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01
일본의 경제학자 하야미 아키라(速水融)는 17세기 에도시대 일본에서 자본(가축)부족을 인력의 근면성으로 극복해 생산력을 높이는 ‘근면혁명(勤勉革命)’이 발생했다는 설을 제창했다. 농촌인구 대 가축비율이 크게 줄어들었는데도 오히려 생활수준이 높아진 현상을 분석한 결과물이었다. 그는 당시 일본이 농기구 개량, 시비 개선 등을 통해 가축 감소에 대응하는 한편 특유의 근면윤리를 발휘해 경제력을 향상시킨 것으로 보았다. 이 근면혁명이 18세기 유럽 산업혁명 전 단계에서도 발생했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의 새마을운동과 북한의 ‘천리마(千里馬)운동’도 넓은 의미에서 근면혁명의 범주에 넣어 설명할 수 있다. 하루 1000리를 달린다는 전설의 말에서 유래한 천리마운동은 1956년 12월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계기로 시작됐다. 소련의 원조 삭감으로 조성된 자본·물자·기술 부족사태를 주민의 자발적 역량으로 돌파하자는 집단적 증산운동이 천리마운동이다. 이 운동이 강조한 ‘천리마 속도’는 ‘평양속도’ ‘비날론속도’ 등으로 확장됐고, ‘70일 전투’ ‘150일 전투’ 등의 파생적 구호도 등장했다. 초기의 속도전은 실제로 상당한 성과를 발휘해 경제계획을 초과 달성하기도 했지만, 자본투자가 따라주지 않은 데다 양적 목표달성만 강조되면서 경제의 비효율을 심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속도전은 여전히 북한체제의 주요한 작동원리다. 김정은 시대에는 ‘만리마’ 속도전이라는 구호가 선을 보였다. 천리마의 10배가 넘는 속도로 경제건설에 나서자는 ‘만리마 속도’는 김정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이 소속된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의 작품이다. 지난달 27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만리마 속도전을 통일의 속도로 삼자”고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큰 합의를 해놓고 10년 이상 실천을 못했다”며 “우리가 11년간 못한 것을 100여일 만에 줄기차게 달려왔다”며 속도전을 강조했다. 남북관계 복원을 경제발전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속내가 김 위원장의 발언 곳곳에 배어 있다. 남북 표준시 통일방침을 알린 지 열흘도 안돼 실행에 옮기는 등 일을 뜸들이지 않고 해치우는 김 위원장의 속도전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