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여적]쿠바의 역성혁명

서의동 2019. 8. 3. 18:49

2018.04.22 

 

카스트로 형제는 1959년 혁명으로 바티스타 친미 정권을 무너뜨린 뒤 59년간 쿠바를 통치해왔다. 2006년 건강이 악화된 형 피델 카스트로부터 실권을 넘겨받은 동생 라울(87)도 형 못지않은 쿠바혁명의 주역이었다. 라울은 정통파 공산주의자로 형 피델에게 체 게바라를 소개했으며 본래 민족주의자였던 피델을 친소 공산주의 노선으로 이끌었다.

 

카스트로 형제는 사회주의 체제가 특장으로 내세우는 무상의료·교육과 식량배급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1962년 도입된 배급제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수십년간의 일당 독재체제에서 우상화를 금지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요절한 혁명동지인 체 게바라의 경우 아바나 정부 청사에 큼직하게 설치된 대형 조형물을 비롯해 기념물이 적지 않지만 카스트로 형제의 동상이나 기념물은 찾아볼 수 없다. 피델은 사후에도 자신을 기리는 동상이나 기념비를 세우지 말 것을 유언했고, 이 뜻을 받들어 아예 우상화 금지법까지 제정됐다. 라울은 동구 사회주의 붕괴와 소련의 해체를 목격하면서 구상해온 개혁·개방 정책을 12년간 실행에 옮겼다. 농업개혁, 관광업 진흥, 자영업 허용, 정치범 석방 등을 단행했다. 2016년에는 단교한 지 54년 만에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지난 19일 쿠바 전국인민권력회의에서 라울이 국가수반인 국가평의회 의장직에서 물러나고, 수석부의장인 미겔 디아스카넬(58)이 새 의장에 선출됐다. 쿠바혁명 이후 ‘카스트로’ 성을 쓰지 않는 첫 국가수반이 탄생한 것이다. 쿠바혁명 이듬해 태어난 ‘혁명 후 세대’인 디아스카넬은 1993년 공산당에 입당한 뒤 2009년 고등교육장관에 올랐고, 2012년 국가평의회 부의장으로 선출돼 라울을 최측근에서 보좌해왔다.

 

5살 터울인 피델과 라울 형제가 고령화하면서 ‘포스트 카스트로 체제’가 오래전부터 거론돼온 만큼 이번 권력교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게다가 라울은 2021년까지 공산당 총서기직을 유지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여 급격한 변화가 초래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본래 최고권력의 가문이 바뀌는 ‘역성(易姓)’은 피를 부르는 ‘혁명’을 수반하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쿠바의 ‘역성’은 연착륙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