마(新島島)역까지 가는 완행열차(30분)를 타고 내린 뒤 다시 가미코치로 1시간쯤 버스를 타고 들어갔다.



기차가 운행하는 거리는 그리 길지 않지만 거의 동네마다 서는 완행열차다 보니 30분씩 걸렸다. 



곳곳에 이런 연못들이 많다.  이끼들과 떨어져내린 나뭇잎의 침전물들이 오묘하고 영롱한 색깔을 빚어낸다. 대개 옥색들이 많다. 

 

나무다리들. 곳곳에 있다. 


눈이 덮인 상태인 북알프스 산들. 이곳 기온은 도쿄에 비하면 5도 이상 낮다. 


물의 맑음은 카메라로는 담아내지 못한다. 

북알프스의 연봉들. 


고사목들도 이곳 가미코지의 독특한 풍경을 이룬다. 


묘진이케(明神池)부근의 다리에서 발견한 원숭이들. 사람들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요놈들이 아무데나 똥을 싸놓기 때문에 다리를 건널땐 조심해야 한다. 


갓파바시에서 두시간 쯤 걸어들어가면 묘진이케라는 연못이 나온다. 얕은 연못이지만 주변의 경치와 호다카산이 투명하게 비쳐 초현실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호타카산과 묘진이케 부근에 자리잡은 산장 묘진칸.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전력을 끌어오지 않고 자가발전을 하기 때문에 밤 9시30분이면 불이 꺼진다. 물론 난방도 안돼 벌벌 떨며 잤지만 이곳 공기는 지나칠 정도로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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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 13. 16:55
8월9일 도착한 도쿄는 잔뜩 흐려 있었다. 

하네다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하마마츠초로 이어지는 이 곳은 도쿄의 대표적인 공장지대. 먹구름과 살풍경한 공장지대가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하마마츠초 부근의 한 역사. 철도왕국답게 복복복선 쯤 되는 철도레일들이 도심을 통과하고 있다.





배낭이나 여행가방을 잔뜩 짊어진 여행객들에게 도쿄여행은 아주 괴롭다. 역마다 꽤많은 락카가 있지만 여름 휴가철이라 그런지 빈자리가 없다. 

이날 밤 시즈오카 행 신간선 표를 끊어놓고, 락카를 찾았지만 도쿄역 구내락카는 빈자리가 없었다. JR로 한정거장 떨어진 유라쿠초까지 갔지만 없었다. 
유라쿠초 빅카메라 지하와 지하철간 통로에 있는 락카를 간신히 발견해 이곳에 여행가방을 꾸겨넣었다. 락카 찾는데만 1시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고용난민 시대' 취재를 위해 온 출장이라 그런지 일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예전 연수 때 일본의 근로자라면 대개 '열심히 일하는' 이미지였다. 그 열심히 일한다는 이미지엔 주로 밝은 느낌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고용시리즈 취재를 위해 미리 읽어둔 책들을 통해 일본에서도 광범위하게 노동착취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면서는 그들의 웃는, 혹은 무표정한 얼굴속에 그림자가 느껴졌다. 

유라쿠초의 대표적인 대형 가전할인점인 빅카메라의 점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노동계 관계자들에 물으니 여기 일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파견근로자라고 한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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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2. 13. 14:58

나츠카와 리미가 부른 시마우타입니다. 근데 산신(사미센) 반주가 없으니 별로네요. 

오키나와 동쪽 해안입니다. 비행기에서 보면 특히 잘 보이는데 산호군락의 영향으로 바닷빛이 군데 군데 옥색을 띠고 있습니다. 이 해안가에서 육지쪽으론 학교가 하나 있는데 과소학교라 얼마전에 폐교가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부 레저산업들이 이곳에 리조트를 지으려고 한다는군요. 오키나와 주민들은 당연히 반대하고 있고요.

다카에 주변의 얀바루(삼림)지역입니다. 

나하시에 있는 한 극장식 식당에서 가수들이 오키나와 민요를 부르고 있습니다. 가운데 보면 사미센 처럼 생긴 악기가 있는데 일본 본도의 사미센과 달리 산신이라고 부릅니다. 대개의 노래들이 4분의2박자로 빠르고 흥겨운데다 추임새도 여간 신나는게 아닙니다. 추임새는 "이야쌋싸 하이야~" 머 이런 식입니다. 일본 본토에서 온 관광객들이 여기와서 꽤나 흥겨워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하시에 있는 슈리성입니다. 오키나와가 예전에 류큐왕국이었을 당시 궁전인 셈인데, 들어가는 입구에 보면 수례지방이라는 글귀가 써 있습니다. '예를 지키는 나라'쯤 되겠는데, 예전의 류큐왕국은 군사력을 보유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기도 쓰지 않아서 대신 발전한게 가라데라고 하는군요. 

슈리성으로 올라가는 길. 이날 날씨가 참 좋았어요. 


슈리성에서 바라본 나하시내입니다. 멀리 바다도 보이네요. 가운데 사진 보면 아열대의 섬다운 풍광이 느껴집니다. 

슈리성은 15세기에 완공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략 동서 400m, 남북 200m의 규모에 내곽과 외곽으로 나뉩니다. 정전, 남전, 북전 등 주요 건물은 내곽에 세워져 있는데 안타깝게도 정전이 보수중이라 사진이 별로네요.슈리성은 오키나와 전투당시 전체가 잿더미로 변했으나 1992년 성의 주요 건물이 재건됐고 2000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고 합니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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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ttalgi21.khan.kr BlogIcon 딸기21 2009.12.13 2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간중간에 줄 띄우기 좀 해주시오...

  2. 늴리리야 2009.12.14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웃.. 여긴 정말 그냥 일본이 아니라 아열대 섬나라...+_+
    야자수가 우거진 성이라니, 거 참 미묘하네요. ㅎ

  3. Favicon of https://kimhyojung.tistory.com BlogIcon tangsis 2009.12.14 12: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게요, 보통 생각하는 일본과 사뭇 다른 풍경이네요.

  4. Favicon of https://soidong.khan.kr BlogIcon 서의동 2009.12.14 13: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 시마우타 퍼다올려놨으니 감상해보시길~~
    가사는 나중에 띄워놓을께요. 이게 한마디로 말하자면 평화롭게 살던 오키나와 주민들이 1945년 전쟁으로 여러가지 비참한 경험을 했고(강요된 집단자결이라든가) 그래서 한이 많은 민족인데, 이런 한을 은유적으로 가사에 담은 노래입니다. 시마우타는 말 그대로 섬노래라는 뜻.

  5. 푤라 2009.12.14 1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s://www.youtube.com/watch?v=4dPvWJfH0cY&feature=related

    이것도 멋져요

  6. Favicon of https://soidong.khan.kr BlogIcon 서의동 2009.12.14 18: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유투브 함 올려놓으면 지울 수가 없네...이거 지울 줄 아는 분 좀 알려주세요. 나츠카와 리미꺼는 영 별로라.

2009. 12. 13. 14:49
오다 마사히데(大田昌秀) 전 오키나와현 지사는 지사가 되기 전에 오키나와에 관한 여러가지 탁월한 연구업적을 남긴 석학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분이 컨퍼런스가 끝난 뒤 몇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중 기억나는 대목은 이런 겁니다. 
"오키나와는 1945년 이후 50년대 초반까지는 미군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미군이 오키나와 전투당시 양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오키나와말을 쓰는 젊은 세대들을 구출대로 동원했는데 만약 이들 구출대가 없었다면 오키나와 양민의 희생은 3배로 늘어났을 것이다. 반면 일본군들은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오키나와 말을 쓰지 못하도록 명령하고 만약 쓰면 스파이로 몰아 처형하기도 했다."
 사진은 오다씨가 미국 문서보관서에서 찾아낸 태평양전쟁당시 문서를 보여주는 장면인데, 오키나와 사령부의 우시지마 미쓰루(牛島滿) 사령관이 오키나와 현지 학도병들에게 유격전을 하도로 지시하는 훈령입니다. 이 훈령은 1945년 6월18일에 발령된 것인데 당시 시점은 일본군이 괴멸위기에 처해 학도병을 해산하던 시점입니다. 겉으론 해산을 명령하면서 또다른 비밀 훈령을 내려 유격전을 이어갈 것을 지시했다는 문서가 확인된 것입니다. 오다씨는 "이 문건으로 미뤄볼 때 집단자결을 명령하는 또다른 비밀문건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건 사진입니다. 
오다씨와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본지에 칼럼을 2년간 연재해주신 개번 매코맥 호주국립대 명예교수에 회사를 대신해 감사패를 전달하는 행사를 간단히 가졌습니다. 제가 회사를 대리해 패를 전달했습니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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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푤라 2009.12.14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 '제가 회사를 대리해 패를 전달했습니다'
    와, 딸기온니는 상당히 높은 자리에 있나봐요 ;-)

  2. 푤라 2009.12.20 1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순간적으로 '제가..' 그래서 당연히 딸기님인줄 알고
    저것이 감사패라고 생각은 했지만
    딴게 있나보다 생각했더랍니다.

    잠시 혼동을 주어 서로에게 기분 나쁘지나 않으셨는지 모르겠네요.
    부부라도 혼동을 하면 안되죠^___^

2009. 12. 13. 14:23
컨퍼런스에 참석한 한국, 일본, 오키나와의 학자와 전문가들입니다. 아래 맨오른쪽에 일본의 북한연구 권위자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 아래 왼쪽 네번째에 미야모토겐이치(宮本憲一)오사카 시립대 명예교수, 그옆 오른쪽으로 이시재 카톨릭대 교수,  왼쪽 세번째가 오다 마사히데(大田昌秀)전 오키나와 지사입니다. 서울대 정근식 교수는 두번째 줄 맨 왼쪽, 개번 매코맥 국립호주대 명예교수는 뒷줄 오른쪽 다섯번째에 있습니다.(저는 뒷줄 왼쪽 두번째)
와다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와다교수는 1990년대 '동아시아 공동의 집'이란 개념을 주창했습니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나 요즘 하시모토 일본 민주당 정부가 제기하고 있는 동아시아 공동체론이 이 개념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와다교수는 "오키나와의 기지문제는 동북아시아 지역 전체의 문제로 규정하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대 사회학과 정근식교수는 한국, 일본, 오키나와에서의 미군기지 반대운동의 현황에 대해 주제발표를 했습니다. 정근식교수는 광주문제를 비롯한 한국의 사회운동에 대해 깊은 연구와 활동을 해왔고, 최근에는 <경계의섬 오키나와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정치사회학>이란 학술연구 성과를 책으로 발간했습니다.(책값이 다소 비싸 못샀습니다만;)
세미나 장면입니다. 사진에서 왼쪽에 상체를 비스듬히 돌리고 발표를 지켜보는 이가 치바나 쇼이치라는 오키나와 평화운동가인데 1987년 오키나와에서 열릴 일본전국체전에서 소프트볼 경기 메인스타디움에 걸린 히노마루(일장기)를 끌어내려 불태워버린 무시무시한 일을 한 분입니다. 
저도 컨퍼런스의 마지막 세션에 토론자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발표들에 대한 코멘트인데 와다 교수의 발표내용과 관련해서 민주당 정권이후 북일관계 개선에 대한 생각, 납치문제의 해결전망 등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과 와다교수에게 약간의 질문을 하는 정도로 끝냈습니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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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kimhyojung.tistory.com BlogIcon tangsis 2009.12.14 12: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무척 근사해보이십니다, 아지님. ^^

  2. Favicon of https://soidong.khan.kr BlogIcon 서의동 2009.12.14 13: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머. 사진을 찍어놓으니 그럴듯 해보이지만, 사실 내용은 별게 아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