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에서 “미국은 핵무기 없는 세계의 평화와 안보에 공헌하겠다”는 비전을 선언했다. 그해 9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핵 비확산 및 군축 정상회의’를 개최해 핵무기 폐기를 촉구하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노벨위원회는 ‘핵무기 없는 세상’의 비전을 높이 평가해 오바마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다.
오바마는 재임 기간 핵안보정상회의를 4차례 개최했고, 2015년 7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및 독일과 협력해 이란의 핵동결을 담은 ‘포괄적 공동행동 계획’ 타결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2016년 5월에는 원자폭탄 사용국 수반으로서 피폭지인 일본 히로시마를 71년 만에 방문해 원폭 희생자들을 추도했다. 물론 야당과 군부 등의 반대로 핵무기 감축노력이 기대에 못미쳤고, 러시아와의 핵무기 감축협상(New START) 역시 2014년 2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무력합병으로 좌초했지만 국제사회에 던진 비핵화 메시지는 뚜렷했다.
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오바마의 핵정책을 180도 뒤집었다. 당선인 시절인 2016년 12월 트위터 계정에 “미국은 세계가 핵무기에 대한 분별력을 갖게 되는 시점까지는 핵 능력을 큰 폭으로 강화하고 확장해야 한다”며 핵 확장 정책을 예고했다. 미 국방부가 지난 2일(현지시간) 발표한 ‘핵 태세 검토 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를 보면 우려가 더 커진다. 적으로부터 핵 공격을 당하지 않더라도 핵무기를 선제 사용할 수 있고, 저강도·소형 핵무기 개발도 추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실제 사용하면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림의 떡’이 돼버린 핵무기를 사용 가능한 무기로 만들려는 것이다. 새로운 핵시대를 여는 불길한 신호 같다.
국제사회의 핵질서가 본래 핵 강국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핵 태세 보고서는 기울기가 더 커질 가능성을 예고한다. 북한 핵은 용납할 수 없다고 초강경 대응을 하면서, 스스로는 핵무기를 쉽게 쓰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는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아닐까.(20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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