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읽은 세번째 책.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 1964년 작품이다. 올핸 되도록 소설과 역사서를 많이 읽어보려 한다고 주변에 이야길 했더니 한 선배가 추천하며 빌려준 책이다.
한국전쟁 직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황해도의 연안지방에 선생님으로 부임한 남지영이 전쟁이 터지면서 피난을 내려와 가족들과 겪는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루고, 좌익으로 활동하다 전쟁 때는 인민군, 이후 빨치산이 되는 하기훈의 이야기가 다른 축이다.한국전쟁의 참상을 다룬 책들은 여러권 봤지만 이 책은 에피소드가 넘쳐 당시 상황을 간접체험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주인공 기훈과 인민군 소년병이 인민군 야전병원에서 나누던 대화.
"아니오, 아니오. 어깨 아니구 팔 다쳤으면 비겁자 되거든요. 하긴 동무는 인민군 아니니께."
"......"
소년은 큰 비밀을 털어놓듯 사방을 한번 살피고 나서
"왼팔 다친 사람 적탄에 맞은 것 아니야요. 지가 지 팔 쏜 거디요."
"지가 지 팔을 쏘아?"
"그냥 쏘믄 몸이 튀니께 뚜꺼운 걸 받쳐가디고 쏘거든요. 그런 사람 많디요. 아주 많디요. 특히 남조선의 의용군 동무에게 많디요. 그렇잖으믄 죽으니께. 낙동강은 그냥 죽으루 가는 거니께."
작자가 많은 취재를 바탕으로 책을 썼다는 느낌이 든다. 했다는 전쟁의 광기, 그 안에서도 간간이 피어나는 인정, 인민군에 참가한 지식계급의 갈등 등이 다뤄진다. 소설속에 자주 등장하는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는 그 속을 살아가는 인간군상들의 극악스러움과 대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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